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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갑오군공록 甲午軍功錄
일러두기

갑오군공록(甲午軍功錄)

순무사
(廵撫使)
신정희
(申正熙)
정1품 졸서
(正一品 卒逝)
중군
(中軍)
허진
(許璡)
종2품
(從二品)
군부협판
(軍部協辦)
권재형
(權在衡)
종2품
(從二品)
종사관
(從事官)
정인표
(鄭寅杓)
6품
(六品)
호남초토사
(湖南招討使)
민종렬
(閔種烈)
종2품
(從二品)
뜻을 세워 궁리하고 계획하여 외따로 고립된 성을 끝내 지켰다.[矢志運籌竟守孤城]
호연초토사
(湖沿招討使)
이승우
(李勝宇)
종2품
(從二品)
백성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용사를 모집하여 외따로 고립된 성을 끝내 지켰다.[鎭民募勇終守孤城]
충청감사
(忠淸監司)
박제순
(朴齊純)
종2품
(從二品)
5개월 동안 위기를 맞이하여 마음을 다해 도적의 무리를 방어하였다.[五朔危機盡心禦寇]
전라감사
(全羅監司)
이도재
(李道宰)
종2품
(從二品)
호남 1도가 그의 덕택에 다시 소생하였다.[湖南一省賴以復甦]
좌선봉
(左先鋒)
이규태
(李圭泰)
3품 졸서
(三品 卒逝)
양호(兩湖)의 적도를 토벌하고 평정하여 군사와 백성 모두가 칭송하였다.[討平兩湖軍民咸頌]
청주병사
(淸州兵使)
이장회
(李長會)
종2품
(從二品)
5개월 동안 도적의 무리를 방어하고 군사를 훈련하여 성을 지켰다.[五朔禦寇鍊武守城]
전경리영관 군수
(前經理領官 郡守)
성하영
(成夏永)
3품
(三品)
우금치 전투에서 몸을 떨쳐 앞장서서 나아갔다.[牛金之役挺身先登]
전순무참모관 주서
(前廵撫參謀官 注書)
박봉양
(朴鳳陽)
9품 전주사
(九品 前主事)
의병을 일으켜 성을 지키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도를 죽였다.[倡義守城殺賊無筭]
전현감
(前縣監)
조원식
(趙元植)
6품
(六品)
의병을 규합하여 수천명의 비적을 죽였다.[糾聚民勇殺匪數千]
전소모관
(前召募官)
정기봉
(鄭基鳳)
6품 충주군수
(六品 忠州郡守)
의로써 도적의 무리를 방어하고 지혜로써 능히 적을 다스렸다.[義以禦寇智能料敵]
전경리영관
(前經理領官)
구상조
(具相祖)
3품 참령
(三品 參領)
송산과 우금치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松山牛金屢著戰功]
전통위영관
(前統衛領官)
장용진
(張容鎭)
3품 참령
(三品 參領)
우금치와 논산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牛金論山屢著其功]
전장위영관
(前壯衛領官)
원세록
(元世祿)
3품 보성군수
(三品 寶城郡守)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畿湖) 지역을 안정시켰다.[屢著戰功畿湖賴安]
전경리대관
(前經理隊官)
이상덕
(李相德)
4품 부위
(四品 副尉)
공주와 서천에서 수백명의 적도를 모조리 죽였다.[公州舒川殲賊數百]
전장위영관
(前壯衛領官)
윤희영
(尹喜永)
3품
(三品)
양호(兩湖)에서 잇따라 전투에 참가하여 수백명의 적도를 죽였다.[連戰兩湖殺賊數百]
전경리대관
(前經理隊官)
윤영성
(尹泳成)
4품 정위
(四品 正尉)
공주와 서천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舒川屢著其功]
전경리청대관
(前經理廳隊官)
김명환
(金命煥)
4품 정위
(四品 正尉)
호남의 고을에서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여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상대하였다.[屢戰湖邑以寡敵衆]
전통위대관
(前統衛隊官)
신창희
(申昌熙)
4품 정위
(四品 正尉)
우금치와 논산에서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웠다.[牛金論山屢戰著功]
전통위대관
(前統衛隊官)
오창성
(吳昌成)
4품 정위
(四品 正尉)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웠는데 그 공이 신창희와 같았다.[功同申昌熙屢戰著功]
전경리대관
(前經理隊官)
백낙완
(白樂浣)
3품 참령
(三品 參領)
효포와 우금치에서 힘껏 싸워 적도를 물리치고 이미 상을 받았다.[孝浦牛金力戰却賊已蒙賞典]
전경리대관
(前經理隊官)
조병완
(曺秉完)
4품 부위
(四品 副尉)
부지런히 기호지역을 순찰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廵勦畿湖屢著其功]
전교도대관
(前敎導隊官)
이겸제
(李謙濟)
4품 참령
(四品 參領)
양호(兩湖)에서 잇따라 전투에 참가하여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連戰兩湖最著其功]
전장위대관
(前壯衛隊官)
이규식
(李圭植)
4품 정위
(四品 正尉)
양호(兩湖)에서 잇따라 전투에 참가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적도를 격파하였다.[連戰兩湖涉險破賊]
전나주영장
(前羅州營將)
이원우
(李源祐)
3품
(三品)
나주목사와 협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성을 지켰다.[協心州牧終始守城]
호남소모관 전주사
(湖南召募官 前主事)
백낙중
(白樂中)
9품
(九品)
운봉을 고수하고 기회를 틈타 적도를 격파하였다.[固守雲峰應機破賊]
전공주영장
(前公州營將)
이기동
(李基東)
3품 정위
(三品 正尉)
계략과 결단력이 있어서 군사를 지원하는데 임기응변이 뛰어났다.[有謀能斷贊戎應變]
전거창부사 소모사
(前居昌府使 召募使)
정관섭
(丁觀燮)
3품
(三品)
군사를 모아 고개를 지키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도를 죽이거나 잡았다.[募旅守嶺勦捕無筭]
전운봉현감
(前雲峰縣監)
이의경
(李義絅)
6품
(六品)
적은 병력으로 성을 지켜 반드시 승리를 계획하였다.[孤軍守城劃筭決勝]
전전라좌수사
(前全羅左水使)
김철규
(金徹圭)
3품
(三品)
강한 적도를 방어하여 성벽을 보호하였다.[捍遏强寇保護城垣]
전영해부사
(前寧海府使)
신태휴
(申泰休)
3품 참령
(三品 參領)
영남의 고을을 순찰하여 많은 비도들을 죽이거나 잡았다.[廵哨嶺邑勦捕群匪]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이지효
(李志孝)
6품 부위
(六品 副尉)
양호의 전투에서 네 차례 전공을 세웠다.[兩湖之役四次戰功]
옥과의려 전현감
(玉果義旅 前縣監)
유정효
(劉正孝)
6품
(六品)
군사를 모으고 계획을 세워 많은 비류를 체포하였다.[募旅設計多捕匪類]
전경리교장
(前經理敎長)
이봉춘
(李鳳春)
공주와 서천에서 여섯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舒川六次戰功]
전경리교장
(前經理敎長)
이장혁
(李章赫)
부위
(副校)
공주와 서천에서 여섯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舒川六次戰功]
신천의려장 진사
(信川義旅長 進士)
안태훈
(安泰勳)
죽음을 무릅쓰고 의를 위해 일어서서 재산을 나누어 주며 병사를 모집하였다.[冒死奮義散財募丁]
청주전영관
(淸州前領官)
이용정
(李容正)
3품 지평군수
(三品 砥平郡守)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여 그 공로가 더욱 드러났다.[屢次出戰尤著其勞]
전장위영관
(前壯衛領官)
남만리
(南萬里)
3품 정위
(三品 正尉)
일본군대에서 종군하면서 부지런히 일을 주선하였다.[從行日陣周旋勤至]
전장위대관
(前壯衛隊官)
박영호
(朴永祜)
6품 정위
(六品 正尉)
기호의 여러 고을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畿湖諸邑屢次戰功]
순무참모사
(廵撫參謀士)
이규백
(李圭白)
9품 탁지주사
(九品 度支主事)
천리 밖의 먼곳에 있는 부대를 좇아가서 부지런히 계책을 세웠다.[千里赴陣奔走贊畫]
우선봉진별군관
