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問) : 성명(姓名)은 무엇인가?
공(供) : 고종주(高宗柱)입니다.
문(問) : 나이는 얼마인가?
공(供) : 46세입니다.
문(問) : 어느 곳에 살고 있는가?
공(供) : 남원(南原)에 살고 있습니다.
문(問) :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공(供) : 현릉(顯陵) 참봉(參奉)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문(問) : 지금 대군주(大君主), 고종의 칙명(勅命)을 받아 너와 이준용이 〈죄를〉 저지른 사정을 조목조목 조사할 것이니, 너는 조금이라도 숨겨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하라.
공(供) : 일일이 바른대로 말하겠습니다.
문(問) : 네가 처음 경성에 들어온 시기가 언제인가?
공(供) : 신사(辛巳), 1881년년 7월 경성에 왔습니다.
문(問) : 무엇 때문에 경성에 들어왔는가?
공(供) : 마침 식년감시(式年監試)가 있었기 때문에 긴간(緊簡)를 얻기 위해 서울에 왔습니다.
문(問) : 과연 긴간을 얻었는가?
공(供) : 얻지 못했습니다.
문(問) : 무엇 때문에 얻지 못했는가?
공(供) : 처음에 경성에 들어와서 물정(物情)에 어두웠을 뿐만 아니라 때가 늦었기 때문입니다.
문(問) : 그 때 경성에 들어와서 어느 재상집에 출입했는가?
공(供) : 연동(蓮洞)의 판서 이풍익(李豊翼) 집에 출입하였습니다.
문(問) : 그 뒤 다시 경성에 온 일이 없는가?
공(供) : 갑신(甲申), 1884년년 감시(監試)에 참가하여 급제를 해서 을유(乙酉), 1885년 회시(會試)를 보러 경성에 들어왔을 뿐입니다.
문(問) : 그 때 회시에 합격을 했는가?
공(供) : 합격을 하지 못했습니다.
문(問) : 그 때 경성에 머물렀는가?
공(供) : 바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문(問) : 그 뒤에 다시 경성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공(供) : 을유년 5월에 다시 경성에 들어왔습니다.
문(問) : 그 때에 무슨 연유로 경성에 들어왔는가?
공(供) : 증광시(增廣試)에 합격을 해서 회시(會試)를 보러 서울에 왔을 뿐입니다.
문(問) : 그 때 회시에 합격을 했는가?
공(供) : 그 때 진사(進士)에 합격을 했습니다.
문(問) : 그 때에 합격을 한 것은 공(公), 정당한 방법인가? 사(私), 부정한 방법인가?
공(供) : 공정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문(問) : 합격을 한 뒤에 바로 고향에 돌아갔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이판서 이외에 달리 친숙한 재상이 없는가?
공(供) : 친숙한 재상으로는 조인승(曺寅承)・박봉빈(朴鳳彬)・김성근(金聲根)・이유승(李裕承)입니다.
문(問) : 그밖에 친숙한 재상은 없는가?
공(供) : 그밖에는 없습니다.
문(問) : 위에서 말한 4명의 재상 중에 가장 친숙한 이를 들어 말한다면 누구인가?
공(供) : 이유승입니다.
문(問) : 그 뒤에 다시 경성에 들어온 일이 없는가?
공(供) : 신묘(辛卯), 1891년년에 다시 경성에 들어왔습니다.
문(問) : 무엇 때문에 경성에 왔는가?
공(供) : 제 자식이 연방(蓮榜)에 참여했기 때문에 솔창(率唱)하러 경성에 들어왔습니다.
문(問) : 창방(唱榜)은 언제 하였는가?
공(供) : 그해 10월입니다.
문(問) : 창방(唱榜)한 뒤에 바로 고향으로 돌아갔는가?
공(供) : 바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문(問) : 그 뒤에 다시 경성에 들어온 일이 없는가?
공(供) : 계사년(癸巳年), 1893 9월에 다시 경성에 들어왔다가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문(問) : 계사년(癸巳年) 9월에 경성에 머문 뒤에 누구 집에서 기거했는가?
공(供) : 상인(常人), 평민집에 묵었습니다.
문(問) : 상인의 성명은 무엇이고 그 집은 어디에 있는가?
공(供) : 처음에는 근동(芹洞)의 문경식(文敬植) 집이었습니다.
문(問) : 문경식은 혹시 재상집의 겸인(傔人)이 아니었는가?
공(供) : 유수(遊手)이고 겸인이 아닙니다.
문(問) : 그 집에는 몇 달 정도 묵었는가?
공(供) : 갑오년(甲午年), 1894 11월까지 그 집에 있다가 전동(典洞)의 병정(兵丁) 강가(姜哥)네 집으로 옮겼고, 올해 1월에 다시 근동(芹洞)의 문가네 집으로 옮겼습니다.
문(問) : 무엇 때문에 다시 문가네 집으로 옮겼는가?
