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덕 64년[1923] 3월 1일
순교인 성명 및 약력
김홍기씨의 자(字)는 경홍(慶洪)이고 본관은 순천이라. 포덕 4년전인 1856년(병진년) 10월 9일에 남원군 둔덕면 탑동리(塔洞里)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공평정직하며 기개와 도량이 뛰어나고 용감하며 호걸한 인물로 포덕 29년[1888] 기축(1888년은 무자년) 10월 27일에 그의 장인 최찬국(崔贊國)에게 도를 받아 지극 정성으로 수련한바 원직(原職)이 대접주며 포덕이 5천여 호에 달하였더라. 포덕 35년[1894] 갑오 겨울에 민포 ■■■에게 체포되어 다음해 을미 2월 14일에 남원 장터에서 포형(炮刑)을 당하여 환원(還元)하다. 그의 아들 김종환(金鍾渙)이 그 도를 계승하여 신교(信敎)하더라.
최진악씨의 자는 중오(重五)이고 본관은 전주라. 포덕 14년전인 1846년(병오년) 3월 10일에 남원군 지사면 안하리(鴈下里)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강직하고 활달하며 호걸의 인물로 김재홍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히 믿은바 원직이 접주며 포덕이 백여 호이러니 포덕 35년[1894] 갑오 12월 12일에 민포 ■■■에게 체포되어 본군 오수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김낙기씨의 자는 도중(道中)인대 남원에 처음으로 도를 펼친 김홍기씨의 친형이라. 포덕 7년전인 1853년(계축년) 6월 29일에 동 탑동리에서 출생하시다. 천품이 엄중단아하며 활달하고 청렴 결백하여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바가 되던 인물로 포덕 30년[1890] 경인 10월 3일에 친동생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성심을 다하여 수도하며 포덕이 수백 호인데 원직이 접주이다. 다음해 을미 2월에 동생이 화를 당함을 보고 기가 막혀 병이 생기어 동 3월 11일에 피를 토한 후 환원하고 그 아들 김종웅(金鍾雄)이 그 도를 계승하여 신교하다.
강윤회씨의 자는 성서(成瑞)이고 본관은 진주더라. 포덕 17년전인 1842년 임인년 4월 5일에 임실군 신평면 가덕리(加德里)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과묵하며 기개와 도량이 높고 꿋꿋한 인물로 포덕 30년[1890] 경인 봄에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 정성으로 수도하며 포덕이 수백호이더라. 포덕 35년[1894] 갑오 4월 2일 호남의비록(湖南義非錄)을 저작하고 최성명(崔誠明), 이병춘(李炳春)과 함께 3인이 동행하여 진산군에 갔다가 민포에게 체포되어 씨와 최성명은 포살을 당하고 이병춘만 홀로 생환하다. 씨의 사위 정기준이 그 속(續)을 계승하여 신교하다.
김영기씨의 자는 경로(慶魯)이고 본관은 순천인대 김홍기씨의 사촌형이다. 포덕 14년전인 1845년 을사년 12월 8일에 남원군 둔덕면 탑동리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화평 조용하며 양순하고 인정이 두터워 허물이 없는 인물로 동 30년[1890] 경인 12월 15일에 씨의 사촌동생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히 믿고 수련하며 원직이 접주이고 포덕이 백여 호이다. 1894년(갑오년) 12월 이성흠(李聖欽)에게 체포되어 옥중에서 엄형의 장독으로 병이 나서 다음해 2월 28일에 환원하다.
