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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 기사명
    제11장 최제우의 신원을 위한 복합상소[第十一章爲先師伸寃伏閤上疏]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92년 07월 00일
일러두기

임진년[1892년, 명치(明治) 25년] 7월에 손천민(孫天民)・서인주(徐仁周)・서병학(徐丙鶴) 등이 선사(先師) 제세주(濟世主, 최제우)를 신원(伸寃)하는 일을 대신사에게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대신사가 대답했다. “일이 분명 순조롭지 못할 것이니 숨어 살며 도(道)를 닦고 시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화난 기색으로 물러갔다.
같은 해 10월 7일에 대신사가 입의문(立義文)을 내어 말했다.

종교에는 세가지가 있다. 유교는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시작하여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에 이르러 과거를 이어서 미래를 열었는데, 위로는 인륜이 드러났고 아래로는 교화(敎化)가 행해져서 지나(支那, 중국)가 4천년의 교종(敎宗, 종주)이 되었다. 불교는 인도의 27조(祖)에서 시작하고 이어 진단(震丹, 우리나라)에 6조(六祖)가 있어 자비(慈悲)를 일으켰고 심성(心性)을 보아 중생을 고해(苦海, 세상)에서 구제하였다. 도교(道敎)는 황제(黃帝)로부터 수련(修煉, 장생불사의 약을 만드는 방법)하는 방법을 인도하여 생민(生民)을 요절(夭折)에서 모면하게 하였다. 우리나라는 단군(檀君)과 기자(箕子)로부터 수천년동안 신성(神聖)한 도(道)와 어질고 현명한 교화로 태평성대가 이어졌고 장점을 계승하여 더욱 드높아졌다. 말세에 이르러 성인(聖人)의 도가 황폐해지고 인심이 막혀서 날로 비천해져 도도한 〈기세를〉 막지 못하였다. 다행스럽게도 하늘이 우리나라를 도와서 우리 선사(先師, 최제우)를 낳아 3교(三敎, 유교・불교・도교)를 통합하여 심인(心印, 깨달음)을 전해 천하에 포덕(布德)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갑자년(1864년) 봄에 느닷없이 거짓된 도(道)의 무고를 당해 몸으로 순교(殉敎)를 하였다. 명(命)인가? 운수인가? 더욱이 임신년(1872년)에 화(禍)를 입고 을유년(1885년)에 액운을 만났으며 기축년(1889년)에 체포되어 억울하게 죽은 자가 몇 명이고 달아나서 숨은 자가 몇 명인가?
생삼사일(生三事一)생삼사일(生三事一)의 뜻은 바로 우리 도의 큰 가르침이고 큰 강령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스승(최제우)이 환난을 당한 지 30년이 되었다. 지금 그 문도가 된 자는 의당 정성과 힘을 다하고 빨리 〈억울함을〉 풀 방도를 도모해야 한다. 내맡겨 구경하고 서로 주장을 하며 전혀 스승을 높이고 도를 지킬 뜻에 어두운데다가 허망하게도 장래의 조화에 의지하니 진실로 개탄스럽다. 우리 도유는 여기에서 하나되어 북을 치고 죄를 성토해야한다. 갑절이나 경계하고 더욱 힘써 도를 닦아야 한다.

비유사[比遺詞]

용담(龍潭)에 물이 있어
근원(根源)이 겁해(劫海, 인간 세상의 아득한 세월을 바닷물에 비유) 쓰니
사해(四海)에 둘렀도다.
검악(劒岳)에 꽃을 심어
임자(任者)를 정했으니
꽃이 필 소식이 분명하다

동풍(東風) 3월이 어떠한가?
15일 밤 밝은 달은
사해(四海)에 밝아있고
만화방창(萬化方暢, 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흐드러지다)이
아닐런가?
배꽃 복사꽃 만발하야
온갖 꽃은 점점이 그 가운데에