공(供) : 그 사이에 부득이한 일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문(問) : 그 사이에 다시 친한 재상이 없었는가?
공(供) : 지난해 7월 이후에 운현궁에서 왕래하였습니다.
문(問) : 운현궁에 왕래를 하였다면 3곳의 사랑 중에 어느 사랑과 친숙했는가?
공(供) : 친숙한 사람은 바로 보국(輔國) 이재면(李載冕)입니다.
문(問) : 혹시 앞에서 인도해주는 사람이 있어 보러 갔는가?
공(供) : 애초에 앞에서 인도해준 사람이 없었고 직접 보러 갔습니다.
문(問) : 7월 이후에 매일 운현궁을 왕래했는가?
공(供) : 작년 6월 이전에는 하루를 걸러 왕래하였으나 7월 5일 이후에는 처음 벼슬을 하여 입직(入直)을 했기 때문에 전처럼 왕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問) : 조금 전에 7월 이후에 운현궁에 왕래했다고 하고, 지금은 6월 이전이라고 하니 어찌 이처럼 서로 어긋나는가?
공(供) : 갇힌 지가 1달이 넘어 정신이 없어서 잠시 잊어버렸을 뿐입니다.
문(問) : 6월 이전이라고 했는데, 언제 처음 운현궁에 왕래를 했는가?
공(供) : 계사년(癸巳年), 1893 11월에 처음 왕래하였습니다.
문(問) : 보국사랑(輔國舍廊), 이재면을 지칭을 왕래할 때에 대원위(大院位), 흥선대원군와 이준용(李埈鎔)에게도 가서 보지 않았는가?
공(供) : 대원위는 비록 가서 뵙지는 못했으나 이준용은 알고 있습니다.
문(問) : 너는 이준용을 언제 처음 알았는가?
공(供) : 이준용은 신묘년(辛卯年), 1891에 제 자식이 창방(唱榜)할 때에 한 번 보았습니다.
문(問) : 처음에는 지난해 6월이라고 하고, 두 번째는 지난해 11월, 다시 신묘년 창방할 때라고 하는데, 물을 때마다 연도와 달을 바꾸는 것이 어찌 이리 심한가?
공(供) : 〈그들에게〉 나아가서 만나 본 시기에 따라 말했기 때문에 이처럼 된 것이지 실제로 연도와 달을 바꾸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문(問) : 그 사이에 몇 차례 이준용을 만나보았는가?
공(供) : 작년 10월 20일 이후부터 올해 1월 전까지는 한 차례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문(問) : 1월 이후에 〈그를〉 보았는가?
공(供) : 세배를 하러 한 차례 가서 보았을 뿐입니다.
문(問) : 너는 현릉(顯陵) 참봉을 어느 재상에게서 얻었는가?
공(供) : 저동(苧洞)의 판서 이유승(李裕承)이 장전(長銓), 이조 판서일 때에 얻었습니다.
문(問) : 이것이 이유승의 본심에서 나온 것인가?
공(供) : 그 사이에 운현궁의 이보국(李輔國), 이재면이 이대감에게 편지를 보내 그것을 도모한 것입니다.
문(問) : 이보국이 편지를 보낸 것을 네가 어떻게 아는가?
공(供) : 그 뒤에 호동(扈洞) 서주보(徐周輔)에게서 들어 알았습니다.
문(問) : 서주보는 어떻게 이 일을 알았는가?
공(供) : 서(徐), 서주보의 말에, “이보국(李輔國)의 사랑에서 직접 그 편지를 가지고 가서 이대감에게 전했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네가 이재면(李載冕)과 어떤 친분이 있기에 이런 편지를 이대감에게 보내는 데에 이르렀는가?
공(供) : 제 할아버지가 세상에 계실 때에 집안에 유훈(遺訓) 하나를 남기셨습니다. 그 유언에, “갑오년 청나라가 먼저 움직이고 일본이 뒤를 이어와서 반드시 유신설(維新說)을 창언(唱言)하여 국조(國祚), 나라의 복록 300년을 연장할려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유신설은단연코 갑오년 6월 21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거년 6월 1일에 이것을 은밀히 이보국(李輔國), 이재면에게 통지하였습니다. 그 뒤에 이 말대로 되었기 때문에 이보국이 크게 미혹되어 이런 편지를 이대감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문(問) : 너는 김국선(金國善)을 아는가?
공(供) : 알고 있습니다.
문(問) : 어떻게 그를 알았는가?
공(供) : 수삼년(數三年) 전에 김(金), 김국선이 제가 사는 마을로 와서 살았기 때문에 알았습니다.
문(問) : 김(金), 김국선은 본래 어디에 살던 사람인가?
공(供) : 본래 영남 사람이나 그 사이에 순창(淳昌)과 남원(南原) 등지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문(問) : 그 뒤에 다시 만나보지 못했는가?
공(供) : 그 뒤에 운현궁에서 만났습니다.
문(問) : 운현궁에서 만나기 전에 그 사이에 다른 곳에서 만난 적이 없는가?