(右先鋒陣別軍官)
윤지영
(尹摯榮)
호남우도의 여러 고을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湖右諸邑屢著戰功]
우선봉진별군관
(右先鋒陣別軍官)
김광수
(金光洙)
6품 참위
(九品 參尉)
호남우도의 여러 고을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湖右諸邑屢著戰功]
순무참모관
(廵撫參謀官)
권종석
(權鍾奭)
4품 참령
(四品 參領)
공주와 서천에서 네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舒川四次戰功]
순무참모관
(廵撫參謀官)
신효식
(申孝湜)
공주와 서천에서 다섯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舒川五次戰功]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류석용
(柳錫用)
6품 부위
(六品 副尉)
공주와 서천에서 네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舒川四次戰功]
순무참모관
(廵撫參謀官)
이상덕
(李相德)
3품
(三品)
공주 전투에서 세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之役三次戰功]
순무참모관
(廵撫參謀官)
황승억
(黃昇億)
공주 전투에서 세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之役三次戰功]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이재화
(李在華)
6품 홍산군수
(六品 鴻山郡守)
효포와 우금치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孝浦牛金再有戰功]
순무참모관
(廵撫參謀官)
이구영
(李龜榮)
9품 삼척군수
(九品 三陟郡守)
군량을 조달하고 탄환을 운반하며 일을 계획하고 알선하였다.[調餉運丸幹旋籌劃]
순무참모관
(廵撫參謀官)
정도영
(鄭道永)
9품 군부주사
(九品 軍部主事)
모든 일에 일일이 계획에 참여하였으며 몸소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싸웠다.[隨事參畫親冒矢石]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이달영
(李達榮)
효포와 우금치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孝浦牛金再次戰功]
순무별군관 전군수
(廵撫別軍官 前郡守)
이종진
(李宗珍)
3품 체임무산군수
(三品 遞茂山郡守)
납교와 우금치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蠟橋牛金再次戰功]
순무별군관 유학
(廵撫別軍官 幼學)
이주서
(李周瑞)
공주와 담양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潭陽再次戰功]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이필영
(李弼榮)
3품 횡성군수
(三品 橫城郡守)
납교와 우금치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納橋牛金再次戰功]
순무별군관 전군수
(廵撫別軍官 前郡守)
이흥교
(李興敎)
3품
(三品)
납교와 우금치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納橋牛金再次戰功]
순무별군관 출신
(廵撫別軍官 出身)
송흠국
(宋欽國)
납교와 우금치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納橋牛金再次戰功]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박정환
(朴晶煥)
6품 정위
(六品 正尉)
납교와 우금치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納橋牛金再次戰功]
좌선봉진별군관 출신
(左先鋒陣別軍官 出身)
이선
(李璿)
납교와 우금치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納橋牛金再次戰功]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이겸래
(李謙來)
6품 부위
(六品 副尉)
기호의 여러 고을에서 세 차례 전공을 세웠다.[畿湖諸邑三次戰功]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조편
(趙翩)
9품 참위
(九品 參尉)
기호지역에 종군하여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從軍畿湖頗有戰功]
안동전영장
(安東前營將)
김호준
(金好駿)
3품
(三品)
수만명의 적도를 물리쳐 온 경내가 안정되었다.[却賊數萬闔境賴安]
전하동부사 조방장
(前河東府使 助防將)
홍택후
(洪澤厚)
4품
(四品)
한 고을의 적도들을 모두 진압하여 온 경내가 안정되었다.[勦盡一邑闔境賴安]
전교도대관
(前敎導隊官)
이민굉
(李敏宏)
3품 부령
(三品 副領)
양호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兩湖之役屢次戰功]
전천안군수
(前天安郡守)
김병숙
(金炳塾)
졸서
(卒逝)
병사를 모아 병기조작 훈련을 시켰으며 비도를 진압하고 양민을 위로하였다.[募兵鍊械勦匪撫良]
심영병방
(沁營兵房)
황헌주
(黃憲周)
졸서
(卒逝)
위험을 무릅쓰고 힘을 내어 김개남을 체포하였다.[冒險出力捉金介男]
영남소모사
(嶺南召募使)
정의묵
(鄭宜默)
3품
(三品)
의병을 모집하여 보내어 적도와 싸우거나 체포하였다.[募義派兵或戰或捕]
관동소모관
(關東召募官)
김태진
(金太鎭)
6품 인제군수
(六品 獜蹄郡守)
적을 죽이거나 체포하고 위로하며 구제하는 일이 모두 다 적절하였다.[勦捕存恤各得其宜]
전부장
(前部將)
안승렬
(安承烈)
6품
(六品)
사나운 비도들을 섬멸하고 남은 무리들을 소탕하였다.[破殲劇匪掃蕩餘藪]
홍주전학관
(洪州前學官)
이규응
(李奎應)
9품
(九品)
유회에서 농보를 쌓고 바깥에서 홍주성을 지원하였다.[儒會農堡外援洪城]
천안의병장
(天安義兵將)
윤영렬
(尹英烈)
3품 안성군수
(三品 安城郡守)
재산을 다 털어서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적도를 죽이거나 붙잡는 일에도 깊이 관여하였다.[傾財倡義廣行勦捕]
전홍주영장
(前洪州營將)
홍건
(洪楗)
3품
(三品)
홍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상당부분 그의 활약 덕분이었다.[洪州之捷多賴其力]
경리영관 전군수
(經理領官 前郡守)
홍운섭
(洪運燮)
3품
(三品)
금강의 남북에서 세 차례 전공을 세웠다.[錦江南北三次戰功]
옥천의병장 전군수
(沃川義兵將 前郡守)
박정빈
(朴正彬)
5품
(五品)
의병으로서 경병을 지원하여 비류를 죽이거나 붙잡아 이미 청산군수로 제수되는 상을 받았다.[義援京兵勦捕匪類已蒙賞典靑山郡守]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육상필
(陸相弼)
6품 부위
(六品 副尉)
의병을 모집하여 적도의 우두머리들을 많이 붙잡았다.[召募義旅多捉巨魁]
호남소모관 전현감
(湖南召募官 前縣監)
임두학
(林斗鶴)
3품
(三品)
의병을 모으기를 주창하여 적도의 우두머리들을 많이 붙잡았다.[倡募義旅多獲巨魁]
호남소모관 진사
(湖南召募官 進士)
이장규
(李章珪)
창의하여 병사를 모집하고 비도의 우두머리들을 붙잡아 바쳤다.[倡義募兵捉納匪魁]
제천유학
(堤川幼學)
서상무
(徐相懋)
창의하여 군대를 모아 비류를 생포하였다.[倡義募旅生擒匪類]
장연유학
(長淵幼學)
정량
(鄭樑)
의병 1,000여명을 모아 본부를 두 차례 지원하였다.[募義千餘再援本府]
부안유학
(扶安幼學)
이장하
(李璋夏)
창의하여 병사를 모아 많은 비도를 죽이거나 붙잡았다.[倡義募兵勦捕群匪]
부안진사
(扶安進士)
이병로
(李秉老)
창의하여 비도를 죽이고 거액을 출연하여 군량을 넉넉히 조달하였다.[倡義勦匪巨款贍餉]
홍주순초영관
(洪州廵哨領官)
이석범
(李錫範)
약한 무리를 이끌고 홀로 강한 적도에게 항전하였다.[指揮弱衆獨抗强敵]
한산수성장
