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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 기사명
    통장 제18장 대두령이 물화로 지휘하여 일본 유학생을 택출함[通章 第十八章 大頭領物貨指揮日本留學生擇出]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903년 04월 00일
일러두기

삼가 빽빽한 일정에 고생하시는 임원들에게 비밀리에 고하니, 도의 실제 이치는 생각건대 반드시 헤아림[度]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에 따로 들 것은 없습니다. 만약 옛날을 상고한다면 성현(聖賢)의 맥락(脈絡)이 지금까지 서로 이어짐은 마음이 목적(目的)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5만년의 운수(運數)에 대괴(大塊)가 나를 빌려 목탁(木鐸)으로 삼기 때문에 어리석은 저는 천하를 두루 돌아볼 뜻으로 만리나 떨어진 지방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용되는 공비(公費)가 많기 때문에 만원(萬元)의 경영(經營)이 거의 지금까지도 아직 충당되지 못하여 원대한 일을 도모하기에는 흡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술수를 다 헤아려도 계산이 나오지 않기에 편의장(便義長)이만식(李萬植) 씨에게 맡겨 보내니 자세하게 상의하여 이 지휘에 의하여 신실하고 부지런하게 봉행하오니 삼가 생각건대 여러 대두령(大頭領)은 각각 그 여러 이익으로 그 가운데서 힘을 써서 한 마음으로 도모하되 빈부 사이에 직업을 근면하게 하고 사지(四肢)를 수고롭게 하여 정성을 다하기를 기약한다면 어찌 묵묵히 도와서 감조(感照)하는 덕이 없겠으며 어찌 헛되이 수고롭게 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군자의 도는 재력(財力)으로 발신(發身)하고, 성인(聖人)의 가르침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이 가장 귀하므로 의심이 없이 크게 깨달아 공적으로 받은 공경스런 물건을 참으로 까닭이 없이 허비하지 않으나 공(公)은 공이 아니고 사(私)는 사가 아님은 내게 달려 있으니 하나하나 마음으로 구명한다면 어찌 잘못되는 폐단이 있겠습니까. 여러 가지 진정(眞情)을 미리 말로 질정하지 못함은 다름이 아니라 이처럼 어두운 시기를 당하여 우선 까마귀의 암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 밝게 드러난 날에 반드시 분석(分釋)이 있을 것이니 깊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천하의 대세가 삼전(三戰)에 있으니 첫째는 도전(道戰)이고, 둘째는 재전(財戰)이고, 셋째는 언전(言戰)입니다. 도전(道戰)이란 나라마다 각각 주된 가르침이 있어 조화롭게 만물을 기르며 그 덕을 펴서 그 마음을 복종하는 것이 주된 것입니다. 재전(財戰)이란 사람이 발달(發達)을 만들어 이치에 미루어 사업을 일으켜 농업과 상업과 공업을 이치에 통하게 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강하게 하는 계책입니다. 언전(言戰)이란 그 말에 따라 사리를 통달하고 경계를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으로 우리나라 조야(朝野)의 형편을 보니 우물에 앉아서 하늘을 보면서 마치 칠흙같은 밤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고 할 만합니다. 개명(開明)은 고사하고 병이 골수에 들어가 조개와 같은 형세에 이르니 창생(蒼生)이 모두 도탄(塗炭)에 빠져 장차 어찌 탈출할 계책이 있겠습니까.
또 생각건대 여러분들은 믿음으로 성실하게 하여 위로는 나라의 실질을 돕고 아래로는 중생들의 고질을 구제하며 안팎의 정성된 힘을 전날보다 배가하시되, 안으로는 도를 닦아 부인은 하루에 세 번의 정성을 다하시고, 남자는 각각 직업에 근면하여 스스로 재산을 만들어 쉬지 않는 정성과 힘을 다 하시되 두 해에 한해서 천지존사(天地尊師)의 덕에 쾌히 보답하시기를 천만 번이나 간절히 우러르니 삼가 축원하고 삼가 축원하나이다.

계묘년(1903년, 광무7) 여름 4월 일
편의장(便義長) 신택우(申澤雨)
동 이종구(李鍾球)
동 홍병기(洪秉箕)
동 이만식(李萬植)

