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무자년(1888년) 2월에 대신사가 이전 성(城)에서 가지고 있던 가구(傢具)를 모두 김연국(金演局)에게 주고, 보은(報恩) 경내의 옛 거처에 돌아와 머무르며 직접 밭을 갈고 일을 하였다. 이 때에 각 포(包)의 도유(道儒, 신도)도유(道儒)들이 날마다 더욱 몰려들어 그들을 응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선생은 육임소(六任所, 포의 행정기구)를 설치하여 각 포의 두목(頭目)들에게 1달에 한 차례씩 번갈아 와서 청강하도록 하였다. 또한 특별히 육임(六任)의 임원을 차정(差定)하고 참배하는 규정을 정하였다. 대신사를 보려는 문도(門徒)는 먼저 육임(六任)의 인가(印可, 인정)를 얻은 뒤에야 배알을 하였다. 이후로는 선생에 대한 온전한 보호와 조제(調劑)의 방도는 전적으로 도집(都執, 육임중의 하나)에게 맡겨졌다.
같은 해 3월에 대신사는 부인 손씨(孫氏)의 나이가 많아 취사(炊事) 등의 집안일을 주관하기 어려운 것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육임(六任) 임원들이 함께 간청하자 손병희(孫秉熙)의 누이동생인 밀양손씨(密陽孫氏)를 측실(側室)로 정하였다.
3월 10일에 제세주(최제우)의 조난기념식(遭難紀念式)을 맞이하여 대신사는 당시 사람들의 지목(指目)을 염려하여 참석하는 것을 일절 금지하고, 다만 육임(六任)의 임원 및 두목 몇사람과 함께 예식을 치루었다. 대신사가 문도들에게 말했다. “머지않아 경사(京司, 서울에 있는 관아)에서 반드시 죄를 꾸며 무고한 사람을 법으로 얽어매는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서로 왕래하지 말고 각자 조심하라”고 하였다. 문도들은 명(命)을 받고 숨어지냈다. 대신사는 다시 각 포에 글로 유시하여 “숨어 지내며 도(道)를 닦으라”고 경계하였다.
대신사가 꿈속에서 비결을 지어 받은 것을 병술년(1886년) 10월 그믐에 송암(松菴) 손천민(孫天民)에게 전수(傳授)했는데 아래와 같다.
태극부(太極符)와 궁을도(弓乙圖), 식도(食道)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가장 좋고, 하늘과 땅의 형체와 대도(大道)를 본성(本性)에서 깨달은 뒤에야 이 이치를 알 수가 있다. 천심(天心)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주문(呪文) 13자(字)
기축년(1889년) 7월에 대신사는 임시로 육임(六任)의 임원을 그만두게하고 괴산군(槐山郡) 신양동(新陽洞)으로 거처를 옮겨서 도유(道儒)들의 왕래를 일절 금지하였다. 같은 무리를 얽어매어 가두는 화(禍)가 다시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비밀리에 엄중히 경계한 것이었다.
지(智)・인(仁)・용(勇) 3덕론[智仁勇三德論]
대개 생령(生靈, 인간)의 몸과 혼은 부모에게서, 타고난 기질은 하늘에서 받아 그것을 굽히고 펴며 움직이고 멈추는 거동을 하게 된다. 성장하여 인간의 〈대열에〉 끼여 사물에 대하여 행하는 것이 지(智)이고 인(仁)이며 용(勇)이다. 세 가지를 겸비한 뒤에야 인간이라고 할 수가 있다.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가? 인(仁)하지만 지(智)가 없다면 착할 때름이며, 지혜로우나 용기가 없다면 나약한 것이며, 용맹스러우나 지혜가 없다면 포악한 것이다. 지(智)・인(仁)・용(勇)의 세 가지 덕은 모두 전일(全一)하게 할 수는 없다. 지(智)는 바로 지(知)이니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앎을 추구하고, 인(仁)은 바로 인(忍)이니 일에 직면하여 덕을 이루며, 용(勇)은 바로 지(智)이니 중도(中道)에 맞게 결단한다. 그러니 사람으로서 용기가 없다면 어찌 인(仁)과 지(智)를 얻을 수 있겠는가? 용기를 행함에 방법이 있으니, 눈의 괴로움을 다하고 팔다리의 수고를 견디며 끝없이 일을 해야 용기의 단서가 나온다. 