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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 기사명
    제16장 의암설법 대도주 및 대두령의 차정[第十六章 義菴設法 大道主及大頭領差定]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900년 10월 00일
일러두기

명치 33년(1900년) 경자년 4월 5일 설법. 대두령 및 당해 두목은 다음과 같다.
대도주(大道主)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오편의장(五便義長) 신택우(申澤雨)・이만식(李萬植)・박인호(朴寅浩)・이종구(李鍾球)・홍병기(洪秉箕). 팔도대접주(八道大接主) 김학수(金學水)・김낙철(金洛喆)・권병덕(權秉悳)・문학수(文學洙)・김낙봉(金洛葑)・최재학(崔在學)・김철제(金喆濟)・염창순(廉昌淳)・박형채(朴衡采)・강채서(姜采瑞)・김훤배(金暄培)・오지영(吳智泳)・김유영(金裕泳)・김익하(金益河)・오영창(吳永昌)・최재림(崔在霖)・정영로(鄭泳路)・강필도(康弼道)・강성택(康聖澤)・정종욱(鄭宗郁)・한화석(韓華錫)・변승명(邊承明)・손은석(孫殷錫)・이병춘(李炳春)・홍기조(洪基兆)・나용환(羅龍煥)・정광조(鄭廣朝)・이용한(李容漢)・나인협(羅仁協)・임중칠(林仲七)・이상우(李祥宇)・이근상(李根尙)・유지훈(柳志薰)・손필규(孫弼奎)・최종후(崔鍾厚)・임주섭(林周葉)・정경수(鄭璟洙)・박영구(朴永九)・김명준(金明濬)・최유현(崔琉鉉)・김택현(金澤鉉)・정도영(鄭道永)・이원규(李元奎)・김석구(金錫龜)・방찬두(方燦斗)・이종석(李鍾奭)・정두현(鄭斗鉉)・임중호(林仲浩)・안이정(安履貞)・김응종(金應鍾)・오응선(吳膺善)・김기주(金基周)・안태준(安泰俊)・최준모(崔俊模)・배성천(裵成天)・강익주(康益周)・변방기(邊方基) 등이다.

심신성분변장[心神性分辨章]

심군(心君)은 폐부(肺腑)에 있어 임금이 되고, 정신(精神)은 골격(骨骼)에 있어 신하가 되어서 임금을 보좌하되 총명을 다한다. 성품(性品)이 기혈(氣血)에 있는 것은 마치 부부(夫婦)가 한 집에 사는 것과 같고, 귀신(鬼神)은 피부(皮膚)에 있으니 마치 임금의 신하와 같다.
임금이 어두우면 총명한 신하가 자주 경계하여 간언한다. 부인(婦人)이 거스르면 심군(心君)이 불안해 한다. 임금이 잘 다스리면 백성들이 자기를 살찌우고, 임금이 다스리지 못하면 백성들이 피폐한다. 임금이 나라를 다스림은 그 마음을 다스리고 그 몸을 닦는데 있을 뿐이다.
천지(天地)와 음양(陰陽)의 덕(德)은 각각 한 몸에 있고, 하나의 움직임[一動]과 하나의 고요함[一靜]은 무궁한 변화의 이치로 모두 귀신(鬼神)이 할 수 있는 일일 뿐이다. 나누어서 말한 것은 현묘(玄妙)한 조화(造化)의 분석(分釋)일 뿐이다. 군자(君子)가 부자라면 천하가 귀의하고, 용력(勇力)이 있으면 어린아이가 사나운 호랑이를 보듯 두려워하고, 지모(智謀)가 있으면 천하가 움직이지 않고, 착함이 있으면 천하가 조화롭게 된다. 소인(小人)이 부자라면 욕심이 많고, 용력이 있으면 거리낌이 적게 되고, 지모가 있으면 난리를 만들어 내고, 착한 말을 하지만 그 근본은 실상이 없다.

