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금산군(金山郡) 거주. 농민
피고 양사봉(梁士奉). 나이 34세
위의 피고 양사봉에 대한 안건을 검사(檢事)의 공소에 따라 이것을 심리하였다. 피고는 음력 기해(己亥), 1899년년 10월부터 정원집(鄭元集)이라는 사람에게 동학을 전수받아 음력으로 올해 3월쯤에 정원집과 서정만(徐定萬)을 따라가서 떡과 술을 지고 기도를 하러 속리산에 갔었다. 그 사실이 피고의 진공(陳供)에 증거가 명백하다. 정원집은 도주하여 숨어서 아직 잡지 못했고, 서정만은 좌도(左道)의 수범(首犯), 주모자으로 이미 법에 따라 죽었다. 피고 양사봉을 대명률(大明律) 제사편(祭祀編)의 금지사무사술조(禁止師巫邪術條)에, “잘못된 도(道)에 호응하여 정도(正道)를 어지럽히고 종범(從犯)이 된 자”의 형률에 비춰 태형(笞刑) 100대와 종신(終身) 징역형에 처한다.
광무(光武) 4년(四年), 1900년 11월(十一月) 13일(十三日).
평리원(平理院)검사 태명식(太明軾)과 한동리(韓東履) 및 김상직(金商直)이 입회(立會), 참관하였다.
평리원(平理院) 재판장(裁判長) 김영준(金永準)
평리원(平理院) 판사(判事) 오상규(吳相奎)
평리원(平理院) 판사(判事) 이휘선(李徽善)
평리원(平理院) 판사(判事) 김기조(金基肇)
평리원(平理院) 판사(判事) 박경양(朴慶陽)
평리원(平理院) 주사(主事) 이인상(李麟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