또한 무리한 분노를 참아가며 작은 것을 양보하고 큰 것을 취해야 용기의 단서가 나온다. 그래서 그 때의 기미에 따라 지혜를 알아 잃어버리지 않아야 용기의 단서가 나온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도(道)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가 있다. 대의(大義)를 따라서 결심을 하여 일에 나아가고, 뜻하지 않게 고통을 겪으며, 위급한 때에 처해서도 세 치의 혀로 담소하며 지휘를 하고, 한조각 곧은 마음으로 3군(三軍)의 무력을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호쾌한 용기이다. 옛 성인이 남북의 강함을 구별함에는 참으로 이유가 있었다. 군자가 용기를 낼 때, 지혜롭게 도모하여 어긋나지 않으면 대장부의 용기이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야 할 때에 용기를 내고 용기를 내지 말아야 때에 용기가 없어야 한다. 군자는 용기를 행하는 사이를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지키는 마음이 성실하다가도 게을러질 수 있으니 사람의 변화는 상전(桑田)과 같다. 지키는 마음이 공경스럽고 태연하면 산을 푸른 바다에 채울 수 있다. 귀악(龜岳)에 봄이 돌아오니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푸른바다로 변했다는 의미로, 세상일이 크게 변화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네. 용(龍)은 태양주(太陽珠)를 전하고 궁을(弓乙)은 문명(文明)을 회복하네. 운수(運數)가 열리니 하늘과 땅이 하나이고, 도(道)가 있어 물이 한번 생겨나네. 물이 온세상에 흐르고 꽃은 만인(萬人)의 마음에 핀다. 대신사가 얻은 계서(乩書, 예언을 적은 글)가 매우 많았지만 그때에 그것을 아는 자는 매우 적었다. 그러나 그 후에 사실과 그대로 일치하는 증험이 있었다. 하나.명륜(明倫, 인륜을 밝게 한다) 〈대신사는〉 통유10조의 대략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의 운수(運數)가 순환해서 5만년의 대도(大道)를 비로소 열어 세상의 마귀가 없어졌으니 영원히 21자(字)의 신령한 주문(呪文)을 믿어 운수에 따라 살고 때를 기다려서 숨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도를 인정하고 그 도를 닦는 자는 도가 온전히 성(誠)・경(敬)・신(信) 3자에 있고, 하늘을 섬기고 그 하늘을 받드는 자는 하늘이 반드시 시정지(侍定知) 한마디 말을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세상이 쇠퇴하고 운수가 쇠퇴하며 도가 희미하고 비방이 일어나는가? 도를 전하는 자가 밝지 못하고 도를 닦는 자가 그것을 믿지 않아 망령된 말과 거짓된 주문이 도를 어지럽히고 법이 없게 하는 경우도 있다. 말을 해서 여기에 이르니 편하게 머무를 겨를이 없다. 아! 너희 도유(道儒)는 이 10조에 마음과 힘을 전일하게 하여 언제나 힘써 받들고 삼가 좇아서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옳다. 이때에 호남(湖南)의 도유(道儒)인 전영조(全永祚)・김낙철(金洛喆)김낙철(金洛喆)・김낙봉(金洛葑)김낙봉(金洛葑)・김낙삼(金洛三)・남계천(南啓天) 등이 선생을 뵙고 대도의 운수(運數)를 물었다. 대신사가 대답했다. “이것은 동방(東方)의 목운(木運)과 관계가 있다. 나무가 서로 부딪히면 반드시 불이 난다. 어떤 도를 막론하고 사람의 마음이 조화로우면 하늘이 반드시 감응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신사는 다시 말했다. “비록 나무 인형을 세워 도두(道頭, 도의 두목)로 세운다고 해도 모두 좇아서 어기지 않는다면 도는 저절로 빨리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대신사가 서인주(徐仁周)・강한형
경인년(1890년)에 대신사의 둘째아들 최봉조(崔鳳朝)가 태어났다.