공(供) : 그 사이에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문(問) : 어디에서 만났는가?
공(供) : 그가 제가 사는 곳에 들르거나 때때로 길에서 만났습니다.
문(問) : 자주 만났는가?
공(供) : 간혹 만났을 뿐입니다.
문(問) : 김(金), 김국선은 남의 집을 빌려 살았는가? 집을 정해 살았는가?
공(供) : 그는 첩(妾)이 있어 명색(名色)은 집을 정한 듯하나 또한 집을 정한 모양이 없었습니다.
문(問) : 김(金), 김국선은 어느 동(洞)에 살았는가?
공(供) : 재동(齋洞)에 살았습니다.
문(問) : 김국선은 언제 경성에 들어왔는가?
공(供) : 계사(癸巳), 1893년년 5월과 6월쯤에 경성에 들어왔습니다.
문(問) : 김국선은 혹시 직명(職名), 관직이 있는가?
공(供) : 김오위장(金五衛將)이라고 불렀습니다.
문(問) : 김국선이 서울에 머물 때에 무엇을 업으로 삼았는가?
공(供) : 술객(術客)을 업으로 삼았습니다.
문(問) : 무슨 술법(術法)을 업으로 삼았는가?
공(供) : 상술(相術), 관상입니다.
문(問) : 김국선은 상술로 세상에 유명했는가?
공(供) : 그것은 상세히 알지 못합니다.
문(問) : 너와 친숙한가?
공(供) : 서로 알고 지낸 지는 비록 3년이라고 해도 친숙하다고 지목할 수는 없습니다.
문(問) : 김국선과 너의 사정은 일마다 서로 통하는 사이가 아닌가?
공(供) : 그러한 친분은 없습니다.
문(問) : 너는 김국선과 서로 의논한 일이 전혀 없었는가?
공(供) : 없습니다.
문(問) : 정녕 그러한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혹시 운현궁에서 서자(書字)를 상관한 일이 있지 않았는가?
공(供) : 운현궁의 서자(書字)는 그 사이에 상관한 일이 있습니다.
문(問) : 무슨 서자였는가?
공(供) : 개화당(開化黨)을 살해하는 서자였습니다.
문(問) : 해당 서자(書字)의 내용을 혹시 보았는가?
공(供) : 직접 보았습니다.
문(問) : 그 글이 단단히 봉해져 있었을 터인데 훔쳐보았는가?
공(供) : 단단히 봉해진 것이 아니고 김국선이 직접 한 장의 작은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그 안에 이 글이 있었습니다.
문(問) : 그 글은 몇 줄 몇 글자였는가?
공(供) : 10여 글자에 불과했습니다.
문(問) : 그 글이 바로 너에게 전한 것인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그 글이 대원군에게서 나왔는가? 혹시 이재면(李載冕)에게서 나왔는가?
공(供) : 대원위(大院位), 흥선대원군에서 나왔습니다.
문(問) : 그 글을 너는 어디에 두었는가?
공(供) : 그것을 보고 바로 불태웠습니다.
문(問) : 어찌하여 불에 태웠는가?
공(供) : 이것은 남에게 보여서는 아니되는 것이기 때문에 불에 태웠을 뿐입니다.
문(問) : 그 글은 한 차례에 그쳤는가?
공(供) : 4차례였습니다.
문(問) : 4차례의 글도 모두 불태웠는가?
공(供) : 3번째까지의 글은 모두 불태웠고, 4번째의 글은 태우지 않았습니다.
문(問) : 3번째까지의 글은 태우고 4번째 글을 태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공(供) : 운현궁에서 분부하기를, “4번째의 글은 전동석(田東錫) 등의 당류(黨類)에게 돌려보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문(問) : 4번째의 글이 모두 단단히 봉하지 않았고 단지 편지 한 장이었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일단 개화당을 살해한다고 했다면, 지목된 사람은 몇 명인가?
공(供) : 김학우(金學羽)・김가진(金嘉鎭)・김홍집(金弘集)이었습니다.
문(問) : 단지 이 3명 뿐인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4차례의 글이 모두 10여 글자에 불과했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1번째 글에서 바로 이 3명을 지목했는가?
공(供) : 1번째 글에서는 바로 지목하지 않았고, 단지 그들을 살해하는 일을 말했습니다.
문(問) : 2번째 글에서는 무슨 말을 했는가?
공(供) : 위의 3명의 일을 말했습니다.
문(問) : 3번째 글에서는 무슨 말을 했는가?
공(供) : 때를 놓치지 말라고 경계하였습니다.
문(問) : 4번째 글에서는 무슨 말을 했는가?
공(供) : 만약 때를 놓치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다고 하였고, 그 옆의 협서(夾書)에 3명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문(問) : 4차례의 글이 정녕코 단단히 봉하지 않았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4차례의 글에서 달리 지목한 사람은 없었는가?