임익삼씨의 본관은 조양(兆陽)이더라. 포덕 31년[1891] 신묘 2월에 도를 받아 지극한 정성으로 수도하며 매번 주문을 외울 때에 목 가운데에서 활 소리[矢口소리]가 났고 스스로 호를 청림(靑林)이라 하더니 1894년(갑오년) 12월 12일에 민포 ■■■에게 체포되어 남원군 오수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이창우씨의 자는 경백(景伯)이고 본관은 전주라. 포덕 2년전인 1859년 기미년 4월 □일에 남원군 둔덕면 우번리(雨翻里)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영민하고 강하며 기개와 도량이 높고 꿋꿋하며 재능과 기예가 총명한 인물로 포덕 31년[1891] 신묘 3월 2일에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한 정성으로 수도하며 원직이 접주이고 포덕이 백여 호이다. 1894년(갑오년) 겨울에 체포되어 독형을 당한 후에 지목이 다시 엄중한 까닭으로 다음해 1895년(을미년) 5월 16일에 스스로 약을 마시고 환원하다.
김종문씨의 자는 상국(相局)인대 남원에 처음으로 도를 펼쳤던 김홍기씨의 큰아들이라. 포덕 21년[1880] 경진 5월 5일에 둔덕면 탑동리에서 출생하다. 천심이 온화하여 효우무쌍(孝友無雙)한 인물로 포덕 34년[1893] 계사 가을에 씨의 아버지에게 도를 받아 지극히 믿고 정성을 다해 수도하여 하나하나의 동정이라도 모범이 될 만하게 하더니 1894년(갑오년) 겨울에 그 아버지의 체포당함을 보고 남원군옥 중에 따라 들어가 지극 정성으로 아버지를 봉양하더니 아버지가 장터에서 포형을 당함을 보고 한을 품고 병이 나서 포덕 36년[1895] 을미 5월 15일에 환원하다.
이기면씨의 자는 원오(元五)이고 본관은 전주라. 포덕 7년전인 1853년(계축년) 1월 4일에 남원군 둔덕면 신기리(新基里)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총명단아하며 기개와 대의를 지켜서 군자의 풍모가 있는 까닭으로 사람이 우러러 따르는 바가 된 인물로 포덕 31년[1890] 4월 24일에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열성으로 맹신하여 원직이 접주이고 포덕이 수백호이다. 1894년(갑오년) 겨울에 체포되어 엄형을 당한 후 장독으로 수년을 고생하다가 포덕 38년 정유 3월 23일에 환원하다. 둘째아들 이강전(李康全)이 그 속(續)을 계승하여 신교하다.
김해종씨의 자는 시찬(時贊)이고 본관은 김해라. 포덕 9년전인 1851년(신해년) 3월 □일에 남원군 덕고면 후리(後里)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순수하고 현명하며 재능과 기예가 특히 뛰어난 인물로 포덕 31년 신묘 4월 5일에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은 후 지극한 믿음으로 수도하여 원직이 접주이고 포덕이 백여 호이다. 1894년(갑오년) 겨울에 민포 ■■■에게 체포되어 동 12월 12일에 남원군 오수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김연호씨의 자는 봉운(鳳云)이고 본관은 김해라. 포덕 3년전인 1857년(정사년) 4월 □일에 남원군 덕고면 후리에서 출생하시다. 포덕 31년 신묘 12월 3일에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의를 세울 것을 하늘에 맹세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하여 수도하며 열성으로 복무하여 포덕 수백호이며 원직이 접주인데 1894년(갑오년) 겨울에 장수군 이광언(李光彦)에게 체포되어 장수읍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심노환씨의 자는 원집(元集)이고 본관은 청송이라. 포덕 5년전인 1855년(을묘년) 정월에 남원군 장흥면 조산리(造山里)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맑고 온화하며 기개와 도량이 꿋꿋하고 엄숙하여 후덕한 인물로 포덕 33년 계사 3월 15일에 이규순씨에게 도를 받아 열성으로 수도하며 진실한 믿음으로 연성하여 포덕이 수백 호이며 원직이 접주이다. 1894년(갑오년) 12월 15일에 민포 ■■■에게 체포되어 남원군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통한 감정에 이르게 하고 환원하다.
