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기백(箕伯, 평안 감사)이 보내온 전보에, “위원(渭原) 《수령》 김유현(金有鉉)이 의병 20명을 인솔하여 지금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전보로 말씀을 드립니다. 전진과 후퇴를 하는 것은 다시 정부의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금백(錦伯)이 보내온 전보에, “하늘이 쇠퇴한 것입니까? 새로 보충하던지 아니면 상주(上奏)와 도계(道啓, 감사의 狀啓)를 그대로 두기를 요청합니다. 관례(慣例)를 크게 바꿀 뿐만 아니라 《비도를》 추격하는 중이라 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보내온 전보에, “어제 객병(客兵, 다른 곳에서 온 병사)이 비도로 가장하여 와서 소란스럽게 하기에 쫓아 보냈습니다. 그들이 청산(靑山)과 보은에서 패배하여 홍산사(鴻山寺)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토병(土兵)은 간담이 작아 일을 수행할 수가 없어 전보로 요청을 합니다. 병사와 포(砲) 몇 십명만 보내주시면 충분합니다. 공주는 늘 몇 명의 군사가 상주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