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文久) 3년인 계해년(1863년) 7월 23일에 제세주가 법을 전수(傳授)하였다.
훈도(薰陶)훈도(薰陶)를 입은 것이 해와 달처럼 빛나고 내려주신 은혜를 전발(傳鉢)하여전발(傳鉢) 도통(道統)을 서로 전수(傳受)하였고 선천(先天)에 도를 베풀었으니 호탕(浩蕩)한 광정(廣政)이었도다. 오늘날 설법(設法)한 것은 강령(綱領)을 수립한 절의(節義)이니 마음을 지키어 진리를 가득 채우고 맑은 덕을 버리지 말라. 날이 가고 달이 오면 음(陰)과 양(陽)의 덕이 합쳐지고 봄에는 태어나고 가을에는 영글도다. 조화(造化)가 이룬 공은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도다. 내 마음을 영원히 모시면 옮기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으리라. 대도(大道)를 창명(創明)하였으니 무엇이 궁금하고 알고 싶은가. 무궁하고 무궁하도다. 하늘이 반드시 감응할 것이니 성심(誠心)한 조각을 일관되게 지니어라. 부자(夫子, 孔子)의 성덕(聖德)은 공계(空界)에 마음을 보냈고 석씨(釋氏, 釋迦)의 도통(道通)은 형체도 없고 자취도 없도다. 우리 도의 조화는 하늘을 모시고 하늘을 받들어 영원토록 뜻을 지키노라. 용담(龍潭)의 거룩한 운명은 하늘과 더불어 무궁하리라. 장생(長生)하고 떠나가지 아니하여 해월(海月, 崔時亨)에게 전수(傳受)하였도다. 해를 타고 하늘을 디디어 뗏목을 타고 선대(仙臺)를 향하였네. 일이 없으면 건너지 아니하고 일이 없으면 명령하지 않으리니 항상 내 마음을 믿을지어다. 검악(劒岳)의 성세(聖世)를 무궁토록 전하여 죽지도 아니하고 멸망하지도 않으리라. 도주(道主)에게 전발(傳鉢)하였으니 명령하지 않은 때가 없고 가르치지 않은 때가 없도다. 심간(心肝, 깊은 마음속)을 길이 온전히 지니어 이와 같이 깨달음이 없으면 감히 장차 대도(大道)를 들지 못하리라. 날을 가려 설법(設法)하니 어슴프레 가르침을 내리시어 기강(紀綱)을 분명하게 세우노니 광생(廣生)의 큰 소원이로다.
제세주가 또 명하였다. “해월(海月)이 북접(北接)의 법대도주(法大道主)가 되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안타깝게 탄식하여 말했다. “우리 도의 운(運)이 북쪽에 있으니 나도 이 북쪽을 따르겠다. 공을 이룩한 자는 떠나는 것이 이치상 떳떳한 법이니 이제부터 앞으로는 모든 교문(敎門)의 일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대가 총괄하여 주지(主持)하라”고 하였다. 해월 대신사가 자리를 피하여 대답하였다. “어찌하여 이런 명을 내리십니까?”라고 하니, 제세주가 말했다. “난들 운명에는 어쩔 수가 있겠는가. 부디 더욱 말명(末命)을 도양(導揚)하여 후학들을 면려하라”고 하였다. 대신사가 말했다. “감히 받들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니 제세주는 웃으면서 타일렀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의심하지도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결(訣)을 내렸는데, 그 결에 이르기를, “그림으로 그려낸 스물 한개 글자에 세간의 마장(魔障)을 모두 내리었네[圖來三七字 降盡世間魔]”라고 하였다.
