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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 기사명
    제10장 이기대전과 대인접물장[第十章 理氣大全及待人接物章]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85년 00월 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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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대전[理氣大全]

하늘과 땅은 하나의 물덩어리이다. 하늘과 땅이 나뉘어지기 전에는 바로 북극(北極) 태음(太陰)의 물일 뿐이었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다. 물에는 음수(陰水)와 양수(陽水)가 있다. 사람은 양수를 볼 수 있으나 음수를 볼 수가 없다. 사람이 음수 가운데에 있는 것은 물고기가 양수 안에 있는 것과 같아서 사람은 음수를 보지 못하고 물고기는 양수를 보지 못한다. 확실하게 크게 깨달은 뒤에야 이 현묘한 이치를 알 수가 있다.
무엇이 해가 되었으며, 무엇이 달이 되었는가?
“해는 양(陽)의 정기(精氣)이고 달은 음(陰)의 정기이다”
“태양은 불[火]의 정기이고 태음(太陰)은 물[水]의 정기인데, 불도 물에서 나옵니까?”
“그렇다”
“어찌하여 그런 것입니까?”
“하늘과 땅은 하나의 물일뿐이다. 또한 더욱이 그 사이에서 변화하여 나온 2와 7의 불[二七火]만이 어찌 홀로 북극(北極) 태음(太陰)의 물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늘과 땅이 나뉘어지기 전에는 바로 태음인 하나의 물일뿐이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어찌하여 하늘이 자(子, 12지의 첫 번째)에서 열렸다고 합니까?”
“자(子)는 바로 북극의 1과 6의 물이다. 그래서 천일(天一, 북극신)이 물을 낳았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천일(天一, 북극신)이 물을 낳았는데, 물은 하늘에서 난 것입니까? 하늘이 물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물이 하늘을 낳았으나 하늘이 도리어 물을 생겨나게 하여 서로 변화하여 조화가 끝이 없다. 그러나 양(陽)이 하늘[乾]에 속하기 때문에 쉬지않고 부지런히 힘쓰는 이치를 체득하여 낮에 나타났다가 밤에 쉬는 도(度, 천체가 운행하는 365도)가 있으나 그믐과 보름에 찼다가 비는 수(數, 횟수)는 없다. 음(陰)은 땅에 속하기 때문에 그믐과 보름에 이지러졌다가 가득 차는 도(度, 각도)가 있고, 도수(度數)와 더불어 왕래하며 서로 짝했다가 서로 조화한다. 부녀자의 경도(經道, 달거리)도 이 이치를 체득한 것이다. 해와 달의 행사(行事)는 도가 아닌 것이 없다. 물이 기(氣)를 낳고 기는 물을 생겨나게 한다. 귀신과 조화도 하나의 기(氣)가 부리지 않는 것이 없다. 어찌하여 사람만이 섬기게 되었는가? 하늘과 땅사이의 만물은 섬기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도가(道家)에서는 하나의 생물(生物)을 죽이고 한사람의 목숨을 손상하기에 살생(殺生)을 일절 금지하였다. 한편으로는 하늘이 싫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氣)를 해치기 때문에 형벌을 내린다. 도가(道家)에서는 부녀자가 하늘이 싫어하고 기(氣)를 해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솔하게 어린애를 때리면 그 애가 반드시 죽기에 일절 어린애를 때리는 것을 금지하였다. 도가에서는 사람이 오는 것을 사람이 왔다고 하지 않고 천주(天主)가 내려왔다고 말을 한다. 사람이 바로 하늘이고 하늘이 바로 사람이다. 사람 밖에 하늘이 없고 하늘 밖에 말이 없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지금 하늘에 있다. 하늘이 어디에 있는가? 지금 마음에 있다. 그래서 마음이 하늘이고 하늘이 마음이라고 한다. 마음밖에 하늘이 없고 하늘 밖에 마음이 없다. 사람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하늘에 해가 있는 것과 같다. 해가 밝게 온나라를 비추고, 마음은 밝게 온갖 이치를 꿰뚫고 있다. 나막신과 가죽신은 크게 기를 해치는 단서가 있고 또한 하늘이 싫어하는 이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미 금지하였다. 땅을 아끼는 것은 어머니의 살갗을 아끼는 것과 같은데, 어머니의 살과 살갗이 중요한가? 한낱 버선이 귀중한가? 이 이치를 정확히 알고 이 경외(敬畏)하는 마음을 체득하면 비록 큰비가 내리더라도 애초에 가죽신을 젖게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에야 비로소 대도(大道)를 말하고, 이것이 현묘한 이치임을 말하지만 그것을 아는 자는 드물고 그것을 실행하는 자는 넘친다. 한가롭게 거처할 때에 어떤 어린애가 나막신을 신고 앞으로 달려가는데 그 소리가 땅을 울려 놀라서 일어나 물어보았다. “그 아이의 나막신 소리에 내 가슴이 아프다”라고 하였다. 청주(淸州) 서타순(徐垞淳)의 집을 지나가다가 그 며느리가 베를 짜는 소리를 듣고 물었다. “그대의 며느리가 베를 짜는 것은 네 며느리가 베를 짜는 것인가? 천주(天主)가 짜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서생(徐生, 서타순)이 대답하였다. “저의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습니다”라고 하니 “그러한가”라고 하였다. 그 뒤에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서아무개는 내 말을 분별하지 못한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시는 사람들이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
기(氣)로 기(氣)를 먹고 하늘(天)로 하늘을 먹으며,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기로 기를 다스리니, 궁을(弓乙)의 그 형태는 마음 심(心)한글자이다. 대개 사람의 태아는 그 초기에 한점의 물일뿐이나 1달이 되면 그 물의 형태가 이슬과 같고, 2달이 되면 1개의 구슬과 같으며, 3달이 되면 오묘하고 조화로운 수단으로 그 어미의 혈기(血氣)를 거두어 태아의 문에 들어간다. 둥근 머리는 하늘을 체득하여 태양(太陽)의 수(數)를, 넋은 태음(太陰)을, 5장(五臟)은 5행(五行, 水火木金土)을, 6부(六腑)는 6기(六氣)를, 4지(四肢)는 4시(四時, 봄・여름・가을・겨울)를 각각 본받고, 손과 발은 마음이 하려는 것을 따라 조화를 이룬다. 그러므로 하나의 손바닥안에 8문(八門)・9궁(九宮)9궁(九宮)・태양(太陽)・태음(太陰)・4시(四時)・12월(十二月)의 수(數)를 특별히 갖추어 태어난다. 어린애가 그 초기에 누구인들 대인(大人, 성인)이 아니며 성인(聖人)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마음에 많이 잊거나 잃어버리지만 대인(大人)은 밝게 천성(天性)을 잃어버리지 않고, 바로 본성을 따라 하늘과 덕(德)을 함께 하며 하늘과 교화를 함께 하니 하늘이 하는 것이고 성인(聖人)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에 병이 있어 마음에 바로 맹서하기를, “하늘이 이와같은 조화가 있다면 어찌 병에서 낫지 않겠는가”라고 하고, 본마음이 가슴속에 있다면 병은 저절로 낫고 효험이 있을 것이다.
차가운 물은 약(藥)으로 먹어서는 아니된다. 마음을 믿는 것은 바로 하늘을 믿는 것이고, 하늘을 믿는 것은 마음을 믿는 것이다. 대장부(大丈夫)가 의기(意氣)와 범절(凡節, 법도에 맞는 모든 절차)에 믿음이 없다면 무엇을 생겨나게 하겠는가? 이것은 사람으로서 믿음이 없으면 바퀴없는 수레와 같고, 사람으로서 믿음이 있으면 토(土)가 있는 5행(五行)과 같다. 인(仁)・의(義)・예(禮)・지(智)는 믿음이 없으면 실행되지 않고, 금(金)・목(木)・수(水)・화(火)는 흙[土]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에게 신심(信心)이 없다면 하나의 등신(等身)이고 하나의 밥통일뿐이다. 마음[心]・믿음[信]・성(誠)・경(敬)은 본래 그 안에 내재되어있다. 마음과 하늘이 서로 합쳐지면 시정지(侍定知, 동학의 13자 주문)라고 할 수 있고, 하늘과 마음이 어긋나면 사람이 모두 천주(天主)를 모신다고해도 나는 모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성(誠, 정성)・경(敬, 공경)・신(信, 믿음)이 없으면 비록 수명을 다해 죽는다고해도 이 도(道)의 이치를 알기가 어려울 것이다. 믿음이 있으나 믿음이 없다면 애석할만하고, 믿음이 없으나 믿음이 있다면 탄식할만하다. 사람의 행동은 기(氣)인가? 마음인가? 기(氣)가 주(主)가 되고 마음이 체(體)가 되어 귀신이 조화(造化)를 부리는 것이 귀신의 훌륭한 능력이다. 기(氣)가 마음을 부리는가? 마음이 기(氣)를 부리는가? 기(氣)는 마음에서 생겨나는가? 마음이 기(氣)에서 생겨나는가? 조화가 기(氣)를 생겨나게 해서 마음을 부린다. 마음이 조화롭지 않으면 기(氣)는 그 도(度)를 잃어버린다.
