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치(明治) 28년 을미년(1895년) 10월 20일에 해월(海月) 대신사가 말하기를, “파옥근행장(罷惑謹行章)
천문(天文)이 매우 어렵고 의기(義氣)가 끊겼기 때문에 심지어 창생(蒼生, 백성)의 모습은 수레바퀴 자국의 괸 물에 있는 물고기와 같다. 우리 수운(水雲, 최제우의 호) 대선생이 천명을 받아 생명으로 다시 정해 하늘을 돕는보천(補天) 이치가 있게 되었으니 어찌 무궁한 조화의 흔적이 아니겠는가? 주문(呪文) 13자는 만물이 생겨나고 변화하는 근본을 드러냈고, 수심정기(守心定氣) 4자로 다시 하늘과 땅의 손상된 기(氣)를 보충했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우리 제군(諸君)들은 우리 선사(先師, 최제우)가 정한 운수를 어기지 말고 무궁한 이치에 이르기를 바랄뿐이다. 비유하면 무너지려는 집 한 채를 다시 지으려고 하는데, 옛것과 구분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크도다! 저것은 어떤 사람의 신통함인가? 쓰임을 덕(德)으로 삼으니 이것은 훌륭한 공인(工人)의 조화이고, 선택을 나무로 삼으니 이것은 장인의 수단이다. 썩은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취하는데, 거의 다 완성되어갈 때에 좋지않은 한 개의 기둥이 있으면 서까래들이 서로 어긋나고 훌륭한 경지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비방들이 어지럽다.
선(善)에는 공덕(功德)이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훌륭한 공인(工人)이 착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장인이 선택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모두 그렇지 않은 단서에 있기 때문이다. 저 나무의 본성이 굴곡지고 어긋났으나 거름있는 땅에서 나오면 갑자기 무성해지는데, 기성(氣性)이 그 바탕을 넘어서서 모습은 늠름한듯하나 안에 굴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바른 기운이 적다. 그러나 장인은 한번 보고 바로 늠름하게 일단 선택해서 숨은 굴곡을 꺼리지 않고 〈약간의〉 틈도 없이 사용한다. 이 때를 맞아 크게 척수(尺數, 크기)를 비교하면 조금도 어긋남이 없고 규모가 분명하기 때문에 감히 바로 견디지 못하고 본래 굴곡이 드러난다. 이런 지경에 이르러 총괄해서 말해도 집주인의 운수를 채우지 못한다. 어찌 불량한 일개 기둥을 꺼리겠는가? 버리고 다른 것을 쓰면 하나의 방이 견고해지고, 달리 꺼릴 것이 없다. 이것으로 보면, 방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이처럼 상도(常道)에 어긋나는 단서가 있는데, 더욱이 하늘을 보충하는 때에 어찌 이와같이 어긋나는 단서가 없지 않겠는가? 우리들 수만명의 〈잘못을〉 바로잡고 수련하는 인재(人才)로 삼아 때때로 연마해서 옥(玉)과 같은 경지에 이르러 모두 무궁한 이치를 이룰 것이다. 〈옥을〉 쪼고 간듯 수련하는 이 때를 맞아 어찌 그만두고 흩어질 리가 없겠는가? 지난해의 풍파(風波)를 생각하면 의심할 데가 없다. 〈그러나〉 앞으로의 모든 일에 기쁨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졸렬한 글로 잠시 현묘한 기미를 누설하니 우리 제군들은 범상하게 여기지 말고 신중히 듣고서 나중에 후회하는 처지에 이르지 않기를 바란다. 훌륭한 공인과 장인도 이것을 유념하여 이 때를 놓치지 말고 수련을 하여 하늘을 보충하는 자리에 참여하기를 바랄뿐이다.