(韓山守城將)
김연
(金鍊)
3품 정읍군수
(三品 井邑郡守)
힘껏 한산성을방어하여 인근 경내가 안정되었다.[力守韓城隣境賴安]
남원참봉
(南原參奉)
황영
(黃瑛)
창의하여 군사를 모아 비도를 죽이거나 붙잡았다.[倡義募軍勦捕匪徒]
청주별군관
(淸州別軍官)
신장선
(申長善)
상인 출신 병정을 모집하여 13 차례나 전투에 참가하였다.[募領商丁十三出戰]
경리교장
(經理敎長)
장대규
(張大奎)
3품 참위
(三品 參尉)
공주와 서천에서 네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舒川四次戰功]
경리교장
(經理敎長)
김홍엽
(金弘燁)
공주 전투에서 세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之役三次戰功]
통위교장
(統衛敎長)
박상길
(朴相吉)
참교
(參校)
공주와 은진에서 세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恩津三次戰功]
장위교장
(壯衛敎長)
양기영
(梁基英)
기호의 전투에서 세 차례 전공을 세웠다.[畿湖之役三次戰功]
경리교장
(經理敎長)
우기준
(禹基俊)
공주 전투에서 세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之役三次戰功]
장위교장
(壯衛敎長)
이경진
(李景振)
호서의 전투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湖西之役再次戰功]
경리교장
(經理敎長)
정인갑
(鄭仁甲)
공주와 서천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舒川再次戰功]
경리교장
(經理敎長)
정재원
(鄭在元)
공주와 서천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舒川再次戰功]
통위교장
(統衛敎長)
김상운
(金相雲)
공주와 은진에서 두 차례 전공을 세웠다.[公州恩津再次戰功]
해주포군영장
(海州砲軍領將)
기인덕
(奇仁德)
해서의 여러 고을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海西諸郡屢有戰功]
심영초관
(沁營哨官)
박승규
(朴承奎)
대둔산 전투에서 적도를 소탕하였다.[大芚之役掃蕩賊藪]
순천의려
(順天義旅)
윤성섭
(尹成涉)
창의하여 관문을 지키는 자를 칼로 베고 부성을 되찾았다.[倡義斬關克復府城]
순천의려
(順天義旅)
이종갑
(李宗甲)
창의하여 관문을 지키는 자를 칼로 베고 부성을 되찾았다.[倡義斬關克復府城]
순천의려
(順天義旅)
천사성
(千士成)
창의하여 관문을 지키는 자를 칼로 베고 부성을 되찾았다.[倡義斬關克復府城]
순천의려
(順天義旅)
김성록
(金聖祿)
창의하여 관문을 지키는 자를 칼로 베고 부성을 되찾았다.[倡義斬關克復府城]
순천의려
(順天義旅)
이영주
(李榮柱)
창의하여 관문을 지키는 자를 칼로 베고 부성을 되찾았다.[倡義斬關克復府城]
순천의려
(順天義旅)
성용희
(成庸熙)
창의하여 관문을 지키는 자를 칼로 베고 부성을 되찾았다.[倡義斬關克復府城]
나주호장
(羅州戶長)
정태완
(鄭台完)
8개월 동안 싸워 지키면서 여러 차례 뛰어난 공적을 세웠다.[八朔戰守屢立奇功]
홍주토중군
(洪州土中軍)
박봉진
(朴鳳鎭)
여러 달 동안 성을 지켜 뛰어난 공을 세웠다.[屢朔守城優有著功]
전주퇴교
(全州退校)
한신현
(韓信賢)
이미 김천군수로 제수되는 상을 받았다.[已蒙賞典金川郡守]
순창유학
(淳昌幼學)
김영철
(金永轍)
민정을 은밀하게 이끌고 전봉준을 생포하였다.[潛率民丁生擒全奉準]
순창민
(淳昌民)
정창욱
(丁昌昱)
민정을 은밀하게 이끌고 전봉준을 생포하였다.[潛率民丁生擒全奉準]
홍주호장
(洪州戶長)
김관섭
(金寬燮)
30일 동안에 걸친 전투에서 몸소 앞장섰다.[三旬戰陣身以先之]
진주전만호
(晉州前萬戶)
윤순백
(尹順伯)
스스로 상인 출신 병정을 모집하여 연이어 보를 쌓고 적도를 사로잡거나 죽였다.[自募商丁連壘擒勦]
예천이방
(醴泉吏房)
정대일
(鄭戴一)
대책을 마련하여 적도를 회유하였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적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設法諭賊殺獲無筭]
이천장교
(伊川將校)
이언묵
(李彦默)
신계와 수안에서 세 차례 적을 쳐부수었다.[新溪遂安三次破賊]
이천장교
(伊川將校)
이시점
(李時漸)
신계와 수안에서 세 차례 적을 쳐부수었다.[新溪遂安三次破賊]
통위병
(統衛兵)
이원근
(李元根)
서산 전투에서 용맹을 과시하며 선두에 나섰다.[瑞山之役賈勇先登]
경리병
(經理兵)
남창오
(南昌五)
우금치 전투에서 선두에 나섰다가 총탄에 맞았다.[牛金之役先登中丸]
동복전오위장
(同福前五衛將)
오윤술
(吳潤述)
3품
(三品)
의병을 모집하여 모든 경내를 방어하였다.[倡義募丁保禦全境]
홍주부호군
(洪州副護軍)
정헌조
(鄭憲朝)
종2품
(從二品)
온고을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기를 진작시키고 적도들의 기세를 꺾었다.[倡會一鄕士振賊挫]
곤양전장령
(昆陽前掌令)
황보연
(黃輔淵)
의기를 떨쳐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하동을 지켰다.[奮義冒險往守河東]
순천영장
(順天營將)
이풍희
(李豊熙)
3품
(三品)
배 한척을 타고 구원을 요청하여 수영을 되찾았다.[單舸乞援克復水營]
영암군수
(靈巖郡守)
남기원
(南起元)
4품
(四品)
뜻을 가다듬어 적도를 막고 온 고을을 굳게 지켰다.[勵志捍寇嬰城全邑]
예산전현감
(禮山前縣監)
이시우
(李時宇)
4품
(四品)
군대를 모아 비도를 죽이고 재산을 다 털어서 군량을 공급하였다.[募旅勦匪傾財給餉]
전황주병우후
(前黃州兵虞候)
이상로
(李相魯)
봉산 전투에서 비도 수십명을 죽였다.[鳳山之役殺匪數十]
전심영영관
(前沁營領官)
황시중
(黃時中)
3품 부위
(三品 副尉)
황헌주와 함께 김개남을 체포하였다.[同黃憲周捉金介男]
장위대관
(壯衛隊官)
김진풍
(金振豊)
논산 전투에서 적지 않은 공적을 세웠다.[論山之役頗有其功]
청영대관
(淸營隊官)
김영진
(金榮振)
청산 전투와 보은 전투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靑報之役頗有戰功]
청영대관
(淸營隊官)
김기배
(金起培)
청산 전투와 보은 전투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靑報之役頗有戰功]
교도대관
(敎導隊官)
최영학
(崔永學)
원평 전투에서 적도를 쳐부수고 무기를 빼앗았다.[院坪之役破賊奪械]
전대관
(前隊官)
오건영
(吳建泳)
완산 전투에서 한번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完山之役決一死戰]
해서소모관
(海西召募官)
이규진
(李奎鎭)
해주 전투에서 적도를 죽이고 무기를 획득하였다.[海州之役勦賊獲械]
순무참모사
(廵撫參謀士)
이속의
(李涑儀)
남원과 장수를 순찰하고 적도를 죽이는 데 공적을 세웠다.[南原長水巡勦有功]
순무참모관
(廵撫參謀官)
이동현
(李東鉉)
소모사로 파견되어 계책을 세우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派赴召募參畫過人]
순무참모관
(廵撫參謀官)
구완희
(具完喜)
6품 대흥군수
(六品 大興郡守)
공산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公山之役效勞頗多]
순무참모관
(廵撫參謀官)
오학수
(吳鶴秀)
장흥 전투에서 매우 많은 전공을 세웠다.[長興之役戰功頗多]
홍주별군관
(洪州別軍官)
정기황
(鄭基璜)
불안한 민심을 진압하고 마침내 여러번 전공을 세웠다.[克鎭胥動終建屢捷]
홍주별군관
(洪州別軍官)
정한조
(鄭翰朝)
유생군을 모집하여 이끌고 밖에서 홍주성을 지원하였다.[倡率儒軍外援洪城]
홍주초토군관
(洪州招討軍官)
박홍양
(朴鴻陽)
3품 정산군수
(三品 定山郡守)
몸소 적도들을 염탐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공로가 적지 않았다.[躬行詗賊始終效勞]
홍주초토군관 유학
(洪州招討軍官 幼學)
이종원
(李鍾遠)
군대를 모아 배를 동강 내어 인근의 적도들이 건너오는 것을 막았다.[募旅斷船鄰賊莫渡]