훈도를 입으니 일월의 광명이고
의발을 전수받은 스승의 은혜는 도통을 전해 줌이네
선천의 도를 쓰니 호탕한 광정(廣政)이요
오늘의 설법은 기강을 세우는 절의(節義)로다

경통[敬通] 경자년 4월 일 송암[松菴]

대개 상고 이래로 선성(先聖)과 후성(后聖)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고 천지의 도수(度數)를 문권(文卷)으로 만들어 내고 천도(天道)가 늘 그러함을 정하여 하늘의 이치를 발명(發明)한 것은 다시 더할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큰 선생님이 경신 5일에 하늘의 말씀을 듣고[奉聽])하늘의 말씀이 내려올 때[降話], 황천(皇天)이 특별히 천도(天道)로 명을 내리니 어찌 의심이 없겠는가. 반복하여 생각해 보니 신체의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으니 이는 천명(天命)이 준 인성(人性)이고 마음의 뜻은 창천(蒼天)에게서 받으니 강화(降話)가 적실한 것이다. 황천이 어찌 언어로 명을 내리겠는가. 무릇 우리 성인의 심신(心神)이 창천(蒼天)에 조화롭게 화답하여 선성(先聖)께서 발명하지 못한 근본을 발명한 것이다. 첫 번째는 시정지(侍定知) 세 글자로 만드시고, 두 번째는 성경신(誠敬信) 세 가지 단서로 만들어 기억하여 거울로 삼으시니, 하늘의 말이나 사람의 말이 어찌 다름이 있겠으며, 하늘의 도나 사람의 도가 어찌 사이[間]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장차 천도(天道)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누어 말하자면 하늘에는 지성(至誠)이 있어 만물을 화생(化生)하니, 만약 춘하추동이 없다면 어찌 성실(成實)이 있겠는가. 사람은 성도(誠道)를 지켜 만사를 조성하니, 만약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없다면 어찌 집을 만년이나 보존하겠는가. 천리(天理)와 인사(人事)는 서로서로 변화하며 쓰이니 어찌하고 어찌하겠는가. 인(仁)이란 봄[春]이다. 봄은 화기(和氣)로 만물을 화생하니 사람도 또한 인(仁)이라는 글자로 사람의 마음을 감발시킨다. 의(義)란 가을[秋]이다. 가을은 숙기(肅氣)로 만물을 성실(成實)하니, 사람도 또한 의(義)라는 글자로 사람의 마음을 열복(悅服) 시킨다. 예(禮)란 여름[夏]이다. 여름은 우로(雨露)로 만물을 기르니, 사람도 또한 예(禮)라는 글자로 오상(五常)을 길이 보전한다. 지(智)란 겨울[冬]이다. 겨울은 상설(霜雪)로 만물을 수장(收藏)하니, 사람도 또한 지(智)라는 글자로 만사를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오직 하늘은 변화의 이치로 사시(四時)의 차례를 바꾸지 않고, 사람은 절조(節條)의 근본으로 사단(四端)의 무성함을 잃지 않는다. 천도(天道)와 인도(人道)는 합쳐서 하나의 이치로 사용한다면 어찌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틈이 있을 수 있겠는가. 바라건대 여러 군자들은 전례대로 바라보지 말고, 공경히 따르고 받들어 행하여, 실질을 밟아 체용(體用)하는 것이 어떠하고 어떠하겠는가.

계해년계해년(癸亥年) 중춘(仲春) 15일 해산(海山)이만식(李萬植)

위생보호장[衛生保護章]