갑오동학당(甲午東學黨)이 처음에 혁명을 시작했는데, 영수(領首)와 각 포(包)의 대접주는 아래와 같다. 태고(太古)에 섭제씨(攝提氏, 천신의 이름)는 우리 선사(先師, 최제우)가 자신을 비유한 뜻이었다. 산 위의 물은 우리 도통(道統)의 연원이다. 이 현묘한 진리를 온전히 갖춘 뒤에야 개벽(開闢)의 운수와 무극(無極)의 도를 알 수가 있다. 아! 나무에 뿌리가 없는 나무가 없고, 물에 근원이 없는 물이 없다. 사물도 이와 같은데, 더욱이 비교할 만한 것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결코 다시 없는 5만년이 처음 열리는 도의 운수에 있어서야 어떠하겠는가? 어리석은 내가 훈도(薰陶)를 받아 바리를 전한 은혜를 입은 지가 지금 30여년이 되었다. 일찍이 어려움을 겪고 또 여러 번 곤경을 거쳐 사문(斯文, 동학을 지칭)의 정맥(正脈)이 거의 엷어졌다가 도리어 두터워지고 혼잡을 버리고 순수한 데로 나아갔다. 그러나 호수와 바다에 풍상(風霜, 세상의 어려움과 고생)이 있고 모습과 그림자가 크게 막혀서 중도에 그만두거나 한삼태기의 〈공(功)이 모자라서〉 많이 망가지니 진실로 개탄스럽다.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도의 정성인가? 안에서 도를 닦는 선(善)에 있는가? 전(傳, 서경)에, “하늘은 친함이 없어 공경해야 친해진다”라고 하였고, 또한, “자신의 아내에게 모범을 보여 집안과 나라를 다스린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안에서 도를 닦는 데에 정성스럽고 공경하는 것이 어찌 우리 도의 큰 관건이 아니겠는가? 근래에 도유(道儒)에게 내정(內政)을 경계한 지가 오래되었다. 수신(修身)과 행사(行事)를 막론하고 많이 경솔하고 태만하다. 오히려 이것으로 입실(入室, 학문이나 도의 경지를 표현)은 고사하고 문진(問津)은 기약이 없으니 어찌 송구스럽고 민망하지 않겠는가? 나면서 아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아래에서 배우는 것에 힘입어 위에 도달한다. 가르치지 않아도 잘하는 사람은 최상이고, 가르친 뒤에 잘하는 사람은 중간 정도이고, 가르쳐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매우 어리석다. 사람이 지혜롭고 어리석은 정도가 같지 않고, 성인(聖人)과 보통 사람이 비록 다르더라도 그치지 않고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도 알 수가 있고 보통 사람도 성인의 경지에 들어갈 수가 있다. 반드시 마음을 드러내고 덕을 닦는 데에 힘쓰고, 나이 든 어른의 말을 저버리지 말며 더욱 함양(涵養)하는 일에 힘쓰라. 이달 중춘(仲春, 2월)에 대신사가 충주(忠州)의 마로탁리(馬路坼里)로 이사를 했는데, 각 처의 문도(門徒)가 점점 모여들었다. 이 때에 을미정변(乙未政變, 을미개혁)으로 머리를 깎는 일을 겪은 뒤에 의(義)를 가탁(假托)한 무리가 곳곳에서 봉기하여 온나라가 어수선하였다. 하나. ‘생삼사일(生三事一)’은 끝없는 하늘과 땅에서 옛날과 현재에 걸쳐 변하지 않는 큰 법도이다. 임금이 아니면 나를 먹일 수가 없고, 스승이 아니면 나를 가르칠 수가 없으며 아버지가 아니면 나를 낳을 수가 없다. 임금과 스승을 우선으로 하고 부모를 나중에 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비록 나를 낳았더라도 먹이고 가르치는 것은 임금과 스승의 덕(德)이기 때문이다. 옛 성인과 이후의 성인에 무슨 한계가 있는가? 그러나 하늘이 우리 선사(先師, 최제우)에게 명령하기를, “애썼으나 공(功)이 없었는데, 너를 만나서 공(功)을 이루었다. 처음으로 하늘을 부모처럼 섬기고 스승을 하늘처럼 받드는 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옛 성인이 알아내지 못했던 것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사(先師, 최제우)가 아니면 어떻게 하늘의 덕을 알고, 하늘의 덕이 아니면 어떻게 선사를 〈세상에〉 내려보내서 사람에게 이 법을 가르쳤겠는가? 대개 사람이 가고 머물며 앉고 눕거나 입고 먹는 것은 하늘의 덕과 스승의 덕이 아닌 게 없다. 지금 우리 도유(道儒)는 이런 뜻을 반드시 알아 자만하거나 자신을 높이는 마음을 철저하게 고쳐 하늘을 모시고 스승을 받드는 대의(大義)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같은 해 3월 봄에 대신사가 황해도 지역에 숨어있는 두령 가운데 배천(白川)의 변승명(邊承明), 봉산(鳳山)의 김응종(金應鍾), 문화(文化)의 정종혁(鄭宗赫)・김익하(金益河), 장연(長連)의 정영로(鄭泳路), 장연(長淵)의 문학수(文學洙), 송화(松禾)의 강필도(康弼道), 해주(海州)의 오응선(吳膺善), 재령(載寧)의 한화석(韓華錫)・김유영(金裕泳)・오영창(吳永昌), 신천(信川)의 김명준(金明濬)・안이정(安履貞)・임중호(林仲浩) 등과 편의사(便義司)이만식 명심장[明心章]