그 근본을 궁구하면 귀신이고, 심성(心性)이며 조화(造化)이다. 모두 하나의 기(氣)가 부리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이 기(氣)이고, 움직이려는 것이 마음이다. 굽히고 펴며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귀신이다. 구분해서 말하면 하나의 리(理)가 온갖 다른 형태이고, 통틀어서 말하면 하나의 기(氣)일 뿐이다. 기(氣)를 바르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 기(氣)가 바르게 된다. 기(氣)가 바르지 않으면 마음이 바르지 않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기(氣)가 바르지 않다. 그 실심(實心, 진심)도 기(氣)에서 생겨난다. 기(氣)는 혼원(混元, 우주)이고 마음은 허령(虛靈)이다.
위에 있는 푸른 하늘에 해・달・별이 걸려있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하늘[天]이라고 하지만 우리들만 하늘이라고 하지 않는다. 도(道)를 모르는 자는 이 말을 깨달을 수가 없다. 사람이 하늘의 이(理)이고 하늘이 만물의 정(精, 精氣)이다. 어찌 사람만이 옷을 입고 밥을 먹는가? 해도 옷을 입고 달도 밥을 먹는다. 부부(夫婦) 간에 조화롭고 온순한 것이 우리 도(道)의 첫째 종지(宗旨)이다.
도가 통하고 통하지 않는 것은 모두 안팎이 화목하고 화목하지 않는 지에 달려있다. 부부가 화목하지 않으면 천주(天主)가 크게 미워하고, 안팎이 부드럽고 온화하면 천지(天地) 부모가 편안해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여자가 편벽한 성품을 혹시 타고났어도 그 남편을 위해 정성을 다해 한번 두번 절을 하고 말을 온순히 다하며 화를 내지 않는다면 비록 악한 도척(盜跖, 춘추시대의 큰 도적)과 같더라도 반드시 화육(化育, 천지자연의 이치로 만물을 만들어 기름)의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절하고 또 했는데도 끝내 화육의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는 내보내어도 좋다. 부인(婦人)은 만물의 주인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제사를 받들며 손님을 접대하고 아이를 낳고 또한 옷을 만들고 비단을 짠다. 이 모든 일이 부인(婦人)의 손에서 비롯되지 않는 것이 없다. 부인이 명민(明敏)하지 못하면 비록 매일 3성(三性)의 봉양을 하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감응하지 않을 것이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다. 남녀가 화목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막히고, 남녀가 화합하면 하늘과 땅이 편안해진다. 부부가 바로 하늘과 땅이라는 것이 이것을 말한다. 운수(運數)가 있으면 믿음이 있다는 한마디로 말로 모든 걸 얘기 할 수가 있다. 하늘의 이치를 믿지 않는 자는 천마디 만마디 말을 하더라도 어찌 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말해 모두 운수에 달려있다. 한사람이 착하면 천하가 착해지고 한사람이 교화되면 한집안이 교화되며 한집안이 교화되면 한나라가 교화된다. 한나라가 교화되면 천하가 교화되어 성대해지니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요(堯)와 순(舜) 같은 성인 몇사람이 세상에 나오고, 공자와 맹자같은 성인 몇사람이 세상에 나와서 천지(天地)의 도(道)를 밝히고 음양(陰陽)의 이치를 드러내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그 즐거움을 얻게 했으니 어찌 문명(文明) 세계가 아니겠는가?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원형이정(元亨利貞, 하늘의 4가지 덕), 4대(四大)와 하늘과 땅 및 임금과 부모이다. 5상(五常)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다. 그 도(道)는 천지인(天地人) 3재(三才)이고, 그 생업(生業)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다. 덕(德)을 높이고 생업을 넓혀서 벼슬을 할 수가 있다. 3강(三綱)은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된다)・부위자강(父爲子綱, 아비는 자식의 벼리가 된다)・부위처강(夫爲妻綱,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된다)이고 5륜(五倫)은 부자유친(父子有親, 아비와 자식사이에 친함이 있어야 한다)・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과 신하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한다)・부부유별(夫婦有別, 남편과 아내사이에 구별이 있어야 한다)・장유유서(長幼有序, 어른과 아이사이에 순서가 있어야 한다)・붕우유신(朋友有信, 친구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이다. 사람으로서 인륜(人倫, 사람으로서 지켜야 도리)이 없고 구별이 없으면 새와 짐승에 가까울 것이다. 옛 성인이 그것을 근심하여 예악(禮樂)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옛 성인(聖人)의 가르침이고 수심정기(守心正氣, 마음을 지키고 기를 바르게 한다)는 우리가 다시 정한 것이다.
수심정기의 방도는 대성(大聖, 최제우)이 다시 정한 것으로 사람이 하늘이고 사람의 도(道)는 대선생(大先生, 최제우)의 무극대도(無極大道)이다. 대선생의 무극대도는 실제로 유교(儒敎)・불교(佛敎)・선(仙), 도교(道敎)도 아니기 때문에 만고(萬古)의 무극대도라고 한다. 옛 성인이 근본을 말하지 않고 단지 지엽(枝葉)만을 말했으나 선생(先生, 최제우)이 처음으로 천지음양(天地陰陽)・해와 달의 기(氣)의 운행・귀신조화의 근본을 창시(創始)하였다. 진실로 총명하고 예지가 있어 하늘의 덕을 깨달은 자가 아니라면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아는 자가 드물어 한탄스럽다. 약간 지혜를 깨달은 것을 어찌 도통(道通)했다고 하는가? 하늘과 덕을 화합해서 하늘과 땅의 조화를 행할 수 있는 이후에야 도통했다고 할 수가 있다. 하늘은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은 먹을 것에 의지한다. 최상의 인재(上才)는 성인(聖人)이고 중급의 인재(中才)는 현인(賢人)이고, 하급의 인재(下才)는 영웅호걸이다.
사람이 나에게 해치는 마음이 있다고 하기에, “나는 이런 마음이 없다. 그대는 어찌 이런 말을 하는가? 비록 어리석으나 〈잘못을〉 고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물러나서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진실로 무슨 마음인가? 자신이 한 것을 자신이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이것은 우리가 도(道)를 깨달은 천심(天心)이었다. 내게 서인주(徐仁周)가 있은 뒤에 배운 것이 많았다. 강직하다! 이 사람이여, 명백하다! 이 사람이여. 내가 잠을 자기 전에 어찌 감히 선생(先生, 최제우)이 남긴 가르침을 잊어버리겠는가? 비록 잠이 들었을 때에도 사람의 출입을 알고, 사람이 말하고 웃는 것을 듣는데, 이것을 솔성(率性, 본성을 따른다)이라고 하고 수심정기(守心正氣)라고 한다.
수심정기의 방법은 효제(孝悌,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이나 어른을 공경하는 것)와 온화하고 공손한 이런 마음을 보호하는데 마치 어린애를 지키듯이 하는 것이다. 조용하여 번잡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정신이 맑아 어리석은 실수가 없어야 가능할 것이다. 상대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의지하지 않으며 사람을 대하는 데 차별을 하지 않고 모두 하늘을 공경하듯이 하면 하늘은 반드시 조화를 내린다. 이렇게 된 이후에야 수심정기의 영역에 들어갈 수가 있다. 누가 나의 어른이 아니고 누가 나의 스승이 아니겠는가? 마을마다 한결같아 밤과 낮이 없었다. 나는 부녀자와 어린애의 말에도 배울만하고 본받을 것이 있다. 지금의 사람은 채색한 벽과 푸른 창으로 밖을 장식한 사람이 많으니 탄식할만하다. 곧은 마음이 천심(天心)이다. 그것을 좋아해서 순일(純一)한 것을 성(誠)이라고 하고, 쉼이 없는 것을 성(誠)이라고 한다. 이 마음을 순일하고 쉼없이 하게 해서 하늘과 더불어 도(度)와 운행을 같이 한다면 대성인(大聖人)이라고 할 수가 있다.