홍주초토군관
(洪州招討軍官)
이두종
(李斗鍾)
소집에 응하여 지혜를 내었으며 항상 만전을 기하였다.[應募運智常出萬全]
호남소모진군관
(湖南召募陣軍官)
이봉규
(李鳳奎)
소모진의 참모로 적도들을 죽이고 붙잡는 데 공을 세웠다.[參謀召募勦捕有功]
목천소모진군관 출신
(木川召募陣軍官 出身)
이병식
(李秉植)
작성과 칠장에서 탄환을 무릅쓰고 선두에 나섰다.[鵲城七長冒丸先登]
목천소모진군관
(木川召募陣軍官)
정기조
(鄭耆朝)
소모진에서 군량미를 조달하는데 그의 노력에 많이 의지하였다.[召募籌餉多賴其力]
순무별군관 전군수
(廵撫別軍官 前郡守)
유일환
(兪一煥)
3품
(三品)
우금치 전투에서 적지 않은 공로가 있었다.[牛金之役頗有其勞]
청주별군관
(淸州別軍官)
박기래
(朴麒來)
군사에 꽤 밝아 적도들을 막는데 공을 세웠다.[頗知兵事禦賊有功]
홍주별군관
(洪州別軍官)
이주승
(李周承)
군사들을 불러 모아 적도들을 막고 재물을 내어 군량미에 보탰다.[倡會禦賊出財助餉]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조중석
(趙重錫)
9품 부위
(九品 副尉)
창의하여 군대를 모으고 비류들을 죽이거나 생포하였다.[倡義募旅勦捕匪類]
좌선봉별군관
(左先鋒別軍官)
황범수
(黃凡秀)
양호의 전투에서 적도들을 죽이는데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兩湖之役頗有勦功]
홍주초토군관
(洪州招討軍官)
김상범
(金商範)
반년 동안병사들을교습시키는 바람에 침소를 마련할 겨를이 없었다.[半年敎習不遑寢處]
홍주초토군관
(洪州招討軍官)
김종헌
(金鍾憲)
반년 동안병사들을교습시키는 바람에 침소를 마련할 겨를이 없었다.[半年敎習不遑寢處]
홍주초토군관
(洪州招討軍官)
이능연
(李能淵)
반년 동안병사들을교습시키는 바람에 침소를 마련할 겨를이 없었다.[半年敎習不遑寢處]
홍주초토군관
(洪州招討軍官)
김주현
(金周鉉)
반년 동안병사들을교습시키는 바람에 침소를 마련할 겨를이 없었다.[半年敎習不遑寢處]
목천소모진군관
(木川召募陣軍官)
박종화
(朴宗化)
작성과 칠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비도들을 토벌하였다.[鵲城七長冒危討匪]
관동소모진군관 전주사
(關東召募陣軍官 前主事)
이시영
(李時榮)
의로운 마음으로 진영을 따라가 스스로 군량을 마련하였다.[出義隨陣自辦軍糧]
관동소모진군관 유학
(關東召募陣軍官 幼學)
황기정
(黃基鼎)
의로운 마음으로 진영을 따라가 스스로 군량을 마련하였다.[出義隨陣自辦軍糧]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임형준
(任炯準)
3품 정위
(三品 正尉)
일본군 진영에서 종군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隨從日陣始終效勞]
순무별군관
(廵撫別軍官)
임병효
(林炳孝)
9품 참위
(九品 參尉)
일본군 진영에서 종군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隨從日陣始終效勞]
은진유학
(恩津幼學)
서재우
(徐載雨)
9품 금산군수
(九品 錦山郡守)
일본군 진영에서 종군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隨從日陣功效頗多]
전주사
(前主事)
현영운
(玄映運)
9품
(九品)
몸소 화살과 바위를 무릅쓰고 힘껏 일본군을 지원하였다.[躬冒矢石效力日陣]
예산전부장
(禮山前部將)
이민직
(李敏稷)
의로운 마음으로 군대를 모아 위험한 곳에 가서 비도들을 죽였다.[出義募旅赴險勦匪]
안동전참봉
(安東前參奉)
권재기
(權載紀)
9품
(九品)
창의하여 군대를 모아 급난에 열심히 대비하였다.[倡義募旅奔走急難]
양근진사
(楊根進士)
서병승
(徐丙升)
의병을 통솔하고 거괴를 염탐하여 붙잡았다.[統率義兵詗捉巨魁]
예산전오위장
(禮山前五衛將)
권종하
(權鍾夏)
3품
(三品)
의로운 마음으로 무리를 모아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였다.[出義募衆冒險屢戰]
원주진사
(原州進士)
이철화
(李哲和)
9품 참위
(九品 參尉)
의로운 무리들을 불러 모아 많은 비괴를 붙잡았다.[倡募義衆多捉匪魁]
홍산유회장 전사과
(鴻山儒會長 前司果)
최학래
(崔鶴來)
6품
(六品)
홍산성을 온전히 보존하였으며 서천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能全鴻城效勞舒役]
안동전오위장
(安東前五衛將)
김익장
(金翼張)
3품
(三品)
적도들의 소굴을 소탕하고 이웃 고을을 힘써 구했다.[掃蕩群窩力救隣境]
담양의병통령
(潭陽義兵統領)
구상순
(具相淳)
의병을 모아 힘을 합쳐 비류를 쫓아 붙잡았다.[募義合力逐捕匪類]
남포유학
(藍浦幼學)
임의준
(任義准)
유생들의 모임을 먼저 발의하고 비당들을 순찰하여 죽였다.[先倡儒會巡勦匪黨]
고창전현감
(高敞前縣監)
은덕중
(殷德中)
6품
(六品)
비괴 손여옥 등 3명을 체포하였다.[捉匪魁孫汝玉等三名]
고창유학
(高敞幼學)
서동식
(徐東植)
비괴 홍낙관 등을 염탐하여 체포하였다.[詗捉匪魁洪洛寬等]
능주유학
(綾州幼學)
양주묵
(梁周默)
창의하여 규칙을 세우고 비도 300명을 체포하였다.[倡義立規捕匪三百]
능주유학
(綾州幼學)
윤자경
(尹滋慶)
창의하여 규칙을 세우고 비도 300명을 체포하였다.[倡義立規捕匪三百]
구례유학
(求禮幼學)
이기
(李沂)
군대를 모아 성을 지키고 비괴를 염탐하여 붙잡았다.[募旅守城詗捉匪魁]
평창출신
(平昌出身)
김충근
(金忠根)
비괴 성문환을 염탐하여 붙잡았다.[詗捉匪魁之成文煥]
무장유학
(茂長幼學)
박선채
(朴旋采)
창의하여 무리를 규합하고 비도 100명을 체포하였다.[倡義糾衆捕匪百名]
양양유학
(襄陽幼學)
이석범
(李錫範)
의기를 떨쳐 군대를 모아 영동을 안정시켰다.[奮義募旅嶺東賴安]
양양유학
(襄陽幼學)
이국범
(李國範)
의기를 떨쳐 군대를 모아 영동을 안정시켰다.[奮義募旅嶺東賴安]
고창유학
(高敞幼學)
이봉우
(李鳳宇)
민병을 통솔하여 손화중을 체포하였으며, 이미 증산군수로 제수되는 상을 받았다.[統率民兵捉孫化中 已蒙賞典甑山]
강릉민보장
(江陵民堡長)
이수해
(李守海)
의병과 협력하여 사나운 적도들을 격파하였다.[協同義旅擊破劇賊]
양근유학
(楊根幼學)
유덕준
(兪德濬)
의병을 통솔하여 괴수를 붙잡고 그 무리들을 해산시켰다.[統率義兵捉魁散黨]
양근유학
(楊根幼學)
이덕래
(李德來)
의병을 통솔하여 괴수를 붙잡고 그 무리들을 해산시켰다.[統率義兵捉魁散黨]
남포유학
(藍浦幼學)
채상오
(蔡相五)
비인과 판교에서 비도 수십 명을 붙잡았다.[庇仁板橋捉匪數十]
고창유학
(高敞幼學)
강수중
(姜守重)
의기를 떨쳐 군대를 모아 괴수 3명을 체포하였다.[奮義募旅捉魁三名]
영남유학
(嶺南幼學)
김제홍
(金濟洪)
청산과 보은 사이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비도들을 죽였다.[靑報之間冒危勦匪]
남포유학
(藍浦幼學)
이종윤
(李鍾崙)
재산을 털어 내어 무리들을 모으고 사나운 비도들을 격퇴하였다.[捐財募衆擊退劇匪]
홍주유학
(洪州幼學)
김복래
(金福來)
늙음을 잊고 충성심을 떨쳐 유생들을 불러 모아 어려움을 구하였다.[忘老奮忠倡儒救難]
전첨사
(前僉使)
이국신
(李國信)
탄환을 무릅쓰고 선두에 나서서 생사를 돌보지 않았다.[冒丸當先不顧死生]
전수문장
(前守門將)
함은준
(咸殷俊)
4품 참위
(四品 參尉)
탄환을 무릅쓰고 선두에 나서서 생사를 돌보지 않았다.[冒丸當先不顧死生]
태인유학
(泰仁幼學)
송치홍
(宋致弘)
충성심을 떨쳐 계책을 내어 김괴를 체포하였다.[奮忠出計搜捕金魁]
울산유학
(蔚山幼學)
지문백
(池文伯)
종군하여 괴수를 베었으며 어깨에 탄환 1발을 맞았다.[從軍斬魁肩中一丸]
거창유학
(居昌幼學)
이준학
(李竣學)
방략을 내어 참된 마음으로 방어하였다.[贊劃方略實心防禦]
거창유학
(居昌幼學)
강달주
(姜達周)
힘껏 군사를 모아 이끌면서 부대를 나누어 뒤를 추적하여 체포하였다.[倡率出力分隊跟捉]
함양유학
(咸陽幼學)
노봉현
(盧奉鉉)
힘껏 군사를 모아 이끌면서 유장에 이름을 올렸다.[倡率出力至登儒狀]
장위교장
(壯衛敎長)
장세복
(張世福)
양호에서 연거푸 싸워 여러번 전공을 세웠다.[連戰兩湖屢獲全功) *(全功은 戰功의 誤記)인 듯.]