같은 해 10월에 대신사의 강화(降話)에서 말하기를, “아! 밖에 신령(神靈)과 접촉한 자는 그 안에 5행(五行, 水・火・木・金・土)을 지녀 만물의 덕과 합치해서 각각 신령과 접하는 기(氣)를 가지고 있다. 안에 강화(降話)가 있는 자는 5행으로 조물(造物)에 이르니 어찌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의 이치가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스스로 움직여서 밝게 응대하고 스스로 헤아려 말하며 입으로는 온화한 말을 한다. 행동이 분명하고 스스로 헤아리는 것은 강화(降話)의 가르침이고, 입으로 온화한 말을 하는 것은 선생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말과 사람의 말이 어찌 다름이 있겠는가? 그러나 수심정기(守心正氣)를 하여 온통 끝없는 경지에 들어간다면 강화(降話)의 적실(的實, 거짓이 없고 진실되다)함을 분명히 알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풀어놓고 말을 함부로 한다면 하늘의 말과 사람의 말과의 거리를 세어 적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말과 행동은 실제로 이보다 지나치는 것은 없으나 실제로 귀신과 음양(陰陽)의 흔적이 아니니 어찌 변화해서 움직이는 이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만물에는 그 자체에 인위적인 것이 없이 변화하고, 하나하나의 동정(動靜)이 모두 귀신의 조화이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고 한 것은 사람이 귀신과 자연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우리 몸이 움직이는 이치만을 알기 때문이다. 말이 가르침보다 먼저 나왔으나 들어도 듣지 못하고 하나의 몸이 이기(理氣)에서 변화되어 태어났으나 보아도 보지 못하는데,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아직 크게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심정기(守心正氣)를 하여 하늘과 땅의 덕에 이른다면 나와 사물 사이에 어찌 약간의 틈이라도 있겠는가? 창운[唱韻]
만물은 각자 모습을 얻어 다시 시를 읊는다. 음양(陰陽)의 조화로 만물이 생겨나지만 송암 손천민의 대인접물장[待人接物章 松菴]
아! 저 사람의 행실이 진실로 다른 사람의 지극한 선(善)은 없으나 내가 선을 하는 것을 감당한다면 도리어 지극히 악한 것만 못하다. 진실로 다른 사람의 지극한 선을 가지고 있고 나의 불선(不善)을 감당하는 것은 반드시 내가 선(善)을 실행하지 못하는 단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선하다고 해도 저 사람의 동정(動靜)을 깊이 살피면 사람들의 단서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악하다고 해도 저 사람의 마음을 깊이 살피고 저 사람의 타고난 기질을 따른 것을 세세히 알면 마음 씀씀이에 반드시 절조가 있고 귀신에게 의심이 없으며 인심이 조화로울 것이다. 사람이 조화로우면 기가 편안하고, 기가 편안하면 하늘과 땅에 틈이 없고 모든 일이 뜻대로 되며 몸은 그것에 〈합당한〉 자리에 있을 것이다. 내가 실제 행실이 적은데 남의 행동을 다스리려고 한다면 마음에 할 수 있는 온갖 계책이 있으나 그 실정(實情)을 얻기가 어렵고, 법에 부월(斧鉞, 도끼)과 같은 기세가 있어도 항복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행실은 교화를 덕으로 삼아 먼저 내 마음을 다스린다. 