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薪花) 구사창동(舊社倉洞)에 사는 백낙규(白樂圭)로 나이가 31세입니다.
저의 형 낙희(樂喜)가 타고난 성품이 패악하여 지난해 7월경에 동학에 들어가서 교장(敎長)을 칭하였고, 김재희(金在喜)와 해주에서 기포(起包)를 하기도 하며 본방(本坊), 신화방에 포(包)를 설치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봄에 동도(東徒)가 귀화할 때에 저의 형도 귀화하였습니다. 지난해 11월 경에 김재희가 산포(山砲) 반수(班首)를 칭하고, 저의 형을 선동해서 말하기를, “전라도 김진사가 해주에 와서 머무르고 있는데, 내 종손(從孫) 김창수(金昌守)와 청나라에 들어가서 진동창의(鎭東倡義) 인신(印信)과 직첩(職帖)을 받아왔고 마대인(馬大人)도 군사를 인솔하여 의주로 와서 우리와 힘을 합해 양왜(洋倭)를 소탕할 것이다. 만약 동참하지 않으면 끝내 목숨을 보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의 형이 산포(山砲)에 들어간 날짜는 기억할 수 없으나, 지난달에 김재희와 저의 형이 서로 약속하기를, “재희는 대곡(大曲) 등지에 가서 산포를 기포(起包)하고 저의 형은 신화일대의 민(民)과 산포를 일으켜서 1월 1일 3경(三更), 밤 11 ~ 새벽 1시쯤에 설산방(雪山坊) 6리(六里)의 조우동(棗隅洞)에서 서로 만나 바로 읍에 들어가서 관장(官長)과 각 관속(官屬)을 죽여 기세를 올린 뒤에 전진해서 일을 이루도록 도모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굳게 약속을 한 뒤에 재희는 대곡으로 가고 형은 신화의 인민(人民)을 선동하여 100여명을 기동시켰는데, 본방의 내동(內洞)과 사랑동(舍郞洞) 두 마을의 두민(頭民)과 민인(民人)들이 저의 형의 패악을 매우 미워하여 저의 형을 결박해서 마구 때려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저의 형이 비록 대역죄(大逆罪)를 범했다고 해도 현재의 처지에 범상하게 볼 수가 없어 내동(內洞) 근처에 갔습니다. 저의 족인(族人) 백기정(白基貞)이 저를 보고 말하기를, “김재희가 오늘밤 3경에 산포 100여명을 인솔하여 조우동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반드시 왔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형을 위해 급히 그 동(洞)에 가서 산포를 데려온 뒤에야 네 형을 살리고 도모한 일도 이룰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제가 어리석은 소견에 정말로 조우동에 가서 알아보았더니, 재희와 산포가 1명도 오지 않아 매우 의심스럽고 이상하게 여겨 주저하던 사이에 교졸(校卒)에게 잡혔을 뿐입니다. 이밖에 자세한 일은 저의 형에게 물어보시면 자연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명백하게 조사하여 처분해서 죄가 없는 저를 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