공(供) : 4차례의 글에서 이 3명에 그쳤으나 김국선이 구두로 전한 말에 지목한 다른 사람도 있었습니다.
문(問) : 구두로 전한 다른 사람은 누구인가?
공(供) : 이완용(李完用)・이윤용(李允用)・안경수(安駉壽)・유길준(兪吉濬)・박정양(朴定陽)・권(權) 아무개이고 그 나머지는 상세히 알지 못합니다.
문(問) : 지금 네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이것은 국가의 중대한 사건에 관계되고 매우 비밀에 관련되는 것이다. 그러나 4차례의 글이 모두 단단히 봉하지 않고 단지 작은 종이 한 조각으로 전한 것은 매우 소홀할 뿐만 아니라 일을 도모하는 방법이 어찌 이처럼 조심스럽지가 않은가? 설사 무지(無知)한 어린애가 이 일을 도모해도 반드시 이처럼 거칠고 조잡한 데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공(供) : 김국선이 이것을 전할 때에 화철(火鐵)주머니에서 꺼낸 것도 신중한 한 가지 방법이었습니다.
문(問) : 네가 4차례의 글은 모두 단단히 봉하지 않았다고 하였고, 애초에 대원군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는데, 김국선이 글을 전한 것은 구두로 했으며 모두 너에게 전적으로 맡겼다고 하였다. 이게 어떤 천지이고, 이게 어떤 세월이고, 이게 어떤 사건인데, 이런 천지, 이런 세월에 있어서 이와 같은 사건을 애초에 얼굴 한번 본적 없는 고종주(高宗柱)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그 사이에 김국선을 시켜 4차례 글을 전한 일만 있었겠는가?
공(供) : 제가 본 것은 정말 이와 같습니다.
문(問) : 이런 사건은 내가 반드시 너를 신문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철저히 조사하고 사람들을 취초(取招)하여 〈결론이〉 하나로 돌아간 뒤에야 마무리를 할 수가 있다. 만약 혹시라도 사람들의 공초가 같지 않으면 책임이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이다.
공(供) : 사람들의 공초가 같지 않으면 비록 죽더라도 한이 없을 것입니다.
문(問) : 조금 전에 진술한 4번째의 글은 과연 전동석 등의 당류(黨類)에게 돌려 보았는가?
공(供) : 전동석에게 주어 그 무리에게 돌려서 보게 하였습니다.
문(問) : 전동석은 너와 친숙한 자인가?
공(供) : 친숙하다고 지목할 수가 없습니다.
문(問) : 너는 전동석과 언제 알았는가?
공(供) : 작년 7월 그믐 쯤에 처음 보았습니다.
문(問) : 어디서 보았는가?
공(供) : 전동석이 저의 관소(館所)에 왔기 때문에 보았을 뿐입니다.
문(問) : 전동석이 너에게 면분(面分), 안면이 없는데 어떻게 찾아왔는가?
공(供) : 심원채(沈遠采)의 말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문(問) : 심원채는 어떤 사람이고 어디에 사는가?
공(供) : 그의 거처는 창의문(彰義門) 안의 신당(神堂)이고 그의 직업은 복서(卜筮), 점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전동석은 심원채와 무슨 교분이 있는가?
공(供) : 사제(師弟) 사이라고 합니다.
문(問) : 너는 심원채와 안면이 있는가?
공(供) : 작년 7월에 처음 보았습니다.
문(問) : 너는 심원채와 친숙한가?
공(供) : 친숙하다고 지목할 수가 없습니다.
문(問) : 처음 본 것이 혹시 일 때문이었는가?
공(供) : 특별한 일이 없었으나 세상에서 기인(奇人)이라고 했기 때문에 가서 보았을 뿐입니다.
문(問) : 네가 그가 기인(奇人)이라는 말을 듣고 가서 보았다면 반드시 문답이 있었을 것이다.
공(供) : 당시의 일을 물어보았습니다.
문(問) : 심원채는 무슨 말로 대답을 했는가?
공(供) : 심원채가 말하기를, “바람이 세찬 시절이 되면 청나라 사람이 올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만약 청나라 사람이 나온다면 무슨 계책이 있다고 했는가?
공(供) : 계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무슨 계책이 있다는 것인가?
공(供) : 그의 문도(門徒) 600여 명을 인솔하여 청나라 사람을 도와 일본군을 격퇴한다고 하였습니다.
문(問) : 비록 청나라 사람과 호응하더라도 단지 문도 600명으로 어찌 일본군을 대적하겠는가?
공(供) : 문도 중에 용력(勇力)이 뛰어난 자는 남대문(南大門)을 넘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용기를 믿고 그 일을 의논하였습니다. 6월 20일 이후에 성밖과 성안에 회소(會所)를 마련하고 〈변고에〉 대비하는 것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문(問) : 회비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공(供) : 집과 땅을 팔았다고 합니다.
문(問) : 전동석의 이름은 심원채에게서 처음 들었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그의 문도가 600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데, 어찌 전동석만 제기하는가?
