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다니다가 울산군에 이르러, 골짜기가 깊고 샘물이 달며 산이 밝게 비치고 숲이 우거진 것를 보고, 이를 계기로 권솔을 데리고 와 여기에 살게 되었다. 이때부터 은둔생활 하기로 작정한 후 덕성을 함양하고 도기를 수련했는데 그렇게 한 기간이 14년이나 되었다. 을묘년(1855년) 늦봄의 일이었다. 어느 행각승(行脚僧)이 마루 앞에 주장자를 놓고 예를 다하여 무릎을 꿇어 절을 올렸는데 육근(六根)이 청정하고 일체 누업상(漏業相)이 없었다
이에 제세주가 묻기를 “노승께서는 어디에서 와서 여기에 머물게 되었습니까?”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금강산에서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제세주가 또 어찌하여 금강산에서 왔느냐고 묻자, 스님은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제세주가 “이는 바람이 태허(太虛)에서 쉬고 있어 나무를 움직여 알려주며, 달이 중봉(中峰)에 숨어서 부채를 들어 깨우쳐 알려주지 않음이 없지요”
빈도는 그저 선경(禪經)을 염송했습니다만 끝내 신령스런 효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백일동안 경건하게 하늘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탑에 의지해 얼핏 잠이 들었다가, 돈오(頓悟)한 바가 있어 깨어나 바라보니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습니다. 탑 위에서 내려와 문득 가져다가 되풀이하여 읽어보니, 비범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천(人天)의 법안(法眼)을 찾아 험한 길을 걸어서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비옵건대 선생께서 읽어보아 주십시오. 기약컨대 3일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제세주가 묵묵히 생각해서 마음으로 얻은 바가 있었는데, 공전절후(空前絶後)한 베개 속의 숨겨둔 보배로, 유교와 같기도 하고 불교같기도 하고 선교같기도 하면서 그것도 아니었다. 약속한 날짜가 되자 과연 중이 다시 와서 모두 이해하였느냐고 물었다. 제세주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니 스님이 두 번 절하고서는 칭송해 말하기를 “선생은 하늘의 신령이 강림해 스스로 바른 깨우침을 이루었으니, 장차 만세의 도조(道祖)가 되실 것입니다. 원컨대 선생은 스스로를 아끼십시오”라고 하였다. 스님이 말을 마치자 스님과 책이 모두 사라져서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큰 도가 장차 행해질 적에는 으레 영험하고 이적의 자취가 있게 마련이다. 옛날에 복희가 괘를 그을 때 용마(龍馬)가 그림을 등에 업고 나왔으며 황제가 도를 수련할 때 삼황(三皇)의 옥결(玉訣)을 금갑신인(金甲神人)에게서 받았으며, 하우(夏禹)가 홍범(洪範)을 펼 때 낙수의 거북이 상서로움을 바쳤다.
우리 제세주가 또한 때를 맞추어서 이 세상에 나왔다. 하늘이 장차 제세주의 손을 빌어 우리 창생을 구제하려 하셨다. 때문에 신승(神僧)이 나타나 신령스런 글을 하늘로부터 내려주었다. 그 일이 지극히 기이하고 그 이치가 지극히 현묘하다. 앞 성인과 뒷 성인이 받은 글이 모두 하나의 이치로 통한다. 하늘의 뜻이 어찌 우연히 그러하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