뜰앞에 매화 한가지는
표일(瓢逸)한 절개로서
우연히 빗을 감춰
정절을 지켰도다
가련하다 가련하다
꽃・버들・봄바람이 있는 좋은 시절에

무연히보냈으니
황국(黃菊)과 단풍이 아닐런가?
상풍(霜風, 늦가을의 바람)이 크게 일어나서
흰구름을 날렸도다.
푸른 하늘에 걸린 달은
추풍(秋風)에 정신모아
하늘에 달려있고
온갖 흐드러지게 핀 붉은 꽃은
소리없이 꽃이 지는 게 아닐런가?
가련하다 가련하다
적막한 빈 창앞에
인적(人迹)이 없었으니

꽃피는 소식 누가 알리
뜰 앞에 심은 매화
향기로운 바람에 뜻을 내어
가지마다 피고 날로 피어
흰구름을 비웃으니
꽃이 핀 소식이 분명하다

더디게 돌아라 더디게 돌아라
저 등에 오는 손님은
이런 소식 모르시고
강산(江山)을 두루 밟고 무슨일로
춘몽(春夢)을 깨지 못해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겠네

세상 풍진(風塵) 고락(苦樂) 중에
무릉(武陵, 이상향) 소식을 어찌 알리?
무릉에 도화수(桃花水, 물에 떠서 내려가는 복사꽃)는
사해(四海)에 둘러있도다
고깃배를 벗삼아
달도 때도 아닌 그 무슨날 되면
찾아오니 분명하다
적막한 빈 창 앞에
표연히 홀로 세세(歲歲, 해마다)
정절을 지켜내니
군자의 즐거움 아닐런가?
그럭저럭 지내나니

흐르는 물처럼 빠른 세월
한순간처럼 지나가니
서산(西山)에 구름 걷치고
춘풍(春風) 3월이 되었으니
하루 아침에 흐드러져서
나귀등에 오는 손님이

이제야 잠을 깨어
호접(胡蝶)에 신을 묻혀
꽃을 따러 찾아가니
바쁘도다 바쁘도다
나귀를 재촉하여
꽃 핀 문앞에 도착하니

말위에서 얼른 내려
빈 창 앞에 네 번 절하고
매화 한가지 급히 잡아
한바탕 탄식을 한창하고
온갖 시름 한창 할 때
허공에 옥피리 소리

은연히 들으니
오운(五雲)이 영롱하며
향내가 진동하야
학(鶴) 소리에 가깝도다
정신이 쇄락(洒落, 맑고 깨끗하다)하야
두손을 마주 잡고 합장(合掌)을 하네

동정(動靜, 행동)을 살펴보니
표일(瓢逸, 성품이나 기상이 매우 뛰어나다)한 학발(鶴髮) 노인
곡직(曲直, 사정)을 묻지않고 내려와서
학의 등에 얼른 내려
마루 위에 좌정(座定)해서
매화 한가지를 만지네

희희낙락(喜喜樂樂) 아닐런가
말위에 이른 손님
뜰아래서 네 번 절하니
묵묵부답(黙黙不答) 아닐런가
이롭게 생각하다가
주머니에 작은 물건 하나를

흔연히 꺼내들고
말 위에 걸어주니
이렇게 이렇게 분부하니
불과 몇마디 그 뿐이네
천지가 진동하여
비바람 크게 일어날 때

강산을 뒤노면서
우레소리 귀가 맥혀
정신수습을 못하겠네
이것이 무슨 일인가 이것이 무슨 일인가
아득한 천지 가운데에
끊임없이 계속 진동하야
온 하늘과 땅아래가 마찬가지다
천지개벽이 아닌가
살아갈 계획을 누가 아리
억조창생(億兆蒼生)이 도탄(塗炭)에 빠져 있네
창생(蒼生) 구제를 어찌 할까
온갖 수심 한창 할 때