공(供) : 전동석이 그의 수제자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심원채가 전동석을 수제자라고 하였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전동석이 심원채의 수제자이었다면 전동석은 심원채에 무엇을 받았는가?
공(供) : 다만 수제자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받은 것이 무슨 일인지는 모릅니다.
문(問) : 그 사이에 너는 심원채와 몇 번 만났는가?
공(供) : 두서너번입니다.
문(問) : 너는 전동석과 몇차례 만났는가?
공(供) : 5~6차례 만났을 뿐입니다.
문(問) : 5~6차례 만났을 때에 네가 전동석에게 갔는가? 전동석이 너에게 왔는가?
공(供) : 전동석이 제가 사는 곳에 왔습니다.
문(問) : 너는 전동석에게 끝내 한 번도 간 적이 없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네가 끝내 한 번도 가지 않고 전동석이 5~6차례 너에게 온 것은 무슨 긴급한 이유가 있었는가?
공(供) : 심원채가 저에게 허명(虛名)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문(問) : 운현궁에서 보낸 편지는 네가 전동석과 함께 몇 차례 서로 만날 때였는가?
공(供) : 2차례 만난 뒤에 있었습니다.
문(問) : 정녕 2차례 서로 만난 뒤였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2차례 서로 만나는 사이에 대개 며칠이 지났는가?
공(供) : 2~3일 사이에 불과합니다
문(問) : 네가 전동석과 2차례 만나고 2~3일 사이에 혹시 김국선이 찾아왔는가?
공(供) : 그런 일이 없습니다.
문(問) : 운현궁에서 〈보낸〉 첫번째 글은 네가 전동석과 처음 만난 뒤 며칠 후에 있었는가?
공(供) : 9월 14일쯤에 있었습니다.
문(問) : 전동석이 3번째 찾아온 때는 언제쯤인가?
공(供) : 8월 28일~29일쯤입니다.
문(問) : 전동석이 처음 찾아온 시기는 언제쯤인가?
공(供) : 7월 25일~26일쯤입니다.
문(問) : 전동석이 2번째 찾아온 때는 언제쯤인가?
공(供) : 7월 그믐쯤입니다.
문(問) : 운현궁에서 첫 번째 너에게 편지를 보낸 때가 전동석이 두 번째 찾아온 후 몇일 만이었는가?
공(供) : 운현궁에서 첫 번째 편지는 전동석이 두 번째 찾아온 뒤 한 달 정도 지나서 있었습니다.
문(問) : 전동석이 4번째 찾아온 때가 언제였는가?
공(供) : 9월 20일쯤입니다.
문(問) : 6번째 찾아온 때는 언제였는가?
공(供) : 10월 그믐쯤입니다.
문(問) : 이밖에 혹시 전동석의 패거리가 찾아온 적이 없었는가?
공(供) : 김내오(金乃吾)가 그 사이에 찾아왔습니다.
문(問) : 그가 전동석과 한패인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김내오는 어떤 사람이고 어디에 사는가?
공(供) : 평안도에 살았으나 서울에 들어온 뒤에 심원채의 집에서 묵었습니다.
문(問) : 운현궁의 4번째 글은 언제 있었는가?
공(供) : 9월 그믐쯤에 있었습니다.
문(問) : 운현궁의 3번째 글은 언제 있었는가?
공(供) : 9월 27일~28일 쯤에 있었습니다.
문(問) : 〈운현궁의〉 2번째 글은 언제 있었는가?
공(供) : 9월 20일에 있었습니다.
문(問) : 첫 번째 글에서 4번째 글까지 모두 기억할 수 있는가?
공(供) : 서자의 순서대로 기억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뜻은 알 수가 있습니다.
문(問) : 너는 붓으로 쓸 수가 있는가?
공(供) : 제가 경무청에서 5차례 공초(供招)를 받을 때에 끈에 매달려 무수히 매를 맞아서 손과 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자필(自筆)로 그것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문(問) : 네가 입으로 부를 수 있겠는가?
공(供) : 입으로 부를 수가 있습니다. 첫번째 글에서는, “창의문(彰義門)에 용사(勇士)가 많이 모였다고 들었는데, 이것으로 개화당을 모두 없앨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2번째 글에서는, “김홍집(金弘集)・김가진(金嘉鎭)・김학우(金學羽) 등 3명을 먼저 제거할 수 있는가”라고 하였고, 3번째 글에서는, “이런 일은 때를 놓치면 아니되니 시급하게 도모하라”고 하였고, 4번째 글에서는, “만약 이 때를 넘기면 너희들은 목숨을 보전하기가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9월 14일부터 같은 달 그믐까지 몇 차례 운현궁을 왕래했는가?
공(供) : 3차례입니다.
문(問) : 3차례 왕래한 날짜를 기억할 수 있는가?
공(供) : 상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문(問) : 이재면(李載冕)과 김국선(金國善)중에 너는 누구와 가장 친숙한가?
