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국(開國), 조선의 개국 503년 갑오(甲午), 1894년 10월 일
허엽(許燁) 공초
이병휘(李秉輝) 공초
[일본 영사관 참관]
문(問) : 너는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감옥에 갇히길 원하는가?
공(供) : 대원군(大院君)이 잡아 가두라는 명(命)이 있었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뿐입니다.
문(問) : 어떻게 대원군이 잡아 가두라는 명을 알았는가?
공(供) : 포교(捕校)가 체포하라는 명(命)을 가지고 집으로 잡으러 왔기 때문에 그것을 알았을 뿐입니다.
문(問) : 그것이 대원군의 분부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공(供) : 포교가 집에 잡으러 왔을 때에, “이것은 대원군의 명(命)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을 알았습니다.
문(問) : 무슨 죄로 잡혀 갇혔는가?
공(供) : 단지 대원군의 명(命)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거역할 수 없어서 지금 갇혀있습니다. 9월 4일 밤에 본아(本衙)의 낭관(郎官)이 불러서 묻기를, “네가 네 죄를 아는가?”라고 하기에,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문(問) : 너는 허엽(許燁)과 서로 관계한 일이 있는가?
공(供) : 일찍이 허엽과 서로 친하였습니다.
문(問) : 서로 관계한 일이 무엇인가?
공(供) : 산송(山訟) 때문에 서로 관계한 적이 있습니다.
문(問) : 서로 관계한 일의 내면을 상세히 말하라.
공(供) : 일찍이 허엽이 말하기를, “청석동(靑石洞)에 사는 사인(士人) 정인덕(鄭寅德)이 제법 재주와 학문이 있어 서로 친할만한데 어찌 가서 보지 않겠는가?”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 명성을 흠모하여 바로 가서 보았습니다. 그 뒤 안성(安城)에서 산송(山訟)이 있었으나 동학배(東學輩)에게 곤경을 당하여 부탁할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일찍이 서로 친했던 사람을 수소문했더니, 허엽이 말하기를, “지금 박동진(朴東鎭)이 선무사군관(宣撫使軍官)의 〈직함을〉 가지고 호중(湖中)으로 가는데, 이 사람에게 긴밀하게 부탁을 하면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긴밀하게 부탁을 할 만한 사람은 정인덕이 아니면 할 수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제가 바로 허엽에게 간절히 부탁하여 정(鄭), 정인덕의 편지를 얻으러 갔습니다. 허엽이 정말로 8월 초순에 정인덕의 편지를 구해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가지고 바로 천안(天安)에 갔더니 산송 일은 이미 타결이 되었습니다. 박동진이 정인덕의 편지를 보여주었는데, 그 편지에, “동도(東徒) 몇 만 명을 바로 인솔하여 신속하게 올라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박동진이 정인덕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여주었는데, 그 편지에, “동도 30만 명을 이끌고 20일 이후에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보내는 편지가 3통이었는데, 1통은 허엽에게, 다른 1통은 정인덕에게, 또 다른 1통은 송정(松亭)에게 전하라고 했기 때문에 저는 그 편지를 가지고 서울에 올라온 날에 허엽에게 전하고 나누어 주라고 했을 뿐입니다.
문(問) : 이밖에 따로 상관한 일이 없는가?
공(供) : 8월 20일 이후에 허엽과 함께 정인덕이 사는 집에 가서, “지금 경병(京兵)과 일본군이 내려가려고 하고 뒤따라 신속하게 그믐 전에 올라올 것이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밀봉(密封)한 편지 1통이 있었는데, 임진수(林璡洙)를 시켜 박동진에게 전하게 하였습니다. 더욱이 8월 20일 이후에 다시 직산(稷山)에서 산송(山訟)이 있고 동도에게 곤경을 당하였습니다. 다시 허엽에게 편지를 부탁하니, 허엽이 다시 정인덕의 편지를 구해서 주었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보았더니, 제법 크고 별지(別紙)가 들어있어 의심스러워서 전하지 않고, 바로 경무사(警務使) 이윤용(李允用)에게 전했습니다.
문(問) : 네가 비록 허엽과 친분이 있고, 정인덕이 박동진과 평소에 정(情)이 통하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비밀스런 일을 어떻게 너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할 수 있는가?
공(供) : 저는 정인덕과 허엽 두 사람에게 실제보다 지나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인덕의 편지를 얻을 때에도 해결하기 어려운 산송(山訟)이었는데, 허엽이 말하기를, “네가 박동진에게 편지를 전할 때에 이 일을 안다고 하면 산송일은 저절로 타결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 지시대로 이 전후의 일을 들어서 알았을 뿐입니다.
이 공초(供招)는 착오가 없습니다.
10월 5일 이병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