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乙未]
1월 [正月]
초1일
기백(箕伯, 평안 감사)이 보내온 전보에, “김위원(金渭原)이 전진하고 후퇴하는 일은 전보로 말씀을 올렸으나 답신이 없어 이상합니다. 의병 20명이 많은 날을 묵는 것도 근심스럽습니다. 바로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41호(四十一號)
기영(箕營)에 전보하기를, “김위원의 일은 전보를 이미 보냈다”고 하였다. 정부.
42호(四十二號)
금영에 전보하기를, “신기선(申箕善)의 상소(上疏)에 비답(批答)하기를, ‘시국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사직(辭職)에만 애쓰니 이것이 어찌 신하로서 의(義)를 나눈 것이겠는가? 바로 올라와서 명을 따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