이 해 3월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와 이만식(李萬植) 두 선생은 몸을 피해 몰래 일본(日本)으로 갔다. 처음에는 나가사키(長崎)에 정박하였으나 옮겨서 오사카(大坂)에 이르렀다. 몇 달을 머물다 조선으로 돌아왔다. 본국으로 돌아온 같은 해 5월을 시작으로 북삼도(北三道)의 각 포(包)를 순회하니 각 포가 도를 전하고 교화를 베푸는 것이 일취월장(日就月長)하였다. 이에 추렴한 돈이 20여 만 엔(円)이나 수합되었다. 청년 중에 총명하고 뛰어난 자제 40명을 골라서 10월에 일본으로 유학을 보냈다. 해산(海山, 李萬植) 선생은 일본에 머물렀다. 의암 손병희는 성명을 바꾸어 이상헌(李祥憲)으로 고치고, 얼굴을 마주하고 의논하여 정할 일이 있을 때 종종 오가면서 다른 날의 수용(需用)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해산 이만식 선생(일명 李容九)은 빈번하게 도쿄(東京)에 왔다가곤 하였다.
계묘년(1903년, 광무 7) 5월에 해산(海山, 李萬植) 선생은 각 포(包)의 대두령(大頭領)과 경사(京師)에서 몰래 모여 혁명(革命)의 방침을 비밀리에 의논하였다. 이어서 각처에 가서 제창하자 도우(道友)로서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이 거의 백만 명에 이르렀다. 이 해 10월에 또 도쿄(東京)로 가서 동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상의하여 확정하고 중외(中外)의 기미가 마땅하자 돌아왔다. 12월에 일본과 러시아가 처음으로 인천(仁川) 앞바다에서 개장(開仗)하였는데, 일본의 군병이 러시아 함선 2척을 폭격하고 그대로 상륙하였다.
갑진년(1904년, 광무 8) 2월에 공(公)이 경사(京師)에서 각 포(包)의 두령(頭領)들을 몰래 만나서 시사(時事)를 비밀리에 의논하고, 민회(民會)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계속 군사상의 계엄(戒嚴)이 심중하여 가벼이 거사할 수 없었다. 또 도쿄(東京)에 가서 시국(時局)을 두루 살피고 돌아왔다.
앞서 제세주(濟世主, 崔濟愚)와 해월대신사(海月大神師, 崔時亨) 두 선생께서 어려움을 겪은 이후 조정은 저들을 위학(僞學)이라 지목하고 소재지를 염탐하여 체포하고 무거운 형벌을 주었다. 이로부터 도인들이 많이 산골짜기로 숨어들어가 비밀리에 단체를 결성한 지 수 십년이 되었다. 계사년과 갑오년에 이르러 문도들이 비로소 차츰차츰 늘어나기 시작하자 혁명의 뜻을 주창하였고 조정은 재빨리 초토(剿討)의 방책을 폈다. 그러나 섬멸하여도 없어지지 않고 없어졌다가도 다시 생겨나는 것이 마치 불이 들판을 불사르듯 하고 물이 언덕까지 차 오르는듯 하였으니 천운(天運)인 것을 어찌할 것인가.
이때에 관리들은 탐학하였고, 백성들 중에 호강(豪强)한 무리들은 저들이 미워하는 사람을 곧 동학(東學)이라고 무함하여 재산을 약탈하고 사람의 목숨을 죽이고 해쳤다. 동학(東學) 두 글자는 곧 착하고 선량한 사람을 무함하여 해치는 기틀이나 함정이 되었다. 이와 같이 수십 년 동안 포박하고 살육하여 박멸하고 나서야 그치고자 하였다. 지금 일본과 러시아가 싸울 때 조정은 생각하기를 폭동이 있을까 우려하여 사방을 그물처럼 짜서 체포하여 남김이 없었다. 일본 군대는 또 갑오년(1894년, 고종 31)의 일이 일본을 배척한다고 의심을 하여 만나기만 하면 곧 총을 쏘아 살해하였다. 각지의 도인(道人)들이 화(禍)를 피하여 서울에 온 사람이 많게는 수 천에 이르렀다.
이때에 손병희(孫秉熙)는 도쿄(東京)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멀리서 교도(敎徒)인 박인호(朴寅浩)・이종구(李鍾球)・홍병기(洪秉箕) 등에게 위촉하여 크게 중립회(中立會)를 일으키니 갑오년의 거동과 유사하였다. 이만식(李萬植)이 듣고 크게 놀라 곧바로 토쿄로 가서 손병희를 면회하고 그것이 불가하다는 원인과 이유를 자세히 진술하였다. 손병희는 이 때문에 중립회를 설치하는 일을 해산(海山)이만식(李萬植)에게 위탁하였다. 그러므로 곧바로 항해하여 서쪽으로 건너가고자 하였으나 바람이 사납고 파도가 모질어 십 여일이 지나서야 경성(京城)에 도착하였다.
이때 박인호 등은 손병희의 가르침에 따라 이미 교도(敎徒)들에게 중립회를 지휘하여 경거망동하게 개회(開會)한다는 발기문(發起文)을 작성하였는데 발포일이 단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만식은 급하게 각 두령(頭領)들을 불러서 타이르며 말하기를 “우리의 도(道)는 본래 덕을 펴서 널리 구제하는 것[布德廣濟]을 커다란 종지(宗旨)로 삼는다. 지금 백만의 무리들이 이처럼 경거망동하고자 한다면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무릇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있고,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다. 다만 내가 가리켜 구획하는 것을 보라. 만약 일이 □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모두 손을 들라”고 하자 대중이 모두 일치하였다. 이에 마침내 끈으로 묶고 자물쇠로 채워놓은 중립회의 발기문을 거절하였다.

주석
병장기(兵仗器)를 연다는 뜻에서, 전쟁(戰爭)을 시작(始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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