8월 10일에 천도(天道)의 요소(要素)를 채집하여 마침내 「흥비가(興比歌)」 1편을 지어 사람들로 하여금 침울한 기분을 드러내게 하였는데, 음란한 내용을 읊으면 감각적인 데 빠지기 쉽기 때문이었다. 그 뒤 13일에 북접의 법대도주 해월 대신사가 마침 그곳에 이르자 제세주는 매우 기뻐하였고 이튿날 밤 3경(更)에 제세주가 대신사를 불러 말했다. “그대는 무릎을 오므리고 편히 앉게나”라고 하였다. 대신사는 그 말씀대로 하였다. 제세주는 말했다. “그대의 손과 발을 스스로 굽히고 펼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대신사는 정신이 혼미해져 벙어리가 된 것처럼 대답도 하지 못하고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도 못하였다. 이에 제세주가 유심히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 왜 이러는가?”라고 하니, 대신사는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려 대답하였다.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제세주가 말했다. “이는 조화(造化)의 큰 징험(徵驗)이니, 그대와 나의 영기(靈氣)가 서로 통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튿날인 15일 맑은 새벽에 제세주는 삼교(三敎, 儒敎・佛敎・道敎)의 현지(玄旨, 심오한 뜻)를 주연(主演)하였다. 그 일체의 숭배(崇拜)하는 의식에서는 합제(合祭)하는 의전(儀典)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또 수심(守心)과 정기(正氣)로써 영부(靈符)를 주어 병든 사람들을 널리 구제하라고 타일렀다. 이어 대신사로 하여금 대롱을 흔들어 점괘를 뽑게 하여 두 글자의 명을 받아 한울님께 고하고 대신사로 하여금 비결을 받도록 하였다. 그 비결에 이르기를, “용담의 물줄기는 사해의 근원이고 검악 사람들의 한 조각 마음에 있네[龍潭水流四海源 劒岳人在一片心]”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대신사에게 이르기를, “이는 그대의 앞날에 관계된 일이니 반드시 준수하고 어기지 말라. 내가 한울님의 명을 받아 그대에게 전발(傳鉢)과 구족(具足)의 계(戒)를 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도인(道人) 중에 와서 찾아뵙는 자들이 반드시 먼저 검곡(劒谷)을 거친 뒤에라야 비로소 용담(龍潭)의 문하에 예를 갖추어 찾아뵙는 것을 정규(定規)로 삼았다.
당시에 영천(永川)의 문도 중에 모친의 병 때문에 찾아와 영부를 간곡하게 구하는 자가 있었다. 대신사가 그의 옆에서 제세주에게 이같은 사정을 아뢰었다. 제세주는 한참 동안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병은 벌써 나았으니 너는 돌아가거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집에 돌아가자 모친의 병이 과연 이미 나았다.
겨울 10월에 제세주가 태어나신 날에 문하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 술과 음식을 정갈하게 마련하여 올렸다. 제세주는 바야흐로 탁자를 대하며 젓가락을 내려놓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후세에 나를 섭제씨(攝提氏)라고 부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시(詩)를 지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내 마음을 묘연한 사이에 끝까지 생각해보니 태양을 따라 그림자로 흐르는 듯하네[吾心極思杳然間 疑隨太陽流照影]”라고 하였다. 제세주가 문도들에게 “이 시의 뜻을 해석할 수 있겠느냐?”라고 묻자, 문도들이 모두 침묵한 채 대답을 하지 못하였고 제세주도 말없이 허공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이 때 도중(道中)에 풍종(風瘇)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는 단지 지극 정성으로 도를 믿었기 때문에 생긴 일로, 증세가 천연두(天然痘)와 흡사하여 도두(道痘)라고도 하였다. 한번 이 증상을 겪으면 대번에 온몸의 더러운 기운이 말끔히 사라지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마치 도가(道家)에서 골수(骨髓)를 세척하고 털을 간 것과 같았는데 문도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어느 날 하루는 영해(寧海)의 접주(接主)인 박하선(朴夏善)이 장문(狀文)을 갖추어 제세주에게 찾아와 질문을 하자 제세주가 대답했다. “나도 하늘을 믿을 뿐이고 하늘에 고(告)하여 반드시 명령하는 가르침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내 묵념하고 점괘를 뽑더니 얼마 안되어 비결을 내렸다. 그 글에 이르기를, “어려움에 처하여 어려움을 구하는 것은 실은 어려운 일이 아니로다. 마음을 화평하게 하고 기(氣)를 화평하게 하고서 춘화(春和)를 기다리라[得難求難 實是非難 心和氣和 以待春和]”고 하였다.