대인접물장[待人接物章]

성인(聖人)의 덕화(德化)는 봄바람처럼 매우 부드러워 원기(元氣)가 초목(草木)과 뭇 생명에게 퍼져있다. 인(仁)에는 대인(大人, 성인)의 인(仁)이 있고, 부녀자의 인(仁)이 있는데, 자신을 바르게 하고 남을 교화시킨다. 어진 사람의 인자한 마음은 성인의 덕화로 자신을 버리고 남에게 옮겨가나 보통 사람의 사사로운 마음은 남을 해친다고 한다. 덕(德)으로 남을 교화하는 자는 성인이고 인자한 사람이다. 거짓으로 남을 굴복시키는 것은 어지러운 법이고 패도(悖道)이며 역리(逆理, 이치에 어긋나는 법도)이다.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응접하는 데에 악(惡)을 숨기고 선(善)을 드러내는 것을 위주로 한다. 상대방이 난폭하게 나를 대해도 나는 인자하게 상대하고, 상대방이 교묘한 거짓으로 말을 꾸며도 나는 진실로 대하며, 상대가 위세와 재물로 나를 능욕하고 해쳐도 나는 정직한 마음으로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자연스럽게 귀화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하기는 쉽고, 체득해서 실행하기는 매우 어렵다. 여기에 이르면 앞으로 도(道)의 힘을 알 수가 있다. 혹시라도 도의 힘이 충분하지 않는데 갑자기 참기 어려운 처지가 되면 대개 서로 어긋난다. 바로 이와 같은 처지에서 마음과 힘을 쓸 때에 자신의 처지를 따르기는 쉽지만 자신을 거스르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응접할 때에 욕심을 참고 관대하며 자신을 질책하고 반성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중요한 일에 직면했을 때에는 우(愚, 우직)・묵(黙, 과묵)・눌(訥, 어눌) 3자를 실행하라. 경솔하게 듣고 말을 하면 반드시 악한 사람의 참소와 사기에 빠질 것이다. 그러므로 와서 시비(是非)를 말하는 자가 곧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악한 사람이 이것 때문에 떠나간다면 공(功)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갈 것이다.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의 세상에 백성이 모두 요와 순이 되었는데, 아마도 모두 요임금과 순임금의 덕에 교화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수심정기(守心正氣)라고 한다. 만약 이와 같지 않으면 비록 수명을 다해 죽더라도 수심정기의 근본을 터득하지 못할 것이다. 악한 사람은 바로 악인(惡人)이라고 말하지 말라. 아이처럼 늘 꽃이 핀 모습대로 하면 교화되어 덕을 이룰 수가 있다. 성인(聖人)은 보통 사람에 대해 언제나 공손함과 선량함으로 덕성(德性)을 길러 선으로 나아가게 하고 자상하고 살갑게 대하여 가혹한 말로 타이르지 않는다. 성인의 말은 박절하지 않다. 군자(君子)는 화를 내지 않아도 백성은 부월(斧鉞, 병권을 상징하는 도끼)보다도 그를 더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을 나가지 않아도 나라에 교화를 이룬다. 한사람이 착하면 천하가 착해진다. 기(氣)로 기를 먹고 기로 기를 다스리며 하늘로 하늘을 먹고 하늘로 하늘을 받든다.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선(善)으로 선(善)을 교화한다.
도가(道家)에서 사람이 온 것을 사람이 왔다고 말하지 않고 반드시 천주(天主)가 강림(降臨)했다고 한다. 그래서 하늘이 사심(私心) 없이 지극히 공정하고 인자한 마음으로 선악(善惡)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성인(聖人)은 하늘과 덕을 함께 하고, 교화를 함께하며 인(仁, 어짊)을 함께 한 뒤에 하늘과 땅의 무궁무진한 조화를 행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성인의 덕은 하늘과 같고, 하늘의 덕은 성인과 같아 하늘과 하나의 몸이고 하나의 기(氣)이다. 마음씀이 바르기 때문에 일을 처리하는 데서 그 마음보를 볼 수가 있다. 그래서 하늘의 일처리는 재난과 상서(祥瑞) 및 풍년 중에서 볼 수가 있고, 사람의 마음씀은 효제충신(孝悌忠信)의 사이에서 볼 수가 있다. 하늘에서는 원형이정(元亨利貞, 하늘이 가진 덕성)이고 사람에게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이기 때문에 원형이정은 천도(天道)의 항상적인 〈덕성이고〉, 인의예지는 인성(人性)의 근본이다. 그래서 사물과 우리는 하나의 배(胞)이고 백성과 내가 함께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천지신명(天地神明)이 사물과 함께 변하기 때문에 지성(至誠)이면 하늘을 감응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이 화합하면 감응해서 상통하고, 마음이 화합하지 않으면 감응이 아니되고 통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청명(淸明)한 〈하늘이〉 몸에 있어 귀신처럼 안다고 한다. 그래서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배움이 도달하지 못한 것만을 근심한다고 한다.
우리의 도는 넓으나 간략하다. 정일(精一)함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신심(信心)과 신천(信天)을 위주로 한다. 그래서 성(誠, 정성)・경(敬, 공경)・신(信, 믿음)은 우리 도(道)의 첫 번째 종지(宗旨)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뒤에 정성이 있고, 정성이 있은 뒤에 공경이 있으며 공경이 있은 뒤에야 도가 저절로 생겨난다. 그래서 정성과 사람에게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사람에게 있고 다른 한편으로 정성에 있어 진실로 공경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이 아니라면 성(誠)・경(敬)・신(信)이 외물(外物)이 되니 삼가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믿음이 먼저이고 정성이 나중이라고 한다. 온갖 이치에 관통하는 것은 모두 이 3자(三字, 誠敬信)에 달려있다. 그러나 쉽다고 여기면 쉽고 어렵다고 여기면 어렵다. 믿음과 정성이 있는 자는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지만 만약 성(誠)・경(敬)・신(信)에 부실하다면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다.
선생(최제우)이 물었다. “부모가 천명(天命)을 받아 애를 뱄을 때를 받들어 시(侍) 자(字)로 하는 것이 옳은가? 부모가 천명을 받아 조화(造化)의 기운을 구해서 수심정기하며 지켜 10달을 채운 뒤에 땅에 떨어진 처음을 받들어 시(侍) 자로 하는 것이 옳은가? 내가 천명을 받아 덕을 편 뒤에 강령(降靈)한 날을 모시어 시(侍) 자로 하는 것이 옳은가?”라고 하였다. 이상 세 가지 ‘옳은가?’ 라고 묻는 것 중에 합당한 것을 명쾌하게 말해서 알려주기 바란다. 정성을 드리는 방법에 벽에 기대어 신위(神位)를 설치하는 것이 옳은가? 나를 향해 신위를 세우는 것이 옳은가? 합당한 것을 명쾌하게 말해서 알려주기 바란다.