사물은 시생(始生)이 있고 사물은 시종(始終)이 있으니, 시종(始終)하면서 또한 이러한 이기(理氣)의 변화를 따라서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봄・여름에 성생(生成)하고 가을・겨울에 황락한다. 이것은 지금 목적(目的)의 기틀이니 어찌 의심하는 단서가 있겠는가. 지금 세계(世界)에 위생(衛生)이 아주 중요하나 사람이 모두 정해진 명(命)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 많음은 다름이 아니다. 그 실제 상생(常生)하는 근본(根本)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아는 사람이 있더라도 경위(經緯)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능지(能知)하고 능행(能行)하면 어찌 명(命)을 채우지 못하겠는가. 대저 생(生)하는 근본이 음양(陰陽)의 동정(動靜)과 변화(變化)의 이치이다. 어찌 쉽게 과단(果斷)하겠는가. 포태(胞胎)의 화생(化生)도 또한 모두 눈으로 보지만 실제의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명(命)을 완전히 채우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처음에 화(化)할 때로 말하면 음양(陰陽)의 이기(理氣)가 번갈아 응하게 되는 까닭이다. 모양[形]을 이루는 것으로 말하면 그의 부모의 배태(胞胎)로부터 이루는 것이다. 생기는 것으로 말하면 이치(理治)의 도수(度數)가 차면 저절로 생기니 아득하고 아득한 이치이다. 생김에 기(氣)가 접하고, 비로소 사지(四肢)가 움직이고, 귀와 눈이 열리고, 능히 동작(動作)을 갖출 수 있으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이것은 심(心)과 성(性)과 정(情)의 삼단(三端)일 뿐이다. 삼단을 나누어 말하면 심(心)은 기(氣)이고, 성(性)은 질(質)이고, 정(精)은 뇌골(腦骨)과 폐부(肺腑)의 곳곳과 마디마디에 응하기 때문이다. 동작(動作)의 조화(造化)로 말하면 마음[心]이 먼저 발하여 정(精)이 움직이고, 정(精)이 발하여 몸[體]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작할 때의 마음을 먼저 발하여 사지(四肢)에 사맥(四脈)의 정신(精神)이 통한 후에 동작을 해야 서로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말[言]을 움직여 발할 때에도 마음을 먼저 발하여 정신이 서로 통한 뒤에 말을 발하면 혈기(血氣)가 불안하거가 손해가 없으며 무심(無心) 중에 말을 발하면 기혈(氣血)이 크게 상하고, 먹고 마실 때에도 무심 중에 졸지에 먹고 마시면 해(害)가 있으며, 기거(起居)할 때도 무심 중에 졸지에 움직이면 해가 있으니 삼가고 삼가야 한다.
대저 삼단(三端)을 말하면 전체(全體)의 마음[心]이 주인[主]이다. 이해(利害)가 모두 마음에 있으니 제일 마음을 단속함이 좋을 것이다.
첫째는 사람의 마음을 잠시라도 정맥(精脈)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떠나지 않는 것은 일용행사(日用行事)에서 이 건을 잊지 말고 삼단(三端) 외에 서로 어긋남이 없게 할 것.
둘째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사이를 과도하지 않게 하며, 노여움[怒]이 지나치면 놀란 맥[驚脈]이 통하지 않게 되고, 슬픔[哀]이 지나치면 정맥(精脈)이 조화롭지 않게 되고,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지나치면 산맥(散脈)이 조화롭지 않으니 삼가고 삼가야 한다.
셋째는 먹고 마시는 데에 관계가 있다. 먹고 마심이 지나치면 위(胃)가 넘쳐 경위(經緯)가 조화롭지 못하여 먹은 것을 소화하지 못하여 해가 있으며, 사람이 먹는 것은 많으나 오곡(五穀)은 순연(順然)한 정기(精氣)이기 때문에 이로움[利]이 있고, 나머지 것은 이해가 상반되나 고기 종류가 제일 해가 많으며, 술[酒] 종류도 해가 많으니 조심하며 먹어야 한다.
넷째는 거처(居處)와 몸가짐[持身]에 있다. 비록 흙집[土屋]이라도 안팎을 아침・저녁에 청소하고 근처를 청결하게 청소하고, 또한 근처에 물[水]을 버려 악취가 나면 해가 있으니 안으로는 부인(婦人)을 다스리고 도인(道人)을 단속하여 지극히 청소하게 해야 한다.
다섯째는 사람의 몸이 냄새가 있어 땀과 먼지가 흐르고 있으면 해가 있으니 자주 몸을 씻어 악취가 없게 하며, 위생보호(衛生保護)하는 법과 생민보호(生民保護)하는 법과 재산보호(財産保護)하는 요긴한 방법을 기록하여 반포하니 먼저 정성으로 시행하기를 천만번 축원하고 축원하나이다.