제세주는 도유(道儒)들이 다른 기예에 흘러 행동이나 말을 스스로 조심하여 지키지 않을까 우려하여 마침내 문도들을 불러 모아 도문(道門)의 종지(宗旨)를 깨우쳤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5만년 동안 다함이 없는 대도[无極大道]로써 명교(名敎)를 나에게 주었으니 우리 도는 5만 년 전에 하느님의 이치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난 날의 선천(先天)에는 도를 지키는데 정(靜)을 위주로 하였고 그 뒤 5만년 동안에는 발(發)하여 기(氣)가 되었으므로 도를 행함에 있어 동(動)을 위주로 하였다. 이 도(道)의 운명은 세상과 더불어 함께 귀착되니 영주(靈呪)의 뜻을 항상 마음속에 유념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훗날에 우리 도가 법이 되는 길은 일(一)에 있고 이(二)에 있지 않으며 삼(三)에 있고 사(四)에 있지 않으며 오(五)에 있고 육(六)에 있지 않다. 오직 21자(字)가 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합쳐지는 대종(大宗)이고 고덕(古德)이 전수(傳受)한 심법(心法)이다. 반드시 종지(宗旨)가 있어야 도를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늘 이것을 가슴에 지니고 있게 함으로써 그 묘체(妙諦)를 극진히 다하고 그 변화를 찬동(贊同)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 도의 이 21자는 도문(道門)에 전수해온 심법으로, 하늘에서 땅까지 온갖 종류의 다른 것들이 하나의 이치로 녹아든 것이니, 동참하여 찬동하면 삼재(三才)가 되고 나뉘어 갈라지면 삼교(三敎)가 되는데 모두 이 21자의 내용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말은 간단하되 뜻은 곡진하고 글은 알기 쉽지만 이치는 오묘(奧妙)하니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유(惟)’ 한 글자에 깊은 뜻이 있다. 만약 이 21자가 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합쳐지는 대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또한 ‘하늘을 모신다[侍天]’는 두 글자가 21자의 대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성인(大聖人)께서 입언(立言)하신 법은 참으로 만세(萬世)의 표준이 될 것이다.
제세주는 입도(入道)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치성제(致誠祭)를 행하여 영원히 한울님을 모시는 수계(受戒)로 삼도록 하였다. 어리석은 남녀들은 천감(天鑑)이 분명하게 여기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런 까닭에 입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하늘에 발원(發願)하게 하되 종전의 잘못을 참회하고 미래의 선과(善果)를 닦기를 원망(願望)하여 축사(祝辭)를 하늘에 고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 천연(天然)스러운 영각(靈覺)이 마치 거울이 물체를 비추듯이 선(善)에 옮기어 정진(精進)할 수가 있어서 성현(聖賢)의 영역에 넉넉하게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영원히 모시겠다고 맹세하는 것은 우리 도문(道門)의 첫 번째 정규(定規)가 되는 것이다.
제세주는 일찍이 「불연기연(不然其然)」 1편을 저술하였고 또 「팔절지잠(八節之箴)」을 저술하여 각지의 문도들에게 보시[布示(施)]하고 화답(和答)하게 하였다. 그 잠(箴)에 이르기를, “명(明)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고 덕(德)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고, 명(命)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고, 도(道)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고, 성(誠)이 이르는 곳을 알지 못하고, 경(敬)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외(畏)가 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마음의 득실(得失)을 알지 못하네[不知明之所在 不知德之所在 不知命之所在 不知道之所在 不知誠之所致 不知敬之所爲 不知畏之所爲 不知心之得失]”라고 하였다. 그 뒤에 화답하여 올린 자들이 매우 많았으나 한 사람도 이치에 합치하는 것이 없었으므로 제세주가 스스로 해석하여 “명(明)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거든 먼 곳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나를 수양(修養)하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 해 12월 1일 밤에 제세주가 꿈을 꾸었는데 태양이 한 가닥 광선을 방출하여 왼쪽 넓적다리에 와서 붙더니 불로 변해서는 하룻밤 동안에 사람 ‘인(人)’ 글자의 형상이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 살펴보니 과연 자줏빛을 띤 검은색 햇무리 하나가 있었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그것이 상서롭지 못함을 알아채고는 하늘에 고하고 한울님에게 강화(降話)의 명령을 중지해달라고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