통위군교
(統衛軍校)
신철회
(申徹會)
종군을 자원하여 비도들을 격파하고 해산시켰다.[自願從軍破散匪徒]
통위교장
(統衛敎長)
황수옥
(黃水玉)
논산 전투에서 여러 차례 싸워 여러 차례 이겼다.[論山之役屢戰屢勝]
장위교장
(壯衛敎長)
홍선경(洪善敬)홍선경
(洪善敬)
양호에서 연거푸 싸워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連戰兩湖頗有著功]
장위교장
(壯衛敎長)
추광협
(秋光恊)
서산 전투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瑞山之役頗有著功]
장위교장
(壯衛敎長)
박성희
(朴聖熙)
서산 전투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瑞山之役頗有著功]
장위교장
(壯衛敎長)
김대유
(金大有)
해서 전투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海瑞之役頗有戰功]
장위교장
(壯衛敎長)
김인길
(金仁吉)
해서 전투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海瑞之役頗有戰功]
심영포교
(沁營捕校)
김경석
(金景錫)
황헌주를 수행하여 김개남을 체포하였다.[從黃憲周捉金介男]
심영포교
(沁營捕校)
김시형
(金時享)
황헌주를 수행하여 김개남을 체포하였다.[從黃憲周捉金介男]
청영대관
(淸營隊長)
이태순
(李泰淳)
청산 전투와 영동 전투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靑永之役頗有戰功]
청영대장
(淸營隊長)
이동근
(李東根)
6품 참위
(六品 參尉)
청산 전투와 영동 전투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靑永之役頗有戰功]
고창퇴리
(高敞退吏)
윤행권
(尹行權)
의병을 따라가 거괴를 붙잡았다.[赴從義旅捉得巨魁]
나주좌수
(羅州座首)
박상수
(朴祥壽)
한 차례 출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一次出戰多有效勞]
나주별장
(羅州別將)
전학권
(錢鶴權)
다섯 차례 출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五次出戰多有效勞]
영암군관
(靈巖軍官)
손창식
(孫昌植)
성을 지켜 비도들과 싸우며 처음부터 끝까지 큰 공을 세웠다.[守城戰匪始終效勞]
심영포교
(沁營捕校)
윤치근
(尹致根)
황헌주를 수행하여 김개남을 체포하였다.[從黃憲周捉金介男]
나주리
(羅州吏)
이돈기
(李敦祺)
전후의 싸움에서 방어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前後戰守多有效勞]
함평수성장
(咸平守城將)
이재순
(李載淳)
4개월 동안 성을 지켜 주위 환경을 안정시켰다.[四朔守城環境戢淸]
청영수교
(淸營首校)
김형대
(金瀅大)
문의 전투와 청주 전투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文淸之役頗有著功]
장연영관
(長淵領官)
김병호
(金炳浩)
구월산 전투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九月山戰頗有著功]
심영초관
(沁營哨官)
임진형
(林鎭瀅)
대둔산 전투에서 힘을 내어 공적을 세웠다.[大屯之役出力成功]
청영수교
(淸營首校)
곽인엽
(郭仁燁)
문의 전투와 청주 전투에서 참모로서 공적을 세웠다.[文淸之役劃謀有功]
평양통변
(平壤通辯)
박치운
(朴致雲)
천리를 종군하여 때로는 화살과 바위를 무릅쓰고 싸웠다.[千里從軍時冒矢石]
나주퇴교
(羅州退校)
김창균
(金蒼均)
적과 싸워 지킬 때 많은 공로가 있었다.[戰守之際多有勤勞]
전라좌수영초관
(全羅左水營哨官)
곽경환
(郭景煥)
일본군을 주선하여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周旋日陣頗有功勞]
홍주좌수
(洪州座首)
이규승
(李奎承)
군량을 관리하여 군대의 굶주림을 없앴다.[專掌糧餉一軍無飢]
홍주유리
(洪州由吏)
이종응
(李鍾應)
임기응변으로 군사를 도와 실로 많은 공을 세웠다.[贊戎應變實多效勞]
장연영장
(長淵領將)
이명선
(李鳴善)
구월산 전투에서 탄환을 무릅쓰고 적도를 죽였다.[九月之役冒丸殺賊]
능주전만호
(綾州前萬戶)
조헌묵
(曺憲默)
창의하여 규칙을 세우고 비도 300명을 체포하였다.[倡義立規捉匪三百]
나주이방
(羅州吏房)
손상문
(孫商文)
전후의 싸움에서 방어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前後戰守多有效勞]
고군산첨사
(古群山僉使)
양성록
(梁成祿)
대책을 마련하고 남모르게 염탐하여 거괴를 쫓아 붙잡았다.[設法譏詗追捕巨魁) ]
곡산수교
(谷山首校)
노준길
(盧俊吉)
이천과 수안에서 적도를 포살하였다.[伊川遂安砲殺賊徒]
강릉수교
(江陵首校)
이진석
(李震錫)
북쪽으로 적도를 추적하여 많은 무리를 죽이고 붙잡았다.[追賊逐北殺獲甚衆]
금산퇴교
(錦山退校)
김재희
(金在禧)
민병을 모집하여 이끌고 많이 비류들을 붙잡았다.[募率民兵多捉匪類]
태안수성장
(泰安守城將)
손상초
(孫相楚)
창의하여 병사를 모아 비당들을 붙잡았다.[倡義募兵跟捕匪黨]
상리소임
(商理所任)
이완배
(李完培)
양호에서 척후병을 세워 비도들을 염탐하는 데 공을 세웠다.[立塘兩湖詗匪效勞]
상리소임
(商理所任)
송성운
(宋成雲)
양호에서 척후병을 세워 비도들을 염탐하는 데 공을 세웠다.[立塘兩湖詗匪效勞]
금산퇴교
(錦山退校)
이병상
(李秉相)
민병을 모아 이끌고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募率民兵頗有功勞]
수안퇴교
(遂安退校)
권성돈
(權成敦)
군대를 모아 출격하여 비도 9명을 붙잡았다.[募旅出擊捉匪九名]
해영영장
(海營領將)
김인석
(金人碩)
병정을 모아 배치하여 매우 큰 공적을 세웠다.[募設兵丁其功尤著]
총어별무사
(摠禦別武士)
안성관
(安聖寬)
정교
(正校)
부산하게 이곳저곳 다니면서 정탐하고 싸움할 때마다 반드시 앞장섰다.[馳聘偵探每戰必先]
용호별무사
(龍虎別武士)
김태형
(金台衡)
부교
(副校)
부산하게 이곳저곳 다니면서 정탐하고 싸움할 때마다 반드시 앞장섰다.[馳聘偵探每戰必先]
장위교장
(壯衛敎長)
홍종식
(洪鍾植)
전장에 나아가 힘을 다하여 적들을 매우 많이 죽였다.[臨陣勦膽頗多廝殺]
장위규칙
(壯衛糾飭)
김명산
(金命山)
용맹을 떨치며 곧장 앞으로 나아가 적괴의 깃발을 빼앗았다.[奮勇直前奪賊魁旗]
장위규칙
(壯衛糾飭)
김흥식
(金興植)
대포를 잘 발사하여 많은 적도를 죽였다.[善放大砲多殺賊徒]
출신
(出身)
한규방
(韓奎邦)
탄환을 무릅쓰고 선두에 나서서 생사를 돌보지 않았다.[冒丸當先不顧死生) ]
출신
(出身)
이봉환
(李鳳煥)
탄환을 무릅쓰고 선두에 나서서 생사를 돌보지 않았다.[冒丸當先不顧死生]
안의퇴교
(安義退校)
최춘근
(崔春根)
용맹을 떨쳐 제일 먼저 나아가 여러 차례 위급한 이웃을 구하였다.[奮勇首先屢救隣急]
영영영관
(嶺營領官)
최처규
(崔處圭)
여러 차례 비류들을 죽여 참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屢勦匪類效勞實多]
영영초관
(嶺營哨官)
장교혁
(張敎赫)
여러 차례 비류들을 죽여 참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屢勦匪類效勞實多]
영영초관
(嶺營哨官)
이완근
(李完根)
여러 차례 비류들을 죽여 참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屢勦匪類效勞實多]
영영초관
(嶺營哨官)
노규남
(盧奎南)
여러 차례 비류들을 죽여 참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屢勦匪類效勞實多]
