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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이준용 공초 李埈鎔供草
  • 기사명
    개국 504년 3월 25일 죄인 이준용의 1차 문목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95년 03월 25일
일러두기

개국 504년 3월 25일 죄인 이준용의 1차 문목 [開國 五百四年 三月 二十五日 罪人 李埈鎔 初次 問目]

문(問) : 성명(姓名)은 무엇인가?

공(供) : 이준용(李埈鎔)입니다.

문(問) : 나이는 얼마인가?

공(供) : 26세입니다.

문(問) : 어디에 살고 있는가?

공(供) : 교동(校洞) 운현궁(雲峴宮)에 살고 있습니다.

문(問) : 무슨 일을 하는가?

공(供) : 일본전권공사(日本全權公使)를 했었으나 지금은 해직되었습니다.

문(問) : 지금 대군주(大君主)의 칙명(勅命)을 받아 신문을 하니 〈죄를〉 범한 사정을 일일이 바른대로 말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숨기거나 피하지 않아야 옳을 것이다.

공(供) : 일일이 바른대로 말하겠습니다.

문(問) : 너는 왕실의 지친(至親)으로 나라를 위한 한결같은 마음은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비교할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근래에 급한 일은 개명(開明), 개화보다 앞서는 것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배척을 위주로 하는가?

공(供) : 저의 평소 행실도 개명(開明)이 급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나라를 위한 한결 같은 마음은 진실로 여기에 있습니다. 무슨 연유로 배척을 위주로 한다는 것을 밝게 아십니까?

문(問) : 그렇다면 근래에 개명에 열심인 자로 김학우(金鶴羽)와 같은 사람이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김학우가 해를 입은 사안(事案)을 가지고 어찌 너를 지목하는가?

공(供) : 저는 김학우와 애초에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없는데, 어찌 모의하여 해칠 마음이 있겠습니까? 또한 무슨 일을 가지고 이 죄목을 증명합니까?

문(問) : 온 나라 1,000만 명 중에 유독 이 사안을 너에게 돌리는 데에는 어찌 곡절이 없겠는가?

공(供) :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사안을 저에게 돌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문(問) : 분명히 죄를 범한 것이 없는가?

공(供) : 부월(斧鉞), 도끼 아래에 죽더라도 정말로 죄를 범한 것이 없습니다.

문(問) : 너는 고종주(高宗柱)를 알고 있는가?

공(供) : 제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의 집 3대(三代)가 모두 그를 알고 있습니다.

문(問) : 언제부터 그를 알고 있는가?

공(供) : 이 사람이 저의 아버지에게 왕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알고 있으나 그 연도는 자세히 모릅니다.

문(問) : 고(高), 고종주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공(供) : 예사로 보아 넘겼기 때문에 그가 사는 곳도 자세히 모릅니다.

문(問) : 4~5년 동안 그 사람이 오래 경성(京城)에 있었는가?

공(供) : 그 사이에 제가 고종주와 간간이 만난 적이 7~8번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경성에 오래 있었는지 아니면 잠시 있었는지도 자세히 모릅니다.

문(問) : 고종주는 지금 직명(職名)을 가지고 있는가?

공(供) : 지난 가을에 보러 왔을 때에 탕건(宕巾)을 썼기에 물어보았더니, 그 사이에 능참봉(陵參奉)을 했었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지난 가을 이후에 다시 보지 못했는가?

공(供) : 보지 못했습니다.

문(問) : 그 사이에 고종주와 상의한 일이 없는가?

공(供) : 없습니다.

문(問) : 고종주가 네 집에 왕래하며 맡은 일이 있는가?

공(供) : 그 사람이 간간이 제 아버지의 사랑에 왕래했기 때문에 보기도 하고 못보기도 해서 맡은 일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문(問) : 너는 조용승(曺龍承)을 알고 있는가?

공(供) : 알고 있습니다.

문(問) : 어떻게 알고 있는가?

공(供) : 큰사랑에서 왔기 때문에 알고 있을 뿐입니다.

문(問) : 그 때가 언제인가?

공(供) : 지난 가을쯤입니다.

문(問) : 조용승이 보러 왔을 때에 혹시 말한 것이 없는가?

공(供) : 지난 가을쯤에 조용승이 단지 2차례 보러 왔습니다. 첫번째는 자리가 번잡하여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으나, 두번째는 그가 말의 첫머리에, “판서(判書) 민영환(閔泳煥)에게 초사(初仕)를 얻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밖에 “지금 조정의 논의가 비록 개화(開化)에 급하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풍토(風土)가 일본과 달라 저들이 하는 것을 반드시 본받을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하기에, 제가 그를 꾸짖기를, “너의 이런 말은 정말로 시무(時務)를 모르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큰사랑에 말씀을 드려 할아버지의 마음을 현란시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그 뒤에 다시 보지 못했는가?

