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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 기사명
    충청도관찰사가 올린 장계 [1894년 11월 16일]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94년 11월 16일
일러두기

승선원(承宣院) 개탁(開坼, 개봉)

갑오년 11월 18일 충청감사 신(臣) 수결 근봉(謹封)

가선대부(嘉善大夫) 충청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순찰사 공주목사(忠淸道觀察使 兼 兵馬水軍節度使 巡察使 公州牧使) 신(臣) 박(朴, 박제순) 수결.

지금 접한 공주진(公州鎭)우영장(右營將) 이기동(李基東)의 첩정에, “이달 14일 진시(辰時, 오전 7시~9시)쯤에 영장(營將)이 일본군 대위와 함께 행진해서 일본군은 공주목(公州牧) 20리의 용수막(龍水幕)에, 영장은 판치(板峙)에 주둔하였다가 경천역(敬川驛)으로 전진할 때에 멀리 연산읍(連山邑)에서 불빛이 하늘을 찌르고 포소리가 진동하는 것을 보고 연달아 탐문을 하였더니, 교도소(敎導所)의 병사가 좌도(左道)에서 갑자기 나와 적병과 싸웠다고 하였습니다. 노성읍(魯城邑) 봉수대(烽燧臺) 근처의 봉우리마다 불빛이 일고 적병이 사방에 있어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지만, 병사가 적어 주둔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회군해서 돌아오는 길에 통위영 대관(統衛營 大官) 오창성(吳昌成)을 만나 대열을 합쳐 공주 진두면(辰頭面) 신곡리(新谷里)에 묵었는데, 해시(亥時, 오후 9~11시)쯤에 용수막의 일본군 진중(陣中)에서 온 지시에, ‘자시(子時, 오후 11시~1시)에 경천으로 행진하니 귀진(貴陣)과 통위영의 병사도 함께 와서 경천에서 합세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시(子時, 오후 11시~오전1시)쯤에 통위진(統衛陣)과 함께 경천에 달려갔더니, 일본군 대위의 진(陣)이 간 곳을 알지 못하겠고, 해가 뜰 때까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노성읍에서 포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바로 달려가다가 대위를 만나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더니, ‘봉화대(烽火臺)아래 쪽으로 오다가 연달아 포를 쏘아 죽였더니 그 무리 몇 백명이 논산(論山)으로 도망을 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위는 통위영과 장위영의 병사와 합세하여 쫓아간다고 하였고, 영장은 바로 진(陣)을 나누어 돌아오는 길에 노성의 누동면(樓洞面)에 들어가서 비류(匪類)의 적치미(積置米) 51석을 동민(洞民)으로 하여금 가져오도록 거듭 지시를 하였습니다. 청산(靑山)에서 돌아오는 일본군 100여명을 길에서 만나 그들로 하여금 바로 논산으로 가게 하였고, 경천에 돌아와서 다시 비류의 도회소(都會所)에 적치되어 있던 쌀 127석을 역시 동민에게 가져와서 바치도록 했으며, 길에서 창을 지닌 비류를 만나 4명을 쏘아죽이고 본주(本州, 공주) 봉명동(鳳鳴洞)에 묵고서 내일 진(鎭)에 돌아갈 계획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연유를 치계합니다. 이런 연유로 장계를 올릴 일.

개국(開國) 503년 11월 16일.

개국 503년 11월 18일에 계(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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