마루 위에 학발노인
미소지으며 탄식하는 말이
미련한 이것들아
작은 물건 하나 주던 것을
자세히 보고 시행하라
그 가운데 한 생명도 전혀 없네

살아갈 계획 해보고
살아갈 계획 해보면
아득한 천지 그 중에도
창생(蒼生) 구제를 못할 것이냐
자세히 보고 시행하라
그제야 깨닫고서

작은 물건 하나를 살펴보니
금(金)도 아니고 옥(玉)도 아닌 것이 그 가운데에
마음 심(心) 자(字) 그 뿐이네
정신이 쇄락하여
수심정기(守心正氣)를 다시 먹고
하나 하나 동정(動靜)에 행하니

마음대로 하는 거동
천지의 조화가 분명하다
그제야 의혹을 버리고
말위의 손님을 다시 불러
이렇게 이렇게 지휘하고
먼 곳 가까운 곳 어진 친구

구름 모이듯이 하였더라
그 중에 현인(賢人) 군자(君子)
의기(義氣) 있는 남자 몇몇 친구
마음과 뜻이 서로 통한 그 가운데
이렇게 이렇게 지휘하니
끝없는 조화 그 이치(理致)가

임의용지(任意用之, 마음대로 쓰다)가 분명하니
불과 몇 달 못되어서
각자 마음을 삼아 그 사람이
모두 한 몸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차차 〈그대로〉 시행하면
온 천하가 그 가운데에

온갖 조화의 귀일(歸一)이 아닐런가
좋을씨구 좋을씨구
직업을 일찾으면
천심(天心)을 잃지 않는게 아닌가
직업을 힘써하면
유의유식(遊衣遊食, 놀면서 입고 먹는 것)이 아닌가

유의유식하게 되면
물욕(物慾)이 번갈아 가리는 폐단이 있겠는가
물욕이 번갈아 가리는 폐단이 없게 되면
수심정기(守心正氣) 못하겠는가
그것을 알고 다시 성실하고 공경하니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없겠는가

수심정기(守心正氣)가 분명하니
도덕군자(道德君子)가 아니겠는가

이 때에
물을 건너니 연천(淵川) 천갈래 물줄기가 하나로 합치고
꽃을 감상하니 동산(東山)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기네
물빛이 하늘에 닿고 달빛은 세상에 가득하네
못의 고기는 용이 되고 숲의 범은 바람을 따르네

단정히 앉아 시(詩) 100수(首)를 외웠고, 속세의 먼지가 여전했으나 꿈밖의 일이었다. 말없이 경륜(經綸)을 생각하니 만고성쇠(萬古盛衰)가 이처럼 거울 속의 모습처럼 황홀하였다. 시운(時運)이 한창 펴서 아름다운 모습을 다하였고, 재주와 덕성을 모두 겸비해서 마치 푸른 바다의 도량(度量)과 같았다.
명치(明治) 26년 계사년(1893년) 1월에 문도(門徒)인 손천민(孫天民)・이용구(李容九)・서병학(徐丙鶴) 등이 제세주(최제우)의 억울함을 신원(伸寃)하기 위해 먼 길을 가서 대궐에 호소하려고 하였다. 대신사가 말했다. “때가 비록 이르지 않았으나 스승을 높이는 도(道)에는 자신의 정성을 다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어쩔 수 없이 이를 허락하고, 마침내 봉소도소(奉䟽都所)를 청주군(淸州郡) 송산리(松山里)에 있는 손천민의 집으로 정하였다. 두 차례 글로 회유(誨諭)하였는데, 첫 번째 〈글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황하의 물은 맑아지는 게 느리고 나라의 운명에는 어려움이 많다. 서양의 종교가 지금 극성이고 우리 도의 운수는 점차 쇠퇴해서 우리 선사(최제우)의 무극대도(無極大道)가 나아가서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고 도리어 모탕에 도끼질을 하는 가혹한 참화(慘禍)를 당했으니 원통함을 어찌 차마 말로 하겠는가? 사문(師門)에 들어온 우리 모두는 비록 먹고 쉬는 순간이더라도 어찌 감히 신원(伸寃)하는 이 일을 확대하지 않겠는가?그래서 각 포(包)의 도유(道儒)에게 널리 알리니 모두 모여 상소를 내어 원통함을 호소하는 일을 상의하는 것이 진실로 사리에 부합할 것이다.