임인년(1902년, 광무 6) 늦봄 3월 15일에 해산(海山) 장석(丈席)

경통[敬通]

하늘은 시(時)에 열리고, 땅은 시(時)에 열리고, 사람은 시(時)에 생기니 비로소 삼재(三才)가 형성된다. 하늘은 삼재의 벼리[綱]이고, 땅은 삼재의 바탕[質]이고, 사람은 삼재의 기(氣)이니 사람을 생령(生靈)이라 하는 것이다. 생령이란 창창(蒼蒼)한 하나의 기(氣)가 형체(形體)에 접속하여 천지가 그것을 만들며 만물이 그것을 길러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이 귀밝음과 눈밝음에 응하는 것이다. 이것을 정령(精靈)이라고 하고 신명(神明)이라 하는 까닭으로 다른 사람과 내가 서로 접하여 마음과 뜻을 서로 통하여 의사(意思)가 하나로 돌아가 모든 계책[萬謨]이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내가 서로 생각하면 있게 되고, 잊으면 잊는 것이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어찌 조응(照應)하는 이치가 없겠는가. 조응을 논해보면 정력(精力)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무릇 이와 같으면 조응하는 것에 어찌 마땅히 논할 게 있겠으며 멀고 가까움이 서로 기대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모든 인연은 다름이 아니라 믿음[信]이 두텁고 의(義)가 굳기 때문이다. 신의(信義)라고 해도 만약 그 정력(精力)을 논한다면 또한 드러나는 자취가 없을 수 없다.
청컨대 거듭 밝혀 말할까 한다. 아아! 무릇 본인(本人)이 이미 여러 군자들과 교계(交禊)가 오래되었는데, 신의(信義)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멀리 떨어져 조응(照應)할 때 그리워하는 마음이 날로 더하고 달로 깊어져 마땅히 이러한 대운(大運)이 개명(開明)하는 때에 특별히 서로 믿는[相孚])의(義)가 있는 다음에야 감화(感和)의 정력(精力)에 이를 수 있어 도(道)의 무궁함과 이(理)의 대업(大業)은 멍하니 깨달음이 있게 된다. 대저 그 정치를 보고 그 자리를 얻고, 그 법(法)을 다스리고 그 칭호를 얻는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만부(萬夫)의 우두머리에게서 정사를 관찰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르는 것이다. 무릇 우리 도를 주고받는 일은 참으로 용담(龍潭)의 연원이 넓은 곳에서 나오니, 어찌 하나의 터럭이라도 멈추고 쉴 수 있는 단서가 있겠는가. 무릇 우리들 각처의 대두령(大頭領)은 여러 해 동안 애를 써도 다만 접주(接主)로 부를 뿐이다.
지금 일의 단서가 더욱 나아가매 차례대로 제도를 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처음으로 네 글자로 된 호를 내려주니, 어찌 지극히 공정하고 중대하지 않겠는가. 조응(照應)이 밝혀진 사적을 분명하게 강(講)하고자 하니 각각 그 정력의 본연(本然)이 감화된 것을 알고 친하게 지내는 데로 점차 나아가는 것이 어떠하고 어떠한가. 인화(人和)의 도가 흥기(興起)함은 모두 정력이 이르는 사이에 있으니 믿고 믿기 바란다. 이와 같이 중대한 곳에 경외(敬畏)할 곳을 알려면 공사(公私)의 사이에서 사모하고 우러르는 것이 어떠하고 어떠한가. 감화가 일어나는 일은 모두 포양(褒揚)의 은전(恩典)에 있다. 만부(萬夫)의 우두머리가 오만부(五萬夫)의 지위 다음의 자리가 될 수 있고, 오만부의 우두머리가 십만부(十萬夫)의 지위 다음의 자리가 될 수 있음은 그 덕(德)을 시험하고 그 지위를 포양하는 것이다. 무릇 이와 같다면 사람이 돌아가야 할 곳은 덕(德)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볼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공평(公平)하고 정직(正直)한 대정(大政)이 아니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각각 대두령의 호자(號字)의 첩(帖)을 주고, 도서(圖署)와 부절(符節)의 식을 아래에 나열한다. 이번의 도서소(圖署所)는 함부로 만들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각각 한 본(本)을 만들어 이에 송부(送付)하니 규절(規節)을 전수(典守)하여 쾌히 만년 가까이 꽃처럼 흘러가는 아름다운 호(號)가 되기를 천만번 바란다.