경인년 7월에 대신사가 김연국과 큰아들 최양봉 및 장한주 등을 데리고 양구(楊口)와 간성(杆城) 등의 여러 군(郡)을 둘러보고 돌아오다가 인제군(麟蹄郡) 남면(南面) 성황거리(城隍巨里)이명수(李明秀)의 집에 묵었다. 대신사가 새소리를 듣고 말했다. “이것도 천주(天主)를 모시는 소리이다. 세상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우상(偶像)을 믿고,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신(神)을 섬기고 있으나, 통합해서 말을 한다면 하나의 천지음양(天地陰陽)의 기(氣)일 뿐이다. 우리는 사람이 천주를 모시는 것만 알고 있지, 만물이 천주를 모시는 것은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대신사가 계시(乩詩, 앞일을 예언하는 시) 1편(篇)을 지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같은 해 8월에 도유(道儒) 장세원(張世遠)과 윤상오(尹相吾)가 와서 보고하였다. “서인주(徐仁周)를 지금 보석으로 풀려나게 할 수 있으나 재물이 있어야 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신사는 즉시 김연국에게 말하여 500금(金)을 마련하여 보내고, 그에게 말했다. “서인주가 비록 보석으로 풀려나기는 하였지만 그 생사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매일 밥을 먹은 뒤에 하늘에 고(告)해서 그가 살아 있기를 빌겠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것이 마침에 전례(前例)가 되었다.
같은 해 11월에 대신사는 경상도 김산군(金山郡) 복호동(伏虎洞)의 김창준(金昌駿) 집에 있으면서 직접 「내수도문(內修道文)」과 「세칙(細則)」을 짓고, 한글로 번역해서 각 포(包)에 나누어 주었다. 부녀자가 집안을 바로잡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었다.
신묘년(1891년) 5월 15일에 대신사는 공주군(公州郡) 신평리(薪坪里)의 윤상오 집에 옮겨가서 묵었다. 그는 달을 보고 말했다. “달도 밥을 먹는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이치를 알지 못하여 잠자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제자들은 하늘과 땅 및 이기(理氣)의 근원을 물었다. 대신사는 푸른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은 하늘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물었다. “어찌하여 그런 것입니까”라고 하니 대신사가 말했다. “사람이 한번 움직이고 정지하는 것도 하늘과 땅의 원기(元氣)이다”라고 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대신사는 청주군(淸州郡)의 금성동(金城洞)에 있을 때 꿈을 꾸었다. 주인이 500개의 계란을 주자 대신사는 두손으로 공경스럽게 받들어 계란을 눌러 열어보았다. 모두 병아리로 부화하여 일제히 길게 울었으나 유독 계란 2알만이 썩어서 부화하지 않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이상스럽게 여겨서 제자에게 말했다. “우리의 도중(道中)에도 나중에 도를 이룬 사람이 이 계란의 숫자처럼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신사는 통유10조(通諭十條)를 지어 문도(門徒)를 경계하도록 권장하였는데, 〈그 조목은 아래와 같다〉
둘.수신(守信, 믿음을 지킨다)
셋.수업(守業, 생업을 지킨다)
넷.임사지공(臨事至公, 일에 임하여 매우 공정하게 한다)
다섯.빈궁상휼(貧窮相恤, 가난하고 궁색한 사람들끼리 서로 구휼한다)
여섯.남녀엄별(男女嚴別, 남녀는 엄중히 구별한다)
일곱.중예법(重禮法, 예법을 중시한다)
여덟.정연원(正淵源, 연원을 바로잡는다)
아홉.강진리(講眞理, 진리를 익히고 연구한다)
열.금효잡(禁淆雜, 뒤섞이는 것을 금지한다)
같은 해 5월에 대신사가 김연국(金演局, 구암)・장한주(蔣漢柱)・장세원(張世遠)과 그의 큰아들 최양봉(崔陽鳳)을 데리고 옥천군(沃川郡)을 거쳐 호남의 여러 주(州)를 돌아보았다. 태인군(泰仁郡) 김낙삼(金洛三)의 집에 이르러 육임(六任)을 임명하는 첩문(帖文)을 내었고, 다시 부안군(扶安郡) 김낙철의 집에 이르러 마찬가지로 첩문을 내었다. 전주로 돌아와서 서영도(徐永道)의 집에 묵었다. 이때에 호남의 신사(紳士)가 날마다 문에 찾아왔으나 진리에 대해 문답하는 자는 없었다. 대신사가 쓸쓸히 탄식해서 말했다. “도를 아는 자가 드물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관통일기정심처(貫通一氣正心處, 하나의 기를 꿰뚫어서 마음을 바로잡으라)’라는 구절을 직접지어 문도(門徒)로 하여금 소중히 여기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