두 번째 〈글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이번에 선사(최제우)를 위해 억울함을 풀려는 대의(大義)는 천지(天地)에 세워도 어긋나지 않고 귀신에게 물어도 의심이 없다. 이 늙은 몸은 이미 각 포에 알려 그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였고 뒤를 쫓아 신속히 나아가려고 하였다. 마침 중도에 재갈을 만난 데다가 오래 묵은 병이 심해져서 뜻대로 하지 못하니 부끄러움을 어찌 말로 하겠는가? 아! 대운(大運)이 지금 열리고 우리 도가 다시 밝아지니 중생을 위태로운 곳에서 구제하고 무너지려는 때에 대의(大義)를 부축해야 한다. 그러나 참담함을 겪은 이 사안을 아직도 시원스레 풀지 못한 것은 진실로 문도(門徒)들의 정성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양영(兩營, 전주감영과 충청감영) 관문(關文, 공문)의 판결은 모두 보았으리라 여겨진다. 대궐에 나아가 〈상소하는〉 거사는 지금 다시 도모하는 것을 의논해서 좋을대로 하도록 충고하였다. 그러나 먼저 힘을 내어 재산을 없애는 것은 실제로 불쌍한 데에 관계가 되지만 집에서 배회하며 배부르고 따뜻하기만을 구하는 것이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반드시 서로 가진 것으로 도와 이별하지 않게 하고 멀고 가까운 곳에서 마음을 합해 배반에 이르지 않으며 이 바람에 부합해서 밤낮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풀어지게 한다면 병이 완쾌될 것이다. 충분히 경계하라.

계사년(1893년) 2월 1일에 서병학(徐丙鶴)이 먼저 서울에 올라갔고, 나중에 손천민(孫天民)・김연국(金演局)・이용구(李容九) 등이 수만명의 도인(道人)을 데리고 과유(科儒, 과거를 보는 유생)를 합쳐 일제히 서울에 올라가서 봉소도소(奉䟽都所)를 한성(漢城) 남서(南署) 남소동(南小洞) 최창한(崔昌漢)의 집으로 정하였다. 서병학은 전혀 〈대궐앞에〉 나아갈 뜻이 없고, 신도로 하여금 병사들의 옷을 바꿔입게 해서 대병(隊兵)과 협동하여 정부(政府)의 간사한 무리를 모두 죽이자고 말을 하였으나 김연국이 고집스레 거절하며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2월 11일에 상소를 받들어 광화문 밖에 나아가서 엎드렸다. 그때에 상소를 올린 도인과 상소문을 아래에 적었다.
상소의 우두머리:박광호(朴光浩)
상소 제술(製述):손천민(孫天民)
상소 서사(書寫):남홍원(南弘源)
도인 대표(代表):박석규(朴錫奎)・임규호(任奎鎬)・이용구(李容九)・박윤서(朴允瑞)・김영조(金永祚)・김낙철(金洛喆)・권병덕(權秉悳)・박원칠(朴元七)・김석도(金錫道)・이찬문(李瓚文) 등이다.

상소문[䟽本]