문경전영장
(聞慶前營將)
임중상
(林重相)
군사를 모아 이끌면서 지키고 거괴를 염탐하여 붙잡았다.[倡率防守詗捉巨魁]
통위병정
(統衛兵丁)
김계운
(金啓云)
논산 전투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論山之役效勞頗有]
통위병정
(統衛兵丁)
조윤이
(趙用伊)
논산 전투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論山之役效勞頗有]
통위병정
(統衛兵丁)
김의준
(金宜俊)
논산 전투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論山之役效勞頗有]
공주포병
(公州砲兵)
이윤모
(李允模)
몸소 총탄을 무릅쓰고 앞장서 나아가 적도를 격파하였다.[身冒銃丸當先破賊]
고부민
(古阜民)
조인상
(趙仁尙)
몸을 떨쳐 위험을 무릅쓰고 손화중을 체포하였다.[挺身冒險捉孫化中]
순창민
(淳昌民)
이경우
(李京佑)
몸을 떨쳐 위험을 무릅쓰고 손화중을 체포하였다.[挺身冒險捉孫化中]
순창민
(淳昌民)
오의선
(吳義善)
몸을 떨쳐 위험을 무릅쓰고 손화중을 체포하였다.[挺身冒險捉孫化中]
순창민
(淳昌民)
신기오
(申基五)
몸을 떨쳐 위험을 무릅쓰고 손화중을 체포하였다.[挺身冒險捉孫化中]
순창민
(淳昌民)
홍명근
(洪命根)
몸을 떨쳐 위험을 무릅쓰고 손화중을 체포하였다.[挺身冒險捉孫化中]
순창민
(淳昌民)
배동환
(裵東煥)
몸을 떨쳐 위험을 무릅쓰고 손화중을 체포하였다.[挺身冒險捉孫化中]
순창민
(淳昌民)
노성칠
(盧性七)
몸을 떨쳐 위험을 무릅쓰고 손화중을 체포하였다.[挺身冒險捉孫化中]
순창민
(淳昌民)
황일권
(黃一權)
몸을 떨쳐 위험을 무릅쓰고 손화중을 체포하였다.[挺身冒險捉孫化中]
순창민
(淳昌民)
박성대
(朴成大)
몸을 떨쳐 위험을 무릅쓰고 손화중을 체포하였다.[挺身冒險捉孫化中]
순창민
(淳昌民)
임화경
(林化京)
몸을 떨쳐 위험을 무릅쓰고 손화중을 체포하였다.[挺身冒險捉孫化中]
경리병정
(經理兵丁)
김관일
(金寬一)
적도와 싸우다가 탄환을 맞고 거의 죽을 뻔 했다.[臨敵中丸幾乎損軀]
경리병정
(經理兵丁)
김명수
(金明洙)
적도와 싸우다가 탄환을 맞고 거의 죽을 뻔 했다.[臨敵中丸幾乎損軀]
인천포수
(仁川砲手)
노제석
(盧濟石)
무리를 이끌고 비도들을 섬멸하여 한 고을이 안정되었다.[率黨殲匪一邑賴安]
장위병정
(壯衛兵丁)
김치순
(金致順)
논산 전투에서 탄환을 맞고 거의 위독한 지경에 빠졌다.[論山之役中丸幾危]
지평포군
(砥平砲軍)
이기원
(李基元)
비도를 토벌하고 소탕하여 한 고을의 칭송을 받았다.[討匪掃平一境嘆誦]
예천민
(醴泉民)
장문건
(張文建)
몸을 떨치고 일어나 병사를 모아 이끌고 비당을 소탕하여 평정하였다.[奮身倡率勦平匪黨]
예천민
(醴泉民)
황송해
(黃松海)
몸을 떨치고 일어나 병사를 모아 이끌고 비당을 소탕하여 평정하였다.[奮身倡率勦平匪黨]
장위십장
(壯衛什長)
이장옥
(李章玉)
힘껏 앞장서 나아가 많은 적도들을 죽였다.[齊力當先多殺賊徒]
장위병정
(壯衛兵丁)
지창연
(池昌淵)
어진을 위봉산성에 봉안하였다.[御眞奉安威鳳山城]
장위병정
(壯衛兵丁)
장화실
(張化實)
탄환을 맞아 팔다리에 상처를 입어 목숨을 잃을 뻔 했다.[中丸傷肢幾至傷命]
무안유학
(務安幼學)
오한수
(吳漢洙)
거괴 배상옥 등을 체포하였다.[捉得巨魁裵尙玉等]
영남소모사
(嶺南召募使)
조시영
(曺始永)
창의하여 군대를 모아 고개를 지켰다.[倡義募旅遮截嶺隘]
순무영참모사
(廵撫營參謀士)
고현주
(高顯柱)
호남의 여러 읍에서 비도를 소탕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湖南諸邑勦匪多勞]
장위별군관
(壯衛別軍官)
강원로
(姜元魯)
재무관
(財務官)
일본군을 따라가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隨從日陣頗有效勞]
순무영참모관
(廵撫營參謀官)
홍영훈
(洪永勳)
보은 전투에서 적도를 소탕하는데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報恩之役頗有勦功]
공주전주사
(公州前主事)
이희준
(李羲俊)
친히 화살과 바위를 무릅쓰고 병사들 사이에서 열심히 싸웠다.[親冒矢石效力兵間]
청주군관
(淸州軍官)
이상현
(李相鉉)
싸워 지킬 때 참으로 많은 공로가 있었다.[戰守之際效勞實多]
순무영별군관
(廵撫營別軍官)
허완
(許岏)
기호지역에 종군하여 참으로 많은 공로가 있었다.[從軍畿湖效勞實多]
순무영별군관
(廵撫營別軍官)
구연흡
(具然洽)
기호지역에 종군하여 참으로 많은 공로가 있었다.[從軍畿湖效勞實多]
좌선봉진별군관
진사
(左先鋒陣別軍官 進士)
권승규
(權升圭)
탄환을 운반하기 위하여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등 공을 세웠다.[領運彈丸跋涉效勞]
좌선봉진별군관
(左先鋒陣別軍官)
박윤현
(朴允鉉)
위험을 무릅쓰고 정탐하여 종군에 노고가 많았다.[冒危偵探從軍勞苦]
금영별군관
(錦營別軍官)
고창규
(高昌奎)
비괴를 생포하고 군수물자를 많이 지원하였다.[捕捉匪魁多助軍需]
하동전주부
(河東前主簿)
김진옥
(金振玉)
죽음
(身死)
민포를 불러 궐기하도록 하였으며 의병장으로 전투에 나아갔다.[倡起民砲出爲義將]
공주전부사
(公州前府使)
이종헌
(李鍾憲)
토병을 통솔하여 요해처를 지켰다.[統率土兵防守鎭隘]
해주소모진군관
(海州召募陣軍官)
정환윤
(鄭煥允)
해주 전투에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海州之役從軍有效]
해주고모진군관
(海州召募陣軍官)
정석규
(鄭錫圭)
해주 전투에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海州之役從軍有效]
홍주별군관
(洪州別軍官)
장정식
(張定植)
재물을 털어 군량을 보태고 군대를 모아 병력을 보충하였다.[捐財助餉募旅充丁]
홍주군관
(洪州軍官)
표구석
(表龜錫)
의기를 떨치며 군량을 지원하고 몸소 화살과 바위를 무릅쓰고 싸웠다.[出義助餉躬冒矢石]
목천소모진군관
(木川召募陣軍官)
조병훈
(曺秉勳)
6품 사과
(六品 司果)
비도를 염탐하고 군량을 마련하였으며 전투에서 선두에 나섰다.[詗匪籌餉臨陣先登]
전심영초관
(前沁營哨官)
강대흠
(姜大欽)
시부위
(時副尉)
황헌주를 수행하여 김개남을 체포하였다.[從黃憲周捉金開男]
태인전현감
(泰仁前監役)
김종하
(金鍾廈)
힘껏 선두에 나서서 거괴를 붙잡았다.[奮力當先捉納巨魁]
홍주진사
(洪州進士)
표학수
(表鶴洙)
보를 쌓아 험한 곳을 근거지로 삼고 밖에서 성원하였다.[築堡據險外爲聲援]
순무영군관
(廵撫營軍官)
조병욱
(曺秉郁)
임두학과 함께 비류를 방어하였다.[同林斗鶴防禦匪類]
목천소모진군관
(木川召募陣軍官)
이병두
(李秉斗)
종군하여 비도들을 토벌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從軍討匪效勞實多]
목천소모진군관
(木川召募陣軍官)
이병식
(李秉植)
종군하여 비도들을 토벌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從軍討匪效勞實多]
목천소모진군관
오위장
(木川召募陣軍官 五衛將)
서필수
(徐弼壽)
종군하여 비도들을 토벌하고 거괴를 붙잡아 바쳤다.[從軍討匪捉納巨魁]
목천소모진군관
유학
(木川召募陣軍官 幼學)
박노수
(朴魯洙)
군량을 마련하고 병사를 징발하여 진중에서 공로가 적지 않았다.[籌餉調兵積勞陣中]
목천소모진군관
유학
(木川召募陣軍官 幼學)
박종현
(朴宗鉉)
군량을 마련하고 병사를 징발하여 진중에서 공로가 적지 않았다.[籌餉調兵積勞陣中]
목천소모진군관
유학
(木川召募陣軍官 幼學)
안효상
(安孝祥)
군량을 마련하고 병사를 징발하여 진중에서 공로가 적지 않았다.[籌餉調兵積勞陣中]
목천소모진군관
유학
(木川召募陣軍官 幼學)
정규흥
(丁奎興)
