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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고흥군 교구의 역사 高興郡敎區歷史
일러두기

고흥교구의 역사에 대한 서문(序文)

무릇 역사란 무엇을 말하기 위하여 만든 것인가. 세도(世道)의 막힘과 태평함[否泰], 인물(人物)의 흥망성쇠, 시비(是非), 선악(善惡), 권징(勸懲), 출척(黜陟)에 대해 반드시 보고 느끼되 옛날을 거울삼아 현재를 살펴보게 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위한 것이니, 역사의 이루어짐이 어찌 우연이었겠는가. 천지가 개벽한 이후로 5만여 년 동안에 제왕가(帝王家)의 역사가 있고 도덕가(道德家)의 역사가 있으니, 하늘의 뜻을 이어 법칙을 세우는 통서(統緖)와 성현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후손에게 가르치어 전함[繼往開來]의 연원(淵源)이 그 안에 기재되어 있으되 존망성쇠(存亡盛衰)의 드러남과 감춰짐이 환히 저절로 드러나 있다. 하물며 또한 세도가 쇠퇴하고 희미해져 물욕에 양심이 가려지고 떳떳한 윤리가 이미 썩어가는 경우이겠는가. 이에 황천(皇天)께서 근심하시어 우리나라에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내려주시니, 이름하여 천도교(天道敎)라고 하였다. 범위가 광대하되 유교, 천주교, 불교가 그대로 남아있고 본체와 응용이 넓고 요약되어 있으되 성실, 공경, 믿음이 오직 보존되어 있다. 하늘이 곧 사람이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이 이미 성주문(聖呪文) 21자 안에 있는데 이전 성인(聖人)이 아직 발현하지 못한 것을 발현한 것이니,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좁은 소견으로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어 생각하고 의논할 수 없는 크나큰 안목을 어찌 측량할 수 있겠는가. 우리 교조(敎祖)는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이고, 그 종적(宗嫡)은 해월신사(海月神師)이며, 또 그 다음은 의암성사(義菴聖師)이다. 1860년(경신년)부터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에 신사(神師)를 서로 전하고 성사(聖師)를 서로 계승하여 천하에 덕을 펴서 중생을 널리 구제함을 자신의 임무로 삼은 자가 몇 백만의 사람이었다. 촉(蜀) 땅의 햇볕과 월(越) 땅의 눈처럼 있기 어려운 고초를 겪고 한(漢) 땅의 바람과 초(楚) 땅의 비처럼 너무도 엄청난 고난을 당하느라 지내온 세월이 험난하였는데 다행히 천우신명이 우리 백성들을 돌보아 주시어 1906년(병오년) 봄에 우리 의암성사께서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오시어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신문에 게재하여 천하에 공포하시고, 경성(京城)에 중앙총부(中央摠部)를 설치하시며, 전국 각군(各郡)에 크고 작은 교구(敎區)를 배치하시었다. 온 힘으로 마음을 써서 일을 계획한 것은 헤아릴 수 없거니와 제도가 질서정연하고 규모가 늠름하여 우리 천도교의 목적이 비로소 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으니, 이 천도교를 믿는 자라면 누군들 흔연히 기뻐하지 않으리오. 그렇더라도 중앙총부와 교구를 설치한 지 어언 10여 년이 되어 가는데 우리 고흥교구 내의 원래 주직(住職)하던 담임근무(擔任勤務)한 사람과 교구의 집을 이전하고 창설(創設)한 것에 대해 어찌 아무 언급 없이 적막한 상태로 두어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교훈(敎訓) 정영순(丁永詢)씨가 나에게 청하여 서문을 짓기를 권하거늘 내가 사양하였으나 받아주지 아니하여 전말(顚末)을 쓰면서 훗날의 고상하고 현명한 군자를 기다리노라.

포덕 58년

1917년(정사년) 3월 하순에 영해산인(瀛海散人) 정창도(鄭昌道)가 목욕재계하고 삼가 서문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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