사람의 행동은 마음이 실행하는 것인가? 기(氣)가 행하는 것인가? 마음이 기를 부리는가? 기가 마음을 부리는가? 마음이 기에서 생겨나는가? 기가 마음에서 생겨나는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니 아는 것이 아니다. 하늘을 아는가? 기를 아는가? 귀신을 아는가? 하늘은 하늘이 아니고 하늘이 나이며 내가 내가 아니고 내가 하늘이다. 그래서 마음을 속이면 하늘을 속인다고 한다. 아는 게 아니다. 13자(十三字)의 주문(呪文)은 만물이 생겨나는 근본을 드러내고, 수심정기(守心正氣) 4자는 하늘과 땅의 손상되거나 끊긴 기(氣)를 다시 보충한다. 아는 게 아니다. 도(道)에 돌아온 자와 도를 모욕하는 자가 도리어 개탄스러운 데에 관계하니 심하게 질책할 것이 아니다. 이 이치는 아는 게 아니고 조화가 아니다. 인위적인 것이 없이 기(氣)로 변화한다. 아는 게 아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람이 되는 이치이다.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하늘과 땅은 모두 기(氣)이고 한덩어리의 물이나 도리어 온갖 만물이 그 안에서 생겨난다. 그러한가? 그렇지 않은가? 기(氣)가 기(氣)를 먹고 하늘이 하늘을 먹으며 하늘이 하늘을 받든다. 또한 마음이 마음을 다스리고 선(善)이 불선(不善)을 교화하면 그 속에서 그 이치를 명쾌하게 깨닫는다. 날마다 개고기와 닭고기를 먹고 술과 여색(女色) 및 잡기(雜技)를 하는 것이 도(道)를 저버리지 않으나 도(道)와 법(法)을 어지럽힌다. 도는 마음을 쓰고 일을 처리할 때에 본성을 따라 깊게 살피는 데에 있다. 이런 질문을 밤낮으로 생각해서 그 이치를 반드시 터득한다면 군자로서 온갖 이치를 갖추어 모든 일에 밝게 응대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군자(君子, 상대에 대한 존칭)들은 필히 숙독해서 맛을 음미하여 선생에게 들어와서 뵙는 날에 이치를 말해주시기를 바란다. 대개 이 운수(運數)를 회복하기를 바란다.
천황씨(天皇氏)는 근본으로 이 도를 만들어 내었는데, 서계(書契, 글자) 이전의 일을 누가 감히 알겠는가? 천황씨는 애초에 부모가 없는데, 천황씨의 부모는 누구를 말하는가? 천황씨는 하늘인데, 본래 부모가 없으나 기(氣)로 모습을 만들어 세상에 드러나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세상에 나왔다. 사람이 사람을 낳고, 변화하여 3,000〈가지의〉 날짐승과 300〈가지의〉 모충(毛蟲, 몸에 털이 있는 벌레)이 나와 각각 그 종류가 있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임금과 신하 및 부모의 이름이 있게 되었다. 그 근본을 살펴보면, 누구인들 천황씨의 자식이 아니겠는가? 진실로 이와 같다면 천지만물의 부모라고 하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 그 뒤에 성현(聖賢)이 먼저 나와 3강(三綱)과 5륜(五倫)의 법도를 바로잡고 천명(天命)을 공경하며 하늘의 이치를 따랐다. 그러나 하늘과 땅 및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비해 하늘과 땅 및 부모의 몸을 섬기지 않은 지가 5만년이 되었다.
우리 대선생주(최제우)가 처음으로 하늘과 땅을 섬기기를 부모의 몸을 섬기는 것처럼 하였다. 하늘과 땅이 만약에 만물의 부모가 아니라면 부모를 확실하게 알고 부모와 함께 모시는 뜻이 분명한 이후에야 의심을 하겠는가? 혹시라도 의심할 데가 있는가? 근래에 배우는 자는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 허무(虛無, 불교)에 돌아가거나 이단(異端)이나 사소한 데에 귀의한다. 이것은 촉(蜀)나라의 개가 달을 보고 짖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처음 듣고 처음 보는 도(道)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정리(情理)로 보면 믿지 않는 것도 훼손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실제로 하늘의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개탄스러운 데에 관계되는데, 어찌 깊이 추궁하겠는가? 이 이치를 안 이후에야 시(侍, 하늘을 모신다는 의미)가 시(侍)가 되는 근본을 알 수 있고, 시(侍)가 시(侍)라는 글자가 되는 근본을 알게 된 이후에야 정(定, 조화가 정해진다는 의미)이 정(定)이 되는 근본을 알 수 있다. 정(定)이 정(定)이라는 글자가 된 근본을 안 이후에야 지(知)가 지(知)가 된 근본을 알 수가 있다. 지(知)가 지(知)라는 글자가 된 근본을 안 이후에야 비로소 하늘과 땅 및 부모를 함께 섬겨야 하는 뜻을 깨닫게 되지만 갑자기 그것을 의심한다. 비록 그러하나 이것은 아득한 일이고 헤아리기 어려운 말이어서 그것을 아는 자는 드물다. 혹시라도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 운수(運數)가 없는 자는 천번 만번 말을 해도 애초에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모두 운수인데 어찌 번거롭게 말을 하겠는가? 몇마디 말로 그칠뿐이다.
연전(年前)에 선생(先生, 최제우)이 말하기를, “꿈속에서 공자를 뵈었는데, 너희들이 지금 문자를 만들었으나 내(공자)가 그것을 보고, 걸리는 단서가 있는 듯해서 빼버리고 남겨두었다”라고 하였다.
을미년(1895년) 봄 꿈속에 선생(先生, 최제우)이 강림하자 각처의 도인(道人, 동학교도)이 많이 모여 지난 일에 대해 시비(是非)가 비등하였으나 선생은 말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나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이 하늘과 땅의 비옥한 흙이 부모의 혈육(血肉)과 피부와 같다는 것을 명쾌하게 안다면 비록 큰 비가 내리더라도 가죽신이 젖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마다 도(道)를 알겠는가? 운수(運數)에 의지하거나 기(氣)에 의탁하기도 한다. 내가 비록 명민하지는 못하지만 하늘에서 받은 명(命)과 스승에게서 이어받은 말씀이 만겁(萬劫)을 지나 애써 노력하여 여기에까지 이르는 것은 운수이다. 명훈(命訓)은 특별히 중요하기 때문에 재주는 윤음(綸音, 임금의 명령)만 못하고 윤음은 운(運)만 못하다. 우리가 공부할 때에 90리 밖에서 오는 사람을 보고, 사악한 기운을 알 수가 있어 주문(呪文)을 그치고 마음으로 말하기를, ‘도가 반드시 이와 같다면 이런 도가 있지 않고 그 후에는 다시 이런 기운이 없을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작은 앎이고 대도(大道)가 아니다. 이치를 바로잡아 정성으로 공부를 할 때에 하늘의 말(天語)을 들을 수가 있다. 어려움을 서로 구제하고 곤궁한 사람을 서로 도우며 선현(先賢)의 향약(鄕約)에 정성이 아니면 사물이 없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신명(神明)이 만물과 함께 옮겨간다. 그러므로 지극한 정성은 하늘을 움직인다고 한다. 그래서 남이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배움이 이르지 못한 것을 근심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성(誠)・경(敬)・신(信)이 도의 첫째 종지(宗旨)이다.