군량을 마련하고 병사를 징발하여 진중에서 공로가 적지 않았다.[籌餉調兵積勞陣中]
비인유학
(庇仁幼學)
신태환
(申泰煥)
병사들과 맹서하며 적도들을 막으니 한 고을이 안정되었다.[誓衆禦寇一邑賴安]
보성유학
(寶城幼學)
안종목
(安宗穆)
힘을 떨쳐 사악함을 물리치고 거괴를 붙잡아 바쳤다.[奮力斥邪捉納巨魁]
공주유학
(公州幼學)
정창조
(鄭昌朝)
친히 화살과 바위를 무릅쓰고 병사들 사이에서 열심히 싸웠다.[親冒矢石效力兵間) ]
나주유학
(羅州幼學)
김경환
(金景煥)
의기를 떨쳐 무리를 거느리고 적도들을 막는 데 공을 세웠다.[出義領衆禦寇有功]
의성유학
(義城幼學)
신면형
(申冕瀅)
맨먼저 계책을 내어 비도들의 소굴을 소탕하였다.[首先出謀掃蕩匪窟]
진주출신
(晉州出身)
김석필
(金碩弼)
쇠약한 몸을 이끌고 적도들에게 나아가 사나운 칼날을 피하지 않았다.[曳衰赴敵不避狂鋒]
의성유학
(義城幼學)
이장회
(李章繪)
참모를 불러 인솔하여 병정을 단속하였다.[倡率參謀團束兵丁]
홍주유학
(洪州幼學)
황수영
(黃秀英)
보를 쌓아 험한 곳을 근거지로 삼고 밖에서 성원하였다.[築堡據險外爲聲援]
나주유학
(羅州幼學)
염유진
(廉有鎭)
무리를 거느리고 고을 서쪽으로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領衆州西出戰有勞]
나주유학
(羅州幼學)
홍우현
(洪佑鉉)
의기를 떨쳐 무리를 거느리고 고을 북쪽에서 적도들을 막았다.[出義領衆禦寇州北]
나주유학
(羅州幼學)
류기연
(柳紀淵)
500명의 사람들을 모아 괴수 수십 명을 붙잡았다.[募民五百捉魁數十]
지평출신
(砥平出身)
신재정
(申在政)
맹영재를 수행하며 많은 비류를 죽였다.[從孟英在多勦匪類]
한산유학
(韓山幼學)
김낙환
(金洛煥)
서호에서 향도가 되어 공로가 적지 않았다.[西湖鄕導優有其勞]
순천군교
(順天軍校)
김경운
(金景雲)
순천과 보성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順天寶城頗有著功]
운봉유학
(雲峰幼學)
박양준
(朴良俊)
서로 협력하여 방어하였으며 마음을 모아 성을 구축하였다.[協力防堵衆心成城]
교도교장
(敎導敎長)
장천쇠
(張千釗)
일본군 진영에서 종군하면서 접주를 붙잡았다.[隨從日陣捉得接主]
통위규칙
(統衛糾飭)
김원석
(金元錫)
논산 전투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論山之役頗有戰功]
장위교장
(壯衛敎長)
최기성
(崔基成)
서산 전투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瑞山之役頗有效勞]
통위규칙
(統衛糾飭)
홍복영
(洪卜英)
논산 전투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論山之役頗有戰功]
교도교장
(敎導敎長)
임충국
(林忠國)
일본군 진영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접주를 붙잡았다.[效勞日陣捉得接主]
교도교장
(敎導敎長)
인응선
(印應善)
죽산 전투에서 용맹하게 나아가 적도들을 죽였다.[竹山之役勇進殺賊]
전주사
(前主事)
정준시
(鄭駿時)
9품
(九品)
병졸과 포군을 모집하여 주둔 중인 비도들을 순찰하여 죽였다.[募卒砲軍廵勦屯匪]
총어영서자적
(摠禦營書字的)
안세현
(安世鉉)
진중에서 장부를 맡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공로가 적지 않았다.[掌簿陣中始終效勞]
전교도교장 참위
(前敎導敎長 參尉)
유성원
(劉聖元)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적도들을 만나 용맹을 떨쳤다.[不辭勞苦遇賊勇進]
교도십장
(敎導什長)
김명순
(金明順)
일본군을 좇아 다니면서 접주를 붙잡았다.[隨從日軍捉得接主]
통위십장
(統衛什長)
김봉두
(金奉斗)
논산 전투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論山之役頗有戰功]
통위십장
(壯衛什長)
문응락
(文應洛)
세 차례 출전하여 참으로 많은 전공을 세웠다.[三次出戰實有積功]
통위십장
(統衛什長)
김순일
(金順一)
논산 전투에서 공로가 적지 않았다.[論山之役頗有效勞]
공주진교
(公州鎭校)
김백현
(金伯鉉)
우금치 전투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牛金之役頗有戰勞]
나주리
(羅州吏)
김근환
(金根煥)
두 차례 출전하여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二次出戰頗有效勞]
나주대장
(羅州隊長)
김기옥
(金基玉)
두 차례 출전하여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二次出戰頗有效勞]
공주진교
(公州鎭校)
박준식
(朴準植)
우금치와 이인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牛金利仁頗有戰功]
공주진교
(公州鎭校)
박춘식
(朴春植)
우금치와 이인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牛金利仁頗有戰功]
공주천총
(公州千摠)
박순달
(朴順達)
우금치와 이인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牛金利仁頗有戰功]
공주별장
(公州別將)
박춘명
(朴春明)
우금치와 이인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牛金利仁頗有戰功]
운봉운량리
(雲峰運糧吏)
박진홍
(朴震洪)
성을 지킬 때 군량을 조달하는 데 공을 세웠다.[城守之際籌餉效勞]
나주리
(羅州吏)
장길한
(張吉翰)
두 차례 종군하여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二次從軍頗有戰勞]
나주리
(羅州吏)
최윤룡
(崔允龍)
두 차례 종군하여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二次從軍頗有戰勞]
나주리
(羅州吏)
최문섭
(崔文燮)
세 차례 종군하여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三次從軍頗有戰勞]
나주리
(羅州吏)
최일봉
(崔一鳳)
세 차례 종군하여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三次從軍頗有效勞]
함평리
(咸平吏)
이영관
(李永琯)
위험을 무릅쓰고 험난한 곳을 건너며 많은 비류를 붙잡았다.[冒危涉險多捉匪類]
나주천총
(羅州千摠)
최성순
(崔聖純)
적과 싸워 지키면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戰守之際多有效勞]
심영초관
(沁營哨官)
최호성
(崔浩成)
위험을 피하지 않고 많은 전공을 세웠다.[不避危險多有戰勞]
동래통변
(東萊通辯)
최한백
(崔翰帛)
일본군을 따라 종군하면서 공로가 적지 않았다.[隨從日軍勞苦不些) ]
해영집사
(海營執事)
최남표
(崔南杓)
성을 지켜 비도들을 막는데 철저하게 대비하였다.[守城禦匪周旋備至]
나주집사
(羅州執事)
고덕봉
(高德鳳)
두 차례 출전하여 많은 공로가 있었다.[二次出戰勞苦多有]
나주집사
(羅州執事)
손치홍
(孫致洪)
두 차례 출전하여 많은 공로가 있었다.[二次出戰勞苦多有]
나주군관
(羅州軍官)
전공서
(錢公瑞)
두 차례 출전하여 많은 공로가 있었다.[二次出戰勞苦多有]
고창군교
(高敞軍校)
전응진
(全應振)
용맹하게 나아가 종군하여 많은 비류를 붙잡았다.[勇進從軍多捉匪類]
공주출신
(公州出身)
윤노선
(尹魯善)
친히 화살과 바위를 무릅쓰고 병사들 사이에서 열심히 싸웠다.[親冒矢石效力兵間親冒矢石效力兵間]
한산호장
(韓山戶長)
김하은
(金夏殷)
성을 지키는 데 공로가 있었으며 경군을 선도하였다.[守城效勞前導京軍]