어리석은 사람의 말이더라도 깊게 그 마음을 살피고, 조화하기 어려운 말이 있더라도 먼저 그 뜻을 살펴 저 사람이 지향하는 것의 엄함과 너그러움 및 선악을 분명히 알아 먼저 그 인정(人情)을 베풀어 그 마음을 감복시킨 뒤에야 우리의 바른 도를 행할 수가 있다. 반드시 그 뜻을 돌리면 저절로 조화가 있는데, 이것이 이(理, 이치)가 기(氣)를 조화시켜서 온갖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온갖 이치를 모두 체득해서 분명하게 모든 일에 대응하고, 먼저 천성(天性)이 있는 곳을 알아 환난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것을 평소에 걱정하기 때문에 하늘 및 땅과 더불어 그 덕을 합치고, 해 및 달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치고,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吉凶)을 합친다. 〈번역 : 최원경〉
충경대접주(忠慶大接主) 임규호(任奎鎬), 청의대접주(淸義大接主) 손천민(孫天民), 충의대접주(忠義大接主) 손병희(孫秉熙), 문청대접주(文淸大接主) 임정재(任貞宰), 옥의대접주(沃義大接主) 박석규(朴錫奎), 관동대접주(關東大接主)이원팔(李元八), 관서대접주(關西大接主)이만식
충청도 음성접주(陰城接主) 최재학
황해도 해주접주(海州接主) 임종현(林鍾鉉)・임주엽(林周葉)・최유현(崔琉鉉), 장연(長淵) 정양(鄭樑)・정도상(鄭道相), 문화(文化) 정종혁(鄭宗赫)・김익하(金益河)・김명준(金明濬), 신천(信川) 김석환(金錫煥)・최지태(崔之泰), 송화(松禾) 방찬두(方燦斗)・강필도(康弼道), 장연(長淵) 문학수(文學洙), 안악(安岳) 김석귀(金錫龜)・안이정(安履貞), 재령(載寧) 김유영(金裕泳)・한화석(韓華錫)・원용일(元容馹), 봉산(鳳山) 김응종(金應鍾)・임중호(林仲浩), 해주(海州) 오응선(吳膺善), 문화(文化) 강익주(康翼周), 장연(長淵) 문백심(文白心), 장연(長連) 정영로(鄭泳路), 은율(殷栗) 윤도경(尹道京)・윤기호(尹基浩), 곡산(谷山) 최재렴(崔在濂)・김정석(金鼎錫) 등이다.
이 해 사변(事變, 을미사변) 이후에 해월(海月, 최시형) 대신사는 강원도 인제군 깊은 산골짜기 최영서(崔永瑞)도유(道儒)의 집에 숨어 자취를 감추고 은거하였는데, 손천민(孫天民)・김연국(金演局)・손병희(孫秉熙)・이용구
명치(明治) 29년 병신년(1896년) 1월 11일에 해월(海月, 최시형) 대신사가 대도(大道)의 전수(傳授)를 명령할 때에 손천민이 목필(木筆)을 잡고 길흉을 점쳐서 1구(句)의 시(詩)를 얻었다. 그 시에, “훈도(薰陶)를 입은 것은 바리를 전한 은혜이고, 마음을 지켜 훈도하는 것도 바리를 전한 은혜이네”라고 하였다. 〈여기에〉 하늘의 강화(降話)로 보충하였는데, 용담(龍潭)의 물은 사해(四海)의 근원이라는 구절이었다. 이 2구절 이외에 〈대신사가〉 명령하기를, “이것은 나의 사사로운 뜻이 아니고 바로 하늘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명령하기를, “한편으로는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등에 땀이 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명령하기를, “너희들 3명이 합심하면 천하가 어지러워도 이 도를 어찌 할 수가 없다고 하고, 불민(不敏, 어리석고 둔하여 빠르지 못하다)한 몸으로 외람되게도 훈도에 참여해서 밤낮으로 근심하고 송구스러워 땀이 몸을 적셔 처신할 데가 없다”라고 하였다.
1월 18일에 대신사가 명령하였다. “손천민(孫天民)은 송암(松菴), 김연국(金演局)은 구암(龜菴), 손병희(孫秉熙)는 의암(義菴), 김현경(金顯卿)은 은암(恩菴), 이만식(李萬植)은 봉암
다음날에 대신사가 말했다. “송암(松菴, 손천민)・의암(義菴, 손병희)・구암(龜菴, 김연국) 너희들 3명의 마음이 부절처럼 들어맞는다면 천하에 할 수 없는 일이 없을 것이나 우리 도는 더욱 정진해야한다. 반드시 가슴속에 새기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다.
같은 해 2월 3일에 대신사가 명령하기를, “송암 손천민과 의암 손병희 및 구암 김연국은 글로 문도(門徒)를 회유해서 마음을 드러내고 덕을 닦도록 권면하라”고 하였다. 그 글의 대강은 아래와 같다.
