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問) : 성명(姓名)은 무엇인가?
공(供) : 이병휘(李秉輝)입니다.
문(問) : 나이는 얼마인가?
공(供) : 47세입니다.
문(問) : 관직(官職)은 무엇인가?
공(供) : 관성장(管城將)으로 지금 갇혀있을 뿐입니다.
문(問) : 언제 파면되었는가?
공(供) : 이번에 갇히면서 파면되었을 뿐입니다.
문(問) : 임금으로부터 파면을 당했는가?
공(供) : 대원군(大院君)의 처분 때문에 파면되었습니다.
문(問) : 언제 갇혔는가?
공(供) : 9월 2일에 갇혔습니다.
문(問) : 갇히기 전에 파면되었는가?
공(供) : 갇힌 뒤에 그것을 듣고 바로 파면되었습니다.
문(問) : 어디에 사는가?
공(供) : 탑동(塔洞)에 살고 있습니다.
문(問) : 어디에서 나고 자랐는가?
공(供) : 경성(京城)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문(問) : 여기에 있는 사람은 바로 일본 영사(領事)인데, 이노우에(井上) 공사(公使)의 지시로 조사하러 왔다. 동학당(東學黨)이 살육하고 약탈한 사항들을 이번에 일일이 물을 것이니 모(某) 대신(大臣)과 관련이 있는 사항은 해를 입을까 꺼리지 말고 모호한 얘기는 버리고 모두 상세히 말하라.
공(供) : 비록 혹시 해를 입더라도 마땅히 바른말에 근거하여 말할 뿐입니다.
문(問) : 네가 동학배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가?
공(供) : 그런 일이 없습니다.
문(問) : 네가 누구의 편지를 받아 어떤 사람에게 전했는가? 또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가?
공(供) : 실제로 편지를 전한 일이 있습니다.
문(問) : 네가 편지를 받아 동학(東學)에게 전한 것은 몇 번인가?
공(供) : 〈편지를〉 전한 것은 두 차례인데, 한번은 제가 전한 것이고 다른 한번은 받았을 뿐입니다.
문(問) : 편지는 언제 전했는가?
공(供) : 8월 16일이었습니다.
문(問) : 처음에 언제 편지를 받았는가?
공(供) : 8월 13일이었습니다.
문(問) : 누구의 편지를 누구에게 전했는가?
공(供) : 정인덕(鄭寅德)의 편지를 박동진(朴東鎭)에게 전했습니다.
문(問) : 정인덕은 본래 동도(東徒)인가?
공(供) : 애초에 동도가 아니고 단지 선비로만 알고 있습니다.
문(問) : 처음에 정인덕의 편지를 무슨 일로 얻으려고 했는가?
공(供) : 단지 산송(山訟)일 때문에 얻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문(問) : 네가 요청하여 그것을 얻었는가?
공(供) : 요청해서 얻었습니다.
문(問) : 박동진은 또한 어떤 사람인가?
공(供) : 동학인(東學人)입니다.
문(問) : 편지에 어떤 얘기가 있었는가?
공(供) : 편지에 산송(山訟)에 관한 일이 있었고, 또한 빨리 올라오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문(問) : 단지 빨리 올라오라는 이야기 뿐이었는가?
공(供) : 경영할 일을 어찌 하겠습니까? 빨리 올라오라고 했을 뿐입니다.
문(問) : 편지에 있는 말을 어떻게 알았는가?
공(供) : 박동진이 편지를 열어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알았습니다.
문(問) : 어제 대신(大臣)이 사실을 조사할 때에 수십만 명이 올라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 말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또한 이 말은 누가 한 것인가?
공(供) : 이 아무개가 정인덕에게 그것을 말하게 한 것일 뿐입니다.
문(問) : 그 편지는 누가 쓴 것인가?
공(供) : 정인덕이 쓴 것입니다. 그 전에 박동진의 동생이 가지고 간 편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 아무개의 편지가 있어 박동진에게 동도(東徒) 수십만 명을 인솔해서 바로 신속하게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문(問) : 위에서 올라오라는 얘기는 바로 정인덕이 편지에서 말한 것인가?
공(供) : 정인덕이 편지에서 말한 것이 아니고, 바로 이 아무개 친척의 편지에서 말한 것입니다.
문(問) : 박동진의 편지는 무엇을 말했는가?
공(供) : 그것은 모릅니다.
문(問) : 잠깐 전에 들은 것은 바로 정인덕의 편지에 이런 말이 있었는가?