공(供) : 김국선이 이재면만 못합니다.
문(問) : 김국선이 운현궁의 편지를 처음 전달한 뒤에 너는 이런 뜻을 이재면에게 말했는가?
공(供) : 그런 일이 없습니다.
문(問) : 이런 뜻을 혹시 이준용에게 말했는가?
공(供) : 그런 일이 없습니다.
문(問) : 너와 친숙한 정도가 김국선이 이재면만 못하다고 네가 말했는데, 어찌하여 이런 뜻을 두 이씨이재면과 이준용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공(供) : 긴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습니다.
문(問) : 네가 그 사이에 애초에 한번도 대원위(大院位), 흥선대원군를 뵌 적이 없었고, 또한 이런 뜻을 이재면과 이준용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글이 대원위에게서 나온 것을 분명히 알았는가?
공(供) : 필적이 운현궁의 필체와 같았기 때문에 의심 없이 그것을 믿었을 뿐입니다.
문(問) : 너는 김국선과 서로 친해진 뒤에 그를 규모있는 사람으로 알았는가? 혹은 파락(破落)한 부류로 인식하였는가?
공(供) : 서로 알게 된 뒤에 삼가고 멀리했을 뿐입니다.
문(問) : 무슨 이유로 삼가고 멀리했는가?
공(供) : 김국선은 사람과 서로 친함에 있어서 처음에는 지나치게 칭찬하고 나중에는 지나치게 헐뜯습니다. 혹시 옆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뜻과 맞지 않으면 모함하여 만길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말버릇이 두려워할만하였기 때문에 그를 삼가고 멀리하였습니다.
문(問) : 그 사람의 말버릇이 이와 같은 줄을 아는데, 어찌 그 글이 운현궁에서 정말로 나온 것을 확신하는가? 설령 운현궁에서 정말로 나왔고 이 사람을 보내 전했다면 너의 도리상 피할 방도를 생각하고 멀리 달아나야 하는데, 어찌하여 그 말을 달갑게 여겨 그 모의에 부합했는가?
공(供) : 저는 심원채와 전동석과 서로 친해진 뒤에, 개화당의 사람을 원수처럼 미워한다고 늘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언제나 모여 앉아 말을 할 때에는 “만약 운현궁의 분부가 있다면 개화당을 모두 제거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운현궁의 글이 몇 차례 저에게 왔기 때문에 저의 어리석은 생각에, “개화당을 모두 없애고 운현궁에 중용을 받는다면 부귀(富貴)를 도모할 수 있다”고 여겨서 스스로 해당 〈죄의〉 조목을 범하여 공연히 용서받지 못할 죄명(罪名)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問) : 너의 그 때 어리석은 생각이 비록 여기서 나왔다고 해도 애초에 이보국(李輔國), 이재면에게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는 것이 실제로 의심스럽다.
공(供) : 운현궁의 집안 규범은 3대(三代), 흥선대원군・이재면・이준용가 비록 함께 한집에 살더라도 견해가 각각 같지 않고, 일도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비록 그 글이 노대감(老大監), 흥선대원군에게서 나왔다고 해도 그 아들과 손자가 반드시 함께 알 리가 없습니다. 만약 그 집 안의 3대가 애초에 함께 도모하지 않았는데 함부로 이런 뜻을 가운데 사랑(中舍廊), 이재면에 전한다면 긴요하지 않은 일로 생각할 것이기에 말하지 않고 지냈을 뿐입니다.
문(問) : 운현궁의 4차례 글은 네가 직접 전동석에게 전했는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였는가?
공(供) : 김내오에게 전하게 하였습니다.
문(問) : 김내오에게 전하게 한 뒤에 전동석이 찾아오지 않았는가?
공(供) : 전동석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문(問) : 그렇다면 너도 전동석을 찾아가지 않았는가?
공(供) : 그런 적이 없습니다.
문(問) : 김내오도 찾아오지 않았는가?
공(供) : 10월 3일 초혼(初昏), 초어스름에 김내오가 갑자기 저의 집에 와서 당오전(當五錢) 100여 냥을 요청하기에 그 용도를 물었더니, 그가 말하기를, “오늘 저녁에 우리들이 홍전문(紅箭門) 안에 모여 한번 술을 먹으려고 하는데 가진 게 없어 한탄스러웠기 때문에 지금 이런 말을 할 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그 말대로 돈을 내어주었는가?
공(供) : 그 당류(黨類)가 몇 명인지를 물어 보았더니 수백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부풀린 것을 싫어해서 1푼의 돈도 주고 싶지 않았으나 그가 끝내 여러번 간청하여 어쩔 수 없이 15냥의 돈을 허락하였습니다.
문(問) : 그 사이에 김국선이 혹시 너의 일에 돈을 준 적이 없는가?
공(供) : 있습니다.
문(問) : 준 돈이 얼마인가?
공(供) : 당오전으로 1,000냥입니다.
문(問) : 1,000냥을 한 번에 모두 주었는가?