병술년에 지음[丙戌作]

뜻밖에 4월이 왔네 또 4월이 왔네
김선비는 옥같은 선비이고 옥같은 선비이네
무극대운이 성심(誠心)을 만들고
원통(圓通, 모든 존재에 두루 통하다)한 산봉우리
아래도 통하네
오늘 내일 내일에
어찌 알겠는가 오늘 어찌 알겠는가?

기축년 봄에 내려준 글[己丑春降書]

날이 가고 달이 오며 새날이 오니
하늘과 땅의 정신이 나를 깨우게 하네
그날 절에서 조개를 가르니 머리가 없네
궁궁조(弓弓鳥)를 말하고
을을(乙乙) 성인의 휘(諱)는 가팔(加八)이나
함부로 새의 머리를 잡아 들이네
가혹하게도 가을을 맞아 갓이 없네
산은 이롭지 않고 물은 이롭지가 않은데
이로움은 밤낮으로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사이에 있네
젊어서 분전(墳典)은 봄날과 같고
늙어서 경륜(經綸)은 흰말이 우는 것과 같네
때마다 그것에 맞는 시간과 장소가 있다.
산의 새를 네가 알겠는가?
세상에서 어찌 여우 소리를 듣는다고 누가 말하는가?
지난 날에 못에 죽은 물고기를 구제할 수 있으니
대운(大運)에 의리가 없는 곳이 없네
해는 빛이 없어도 혼자 깨어서 볼 수 있으나
무지개다리 소식은 사람이 이를 수가 없네
고개를 돌려 남쪽 하늘을 여러번 바라본 뒤에
지난 날에 듣지 못한 일은
해와 달이 아니고 때때로 오네

용담에서 전수를 받은 교훈[龍潭傳授敎訓]

외람되게도 훈도(薰陶)를 받는 대열에 참가하여 바리때를 전수(傳授) 받는 은혜를 입었다. 심학(心學)에 귀의해서 여름 복더위의 기운을 수련하여 〈도를〉 이룬 지가 여러 해가 되었다. 갑자년(1864년) 봄의 일은 비통한 마음이 한이 없다. 끝이 없는 대도(大道)는 선생(先生, 최제우)이 강령(降靈)한 날이고, 한조각의 성심(誠心)은 제자들이 추모하는 감회인데, 오늘 기일(忌日)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음은 하늘이고 하늘은 마음이다. 마음 밖에 하늘이 없고 하늘 밖에 마음이 없다. 마음은 본래 비어서 사물을 응함에 흔적이 없다. 하늘과 땅의 도(道)는 하나의 기(氣)일 뿐이다. 만물이 변화하여 생겨나는 것은 모두 하나의 기에 달려있다. 아이는 맑은 기를 기른 뒤에 도(道)의 맛을 알 수가 있다. 일상에서 하는 일이 도가 아닌 것이 없다. 천일(天一, 북극신의 별칭)이 물을 낳는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다. 혼원(渾元, 하늘과 땅)한 기운은 물이 아닌 것이 없다. 물이 기(氣)를 낳고 기가 물을 낳는다. 하나의 기가 모양을 만들고 하늘과 땅의 수(數)가 변해서 만물을 낳는 이치가 된다. 이기(理氣)의 근본은 꿰뚫은 뒤에야 알 수가 있다. 성경(誠敬)과 두려운 마음으로 명덕명도(明德命道)와 성경외심(誠敬畏心)을 실천한 뒤에야 비로소 성인(聖人)에 들어갈 수가 있다. 죽을 때까지 노력해서 이것을 하지 못하면 하늘과 땅의 조화를 쓸 수가 없다. 성인에 들어간 뒤에야 하늘과 땅의 혼원(渾元)한 하나의 기(氣)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도를 닦고 도를 실천하는 법문[修道行道法文]

군자(君子)는 두루 사랑하고 편애하지 않으며 소인(小人)은 편애하고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낯빛을 하는 사람은 어진 이가 드물다. 일이 있으면 이치로 상대하고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 본연의 상태를 유지한다. 많은 말과 지나친 생각은 마음을 가장 해친다. 분노를 하면 하늘과 땅 및 부모가 그 자리를 편안히 여기지 못한다. 청명함이 자신의 몸에 있으면 신(神)과 같은 것을 알게 되고, 청명함이 자신의 본심에 있으면 안의 도(道)가 극진하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하고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삼가게 된다. 지나친 슬픔으로 몸이 쇠약해지고 삶을 해치는 것을 군자는 불효라고 한다. 남의 장단점을 말하면 도덕을 크게 해친다. 마음을 지키고 기(氣)를 바로잡으면 도가 그 안에 있게 되기 때문에 도덕(道德)이 이루어지고 성(誠)과 사람이 있으며 악(惡)을 제거하고 마음을 착하게 해서 비로소 덕을 이룰 수가 있다.