공(供) : 정인덕의 편지에는 다만 올라오라는 얘기뿐이었고, 보여준 이 아무개의 편지에 바로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문(問) : 박동진이 보여준 편지가 분명히 이 아무개의 편지인가?
공(供) : 분명히 이 아무개의 친필입니다.
문(問) : 이 아무개의 필적을 네가 아는가?
공(供) : 그 필적을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문(問) : 이 아무개의 편지에서 말한 것을 다시 상세하게 말하라.
공(供) : 동도(東徒) 수십만 명을 하루가 못되어 단속해서 바로 신속하게 올라오라는 얘기였습니다.
문(問) : 그 편지는 누구에게 보냈는가?
공(供) : 박동진에게 보냈습니다.
문(問) : 박동진은 누구를 통해 관직을 얻었는가?
공(供) : 이미 주사(主事)로서 선무사(宣撫使)의 군관(軍官)을 겸임하고 있었습니다. 박동진은 겉으로 비록 선무(宣撫)를 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난리를 선동했을 뿐입니다.
문(問) : 박동진이 선무사를 수행했으나 실제로는 난리를 선동했다는 것을 네가 어떻게 아는가?
공(供) : 바로 신속하게 올라오라는 편지가 있었던 데다가 바로 신속하게 올라간다는 답신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난리를 선동한 게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문(問) : 네가 편지를 박동진에게 전할 때에 다시 답장을 받아 올라갔는가?
공(供) : 3통의 편지를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문(問) : 3통의 편지는 그대로 아무아무개에게 전했는가?
공(供) : 한통은 허엽(許燁)에게, 다른 한통은 정인덕(鄭寅德)에게, 또 다른 한통은 이참판(李參判)에게 전했습니다.
문(問) : 3통의 편지내용을 네가 아는가?
공(供) : “하교하신 일은, 지금 병사 30만 명을 인솔하여 바로 8월 25일과 26일 사이에 올라가겠습니다. 서울안의 기미는 자세히 통지해주시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일본군이 내려온다면 정말로 상대하기가 어려우니 신속하게 기별을 전하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편지를 보낸 날짜는 언제인가?
공(供) : 8월 17일입니다.
문(問) : 다른 편지는 언제 있었고 어떤 얘기가 있었는가?
공(供) : 같은 날에 정인덕에게 전하였고, 편지에 이대감 및 박영감과 상의하여 일을 마련하라는 얘기가 있었으며 석정(石庭, 李埈鎔)의 호과 상의하라고 하였습니다. 일본군의 출동여부를 상세히 탐지하여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이대감과 박영감은 모두 누구인가?
공(供) : 이(李)는 바로 이태용(李泰容)이고, 박(朴)은 박준양(朴準陽)입니다.
문(問) : 허엽(許燁)에게 전한 편지내용은 어떠한가?
공(供) : 산송(山訟)의 일을 말하였고 믿을만한 인편에 그 편지를 정인덕에게 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3통의 편지 중에 허엽에게 전하는 것이 1통이고, 정인덕과 이태용에게 전하는 것은 함께 봉함하였습니다. 그 겉봉에 석정대인대감(石庭大人台監) 죽계생경함(竹溪生敬椷)이라고 썼습니다.
문(問) : 죽계(竹溪)는 바로 누구인가?
공(供) : 박동진의 별호(別號)입니다.
문(問) : 어제 조사할 때에 3통의 답장 중에 송정(松亭)에 전하라고 했는데, 지금 송정이 없는 것은 어찌 된 것인가?
공(供) : 송정은 바로 이준용(李埈鎔)의 집이고 석정은 그의 별호입니다.
문(問) : 이참판이 박동진의 동생을 시켜 그의 형에게 전하게 한 편지는 언제인가?
공(供) : 모릅니다.
문(問) : 1차에 편지를 전한 얘기는 들었고, 2차에 박동진의 답장을 네가 가지고 가서 전했는가?
공(供) : 2차의 답장을 제가 가지고 왔습니다.
문(問) : 2차에 박동진이 이준용에게 보낸 편지는 무슨 얘기를 했는가?
공(供) : 2차의 편지는 비록 보지 못했으나 정인덕에게 들었는데, “지금 일본군이 출동하려하니 대원군이 의원(議院)에서 막는 것이 옳다. 만약 일본군이 내려오면 각 처의 동도는 한꺼번에 흩어졌다가 11월쯤에 청나라 군대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모여 힘을 합해서 안팎에서 협공을 한다면 일본군을 깨뜨릴 수가 있고, 조정을 깨끗하게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따로 나라를 맡을 사람을 세워 백성을 편안하게 할 계획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나라를 맡는다고 하는 것은 〈임금을〉 폐하고 〈새 임금을〉 세운다는 뜻인가?