대신사가 편의사(便義司)이용구(李容九)에게 도유(道儒)의 출입을 엄중하게 단속하게 하여 편안하게 거처하며 도를 닦게 하였다. 대신사는 도유들이 하늘을 모시며 스승을 받드는 도에 전혀 어둡고, 전통과 포덕(布德)의 뜻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개탄하고, 시급하게 먼저 실천해야할 몇가지 조항을 나열해서 송암(松菴) 손천민(孫天民)과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및 구암(龜菴) 김연국(金演局)에게 명하여 각 포(包)에 회유(誨諭)하게 하였다. 그 〈조항의〉 대략은 아래와 같다.
하나. 우리 도의 전통과 연원, 포덕(布德)과 연비(緣比)는 뚜렷하게 구분이 되는데, 그 도통(道統)을 말한다면 우리 대선사(大先師, 최제우)가 유일한 연원이다. 그 밖의 포덕과 연비(緣比)는 단지 스승의 훈계를 이어받아 널리 도덕(道德)을 펴는 것을 위주로 한다고 하면 옳을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면 그 도통을 전수받은 자가 결단코 아닐 것이다. 근래에 각 포덕천주(布德薦主)가 연비(緣比)를 실행하자마자 바로 연원을 들먹인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이것이 어찌 우리 교단의 법규이겠는가? 지금부터 연원과 연비(緣比)는 철저히 깨끗하게 해서 서로 뒤섞이지 않게 할 것.
같은 해 5월에 선생이 특별히 심신회수(心信回水) 4자를 써서 각 포(包)의 두령(頭領)에게 나누어 주었다.
같은 해 7월 가을에 황해도와 평안도의 각포 두령이 전도하는 일로 여러차례 다시 임첩(任帖)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여 대신사가 마침내 허락하였다. 그 임첩(任帖, 임명장)에서 중북접법(中北接法) 4자를 용담연원(龍潭淵源)으로 고쳐서 규정을 만들었다.
중추(仲秋, 8월)에 대신사가 강원도 원주군 서면(西面) 전거언리(前巨彦里)로 이사를 했는데, 김연국(金演局)도 따라가서 기거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편의사(便義司)이만식(李萬植), 평안남도의 성천(成川)나용환(羅龍煥)・나인협(羅仁協), 용강(龍岡)의 홍기조(洪基兆), 강서(江西)의 이동성(李東成) 등이 사문(師門, 동학)의 길을 열었다.
10월 28일에 대신사가 훈계하기를, “스승인 〈최제우의〉 논도유훈(論道遺訓)에, ‘하늘로 하늘을 먹고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린다고 하였고, 또한 도가(道家)에서 사람이 오는 것을 사람이 왔다고 하지 않고 천주(天主, 한울님)가 내려왔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하늘을 보면 그것이 바로 사람이고, 사람을 보면 그것이 바로 하늘이다. 그러므로 하늘로 하늘을 먹고 마음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형체가 없는 것을 사람이라고 하기 때문에 사람이 하늘이 된다”라고 하였다.
그 속에 본성을 지니고 있네
마음은 비록 의지할 곳이 없어도
이것을 쓰는데 따라 화복(禍福)이 생기네
분수를 지키면 몸에 치욕이 없고
기미를 알면 마음을 저절로 한가하네
귀머거리에게 시비(是非)가 없고
조심하면 위태로운 처지가 없네
마음은 하나의 기(氣)에서 움직이고
본성은 정적(靜的)이어서 때때로 편안하네
한번 어지러워지면 10년을 잃어버리고
백번 참으면 온갖 일이 생겨난다
말이 없으면 도심(道心)이 자라나고
분노를 억제하면 온갖 신(神)이 옮겨간다
분의(分義, 자기 분수에 맞는 도리)가 정해진 것을 알지 못하면
일마다 와서 행해야 하네
하나의 기(氣)에 나서
귀천(貴賤)에도 명(命)이 있네
모든 일에 이와 같이 말하니
평생 내 스스로 알고 있네
이(理)와 기(氣)에 어찌 사이가 있는가?
