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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 기사명
    제3장 영기를 발현하여 비결을 해석하고 도를 강연하다[第三章 靈氣發現解繫演道]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56년 07월 00일
일러두기

가을 7월에 제세주는 현(縣)의 서쪽에 사는 강원보(姜元甫)를 방문하고 돌아오다가 구불구불한 골짜기의 큰 제방에 이르러 타고 오던 말이 갑자기 놀라 땀을 흘리며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잠깐 눈을 돌리는 사이에 제방이 느닷없이 허물어졌는데, 세로의 길이가 7~8장(丈)이나 되는 제방이 우레 소리를 내며 와르르 허물어진 것이었다. 얼핏 보니 한 가닥의 햇빛이 사람과 말을 끌어안아 보호하여 평지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였으므로 시종(侍從)하던 자들이 모두 안전하게 모시고 돌아왔다. 그로부터 사나흘 지난 뒤에 제세주가 또 서산(西山) 안에 있는 박대여(朴大汝)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였다. 이날 밤에 큰 비가 쏟아져 거천에 물이 서너 장(丈) 남짓이나 불어나서 말을 채찍질하여 물을 건너는데 냇물의 깊이는 정강이에 미치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모여들어 그 광경을 구경하였는데 큰 이무기[螭龍]한 마리가 수면을 가로 질러 있는데, 그 등이 마치 판자로 만든 다리처럼 생겼었다. 그 덕분에 제세주가 그 다리를 다 건너자마자 그대로 아스라하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제세주의 천신조화(天神造化)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고 여기어서 그를 믿고 우러르는 자들이 날이 갈수록 매우 많아졌다.
가을 9월에는 경주부에 사는 윤선달(尹先達)이 평소에 음험하고 간사하고 교활한 자였는데 몰래 경주부 영장(營將)에게 부탁하였다. “이 고을에 최 선생이라는 자가 살고 있는데 그 제자들이 수천 명이나 된다. 만약 그를 위학(僞學)으로 지목하여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면 그 제자들이 틀림없이 많은 뇌물을 주면서 죄를 씻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영장은 그 말을 듣고 달콤하게 여겨 군교(軍校)를 풀어 체포하게 하였다. 이 때가 9월 29일이었다.
제세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제자 10여인과 함께 따라 갔는데 북천(北川)에 이르러 냇물을 건널 때에 동쪽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 100여 명이 한꺼번에 일어나 서서 손으로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한 가닥 상서로운 기(氣)가 마치 무지개처럼 길게 뻗치어 하늘을 빛내고 땅을 비추면서 껴안아 보호하듯이 온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제세주를 향하여 늘어서서 절을 하였다.
제세주가 신문(訊問)하는 관정(官庭)에 들어가자 영장이 물었다. “너는 시골의 일개 가난한 선비인데, 무슨 도덕(道德)이 있어서 따르는 패거리들이 수천 명이나 되느냐? 이것은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도둑질하는 짓이다. 또 네가 사람들을 현혹시킨 까닭에 의원(醫員)・무당[巫覡]・점장이[卜筮]들이 거의 다 생업을 잃었다. 이게 무슨 환술(幻術)이란 말이냐?”라고 하였다. 제세주는 낯빛을 바르게 하고 한참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윽고 대답하였다. “옛말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도(道)를 수련하는 것을 교(敎)라 한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안 될 것이 뭐있는가?”라고 하였다. 제세주는 말을 마치고는 눈빛을 마치 번개처럼 번뜩이면서 감영(監營)의 대청(大廳)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영장은 자기도 모르게 실색(失色)을 하였고 또 제세주의 말씨가 늠름하고 숙연한 것을 보고는 즉시 당(堂)에서 땅으로 내려와 위로하고 사과한 뒤에 풀어 보냈다.
제세주는 이에 경주부 부근에 물러나 머물렀는데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곳에 모인 문도(門徒)들이 7백여 명이나 되었다. 그러자 윤선달은 대번에 두려운 나머지 겁을 먹고 도망하였고 영장은 제세주가 머무는 숙소에 여러 번 찾아와 지난번에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였다. 그때 마침 경주부윤(慶州府尹)의 아내가 갑자기 급한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맨 지가 여러 번이었다. 지윤은 예리를 대신 보내 먹을 것을 드리고 영부(靈符, 신령스러운 부적)를 간곡하게 요구하였다. 이에 제세주는 한참 동안 잠자코 생각하더니 예리를 위로하여 보내며 말했다. “네 내아(內衙, 경주부윤의 아내)의 병은 벌써 말끔히 나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예리가 돌아가서 지윤에게 보고할 무렵에는 지윤의 아내의 병이 말끔히 나았으므로 온 경주부 사람들과 관리들이 놀라고 탄복하였다.