공(供) : 처음에 500냥을, 2번째에 500냥을 주어 1,000냥입니다.
문(問) : 이 돈은 몇 월 몇 일에 주었는가?
공(供) : 1차는 9월 20일쯤에, 2차는 20일 이후에 주었습니다.
문(問) : 2차에 걸쳐 돈은 누가 전해주러 왔는가?
공(供) : 김국선이 직접 전해주었습니다.
문(問) : 김국선이 이 돈을 전해주러 올 때에 무슨 용도라고 하였는가?
공(供) : 전당(田黨), 전동석의 패거리의 술값으로 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그 돈은 바로 전당(田黨)에게 내어주었는가?
공(供) : 바로 내어주었습니다.
문(問) : 누구에게 내어 주었는가?
공(供) : 김내오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문(問) : 언제 돈을 내어 주었는가?
공(供) : 9월 21~22일쯤입니다.
문(問) : 너는 그 돈에서 아예 침범한 것이 없는가?
공(供) : 아예 침범한 것이 없습니다.
문(問) : 운현궁의 글과 돈을 모두 네가 직접 저들에게 전했다면 이 일의 성사 여부가 분명히 저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글과 돈을 모두 전한 뒤에 서로 간에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어찌 말이 되겠는가?
공(供) : 글을 전하고 나서 4~5일쯤에 서로 간에 한 차례 만나서 은밀히 의논을 하려고 했으나 뜻밖에 그 일이 갑자기 3일 밤에 일어났을 뿐입니다.
문(問) : 그 뒤에 김협판(金協辦), 김학우이 해를 당한 얘기를 누구에게 처음 들었는가?
공(供) : 처음에 김내오에게 들었고, 이어서 심원채와 전동석에게 들었습니다.
문(問) : 김내오와 심원채, 전동석은 모두 네가 기거하는 곳에 와서 이 소식을 전했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언제 그것을 전하러 왔는가?
공(供) : 4일 식전(食前)에 전하러 왔습니다.
문(問) : 3명이 모두 이 날 식전에 그 소식을 전했는가?
공(供) : 3명이 모두 왔습니다.
문(問) : 3명이 함께 왔는가?
공(供) : 김내오가 먼저 왔다가 갔고, 조금 있다가 심원채와 전동석이 함께 왔습니다.
문(問) : 그 뒤에 너는 오랫동안 근동(芹洞)에 머물렀는가?
공(供) : 그렇습니다.
문(問) : 그 뒤에 김국선을 보았는가?
공(供) : 보았습니다.
문(問) : 네가 김국선에게 가서 보았는가? 김국선이 너에게 와서 만나보았는가?
공(供) : 제가 근동의 길에 갔다가 만났습니다.
문(問) : 그 날이 언제인가?
공(供) : 10월 6일입니다.
문(問) : 김협판이 해를 당한 다음날에 어찌하여 바로 김국선에게 가서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는가?
공(供) : 김국선이 대원군을 따라가 오랫동안 대궐 안에 있어서 비록 그를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문(問) : 대원군이 비록 오랫동안 궐안에 있어도 매일 1차례 관례적으로 출궁(出宮)을 하는데, 〈결략〉
공(供) : 〈결락〉 저는 김국선이 오는 것을 반드시 기다려야 했으나 기꺼이 보러가지 않았습니다.
문(問) : 네가 천하에 흉악한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바로 김국선을 보러가지 않은 것은 무슨 주견(主見)인가?
공(供) : 김협판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뉘우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서 막으려고 했으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 주견이 있어 김국선에게 나아가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문(問) : 뉘우치는 마음이 무엇 때문에 생겨났는가?
공(供) : 처음에 약속하기를, “개화당을 모두 제거하기로 하고 경성의 재상 중에 장(將), 장수과 상(相), 재상이라고 하는 자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했으나 저들이 손을 쓴 자는 북인(北人) 김협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찌 남자의 일입니까? 뉘우치는 마음이 생긴 것은 진실로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문(問) : 네가 개화당을 모두 죽이려 했는데, 그 뜻이 수구(守舊)에 있는가?
공(供) : 전적으로 수구를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문(問) : 정말로 네가 말한 대로라면 최근에 세상에서 시무(時務)를 안다고 하는 자는 김홍집・김가진・김학우・유길준 등 몇 명보다 나은 사람이 없는데, 이런 사람을 모두 제거하고 어떤 사람과 지금의 어려움을 구제하려고 하였는가?
공(供) : 국권(國權)을 모두 운현궁에 돌리려고 했을 뿐입니다.
문(問) : 국권이 비록 대원위(大院位), 흥선대원군에게 돌아가도 한 사람의 총명함으로 어찌 온 나라의 일을 담당할 수 있겠는가?
공(供) : 상세하게 알지 못하는 일은 일본인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어찌 그 사이에 나올 인재가 없겠습니까?