하늘과 땅의 계획은 손바닥 안에 있고
큰 도가 모두 행해지니 두 글자가 나뉘네
사람이 하늘을 모시지 않아 하늘이 사람을 따르고
입은 말을 하지 않아 말이 입을 부리네
귀는 소리를 듣지 않아 소리는 귀를 따르고
혀는 맛을 몰라 맛이 혀를 부리네

변론팔절운[辨論八節韻]

내가 하늘이고 하늘이 나이다. 나와 하늘은 모두 하나의 몸이다. 그러나 기(氣)가 바르지 않고 마음이 바뀌기 때문에 그 명(命)을 어긴다. 기가 바르고 마음이 일정하기 때문에 그 덕(德)과 합쳐진다고 한다. 도(道)를 이루고 이루지 못하는 것은 모두 기(氣)와 마음이 바른가에 달려있다. 명덕명도(明德命道, 덕을 밝게 하고 도를 따르다) 4자는 하늘과 사람이 형성되는 근본이고, 성경외심(誠敬畏心, 정성과 공경 및 두려워하는 마음) 4자는 사물을 이룬 뒤에 갓난아기의 마음을 다시 찾는 길과 절차이다. 8절(八節)을 강론하는 것이 어떠한가? 내 마음을 그 곳에 보내라고 한 것도 나요, 멀리 구하지 말고 나 자신을 닦으라고 한 것도 나요, 말을 크게 하고자 하나 말하기 어렵다고 한 것도 나요, 내 몸이 변화해 나온 것을 헤아리라고 한 것도 나요, 이치가 주고 받은 것이 묘연하다고 한 것도 나요, 내 마음에 밝고 밝은 것을 돌아보라고 한 것도 나요, 내가 나를 위한 것이요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 것도 나요, 나를 믿음이 한결같은가 헤아리라고 한 것도 나이니, 나밖에 어찌 다른 하늘이 알겠는가? 그래서 사람이 하늘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하늘과 함께 하나의 몸이고 하나의 기(氣)이다. 물욕(物慾)을 버리고 철저하게 도리(道理)를 터득한다면 지대(至大)・지천(至天)・지화(至化)・지기(至氣)・지정(至正)・지덕(至德)해지는데, 모두 나이다. 성경외심(誠敬畏心)은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대하는데 여러가지로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지화(至化)・지기(至氣)해서 지성(至聖)에 이르는 절차와 노정이다. 이것은 결코 다른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것도 내가 노망이 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성인(聖人)의 가르침이다. 우리들은 분명히 구별해서 힘껏 실천하고 참된 하늘을 밟아 대도를 모두 이루기를 바란다.

실천하고 배우기를 권장하는 글[踐實勸學文]

〈하늘을〉 모시는 자의 안에는 신령(神靈)이 있고, 밖에는 기화(氣化, 기의 변화)가 있다. 해월(海月, 최시형의 호) 선생이 이를 분석하여 말하기를, “신령은 땅에 나올 때에 갓난아이의 마음이고, 밖에 기화가 있는 것은 태아때에 내려온 영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이 설명이 매우 지극하다. 그러나 도덕(道德)도 안팎에 신령과 기화가 있지만, 애초에 두가지가 아니고 하나의 이(理) 속에 흩어진 이(理)이다. 주문(呪文)의 주석(註釋), 안에는 신령(神靈)과 논학(論學) 및 문장(文章)이 있고 밖에 신령과 접촉하여 교리(敎理)가 된 것이 있으니, 신령과 기(氣)는 본래 두가지 단서가 아니고 모두 하나의 기이다. 하늘과 사람을 나누어 말하면 마음이 몸에 의지하고 있는 것은 하늘이 만물에 기대고 있는 것과 같다. 마음은 본래 비어 있어 사물과 응함에 흔적이 없다. 하늘도 비어 있어 신령은 마치 모양이 없는 듯하나 흔적이 있으니 마음과 하늘은 본래 두개의 사물이 아니다. 마음이 하늘이고 하늘이 바로 마음이다.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를 바르게 하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주(主)는 하늘과 땅 및 부모를 높이는 뜻이다. 조화(造化)는 무위(無爲, 인위적인 것이 없다)이다. 인위적인 것이 없으면 현묘(玄妙)하고, 현묘하면 귀신(鬼神)이다. 귀신은 예측하기가 어렵다. 지혜로운 자가 그것을 알 수가 있으나 실제로 말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고, 사물을 만드는 것을 형용하기 어려워서 그것을 조화라고 한다. 하늘의 덕과 합쳐지고 하늘의 마음이 정해져야 비로소 사람의 모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덕과 합쳐지고 그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영세불망(永世不忘, 영원히 잊지 않는다)영세불망(永世不忘)은 평생동안 마음에 둔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받은 이 리(理)를 분명히 안 이후에야 하늘의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 도(道)를 알고 그 지(知, 지식)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13자의 주문(呪文)은 사람이 사람이 되는 근본이다. 이 근본을 철저하게 하면 조화에 능통해서 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감히 어리석은 견해를 드러내어 여러 친구들이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바탕으로 삼는다. 혹자는 “‘시(侍)’라는 것은 그림자다”라고 하는데, 그림자는 기(氣)와 형체가 따르는 사물이다. 지화(至化)・지기(至氣)하면 지성(至聖)에 이르게 되는데, 어찌 바르지 않겠는가?