각 도(道)의 유학(幼學) 신(臣) 박광호(朴光浩) 등은 황공하옵게 거듭 머리를 조아려 삼가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백번 절하며 통천융운하시고 조극돈륜하시고 정성광의하시고 명공대덕하시고 요준순휘하시고 우모탕경하시고 응명입기하시고 지화신렬하옵신[統天隆運肇極敦倫正聖光義明功大德堯峻舜徽禹謨湯敬應命立紀至化神烈]주상전하(主上殿下)에게 말씀을 올립니다.
궁박하면 부모를 부르고 고통스런 처지에 호소하는 것은 사람의 보통 심정이고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지금 전하는 신(臣) 등의 천지부모(天地父母)이고, 신등도 전하가 기르는 어린애입니다. 이 궁박하고 고통스런 처지에 분수를 넘는 죄를 살피지 않고, 한목소리로 먼 길을 가서 임금의 위엄이 지척(咫尺)인 아래에서 호소하는 것이 참담하고 두려운 줄 모르는 게 아니지만, 이처럼 매우 원통한 처지를 천지부모에게 호소하지 못한다면 하늘과 땅 사이에 다시 어디로 돌아갈 곳을 정하겠습니까? 예로부터 성스럽고 밝은 제왕(帝王)과 현명하고 선량한 재상이 사방의 문을 열어 사방의 소리를 듣고, 음양(陰陽)을 다스리며 사시(四時, 봄・여름・가을・겨울)를 따라 천하를 태산처럼 편안한 데에 둔 것은 천명(天命)을 공경하고 천리를 따르며 인륜(人倫)을 밝히고 기강을 세울 뿐입니다. 근래에 도(道)를 실천하는 참된 선비는 거의 없고, 공허한 글을 드러내어 겉을 꾸미는 것만 숭상합니다. 경전(經傳)을 표절하고 경박하게 명성을 낚시질 하는 선비가 10명 중에 8명이나 9명입니다. 선비의 풍조를 생각하면 덕성을 보존하고 학문을 묻는 것은 없다고 할만합니다. 일이 국치(國治)에 관계되어 실로 작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원통함이 하늘에 닿고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늘의 운수는 순환해서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지난 경신년(1860년) 여름 4월에 하늘이 말없이 돕고 귀신이 은밀히 도와 경상도 경주(慶州)의 작고(作故)한 학생(學生) 신(臣) 최제우(崔齊愚)가 처음으로 천명을 받아 사람을 가르치고 덕(德)을 베풀었는데 최제우는 바로 병자년(1636년)의 공신인 정무공(貞武公, 정무는 시호) 진립(震立)최진립(崔震立)의 7세손입니다. 도(道)를 행하고 교(敎)를 편 지 3년이 지나지 않아 외람되게도 위학(僞學)이라는 느닷없이 날조를 한다는 비방을 당해 갑자년(1864년) 3월 10일에 끝내 경상감영에서 사형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광경을 생각하면, 하늘과 땅이 참담하고 해와 달은 빛이 없습니다. 만약 터럭 하나라도 바르지 못한 죄과(罪科)를 범했다면 법에 있어서 당연히 죽어야 하니, 어찌 감히 신원(伸寃)을 도모 하겠습니까? 그러나 남에게 날조를 당해 원만하고 흠이 없는 이 대도(大道)로 하여금 이처럼 만고(萬古)에 처음 있는 횡액(橫厄, 예상하지 못한 재앙)을 겪게 하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인의예지(仁義禮智)와 효제충신(孝悌忠信) 및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도리(道理)에 못할 것이며, 만약 어지러지는 일이 있다면 감히 도학(道學) 2자로 의논에 참여하지 못하고, 또한 어찌 신원(伸寃) 등의 얘기로 임금께 거짓을 들리게 하겠습니까? 그 글은 시(詩, 시경)・서(書, 서경)・역(易, 주역)・춘추(春秋)이고, 그 법은 예악(禮樂)과 형정(刑政)이며 그 도(道)는 온화・양순・공손・검소, 효도・형제간의 우애・친족 화목・외척 친목・친구간의 믿음・구휼, 인(仁)・성(聖)・의(義)・충(忠)・화(和)로, 그 기질을 변화시킬 뿐입니다.