문(問) : 이 사안(事案)을 계획할 때에 네 마음속에 어찌 지목해둔 장수와 재상이 없겠는가?
공(供) : 성사(成事)된 뒤에 장수와 재상은 마땅한 사람을 〈얻기가〉 어렵지 않으리라 여겼는데, 어찌 반드시 평소의 얕은 생각에 미리 정하겠습니까?
문(問) : 장수와 재상을 비록 이렇게 말하나 네 소망은 어디에 있었는가?
공(供) : 저의 소망은 여전히 작은 읍(邑)으로 부모를 영광스럽게 할 것에 불과합니다.
문(問) : 네가 김국선과 근동(芹洞)의 길에서 만났을 때에 김국선이 말을 했는가?
공(供) : 김국선이 말하기를, “대원위(大院位)의 분부에, ‘저들이 나의 평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단지 김학우 한 명만을 제거하였는데, 이것은 진실로 달리 쓸모가 없는 부류이고 공연히 지난날에 준 돈을 허비하였다. 신속하게 이 돈을 돌려받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고 하기에, 제가 “돈을 마련하여 돌려드리겠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문(問) : 그 뒤에 정말로 그 돈을 마련하여 돌려드렸는가?
공(供) : 돈을 마련할 때에 끝내 잡혔습니다. 제가 대원위(大院位), 흥선대원군의 하는 일을 깊이 생각해보니 세상에서 영웅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로 헛된 말이었습니다.
문(問) : 대원위가 영웅이 되기에 부족한 것은 너는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는가?
공(供) : 그 사이에 대원위가 여러 번 저를 보려고 했으나 경솔하게 먼저 발을 내딜 수가 없었습니다. 가운데 사랑이재면과 작은 사랑이준용을 왕래할 때에 그 문견(聞見)에 따라 영웅의 도량을 확실하게 안 뒤에 일을 함께 의논하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보고 들은 대로 그 행실을 살펴보았더니 정말로 영웅이 되기에는 부족하였습니다.
문(問) : 영웅이 되기에 부족한 확실한 무슨 증거가 있는가?
공(供) : 올바른 사람과 군자(君子)를 좋아하지 않고 함께 상대하는 자는 대부분 잡류(雜類)인데, 이것을 영웅의 풍류라고 하겠습니까?
문(問) : 함께 상대한 자는 어떤 잡류인가?
공(供) : 대원위가 함께 상대해야 할 자는, 일국(一國)의 뛰어난 인재를 넓게 포괄하여 묘당(廟堂), 의정부에 불러와서 도(道)를 논하고 정치를 논하는 것이 그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가 아우르고 데려온 자는 바로 술수(術數)를 하는 부류에 지나지 않는데, 이들이 잡류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문(問) : 그러한 잡류가 얼마나 되는가?
공(供) : 상술(相術), 관상・명술(命術)・점술(占術) 등을 하는 자들이 몇 명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일일이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문(問) : 그 중에 네가 잘 아는 자가 없는가?
공(供) : 그 중에 잘 아는 자는 바로 김국선(金國善)이고 그 밖에 이기성(李起聲) 등 몇 명은 얼굴만을 보았으나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문(問) : 김국선과 이기성은 모두 무슨 술법을 가지고 있는가?
공(供) : 두 사람 모두 상술(相術)을 가지고 나왔을 뿐입니다.
문(問) : 대원위가 영웅이 되기에 부족한 것이 이런 단서 하나뿐인가?
공(供) : 이보다 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청나라 사람을 지나치게 좋아해서 그들의 출입을 대우한 것도 하나의 큰 병입니다.
문(問) : 대원위가 청나라 사람을 대우하는데, 특별히 주견(主見)이 있었는가?
공(供) : 저는 애초에 대원위와 대면하지 않아 그의 주견을 끝내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그 행실을 미루어 보면 대강 알 수가 있습니다.
문(問) : 그 행실을 지적하여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
공(供) : 그 사이 들은 얘기에, 운현궁에서 평안도에 많은 사람을 파견하여 청(淸)과 서로 교통(交通)한 기미가 현저합니다. 이것이 지적해서 말할만한 그 행실이 아닙니까?
문(問) : 너는 조용승(曺龍承)을 아는가?
공(供) : 모릅니다.
문(問) : 정녕 그를 모르는가?
공(供) : 정녕 모릅니다.
문(問) : 혹시 그 이름을 들어 보았는가?
공(供) : 조삼산(曺三山)이라는 호칭은 들었는데, 그 뒤에 들어보니 삼산(三山)이라는 것이 조(曺)의 별호라고 하였습니다.
문(問) : 삼산(三山)의 호칭을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가?
공(供) : 이것은 풍문(風聞)이므로 분명하게 지적할 수 없습니다.
사룀
재판소(裁判所)
협판(協辦) 이재정(李在正)
참의(參議) 장박(張博)
주사(主事) 기동연(奇東衍)
주사(主事) 이희덕(李熙悳)
주사(主事) 정훈교(鄭勳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