김태옥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천안이다. 포덕 원년[1860] 경신 2월 □일에 남원군 지사면 기관리(基館里)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순직하고 참되며 청렴하고 곧으며 기개와 도량이 씩씩하고 빼어난[雄邁] 인물로 포덕 30년 경인 3월 13일에 강윤회(姜潤會)씨에게 도를 받아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비바람을 피하지 않으며 열성으로 포덕한 것이 수백호이고 원직이 접주인바 1894년(갑오년) 12월 겨울에 민포 박진무(朴進茂)에게 체포되어 동월 14일에 남원 장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온 몸이 떨리는 비통한 감정을 주고 참수의 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변홍두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장연이다. 포덕 2년전인 1858년(무오년) 12월 3일에 남원군 덕고면 배산리(盃山里)에서 출생하시다. 심성이 온화하며 재능과 기예가 비범한 인물로 포덕 34년[1893] 계사 2월 2일에 김낙기씨에게 도를 받아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세상일[世塵]을 망각하고 온 힘을 다해 수도하여 포덕이 백여 호이고 원직이 접주인데 다음해 1894년(갑오년)겨울에 민포 ■■■에게 체포되어 최진악씨와 같이 오수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이규순씨의 자는 춘종(春宗)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포덕 9년[1868] 무진 2월 5일에 남원군 서봉면 화산리(華山里)에서 출생하시다. 천심이 공평정직하며 기개와 도량이 씩씩하고 빼어난 인물로 포덕 33년[1892] 임진 봄에 도를 받아 성실히 수도하며 진실한 믿음으로 연성(煉性)하여 포덕이 수천 호에 달하였고 원직이 수(首)접주인데 1894년(갑오년) 겨울에 민포 양■■에게 체포되어 다음해 2월 □일에 남원 장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측은하고 비통한 감정을 준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정동훈씨의 자는 극중(極仲)이고 본관은 하동이다. 포덕 2년[1861] 신유 7월 6일에 남원군 견소곡면 옥전리(玉田里)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온후하며 심지가 굳세고 씩씩하고 대의가 있는 인물로 포덕 31년 신묘 3월 29일에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성실하고 부지런히 수도하고 진실한 믿음으로 연성하여 포덕이 수백 호이고 원직이 접주, 집강인데 1894년(갑오년) 12월 겨울에 민포 서순지(徐順之)에게 체포되어 남원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야 환원하다.
김현숙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김해라. 포덕 5년전인 1856년 병진년 정월 8일에 남원군 번암면 북치리(北峙里)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곧고 세차고 마음 씀씀이가 곧고 강하여 대범하고 구애됨이 없는 인물이다. 도를 받아 지극 정성으로 수도하여 포덕이 수백호이고 원직이 접주인데 1894년(갑오년) 겨울에 민포 박■■에게 체포되어 남원군 번암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하치구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진주라. 포덕 2년[1861] 신유 □월 □일에 남원군 두동면 장포리(長浦里)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강직한 인물로 포덕 31년 신묘 봄에 도를 받아 근면하고 성실하게 수교하다 갑오의 일대 풍파에 연루되어 중형에 생명을 겨우 보전하다가 지목이 거듭 생기자 근심[念盃]을 이기지 못하고 약을 마시고 환원하다.
유시도씨의 자는 사중(士仲)이고 본관은 영광이라. 포덕 13년[1872] 6월 8일에 남원군 백파면 과리(科里)에서 출생하다. 포덕 32년 임진 3월 7일에 친형 유태홍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한 정성으로 수도하며 포덕이 많았는데 갑오 풍파에 가산탕진하고 1895년(을미년) 3월에 민포 양■■에게 매 맞은 여독으로 동 41년[1900] 경자 6월 7일 환원하다.