선사(先師)인 최제우가 말하기를,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옛 성인의 가르침이고, 수심정기(守心正氣)는 우리가 다시 정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다시 말하기를, “공자의 도를 깨달으면 하나의 이치가 정해진 것이고, 우리의 그 도를 논한다면 크게는 같으나 조금 다르다”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다르다고 한 것은 보통과 다른 별건(別件)의 일이 아닙니다. 성(誠, 성실)・경(敬, 공경)・신(信, 믿음)의 세 가지 단서로 하늘과 땅을 공경해서 받들고 일마다 반드시 보고하며 부모를 섬기는 것처럼 하는 이 한 가지 도리는 실로 옛 성인이 알아내지 못한 일과 관계되고, 신의 선사(先師, 최제우)가 처음 제창한 종지(宗旨)입니다. 그 종지는 하늘을 섬기기를 부모처럼 하고, 아울러 유교・불교・도교를 통일하는 이치이기 때문에 조금 다르다고 한 것입니다. 함께 아우르고 있는 그 근원을 살펴보면 머리를 깎아 승복(僧服)을 입고 영원히 가서 돌아보지 않으며 그 임금과 아버지를 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불교와 선교 중에 자비와 수련(修煉)의 서로 맞는 이치를 겸하였으니 실로 공자의 광명정대(光明正大)한 도(道)의 본체(本體)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한 동학(東學)이라고 한 것은 그 학명(學名)이 본래 동학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늘에서 나와 동쪽에서 만들었고, 당시의 사람이 서학(西學)으로 잘못 배척해서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선사(先師, 최제우)인 신(臣) 최제우가 제자에게 말하기를, “도(道)가 비록 하늘의 도이지만 학문은 동학이다. 더욱이 땅이 동과 서로 나누었는데, 서(西)를 어찌 동(東)이라고 하고 동을 어찌 서라고 하겠는가? 공자가 노(魯)에서 태어나 추(鄒)에서 성행하여 노와 추의 풍조가 이 세상에 전해졌고, 우리 도는 이곳에서 받아 이곳에서 포교하는데, 어찌 서(西)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서학으로 그것을 배척하는 것은 부당하고 또한 동학으로 배제하는 것도 부당하다. 그러나 영(營)과 읍(邑)에서 속박하고 죽여서 어찌 할 수가 없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은가?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따르며 각자 그 바탕을 따르면 성자(聖者)가 성스러워지고 현자(賢者)는 현명해질 것이다. 공자의 도(道)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어찌 조금 다르다고 하여 그것을 이단으로 지목하는가? 대개 이 도는 마음의 평화를 근본으로 삼는데, 마음이 평화로우면 기(氣)가 조화롭고 기가 조화로우면 형체가 평화롭다. 형체가 평화로우면 하늘의 마음이 바르고 사람의 도가 서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선사인 신 최제우가 처음으로 옛 성인이 알아내지 못한 대도를 제창하여 어리석은 보통 부부로 하여금 모두 천리(天理)의 근본을 알게 하였으니, 어찌 편협하게 동학으로 이름하겠습니까? 진실로 천하의 끝없는 대도입니다. 신등이 어찌 감히 아부하고 왜곡하는 말로 폐하에게 아뢰어 위로는 기망(欺罔)하는 죄를 지고 아래로는 외설(猥褻)로 죽음을 재촉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교화중의 이 어린애를 불쌍히 여기고, 신의 스승의 억울함을 시원스레 풀어주시고 이전에 유배된 도인(道人)들을 빨리 용서하여 임금의 덕스런 말씀을 널리 펴서 온화한 기운을 이끌어 맞이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신등은 진실로 황송하여 피눈물을 견디지 못하고 매우 두려워하며 간절히 바랍니다.