청주부상
(淸州褓商)
인호근
(印鎬謹)
상인들을 통솔하여 제방에 서서 적진을 정탐하는 데 공로를 세웠다.[率商立塘偵探效勞]
나주리
(羅州吏)
양인환
(梁仁煥)
세 차례 종군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三次從軍多有戰勞]
공주진교
(公州鎭校)
양원길
(梁元吉)
우금치와 이인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牛金利仁頗有戰勞]
나주리
(羅州吏)
구유술
(具有述)
세 차례 종군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三次從軍多有戰勞]
공주진교
(公州鎭校)
조광승
(曺光承)
우금치와 이인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牛金利仁頗有戰勞]
장연군교
(長淵軍校)
우동선
(禹東善)
장연 전투에서 공로가 적지 않았다.[長淵之役戰勞不些]
나주군교
(羅州軍校)
문후관
(文寬厚)
두 차례 출전하여 그 공로가 매우 많았다.[二次出戰勞苦多有]
공주진교
(公州鎭校)
주시원
(朱始元)
우금치와 이인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牛金利仁頗有戰功]
나주리
(羅州吏)
기학연
(奇鶴衍)
두 차례 종군하여 그 공로가 적지 않았다.[二次從軍效勞可尙]
공주진교
(公州鎭校)
정평오
(丁平吾)
우금치와 이인의 전투에서 공로가 적지 않았다.[牛金利仁頗有效勞]
함양대장
(咸陽隊長)
박주행
(朴珠幸)
힘을 다해 군사를 불러 모아 이끌면서 부대를 나누어 뒤를 추적하여 적들을 붙잡았다.[倡率出力分隊跟捉]
공주출신
(公州出身)
박대유
(朴大有)
힘을 다해 비도들을 죽이고 군수물자를 넉넉히 바쳤다.[效力勦匪優納軍需]
부산통변
(釜山通辯)
박계수
(朴桂守)
일본군 진영에서 종군하면서 공로가 적지 않았다.[隨從日陣勞苦不些]
홍주장교
(洪州將校)
장영식
(張永植)
군사와 백성을 넉넉히 지원하여 1성이 모두 그에게 의지했다.[助贍軍民一城咸賴]
영암수성장
(靈巖守城將)
하태명
(河泰命)
성을 지켜 비도들을 죽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공로가 적지 않았다.[守城勦匪始終效勞]
서천수성장
(舒川守城將)
나현구
(羅鉉九)
적은 수로 많은 적들을 막으면서 있는 힘을 다해 성을 지켰다.[以寡禦衆殫力守城]
나주수성부통장
(羅州守城副統長)
김재환
(金在煥)
8개월 동안 성을 지키면서 여러 차례 적도들의 공격을 막았다.[八朔守城屢挫敵鋒]
경기교
(京譏校)
정태식
(鄭台植)
비도들을 추적하여 붙잡는데 멀리까지 가서 수고가 적지 않았다.[跟捕匪徒遠行積勞]
경기교
(京譏校)
이성근
(李性根)
비도들을 추적하여 붙잡는데 멀리까지 가서 수고가 적지 않았다.[跟捕匪徒遠行積勞]
수안퇴교
(遂安退校)
권성돈
(權成敦)
의로운 마음으로 무리를 모아 비류를 많이 붙잡았다.[出義募衆多捉匪類]
곡산퇴교
(谷山退校)
박명응
(朴命膺)
이천과 수안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伊川遂安頗多戰勞]
곡산리
(谷山吏)
이상민
(李相敏)
이천과 수안에서 적지 않은 전공을 세웠다.[伊川遂安頗有戰勞]
평창군교
(平昌軍校)
문도순
(文道淳)
김충근을 수행하여 성문환을 붙잡았다.[從金忠根捉成文漢]
목천소모진수종
경교
(木川召募陣隨從京校)
송창식
(宋昌植)
비류를 염탐하여 붙잡았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공로가 많았다.[詗捉匪類始從效勞]
공주군관전첨사
(公州軍官前僉使)
노정현
(盧貞鉉)
좁은 입구를 파수하면서 밤낮으로 떠나지 않았다.[把守隘口晝夜不離]
공주군관 한량
(公州軍官 閑良)
박대춘
(朴大春)
좁은 입구를 파수하면서 밤낮으로 떠나지 않았다.[把守隘口晝夜不離]
공주군관
(公州軍官)
안영우
(安永佑)
좁은 입구를 파수하면서 밤낮으로 떠나지 않았다.[把守隘口晝夜不離]
공주군관
(公州軍官)
한창업
(韓昌業)
좁은 입구를 파수하면서 밤낮으로 떠나지 않았다.[把守隘口晝夜不離]
공주군관전첨사
(公州軍官前僉使)
신영지
(申永志)
좁은 입구를 파수하면서 밤낮으로 떠나지 않았다.[把守隘口晝夜不離]
완영집사
(完營執事)
정창권
(鄭昌權)
몸을 버리고 용맹을 떨쳐 끝내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았다.[舍身奮勇終不敗衄]
부산통변
(釜山通辯)
이택규
(李澤圭)
통역을 자원하여 공로가 적지 않았다.[自願通譯效勞不些]
부산통변
(釜山通辯)
이선재
(李善在)
일본군 진영에서 공로가 적지 않았으며 큰 비류를 붙잡았다.[效勞日陣捉得紳匪]
초량통변
(草梁通辯)
김윤기
(金允基)
일본군 진영에서 공로가 적지 않았으며 큰 비류를 붙잡았다.[效勞日陣捉得紳匪]
통위화병
(統衛火兵)
최점동
(崔點同)
논산 전투에서 적진에 쳐들어가 적의 머리를 베었다.[論山之役犯陣奪腦]
공주한량
(公州閑良)
최덕규
(崔德圭)
친히 화살과 바위를 무릅쓰고 병사들 사이에서 공로가 적지 않았다.[親冒矢石效勞兵間]
안의민
(安義民)
박무걸
(朴茂杰)
창의하여 힘껏 비류를 죽이고 붙잡았다.[倡義出力勦捕匪類]
안의민
(安義民)
김홍권
(金洪權)
창의하여 힘껏 비류를 죽이고 붙잡았다.[倡義出力勦捕匪類]
해남민
(海南民)
박휘헌
(朴徽憲)
거괴 김춘두 등을 체포하였다.[捉得巨魁金春斗等]
해남민
(海南民)
윤규용
(尹奎龍)
거괴 배규인 등을 체포하여 바쳤다.[捉納巨魁裵奎磷等]
해남민
(海南民)
김만국
(金萬國)
거괴 김춘두 등을 체포하여 바쳤다.[捉納巨魁金春斗等]
운봉한량
(雲峰閑良)
이태권
(李奉權)
서로 협력하여 방어하였으며 마음을 모아 성을 구축하였다.[協力防堵衆心成城]
해천한량
(海州閑良)
김응률
(金應律)
죽음을 무릅쓰고 적도들에게 대항하고 군량을 넉넉히 지원하였다.[冒死抗賊優助軍餉]
서천민
(舒川民)
심경칠
(沈敬七)
앞장서 적진에 깊이 들어가 거괴를 붙잡아 바쳤다.[挺身深入捉納巨魁]
영광민
(靈光民)
이현숙
(李賢淑)
의기를 떨쳐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거괴를 붙잡아 바쳤다.[出義戶勞捉納巨魁]
공주군관
(公州軍官)
서치운
(徐致雲)
좁은 입구를 파수하면서 밤낮으로 떠나지 않았다.[把守隘口晝夜不離]
부안유학
(扶安幼學)
이현기
(李鉉璣)
의병을 모아 비도들을 죽이고 군량을 넉넉히 지원하였다.[募義勦匪優助軍餉]
상리국소임
(商理局所任)
이경석
(李敬錫)
상리국소임
(商理局所任)
전수룡
(全壽龍)
외도소임
(外道所任)
안경묵
(安景默)
외도소임
(外道所任)
하운기
(河雲起)
외도소임
(外道所任)
안경안
(安景晏)
위 5명은 제방에 서서 운반을 담당하였다.[右五人立塘搬運]
장위병정
(壯衛兵丁)
박주봉
(朴周奉)
장위병정
(壯衛兵丁)
김복용
(金福用)
장위병정
(壯衛兵丁)
조준갑
(趙俊甲)
장위병정
(壯衛兵丁)
윤문창
(尹文昌)
장위병정
(壯衛兵丁)
조순석
(曺順石)
장위병정
(壯衛兵丁)
류일성
(柳日成)
장위병정
(壯衛兵丁)
장만기
(張萬基)
위 7명은 탄환을 맞았으나 겨우 소생하였다.[右七人中丸僅甦]

(번역 : 유바다)

주석
김괴 김개남으로 추정됨.
유장 유생들의 진정서.
장부 조선시대 동반(東班)의 종오품(從五品) 토관직으로 전례서(典禮署)의 장이다. 도무(都務): 正五品의 아래이고, 교부(校簿): 正六品의 위이다. 함흥부(咸興府), 평양부(平壤府), 영변대도호부(寧邊大都護府),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에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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