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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 기사명
    전라도병마절도사가 올린 장계 [1894년 10월 29일]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94년 10월 29일
일러두기

승선원(承宣院) 개탁(開坼, 개봉)

갑오년 11월 29일 전라도 병마절도사 신(臣) 수결 근봉(謹封).

가선대부(嘉善大夫) 전라도 병마절도사(全羅道 兵馬節度使) 신(臣) 서(徐) 수결.

지금 도착한 도내(道內)의 순천부(順天府) 공형(公兄)의 문장(文狀)에, “본 관아의 부사(府使)가 읍의 일을 직접 만나 의논하려고 순영문(巡營門)으로 떠났는데, 이달 16일 해시(亥時, 오후 9~11시)에 전주참(全州站)에서 함께 따라갔던 수배(隨陪)의 사통(私通)에, ‘사또께서 이날 신원참(新院站)에 도착했는데, 마침 남원대접주(南原大接主)가 이 곳에 이르러서 사또님과 하인 등이 모두 잡혀 참(站)앞에 결박을 당했고 겨우 전주에 도착하여 사또께서는 곤장 30대를, 저는 곤장 10대를 맞았습니다. 대접주가 말하기를 순천에 배정한 군수전(軍需錢) 10만냥과 백목(白木, 무명)100동(同)을 5일내에 운송하여 납부하라는 뜻으로 진중(陣中)에 구금하며, 돈과 무명을 기한 내에 올려 보낸 뒤에야 살아나갈 수가 있다고 하였으니, 읍에서 힘을 다해 마련하여 밤을 가리지 않고 올려 보내어 죽음에서 구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도착한 진중(陣中)에 갇힌 수배(隨陪)의 사통에, ‘사또께서 곤장을 맞고 갇힌 뒤에 장독(杖毒)이 점차 퍼져서 고치기가 어려우니 아랫사람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병부(兵符)와 겸읍(兼邑, 관할하고 있는 다른 읍)의 병부도 풀어져서 없어졌고 상하(上下)간에 갓·망건·교자(轎子)·의복 등 가지고 있던 물건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당일에 사또께서 다시 곤장 20대를 맞아 일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수전과 무명을 밤을 가리지 않고 올려 보내라고 하니 황송하고 근심스럽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연유를 먼저 문장(文狀)을 만들고 아울러 문장을 올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동도가 갈수록 더욱 심해져서 읍(邑)의 백성을 분탕질하고 군기(軍器)를 빼앗아서 일이 매우 흉악하니 진실로 작은 변고가 아닙니다. 신이 병영에 온 이후에 소중한 관방(關防, 변방)을 소홀히 하지 않고 성첩(城堞)을 수축하고 군물(軍物)을 개조하며 방비를 더욱 엄중하게 해서 겨우 성지(城池)를 보전하였는데, 지금 저들이 관인(官印)을 침범하고 2차례 곤장을 치거나 병부(兵符)를 빼앗아 진중(陣中)에 잡아 가두고 감히 군수(軍需)라고 하며 강제로 돈과 무명을 요구하니 이것이 무슨 변괴입니까? 신은 이 흉악한 말을 듣고 분한 마음이 솟구쳐서 나도 모르게 이마에 땀이 나서 어찌 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 비류(匪類)는 지금 용서할 필요가 없으니 지금 여러 읍에서 병사를 징발하여 바로 토벌할 계획입니다. 그 연유를 미리 치계(馳啓)합니다.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지(稟旨)하게 해서 특별히 처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연유로 장계를 올릴 일.

개국(開國) 503년 10월 29일.

개국 503년 11월 29일에 계하(啓下)하다.

주석
수배(隨陪) 수령이 행차할 때나 전근할 때에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던 구실아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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