조물(造物)에 구별이 있네
만들어진 형태만 알고 이치는 보지 못하네
음양이 처음 나뉘어서 5행(五行)이 생겨나고
5행이 덕을 합쳐서 만물이 생겨나네
사물의 몸만 알고 기(氣)는 보지 못하며
자신을 실행하는 건 알지만 기(氣)는 실행하지 못하네
하나의 물이 처음으로 나뉜 게 음양(陰陽)인데
그것이 탁하면 땅이 되고 맑으면 하늘이 되네
땅은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이고
하늘이 밝으니 해와 달 및 9성(九星)이 밝네
하늘과 땅은 처음부터 나뉘어서 구분이 있으나
맑고 탁한 기(氣)는 실제로 틈이 없네
음양과 5행을 어찌 나누겠는가?
맑고 탁한 가운데 구별이 저절로 있게 되네
만물이 그 안에서 변화되어 생겨나고
4시(四時, 봄・여름・가을・겨울)는 분명해서 인위적인 것이 없이 변화하네
마음은 능통해서 하늘을 업신여기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는가?
예로부터 영웅이 오면 소문이 있으나
떠난 뒤에는 영원히 다시 위엄이 없네
천만(千萬)의 사물에서 벌레에 이르기까지
생겨나면 이치이고 움직이면 신묘하네
천만의 사물에는 분명하게 구분이 있고
귀신의 자취는 여기에도 있네
본성은 바탕이고 마음은 기(氣)인데
기(氣)와 바탕이 덕을 합쳐 이루면 모양이 된다.
안에는 신령이 있고 밖에는 조화가 있어
신령하면 기(氣)이고 조화로우면 리(理, 이치)이네
명치(明治) 31년 무술년(1898년) 1월 1일에 이천군(利川郡)에 주둔한 병사와 관예(官隸, 관아의 교졸)가 대대적으로 수색과 체포를 단행하여 편의사(便義使) 이만식
그날 밤에 대신사는 휘장이 있는 가마를 타고 전거언리(前巨彦里)를 거쳐 출발했는데, 문도(門徒)이용한(李容漢)・이춘경(李春敬)・담강(擔杠)・김연국(金演局)・손병희(孫秉熙)・손병흠(孫秉欽)이 〈대신사를〉 보호해서 모시고 갔다. 숲은 깊고 길은 매우 어두웠으나 한줄기 빛이 앞에서 인도하는 것을 보고 3리(里) 쯤을 가서 산막(山幕)에 묵었다. 새벽을 무릅쓰고 길을 떠나 지평(砥平) 갈산(葛山)의 이강수(李康壽) 집에 이르러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에 비로소 홍천 서면(西面) 제일동(濟日洞)의 오문화(吳文化) 집에 도착해서 머물렀다. 대신사의 묵은 병이 심해졌는데,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제 포졸이 끝내 말 한마디 없이 물러갔고, 그대들이 비록 법망에서 벗어났으나 김낙철만이 불행하게도 잡혀서 내 마음은 마치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하다. 그러나 특별한 액운은 없으리라는 것을 미리 알 수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 때에 이용구(李容九)와 신택우(申澤雨) 및 김낙철(金洛喆) 등은 경성(京城) 감옥에 갇혔다가 바로 수원(水原) 감옥으로 옮겨가서 여러차례 고문을 겪고 온갖 고통을 맛보았다. 모두들 버티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선생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다가 끝내 풀려났다.
이 때에 문화(文化) 구월산(九月山) 어도왕(於道王)에서 정종혁(鄭宗赫)이 잡혀 해주 감옥에 이송되어 갇혔다가 3달 뒤에 풀려났는데, 이후로 각처에서 지목(指目)이 더욱 심해졌다.
이 해 4월 5일은 〈동학〉 교(敎)를 세운 기념일이었다. 대신사가 문도에게 말했다. “오늘이 기념향례(紀念享禮)라고 하니 각자 집에 돌아가서 능력에 따라 정성을 드려라”고 하였다. 문도들은 모두 명에 따라 집에 돌아갔다. 김연국(金演局)이 나아와서 그 이유를 묻자 선생이 말했다. “지난 경신년(1860년) 4월 5일에 우리 제세주(濟世主, 최제우)가 하늘에서 명을 받아 천주(天主, 한울님)를 모시는 것으로 옛 성인(聖人)이 밝혀내지 못했던 도를 드러내었는데, 안으로는 신령(神靈)이 있고 밖으로는 기화(氣化)의 이치가 있어 사람마다 하늘을 섬기게 하였다. 이것으로 본다면 이번 향례식(享禮式)은 각자 모시는 것이 옳다”라고 하였다.