공(供) : 정말로 그 이면을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나라를 맡는다고 하는 것은 반역을 말하는 듯합니다.
문(問) : 만약에 해를 입을 것을 꺼리지 않고 그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고자 한다면 비록 〈임금을〉 폐하고 새로 세우는 이야기도 이미 드러난 마당에 명백하게 말하는 게 옳다.
공(供) : 이와 같은 얘기들을 들은 것이 없지 않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으니 부끄럽고 두려워서 감히 말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문(問) : 그밖에 이준용과 대원군이 동도(東徒)와 왕래한 일을 너도 알고 있는가?
공(供) : 정인덕이 경무사(警務使)에 잡힌 뒤에 내가 갇혔는데, 무슨 들은 게 있어 그것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8월 24일에 이준용과 정인덕이 임진수(林璡洙)를 시켜 박동진에게 편지를 전했는데, 이준용의 편지에는 주랍(朱蠟)과 침(鍼) 3개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정인덕의 말을 들어보니 “일본군이 모두 출동하기 전에 신속하게 올라와서 입성(入城)하라”는 뜻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그 때에 박동진이 내려가서 어느 읍에 머물렀는가?
공(供) : 그 때에 박동진은 공주에 있었습니다.
문(問) : 그 밖에 정말로 이참판이 박동진과 왕래한 일을 모르는가?
공(供) : 모릅니다.
문(問) : 이참판이 박동진의 동생을 시켜 그의 형에게 전한 편지는 언제 보낸 것인가?
공(供) : 그 날짜는 실제로 알지 못하나 나중에 들은 것으로 보면, 박동진의 동생이 7월 그믐에서 8월 초순에 올라왔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네가 운현대감(雲峴大監)의 분부로 갇혔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러한가?
공(供) : 운현대감의 분부로 비록 갇혔다고 하나 무슨 죄가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문(問) : 갇힌 뒤에 대원군의 어떤 분부가 있었는가?
공(供) : 제가 본 아문에 갇힌 뒤에 본 아문에 원정(原情)을 올렸으나, 본 아문은 그것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 4일 밤 본 아문의 낭관(郎官)에게 공초(供草)를 받게 되어 제가 그 이유를 상세히 진술하였으나 그 낭관은 제 말을 모두 적지 않고 대강만을 적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서 저에게 말하기를, “대원군이 너를 불쌍히 여기고 있고, 네가 만약 내말대로 한다면 벼슬을 줄 것이나 내말을 어긴다면 죽을 것이다”라고 하기에, “나는 벼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해당 서리(書吏)가 말하기를, “서울에 사는 사람인 네가 반드시 난초(亂招)를 하지 않을 것이니 시골 사람에게 죄를 돌릴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 죽은 이준필(李埈弼)을 주모자로 지목할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그 때의 주사(主事)는 누구인가?
공(供) : 모르지만 그 날 밤 공초(供招)를 받을 때에 박준양(朴準陽)과 이태용(李泰容)을 언급하면 해당 낭관이 크게 화를 내고 붓을 던지며 적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네 스스로가 쓸 수 있을 것이니 나는 쓸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붓을 잡고 그것을 썼을 뿐입니다.
문(問) : 그 때의 관원(官員)과 서리(書吏) 및 그들의 얼굴을 상세히 기억할 수 있는가?
공(供) : 그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기억할 수가 있습니다.
문(問) : 일전에 사실을 조사하는 자리에서 그 관원과 서리가 모두 있었는가?
공(供) : 서리는 보았으나 관원은 너무 많아서 구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문(問) : 4일에 입직(入直), 숙직한 주사(主事)는 한 사람 뿐인가?
공(供) : 그것은 모릅니다.
문(問) : 지금 그 사람은 여기에 있지 않은가?
공(供) :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문(問) : 아까 사람들을 물리치기 전 여러 관원들 중에서 본 자가 있는가?
공(供) : 보지 못했습니다.
문(問) : 해당 관리의 생김새는 어떠하고 나이는 얼마나 되었는가?
공(供) : 얼굴은 좁으면서 얽었고, 성근 눈썹에 수염은 드물었습니다. 나이는 50쯤 된 듯합니다.
문(問) : 해당 서리의 생김새는 어떠하고 나이는 얼마나 되었는가?
공(供) : 얼굴의 위는 넓적하고 아래는 좁습니다. 얼굴빛은 검고 수염은 제법 길며 나이는 40이 넘어보였습니다.
갑오년1894년 10월 7일 이병휘(李秉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