신묘년(1891년) 10월에 도유(道儒) 윤상오(尹相五)와 남계천(南啓天) 등이 문호(門戶)를 나누고 파벌을 만들었기 때문에 호남(湖南)의 좌도(左道)와 우도(右道)에 각각 포(包, 동학의 조직단위)를 두어 교도의 마음이 서로 시기를 해서 진정이 되지 아니하였다. 김낙삼(金洛三)이 16포의 도인(道人, 동학교도) 100여명을 데리고 와서 대신사에게 말했다. “지금 호남의 좌・우도에 편의장겸도접주(便義長兼都接主)를 비록 남계천(南啓天)으로 임명하더라도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김연국(金演局, 최시형의 제자로 호가 구암)이 옆에서 먼저 말했다. “우리 도가 지금 후천(後天) 5만년을 맞아 운수가 크게 드러나는 데 어찌 신분을 따지는 옛 관습을 말하는가? 양반과 평민을 막론하고 경서(經書)를 업으로 삼는 선생을 임명하면 명(命)을 따라 복종하도록 힘쓰고 우리 도를 넓히려고 하는 것이 제자의 직분이다”라고 하였다. 김낙삼은 감히 다시 말을 못하였으며 여러 도인들도 모두 “예, 예”라고 대답을 하고 물러났다.
같은 해 12월에 대신사가 충주군(忠州郡) 외서촌(外西村)으로 이사를 했는데, 신재연(辛在淵)이 주선을 하였다. 어느날 누군가가 대신사에게 물었다. “우리 도의 운수는 언제 펴겠습니까”라고 하니, 대신사는 대답했다. “산이 모두 검게 변하고 길에 모두 비단을 펴며 모든 나라와 통상(通商)을 할 때만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임진년(1892년) 1월에 충청도관찰사 조병식(趙秉式)이 도유(道儒, 동학에 입교한 유생)를 해치려고 하였다. 선생이 다칠 것을 근심하여 진천군(鎭川郡) 부창리(扶昌里)로 이사를 하고, 각 포(包)의 도유(道儒)에게 글로 회유(誨諭)하였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전(大全, 동경대전)동경대전(東經大全)과 가사(歌詞, 안심가와 권학가 등의 동학가사)는 바로 우리 선사(先師, 최제우)가 도(道)를 받은 진전(眞詮, 진리를 표현한 글귀)으로, 천명(天命)을 받고 천리(天理)를 공경하는 오묘한 뜻이다. 더욱이 친절하게 가르침을 내려주시고 책에 밝게 실려있으니 그 존숭을 받는 것이 달리 어떠하겠는가? 진수(進修, 덕과 학문을 닦다)하는 모든 절차와 존각(尊閣, 도서)의 방법은 상세하게 아래에 나열하였다. 아! 우리 도인(道人)은 규범을 어기지 말고 힘써 지켜라.
하나. 도유(道儒)가 동경대전과 가사를 볼 때에 누워보는 사람도 있으며 몸을 비스듬히 해서 외우는 사람도 있고 허리사이에 〈팔짱을〉 끼는 사람도 있고 더러운 대나무 상자에 내버려 두는 사람도 있다. 불경(不敬)스러움이 이처럼 매우 심하니 오히려 더욱 송구스럽지 않겠는가? 각 도인이 지목(指目)을 받을까 염려를 해서 흔적을 지우려고 땅을 파고 그것을 묻기도 하고 또는 제멋대로 태워버리기도 하고 처마 끝에 찔러 넣는다고 한다. 하늘을 업신여기고 스승을 욕되게 하니 어찌 이것을 참겠는가? 『동경대전』과 가사는 접주(接主) 집의 정결한 곳에 잘 보관하고, 청강(聽講)을 〈하다가〉 어려운 질문이 있으면 특별히 도포(道袍)를 입고 접주집에 직접 가서 병풍과 탁자를 설치하여 향을 살라 네 번 절을 한 뒤에 꿇어 앉아서 가르침을 이어 받아야 한다.
하나. 도유(道儒)는 부모를 효(孝)로서 공경하고 내외(內外, 부부) 간에 온화와 순종을 위주로 하여야 한다.
하나. 동경대전과 가사를 만약에 사사롭게 새기고 마음대로 베껴서 각 도인에게 파는 자가 있다면 이것은 도규(道規)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사사롭게 인쇄한 것을 파는 자도 동일하게 처벌을 할 것이다.
하나. 도인(道人) 간에 서로 헐뜯는 폐단은 진실로 원인을 살펴보면 도권(道權, 동학교단의 권력)을 독점하는 데에서 전적으로 유래한다. 서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개탄스럽지 않겠는가? 우리 도인(道人)은 지난 허물을 참회하고 욕심을 끊어버리고서 바름을 지키고 참된 데로 돌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하나. 우리 도(道)는 후천(後天)이 개벽(開闢)하는 운수이고 무극(無極, 태극의 맨처음 상태)이 진공(眞空)한 도이다. 그 종통(宗統)의 참된 연원이 신령스럽고 분명해서 감히 한 터럭도 어지럽히지 않았었다. 그러나 근래에 각 포(包)의 도유(道儒)가 망령되게 스스로 높여서 이 포(包)의 근원을 저 포로 옮기고 저 포의 연원을 이 포로 옮긴다는 얘기를 들었다. 편안하지 못한 것을 옳다고 하고, 사사롭게 그 두령(頭領)을 속이며 그 종맥(宗脈, 종통)을 훼손하는 것은 참을만하다. 특별히 더욱 경계해서 참된 하나의 〈도로〉 돌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하나. 하늘을 속이는 자, 이치를 어기는 자, 세상을 미혹하는 자, 인색한 자, 간교하게 아첨하는 자는 모두 법과 도를 어지럽히는 데에 관계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허물을 고치는 데에 인색해서 하늘의 견책을 받지 않아야 한다.
하나. 스승과 제자사이에 진실로 구제하는 방도가 있으나 이밖에 특별히 진귀한 물품으로 사사롭게 뇌물을 드리는 것은 군자의 사귐이거나 보통사람의 정리가 아니다. 한결같이 거절하여야 한다.
하나. 도인(道人) 집안의 부녀자가 하늘의 이치를 따르지 않고 함부로 어린애를 때리니 어찌 놀랍고 부끄럽지 않은가? 어린 애를 때리는 것은 바로 하늘을 때리는 것이니 절대로 함부로 때리지 말아야 한다.

12월 25일에 다시 글로 회유(誨諭)하여 생선・고기・술・담배 및 사치스런 옷을 금지하였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천인(天人, 도가 있는 사람)이고 도(道)는 선사(先師, 최제우)의 무극(無極)한 대도(大道)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스승을 빛나게 하는 도(道)에 있어 비록 일상에서 늘 실천하더라도 먹고 마시고 옷을 입는 일에 감히 조금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생선・고기・술・담배는 천성(天性)을 잃게 하며 진원(眞元, 사람 몸의 원기)을 시들게 하는 것이다. 사치스런 옷은 걸맞지 않는 비난을 자초하고 차라리 검소한게 낫다는 경계를 저버린다. 이것을 그대로 둔다면 폐단은 장차 어디에 머무르겠는가? 옛 경서에 말하기를, ‘성인(聖人)은 욕심이 없고 군자는 욕심을 막는다’고 하였는데, 우리 도인(道人) 중에 현자와 성인의 모습을 몇사람이나 가지고 있는가? 진실로 태생적으로 아는 자가 아니라면 모두 만들어진 성질을 가지고 있다. 어찌 기미가 자라는 것을 막고 생명을 보호하며 검소한 덕을 이루지 않겠는가? 생명을 손상하고 도를 해치는 물건을 아래에 나열했으니 모두 잘 살피고 삼가 지키는 게 옳을 것이다.
하나. 생선・고기・술・담배 4가지 물품은 도(道)를 배우는 사람이 영양을 조절하고 위(胃)를 지키는 데에 해는 있고 이로움이 없다. 마찬가지로 엄중히 금지하여야 한다.
하나. 나막신은 기(氣)를 상하게 할 염려가 있고, 가죽신은 지나치게 사치스런 폐단이 있으니 일절 금지하여야 한다.
하나. 통영(統營, 갓의 명산지)의 갓, 양사(洋紗, 양실)・양포(洋布)・주단(紬緞, 명주와 비단 종류) 등의 물품은 일절 금지하고, 무명・베옷・제량(濟樑)제량(濟樑) 갓갓을 사용하여야 한다.
하나. 60살 이상의 도유(道儒)는 명주 종류의 옷을 입고, 젊은 사람의 공적인 예복(禮服)은 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2월 26일에 대신사가 글로 회유(誨諭)하였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번 봄의 향례(享禮)에는 모여서 행사를 치르지 말고 각 도인의 집의 후원(後院) 정결한 곳에 재소(齋所)를 마련하되, 자리를 만들지 말고 밤마다 해시(亥時, 오후 9~11시)에 단지 새 자기(磁器) 그릇을 써서 씻어 청수(淸水, 정화수)를 바친 뒤에 공경과 정성을 다해 꿇어앉아 널리 창생(蒼生)을 구제하는 큰 바람을 기원한다. 3월 1일부터 시작하는데, 만약 일이 있으면 9일부터 시작하고, 다시 일이 있으면 15일에 시작해서 100일 동안 지성(至誠)으로 기도를 하되, 혹시라도 소홀하지 않아야 옳을 것이다.

12월 29일에 대신사가 다시 글로 회유하였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6명의 임원을 임명할 때, 각 포(包)의 도인 중에 덕망과 독실한 행실이 있는 사람을 택했는데, 한편으로는 조제(調劑)하는 방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배움을 권장하는 방도였다. 근래에 규모가 느슨해지고 폐단이 점차 늘어나서 각 해당 접주(接主)가 정실과 안면에 따라 함부로 추천하거나 일의 형편에 매여 서둘러 임명한다. 심지어 집집마다 첩(帖, 임명장)이 있고 사람마다 직임(職任)을 얻는데, 어제 들어와서 오늘 임명될 뿐만 아니라 으레 겸직하는 폐단이 있어 남들이 이를 지목하기에 이르른다. 어찌 여기에서 〈그 폐단이〉 연유하는 것을 모르겠는가? 지금 이후로 〈육임을〉 임명하는 한가지 일은 우선 중지하고, 덕망과 행실이 모두 훌륭한 지를 분명히 안 이후에 점차로 올릴 것이니 모두 잘 헤아리며 신속하게 널리 알리라.