2월 13일에 사알(司謁)을 통해 구두(口頭)로 전한 하비(下批, 임금의 재가)에, “너희들은 각자 집에 돌아가서 생업을 편안히 하면 바라는대로 시행할 것이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사방의 도인이 차례대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2월 7일에 동학당이 서학을 배척하는 일로 조선에 있는 서양 공관(公館, 영사관)에 다음과 같은 격문(檄文)을 발송하였다.

서학(西學) 종교의 두령(頭領)들을 타이르는 일을 너희들이 귀를 기울여서 들어야할 것이다. 기수(氣數, 길흉화복의 운수)가 쇠퇴하고 세상의 도가 무너져서 묘당(廟堂)이 더러운 때를 감싸는 교화로 너희를 허용했는데, 관문(關門)을 두드려서 들어가기를 요청하고 적국과 화친하는 정성은 아니었다. 그러나 관문을 설치하고 종교를 전파하는 일은 조약 중에 너희들 종교 두령에게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제멋대로 몰려와서 명목은 비록 상제(上帝)를 공경해서 기도를 글로 만들었으나 야소(耶蘇,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다만 〈예수를〉 찬미하는 것을 법으로 삼아 전혀 바른 마음과 성실한 뜻의 배움이 없다. 또한 말을 실천하고 행실을 돈독하게 하는 실제가 없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한다고 하나 〈부모가〉 살아서는 공양하고 순종하는 도가 없고 죽어서는 곡읍(哭泣, 소리내어 슬피 우는 것)과 분상(奔喪)의 절차가 없으니 이것을 떳떳한 인륜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혼인의 풍속은 처음에는 야합(野合)을 하고 끝내는 다른 사람과 혼인을 하고 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헤어지는 폐단이 있으니 부부의 도라고 할 수 있는가? 너희들은 구걸하는 부류로 너희 교회에서 관례적으로 정한 돈과 밥을 지나치게 탐하고 훌륭한 거처와 음식에 마음을 쓴다. 처음에 영어 교리(敎理)를 익히다가 한문(漢文)으로 양가(良家)의 자손을 꾀어 끝내 너희들의 교회속으로 압박해서 들인다. 게다가 밥과 옷을 제거해서 학생에게 빌려주고 여분은 돈으로 계산하니 어찌 이처럼 비루한가? 단지 전도라고 하는 것은 유람이고, 경전(經傳, 성경)을 파는 등의 일이 가장 긴요한 일이다. 이와 같다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생하는 곳은 너희들이 반드시 먼저 들어갈 것이니 두렵지 않겠는가? 이번에 감히 와서 변론하기를 요청했는데, 어찌 수도(修道)하는 우리 동학이 이로움을 다투는 너희들과 함께 앉아 말을 하겠는가? 이처럼 너희들을 타이르니 속히 짐을 꾸려 본국(本國, 너희들의 나라)으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병사와 인자하고 의로운 방패로 죄를 성토하고 토벌할 것이다. 다음달 3월 7일까지이니 이것을 잘 알라.

계사년(1893년) 2월 7일 동학당(東學黨) 대표 손천민(孫天民) 벽사소

조선경성부내의 서양 영사관 앞

주석
생삼사일(生三事一) 아버지가 낳고 스승이 가르치고 임금이 기르는 혜택을 받고 생존하는 몸이기 때문에 아버지・스승・임금을 하나같이 섬긴다는 말이다.
끝없이 아득하다의 의미인 듯하다.
손님이 타고 오는 나귀의 등을 말하는 듯하다.
한 곳에 붙어있지 않고 이리저리 몹시 흔들리는 것을 말한다.
도량(道量)은 도량(度量)의 잘못인 듯하다.
문맥상 불(不) 자가 들어가야 할 듯하다.
최시형을 잡으려는 관군(官軍)을 말하는 듯하다.
32자로 된 고종의 존호(尊號)를 말한다.
최진립(崔震立) 1568~1636. 무신으로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사건(士建)이며 호는 잠와(潛窩)이다. 1636년에 공주영장으로 감사 정세규(鄭世規)를 따라 참전을 하여 용인에서 청군과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유학의 5덕(五德)을 말한다.
여섯가지의 덕행인 6행(六行)을 말한다.
외설(猥褻) 말이나 행동이 풍속을 해칠 정도로 추잡한 것을 말한다.
사알(司謁) 액정서(掖庭署)에 소속된 잡직(雜織)으로 임금의 시종과 알현을 담당하였다.
분상(奔喪) 먼 곳에서 부모가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야합(野合) 정식 혼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남녀가 정을 통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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