공(供) : 그 뒤에 다시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문(問) : 조용승은 지금 직명(職名), 관직이 있는가?

공(供) : 탕건을 썼기 때문에 서사(筮仕)를 했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 직책이 무엇인지는 상세히 모릅니다.

문(問) : 조용승은 어느 도(道) 어느 읍(邑)에 사는 자인가?

공(供) : 그것도 상세하게 모릅니다.

문(問) : 너는 한기석(韓祈錫)을 알고 있는가?

공(供) : 한기석은 제 아버지의 사랑에 왕래했기 때문에 잠시 한때에 안부를 나눴을 뿐입니다.

문(問) : 한기석은 지금 어떤 직명(職名), 직책을 가지고 있는 자인가?

공(供) : 탕건을 썼기 때문에 그가 서사(筮仕), 처음 벼슬을 하는 것를 했다는 것은 알았으나 그 직책이 〈무엇인지는〉 상세하게 모릅니다.

문(問) : 한기석이 처음 왔을 때가 언제인가?

공(供) : 그 때는 상세하게 모릅니다.

문(問) : 위의 3명이 너는 비록 친숙하지 않더라도 큰사랑에서는 혹시 친숙한가?

공(供) : 자세하게 모릅니다.

문(問) : 위의 3명은 만약에 큰사랑과 친숙하다면 네가 어찌 상세하게 알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공(供) : 저는 큰사랑에 아침에 한차례 인사를 한 뒤에 부르지 않으면 아예 낮과 저녁 및 밤에 문안인사를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왕래하는 문객(門客)이 큰사랑과 친숙한지 소원한지는 정말로 상세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문(問) : 이 3명 외에 큰사랑과 친숙한 사람이 달리 누가 있는가?

공(供) : 왕래하는 사람이 매우 많기 때문에 친소(親疎) 여부는 마음에 둔 적이 없습니다.

문(問) : 너와 친숙한 자는 누구인가?

공(供) : 저는 본래 남과 특별히 정담(情談)을 나누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로 가장 가깝다고 지목할 사람이 없습니다.

문(問) : 네 아버지와 가장 친숙한 자는 누구인가?

공(供) : 저와 마찬가지입니다.

문(問) : 너는 고운정(高雲亻政)을 알고 있는가?

공(供) : 알고 있습니다.

문(問) : 어떻게 알고 있는가?

공(供) : 고운정은 석현(奭鉉)의 아들이고, 석현은 지금 대군주께서 잠저(潛邸)에 계실 때의 스승이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알고 있습니다.

문(問) : 고운정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공(供) : 그가 사는 곳은 상세하게 알고 있지 못합니다.

문(問) : 언제부터 그를 알고 있었는가?

공(供) :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으나 친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문(問) : 이 사람이 자주 왕래했는가?

공(供) : 1년에 몇 번 들렸을 뿐입니다

문(問) : 김학우의 살해를 모의한 것 이외에 또 반란반정설(撥亂反正說)한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전혀 모르는 일인가?

공(供) : 만약 이런 사안(事案)을 범했다면 정말로 잠시라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저하게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대답할 말이 없겠으나 저는 이런 일을 정말로 모릅니다. 제가 비록 내세울만한 것이 없으나 집안의 규범으로 충효를 근본으로 삼고 인외(寅畏)를 규범으로 삼아 왔는데, 불충(不忠)하고 불효(不孝)한 얘기를 저에게 돌린다면 실제로 억울합니다.

사룀

재판소(裁判所)

협판(協辦) 이재정(李在正)

참의(參議) 장박(張博)

주사(主事) 기동연(奇東衍)

주사(主事) 이희덕(李熙悳)

주사(主事) 정훈교(鄭勳敎)

주석
대군주(大君主) 고종을 부르는 칭호
지친(至親) 가까운 친척
김학우(金鶴羽) 1862~1894. 개화파 관료로 본관은 김해이고 자는 자고(子皐)이다. 1894년 10월 31일에 흥선대원군 및 이준용 파의 자객인 전동석(田東錫)과 최형식(崔亨植) 등에 의하여 암살당하였다.
탕건(宕巾) 갓 아래에 받쳐쓰는 관
초사(初仕) 처음으로 하는 벼슬자리
서사(筮仕) 처음 벼슬을 얻는 것
잠저(潛邸) 임금이 되기 전에 있던[私邸]
반란반정설(撥亂反正說) 난을 평정하고 질서를 회복한다는 설
인외(寅畏) 삼가고 두려워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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