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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동학관련판결선고서 東學關聯判決宣告書
일러두기

판결선고서원본 [判決宣告書原本] 이민고(李敏皐)

한성부(漢城府) 남서(南署) 삼대동(三台洞) 거주. 전 봉산군수(前 鳳山郡守)

피고 이민고(李敏皐). 나이 51세

위의 피고 이민고에 대한 안건을 검사(檢事)의 공소에 따라 이것을 심리하였다. 피고가 1894년 6월쯤에 봉산 군수에 임명되어 그 해 10월쯤에 부임하였다가 정유(丁酉), 1897년년 8월쯤에 해임되었다. 재임할 때에 해당 군(郡)의 공전(公錢)을 다른 용도로 돌려 쓴 일이 애초에 없고, 해당 원(員)의 명하현록조(名下懸錄條) 28,930냥 8전 9푼에서 10,990냥 4전 8푼은 1894년 10월에서 을미(乙未), 1895년 9월까지 구례(舊例)의 관황(官貺), 관리의 봉급을 신식(新式)을 발행하기 전에 요구에 따라 내주는 것을 인정하고 사용했는데, 개국(開國) 504년 5월 27일에 칙령(勅令) 103호에서 군수의 봉급은 예전대로 부윤(府尹)・목사(牧使)・군수(郡守)・판관(判官)・서윤(庶尹)・현령(縣令)・현감(縣監)은 그 직(職)에 있을 때 받았던 봉급을 지급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징계를 요구해서는 아니된다. 15,930냥 3전 9푼은 일본군이 왕래할 때의 접대 비용과 동비(東匪)가 창궐할 때에 포병(砲兵)의 방료(放料), 월급로 쓴 것은 해당 군의 조사보고와 그 때의 서기(書記) 김병선(金秉璇)의 증공(證供)에 확실하게 근거할만하다. 그래서 이것도 징계를 요구해서는 안되다. 그러나 일본군의 접대와 동비의 방비는 때가 비록 경황이 없는 중이더라도 해당 경비를 경부(京部)에 분명히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그 책임을 모면하기가 어렵다. 그 사실은 피고의 진공(陳供)에 증거가 명백하다. 이것을 대명률(大明律) 공식편(公式編)의 사응주불주조(事應奏不奏條)에, “공문을 올려야 하나 올리지 않은 자”의 형률에 비춰 피고 이민고를 태형(笞刑) 40대에 처해야하나 지난해 11월 25일의 조칙(詔勅)을 받들어 풀어준다.

광무(光武) 2년(二年), 1898년 1월(一月) 25일(二十五日)

평리원(平理院) 검사 이학규(李鶴圭)와 태명식(太明軾) 및 한동리(韓東履)가 입회(立會)하였다.

평리원(平理院) 재판장(裁判長) 조윤승(曺潤承)

평리원(平理院) 판사(判事) 이용직(李庸稙)

평리원(平理院) 판사(判事) 이휘선(李徽善)

평리원(平理院) 판사(判事) 김기조(金基肇)

평리원(平理院) 판사(判事) 박경양(朴慶陽)

평리원(平理院) 주사(主事) 이인상(李麟相)

주석
명하현록조(名下懸錄條) 어떤 일에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배당하여 거둔 돈을 기록해 놓은 치부책인 듯하다.
봉급 관리의 봉급으로 관황(官況)을 가리키는 듯하다.
사응주불주조(事應奏不奏條) 상주해야 할 일인데 상주하지 않은 죄에 대한 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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