명치 36년(1903년) 계묘년 중춘(포덕44년) 2월 12일

북접법대도주(北接法大道主) 용담연원인장(龍潭淵源印章)

좌개(左開)

수청대령(水淸大領) 구방도서(九方圖署)
해명대령(海明大領) 팔방도서(八方圖署)
의창대령(義昌大領) 오방도서(五方圖署)

아래에 붙인 것은 뜻풀이다.

무릇 수(水) 자의 칭호는 특별히 그 운(運)을 밝힘이니, 참으로 큰 선생님의 정력의 간섭(幹涉)이다.
다음 해(海) 자라고 칭한 것은 그 운수(運數)를 밝힘이니 해월(海月) 선생님의 정력의 간섭이다.
마지막에 의(義) 자로 칭한 것은 본인이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다년간 훈도를 받으며 의발을 전수받은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참람함을 잊고 감히 서로 믿는[相孚] 인연을 알리고자 하니 여러 군자들은 망령되게 스스로를 높인다고 혐의하지 말고 큰일의 단서가 있는 곳을 궁구(窮究)하는 것은 어떠하고 어떠한가.

수청대령(水淸大領)이하 각 대령(大領) 및 대접주(大接主)와 수접주(首接主)는 다음의 기록과 같다.

수청대령(水淸大領) 봉암(鳳菴)이만식(李萬植)
해명대령(海明大領) 화암(化菴) 문학수(文學洙)
동 용암(龍菴) 김낙철(金洛喆)・
동 인암(仁菴) 홍병기(洪秉箕)・
동 정암(貞菴) 권병진(權秉眞)・
동 해암(海菴) 김학수(金學水)・동 신택우(申澤雨)・동 이종구(李鍾球).
의창대령(義昌大領) 영암(英菴) 최재학(崔在學)・동 용암(龍菴)나용환(羅龍煥)・
동 운암(運菴) 김유영(金裕泳)・동 각암(覺菴) 국길현(鞠吉鉉)・동 영암(靈菴) 정경수(鄭璟洙)・
동 임주섭(林周葉)・동 홍기조(洪基兆)・동 인암(寅菴) 유지훈(柳志薰)・동 나인협(羅仁協)・ 동 오창영(吳永昌)・동 예암(禮菴)한화석(韓華錫)・동 양암(良菴) 강필도(康弼道)・동 계암(啓菴) 윤창언(尹昌彦)・동 진암(鎭菴) 김영학(金永學)・동 경암(經菴) 김익하(金益河)・동 훈암(薰菴) 정영로(鄭泳路)・동 성암(惺菴) 정종욱(鄭宗郁)・동 상암(祥菴) 변승명(邊承明)・동 순암(淳菴) 박영구(朴永九)・동 기암(氣菴)이겸수(李謙洙)・동 윤암(潤菴) 손은석(孫殷錫)・동 혜암(慧菴) 강익주(康益周)・동 정암(正菴) 강병업(康昞業)・동 수암(遂菴) 최문상(崔文祥)・동 성암(成菴) 고용종(高用宗)・동 용암(勇菴)한인봉(韓仁鳳)・동 연암(蓮菴) 주인화(朱寅化)・동 인암(忍菴) 오성룡(吳成龍)・동 주암(周菴) 최봉관(崔鳳官)・동 동암(同菴) 유계헌(劉桂憲)・동 견암(堅菴) 정용태(鄭龍泰)・동 장암(壯菴)한남규(韓南奎)・동 심암(心菴)한국현(韓國賢)・동 온암(溫菴) 최기주(崔基周)・겸암(謙菴) 김명준(金明濬)・건암(建菴) 노석기(盧錫㼄)・지암(志菴) 양사홍(梁士弘) 등이다.