이 때에 멀리서 와서 대신사를 보려는 자가 매우 많았으나, 대신사는 김연국과 손병희 등에게 명해서 각자 돌아가서 인주하게 하고, 사위인 신현경(申賢敬)만 옆에서 모시게 하였다. 대신사는 다시 말했다. “김연국을 집으로 보내라”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대신사는 조용히 혼자 앉아 마치 기다리는 것이 있는 듯하였다. 이 날 오후쯤에 전(前) 참위( 參尉) 송경인(宋敬仁)이 병사와 관예(官隸)를 대리 인솔하여 사방을 에워싸고 갑자기 들이닥쳤다. 대신사가 마침내 잡혀서 바로 길을 떠나 문막점(門幕店)에 이르렀는데, 문도(門徒) 황영식(黃泳植)이 울면서 뒤를 따르니 관예배(官隸輩)가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였다. 대신사가 성난 목소리로 크게 꾸짖기를, “죄없는 자를 때리면 도리어 죄가 있는데, 너희들만이 매우 밝은 하늘의 감계(鑑戒)를 두려워하지 않는가”라고 하니 이때부터 관예배가 두려워서 감히 다시는 행패를 부리지 못하였다.
날이 저물어서 여주군에 이르렀는데, 문도 황순호(黃淳灝)도 잡혔으나, 그의 아비가 뇌물을 많이 써서 비로소 풀려났다. 마침내 경성감옥에 들어가서 갇혔고, 황영식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대신사를〉 모시고 갔다. 김연국과 손천민, 손병희 등은 뒤를 따라 출발을 하여 지평군(砥平郡)에 이르러 대신사가 붙잡힌 일을 각 포(包)에 빠르게 통보를 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이보다 앞서 회덕(懷德) 사람 송경인(宋敬仁)이 대신사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았으나 갑오년(1894년)이후에 도(道)를 등지고 정도(正道)에 어긋나는 도를 섬기며 영예와 복록을 탐하였으며, 문도를 꾀어 선생이 있는 곳을 정탐하였다. 기념예식을 맞아 모이는 날에 많은 수의 병사와 관예(官隸)를 인솔하여 많은 폭거(暴擧)를 저질러 선한 부류를 해치고 의리(義理)를 없애니 이런 일을 어찌 차마 할 수 있는가? 활쏘기를 배우는 것은 하나의 작은 기예인데, 자구유자(子灈孺子)의 말에, “차마 선생의 도로 도리어 선생을 해칠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지금 경인(敬仁, 송경인)은 우리 스승의 도로 도리어 우리 스승을 해쳤으니 바로 자구(子灈)의 죄인이다. 그 이루 다 베어죽일 수 있겠는가?
5월 11일에 법부대신(法部大臣) 겸(兼) 평리원재판장(平理院裁判長) 조병직(趙秉稷)・수반검사(首班檢事) 윤성보(尹性普)・법부협판(法部協辦) 겸(兼) 수반판사(首班判事) 주석면(朱錫冕)이 법정을 크게 열어 비로소 초심(初審)을 하고, 이어서 2차례 심문을 하였다. 20일 뒤에 대신사가 더위로 설사를 해서 자리에 누워 정력이 모두 소진되어서 거의 스스로 움직이기도 어려웠으나 나무칼과 족쇄를 차고 있는 중에도 오히려 주문을 외우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5월 그믐날에 조병직과 윤성보 및 주석면 등이 잘못된 도로 정도(正道)를 어지렵혔다는 죄목으로 〈임금에게〉 상주(上奏)해서 재가(裁可)를 받았고, 더욱이 불법(不法)으로 교수형(絞首刑)을 선고하였다. 그 때에 상소를 해서 무고를 한 사람이 바로 황기인(黃基寅)이었다.
같은 해 6월 2일
이 때에 법헌(法軒)인 해월 대신사를 모신 문도들은 아래와 같다.
송암(松菴) 손천민(孫天民)・구암(龜菴) 김연국(金演局)・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등.
오편의장(五便義長) 이만식
대신사의 종사문도(從事門徒) 김낙철(金洛喆)・최영구(崔榮九)・권병덕(權秉悳)・염창순(廉昌淳)・박형채(朴衡采)・김철제(金喆濟)・신현경(申賢敬)・서인주(徐仁周)・최종후(崔鍾厚)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