5월에 대신사가 상주군(尙州郡) 왕실촌(旺實村)으로 이사를 했는데 권병일(權秉一)의 주선에 따른 것이었다. 대신사가 제자에게 말했다. “주문(呪文) 13자(字)는 곧 사람이고, 밥은 곧 하늘이다”라고 하였다.
임진년(1892년) 3월에 문도(門徒) 서인주(徐仁周)서병학(徐丙鶴) 등이 제세주(최제우)를 신원(伸寃)하는 일로 충청도관찰사 조병식(趙秉式)에게 서류를 제출하였고, 다시 전라도관찰사 이경직(李畊稙)에게 서류를 제출하였는데 임금에게 올려 억울함을 풀고자 하는 안건이었다. 또한 여러 읍에 관칙(關飭, 관아의 공문으로 하는 훈령)을 요청해서 수령의 침탈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금영(錦營, 충청감영)의 관문(關文, 공문)을 이미 얻은 뒤에 이어서 다시 완영(完營, 전주감영)의 관문을 내려고 할 때에 도유(道儒)들이 바로 해산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사문(師門, 동학 최제우의 문하)의 원한은 풀지 못했고, 관리의 압박은 전보다 심해졌다. 이보다 앞서 기축년(1889년) 10월 쯤에 신정엽(辛正燁)・서인주(徐仁周)・강한형(姜漢馨)・정현섭(丁顯燮) 등이 붙잡혀서 강한형과 정현섭은 마침내 경사(京司, 서울의 각 관아)에서 사형을 당했고, 서인주와 신정엽은 외진섬으로 유배를 갔다.
같은 해 6월에 서인주가 보석(保釋)으로 풀려와 서병학 등과 은밀히 의논을 하고 선생(先生, 최시형)에게 나아와서 아뢰었다. 완영(完營, 전주감영)과 금영(錦營, 충청감영) 두 곳에 신원(伸寃)을 〈요청하는 서류를〉 내어 제사(題辭, 판결)를 얻어 해산한 뒤에 서인주는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으나 서병학은 몸을 빼어 달아났다. 그래서 여러 군(郡)에서 모두 잡으려고 하였다. 이때부터 이(李)・노(盧)・임(林) 세 명이 안렴(按廉)의 명목으로 임금의 명을 받아 내려와서 위협과 공갈로 뇌물을 요구하였는데, 선생이 다시 글로 각 포(包)에 회유하였다. 그 글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법(法)은 천하에 공적인 것이고 한 사람의 사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 이(李)・노(盧)・임(林) 세 명이 삼도어사(三道御史)의 명목으로 임금의 명을 받아 내려와서 은밀히 몇몇 협잡배에게 부탁을 하여 도유(道儒)들 중에 조금 부유한 자에게 전하기를, ‘우리가 동학을 살펴보러 내려왔는데, 너희 성과 이름은 벌써 정탐을 해서 기록해놓았다. 만약 후하게 뇌물을 준다면 그만두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경사(京司, 서울의 각 관아)에 전달하여 보고해서 포교(捕校)를 내어 잡아올릴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이 세 명이 모두 임금의 명을 받았다면 공정하게 살펴 임금의 명을 드러내는 것이 사리(事理)에 당연한데, 어찌 공적인 것을 빙자해서 사리(私利)를 도모하고 재물을 빼앗는 것이 끝이 없는가? 다만 동정(動靜, 움직임)을 살펴보아 비록 읍(邑)과 감영(監營)에 정소(呈訴)를 하고 대궐에 나아가더라도 변명할 방도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이 비록 침탈하는 단서가 있더라도 각 포(包)의 도유는 모두 이 회유(誨諭)를 따라 일절 돈을 나눠 지급하지 말라.

주석
불은 오행으로 2와 7이다.
원문의 ‘음양(陰陽)’은 음(陰)의 오기(誤記).
원문의 ‘도수(度數)’는 조수(潮水)의 오기(誤記).
6기(六氣) 하늘과 땅사이에 있다는 6가지 기운으로 음(陰)・양(陽)・풍(風)・우(雨)・회(晦)・명(明)을 말한다.
8문(八門) 음양이나 점술에 능한 사람이 9궁(九宮)에 맞추어서 길흉을 점치는 것으로 휴문(休門)・생문(生門)・상문(傷門)・두문(杜門)・경문(景門)・사문(死門)・경문(驚門)・개문(開門)을 말한다.
9궁(九宮) 아홉 방위의 자리로 낙서(洛書)에 대응하는 9성(九星)에 중궁(中宮)과 8괘(八卦)를 8문(八門)에 배합한 것을 말한다.
신심(信心) 어떤 것을 옳다고 굳게 믿는 마음을 뜻하지만 종교를 믿는 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등신(等身) 등신(等神)을 잘못 쓴듯하다. 나무・돌・흙・쇠 따위로 만든 사람의 형상이라는 뜻으로 몹시 어리석은 사람을 말한다.
허령(虛靈) 잡된 생각이 없이 마음이 신령한 것을 말한다.
3성(三性) 성(性)은 생(牲)의 오기인 듯, 3생은 곧 소(牛), 양(未), 돼지(亥)를 가리킨다.
4대(四大) 만물을 구성하는 땅・물・불・바람을 말한다.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를 말한다.
고대의 전적(典籍)인 3분(三賁)과 5전(五典)을 말한다.
전법(傳法)의 표시가 되는 것으로 스승으로부터 법도를 전수받았음을 말한다.
최제우가 1864년 3월에 대구에서 처형당한 일을 말한다.
주(主) 천도교에서 내 몸에 한울님을 모셨다는 의미의 시천주(侍天主)의 주(主)를 말한다.
영세불망(永世不忘) 동학의 13자 주문의 일부이다.
조병식(趙秉式) 1823~1907. 본관은 양주이고 자는 공훈(公訓)이다. 1889년 흉년을 이유로 방곡령(防穀令)을 선포하고 1891년에 충청도 관찰사에 부임하였다.
동경대전(東經大全) 최제우가 지은 동학의 경전으로 포덕문(布德文)・논학문(論學文)・수덕문(修德文)・불연기연(不然其然)의 4편으로 되어 있고, 최시형이 1880년 5월에 인제에서 완간하였다.
진공(眞空) 중생들의 미혹한 생각이 없는 상태이거나 비공(非空)의 참된 공(空)을 말한다.
제량(濟樑) 갓 제주도에서 생산해내는 품질이 낮은 갓을 말한다. 제량(濟涼)을 잘못 쓴 듯하다.
서인주(徐仁周) 동학의 지도자로 일명(一名) 장옥(璋玉, 長玉)이다. 서병학(徐丙鶴) 등과 함께 동학의 의식과 제도 제정에 크게 기여하였고 교조신원과 포덕(布德)의 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을 벌였으며 1894년 전봉준과 함께 창의를 하였다.
서병학(徐丙鶴) 다른 이름은 병학(丙學)이고 동학의 지도자이다. 서인주와 함께 교조신원운동을 주도하였고 1893년 이후 괘서사건과 보은집회를 조직하여 동학농민전쟁의 단서를 열었다.
이경직(李畊稙) 1841~1895. 본관은 한산이고 자는 위양(威穰)이며 호는 신부(莘夫)이다. 189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나 1893년 동학교도가 상경해서 교조 최제우의 신원을 요구하는 사건으로 파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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