대접주(大接主) 정자국(鄭自國)・김기주(金基周)・김영걸(金永杰)・방찬두(方燦斗)・김영흡(金泳洽)・유석우(劉錫禹)・홍기억(洪基億)・강대근(康大根)・최준성(崔俊成)・이인숙(李仁淑)・안처흠(安處欽)・김안실(金安實)・임예환(林禮煥)・최준항(崔俊恒)・양기준(梁基俊)・양영종(梁永種)・박치준(朴致俊)・최주옥(崔周玉)・정광조(鄭廣朝)・노헌영(盧憲永)・김봉호(金鳳浩)・오봉오(吳鳳梧)・정기명(鄭起明)・황학도(黃學道)・장효준(張孝俊)・김영언(金永彦)・김광찬(金廣燦)・이동성(李東成)・정희남(鄭希南)・홍지원(洪止源)・김성부(金成富)・윤창민(尹昌敏)・임정순(林貞淳)・김인창(金仁昌)・신영석(申永錫)・유승룡(劉承龍)・이진교(李鎭校) 등이다.
수접주(首接主)이영모(李永模)・여계보(呂桂甫)・이선학(李善學)・유정빈(劉禎彬)・김사걸(金士傑)・최석준(崔錫峻)・장관식(張寬植)・김선오(金善五)・김득필(金得弼)・양준명(梁峻命)・김정욱(金廷旭)・김경주(金景柱)・한용운(韓龍雲)・김창수(金昌洙)・김경하(金敬河)・정재하(鄭在河)・김인하(金仁河)・정태화(鄭泰和)・이희백(李熙伯)・양경숙(梁京淑)・이덕수(李德洙)・이희수(李熙洙)・김윤태(金允泰)・인찬언(印贊彦)・김형택(金炯澤)・주인학(朱仁鶴)・정광조(鄭廣朝)・김원명(金元明)・이태윤(李泰潤)・이우현(李雨鉉)・박주율(朴周嵂)・이석신(李錫信)・황명중(黃命仲)・최찬혁(崔贊赫)・여주현(呂周鉉)・홍우상(洪佑相)・궁사청(弓士淸)・김사걸(金士傑)・한찬수(韓贊洙)・조광휘(趙光彙)・김흥순(金興淳)・조환(趙煥)・조형식(趙亨植)・김하성(金河聲)・방순필(方淳弼)・전석환(全錫煥)・배한귤(裵漢橘)・장한기(張漢基)・최인백(崔仁伯)・안희원(安希元)・김기현(金基鉉)・최세진(崔世鎭)・김희선(金禧璿)・안홍익(安鴻翼).
수접주(首接主) 양몽린(梁夢麟)・민흥식(閔興植)・김정식(金鼎植)・최태진(崔泰鎭)・문천수(文天洙)・이종락(金鍾洛)・양순덕(梁順德)・강사준(康士俊)・백수경(白洙璟)・오면규(吳冕奎)・최학렴(崔學濂)・손대성(孫大成)・김기현(金琦鉉)・김영실(金英實)・이형진(李瀅鎭)・강영희(康永希)・김일보(金一輔)・이상호(李尙鎬)・조명형(趙明衡)・최봉희(崔鳳熙)・장순익(張淳翼)・황영식(黃泳植)・오기영(吳箕泳)・강기만(姜基滿)・양세준(梁世準)・우응오(禹應五)・원창희(元昌喜)・김봉순(金鳳淳)・이동섭(李東爕)・정희태(鄭希泰)・최영호(崔泳浩)・길태홍(吉泰弘)・최진견(崔鎭見)・이용한(李容漢)・백운기(白雲起)・오세열(吳世烈)・조영국(趙永國)・지관해(池觀海)・백동수(白東洙)・김영□(金英□)・김명범(金命範)・한국보(韓國輔)・이용태(李容泰)・지봉서(池鳳瑞)・지영호(池永浩)・김용찬(金龍贊)・이찬수(李贊洙)・강위필(姜渭弼)・이상진(李相瑨)・양정묵(梁正默)・김봉기(金鳳基)・문장섭(文章爕) 등이다.

주석
계해년(癸亥年) 기해년(己亥年, 1899년)의 오기인 듯.
『서경(書經)』「함유일덕(咸有一德)」제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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