23일
금백(錦伯)이 보내온 전보에, “병사(兵使)가 보고하기를, ‘충주의 일본군 70명이 청안(淸安)에서 진천에 왔습니다’라고 하였고, 천안(天安) 수령이 보고하기를, ‘목천의 군사와 합세하여 그들을 치러 갔다가 진천의 비도가 다시 흩어져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최(崔, 최시형)도 진천에 도착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순무영 중군(中軍)휘하에 《전보하기를》, “오늘 주본(奏本)은 비괴(匪魁) 3명의 목을 베어 경계하고 김적(金賊, 김개남)의 잘린 머리를 조사하는 것입니다. 귀영(貴營, 순무영)의 초기(草記)는 뜻을 받들어 임금의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총리대신의 하교를 받들어 지휘할 일은, 수집사(首執事)1명을 바로 보내어 명을 전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라고 하였다. 정부(政府, 의정부) 도헌(都憲) 유(兪, 유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