겨울 10월 5일에 제세주는 용담의 정사(精舍)로 돌아와서 글을 보내 제생(諸生)들을 포유(布諭)하였다. 대체로 새로 들어온 문도들이 심주(心柱)가 견고하지 못하여 함부로 영부를 베풀면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갈수록 치성(熾盛)해질까 염려한 까닭에 그들에게 정도(正道)를 지키라는 가르침을 힘써 닦고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제세주가 일찍이 깊은 밤에 책을 읽으며 주문을 외우고 있을 때 문도가 들어와 고하였다. “오늘 밤 하늘에 서기(瑞氣)가 영롱하게 광채를 뿜어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 속에 어떤 부인(夫人)이 운계(雲髻)를 쓰고 수의(銖衣)를 입은 채 나무 꼭대기에 다리를 꼬고 단정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아마 구천현녀(九天玄女)가 제세주의 글 읽는 소리를 저희랑 함께 들으려는 것인가 봅니다”라고 하였다. 제세주가 말했다. “너는 구천 현녀가 나무 꼭대기에 있는지 마음속에 있는지 알고 있느냐?”라고 하였다. 문도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에 제세주가 숟가락을 펴서 보여주자 너울너울 회오리 바람이 일어났는데 모두가 공화(空花)일 따름이었다.
겨울 11월 9일에 제세주는 대신사(大神師)와 함께 흥해군(興海郡) 송곡(松谷)의 손봉조(孫鳳祚)의 집으로 고비(皐比)를 옮겨 정하자, 문도들이 무더기로 몰려들었다. 제세주는 동자(童子) 서너 사람을 불러다가 예서(隸書) 쓰는 법을 익히게 하였는데 밤새도록 썼지만 한 글자도 제대로 글자를 쓰지 못하고 다만 도아(塗鴉)일 뿐이었다. 제세주는 잠자코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축도(祝禱)를 하더니 강화(降話)의 말씀을 받들었다. “너는 당분간 멈추어라. 붓을 내려주겠다”라는 강화였다. 제세주가 한울님을 모시면서 주고받은 연구(聯句)가 있는데 한울님이 먼저 “방방곡곡을 모조리 다니고 다녔도다[方方谷谷行行盡]”라고 하니 제세주가 그 뒤를 이어 “물과 물, 산과 산이 일일이 알아보네[水水山山箇箇知]”라고 하였다.
그 해 12월에 제세주는 친히 각처의 접주(接主)를 정하였다. 경주(慶州)의 이내겸(李乃謙)・백사길(白士吉)・강원보(姜元甫), 영덕(盈德)의 오명철(吳明哲), 영해(寧海)의 박하선(朴夏善)과 대구(大邱)・청도(淸道)와 경기(京畿) 1도(道)를 겸하여 맡은 김주서(金周瑞), 청하(淸河)의 이민순(李敏淳), 연일(延日)의 김이서(金伊瑞), 안동(安東)의 이무중(李武中), 단양(丹陽)의 민사엽(閔士燁), 영양(英陽)의 황재민(黃在民), 신녕(新寧)의 하치욱(河致旭), 고성(固城)의 성한서(成漢瑞), 울산(蔚山)의 서군효(徐君孝), 장기(長鬐)의 최중희(崔仲羲) 등 이다.
계해년(1863년) 정월 초하루에 제세주는 한울님이 내리신 비결(秘訣)을 받들어 말했다. “묻노라 오늘 안 것이 무엇이뇨? 뜻이 계해년 새 아침에 있노라[問道今日何所知 意在新元癸亥年] ”라고 하였다. 제세주는 명을 내려 해월 대신사를 영덕 등지에 보내 포덕(布德)하는 일에 전념하게 하였다. 대신사는 여러 도인(道人)들과 함께 도를 강론(講論)하였다. 당시에 박춘언(朴春彦)이 강령(降靈)하는 것을 부정하고 오직 자기 마음대로만 행동하자, 대신사는 말했다. “어찌하여 그러는가? 비록 나무나 돌도 오히려 강령할 수가 있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강령주(降靈呪)」를 외우니 박춘언이 즉시 섭령(攝靈)하였고 대신사는 연달아 소리 내어 주문을 외었다. 박춘언은 그때서야 옷을 벗고 펄쩍펄쩍 뛰는 몸짓을 계속하면서 마치 참회(懺悔)하여 옷을 찢으려고 하다가 대신사가 다시 천령(天靈)에게 고하자 그때서야 그쳤다. 제세주가 그 일을 듣고는 「탄도유심급(嘆道儒心急)」탄도유심급(嘆道儒心急) 1편(篇)을 지은 것이 있다.

주석
운계(雲髻) 여자가 머리를 구름 형상으로 높이 틀어 올려 꾸민 것을 말하는데 부인(婦人)을 비유하기도 한다.
구천현녀(九天玄女) 옛날 황제(黃帝)가 치우(蚩尤)와 싸울 때 황제에게 병법(兵法)을 내려주었다는 선녀(仙女). 줄여서 현녀(玄女)라고도 한다.
공화(空花) 번뇌로 인하여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妄想)이나 눈에 보이는 헛것을 말한다.
고비(皐比) 호랑이 가죽. 송(宋)나라의 장재(張載)가 항상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아서 『주역(周易)』을 강론했는데, 후세에 와서는 강학(講學)하는 자리를 고비라 이르게 되었다.
도아(塗鴉) 글씨가 유치한 것을 이르는 말. 당(唐)나라 노동(盧仝)의 시 『시첨정(示添丁)』에 “갑자기 서안(書案) 위에 먹물을 끄적이면 시서(詩書)를 지우고 고친 것이 마치 늙은 까마귀 같네.[忽來案上飜墨汁 塗抹詩書如老鴉]”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말이다.
탄도유심급(嘆道儒心急) 도유(道儒)의 마음이 급한 것을 탄식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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