박중봉씨의 자는 광운(光云)이고 본관은 밀양이더라. 포덕 1년[1860] 경신에 남원군 산동면 부절리(釜節里)에서 출생하다. 동 33년[1892] 임진에 입교하여 지극한 믿음으로 수련하여 원직이 집강, 접사인대 동 36년[1895] 을미 1월 □일에 운봉 민포에게 체포되어 원(元) 운봉군 장터에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비통하게 포형을 받아 환원하다.
박경협씨의 일명은 양래(良來)이고 본관은 밀양이더라. 포덕 3년[1862] 임술 □월 □일에 남원군 산동면 부절리에서 출생하다. 동 34년[1893] 계사에 도를 받아 진실한 성력으로 수도하며 동 35년 갑오 풍란에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던 차에 민포 박문달(朴文達)의 부하에게 체포를 당하여 그 해 12월 16일에 남원군 원 운봉군 관암치(冠巖峙)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김춘영씨의 자는 춘서(春西)이고 본관은 김해이더라. 포덕 1년전인 1859년(기미년) □월 □일에 남원군 산동면 부절리에서 출생하다. 동 34년 계사에 도를 받아 세상일을 탈피하고 열성으로 수도하다가 갑오의 난을 당하여 죽음에 들어갔다가 회생하였던 놀람과 두려움 끝에 민포 박문달의 부하에게 체포되어 번암면 원촌(院村) 장터에서 최도준(崔道俊)과 함께 포형을 당하여 시장사람[市人]의 비감한 상태(像態)를 일으키고 동 12월 9일에 환원하다.
최도준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전주더라. 포덕 2년[1861] 신유 □월 □일에 남원군 산동면 부절리에서 출생하다. 동 34년[1893] 계사에 도를 받아 온 힘을 다하여 수도하며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더니 갑오의 난을 당하여 분운한 중에 겨우 생명을 유지하다가 민포에게 체포되어 동 12월 9일에 번암면 원촌 장터에서 김춘서(金春西)씨와 함께 포형을 당하여 보는 사람의 마음이 비통한 감정을 맺히게 하여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흐르게 하고 환원하다.
최경현씨의 일명은 종언(宗彦)이고 본관은 전주더라. 포덕 12년전인 1848년(무신년) □월 □일에 남원군 산동면 부절리에서 출생하다. 포덕 34년[1893] 계사에 도를 받아 가정의 수도가 열렬하더니 갑오의 풍란에 노심초사하여 인내성으로 생명 유지하다가 민포에게 체포되어 동년 12월 10일에 번암면 원촌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이병우씨의 자는 권삼(卷三)이고 본관은 전주더라. 포덕 27년전인 1833년(계사년)에 남원군 산동면 부절리에서 출생하다. 동 32년[1891] 신묘에 도를 받아 10여 년간에 풍찬노숙하면서 근면 수도하여 원직이 교장이더니 풍란(風亂)의 두려움으로 병이 생기여 동 44년[1903] 6월 28일에 환원하다.
김부칠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김해더라. 포덕 6년[1865] 을축에 남원군 산동면 부절리에서 출생하다. 동 34년[1893] 계사 봄에 도를 받아 근면 성실하게 수련하다가 갑오의 위험을 당하여 운봉 민포가 남원에 왔을 때에 체포되어 남원읍에서 참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문경록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남평이더라. 포덕 25년[1884] 갑신 □월 □일에 남원군 사매면 인화리(仁化里)에서 출생하다. 동 49년[1908] 8월 20일에 도를 받아 열성으로 도를 닦았고 본심이 평화하여 자기의 허물을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였으며 본군 교리강습소에서 수양하고 또 전교사의 직임으로 다년 노력하다가 기미년[1919]의 전 조선에 선언서의 지목으로 전주분감에서 수감되었다가 만기 전에 옥중에서 발병되어 보석으로 출옥하여 치료하다가 효과를 얻지 못하고 동 60년[1919] 기미 9월 9일에 철창의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환원하다.
소화숙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진주더라. 포덕 4년전인 1856년(병진년)에 남원군 상원천면(주천) 회동리(會洞里)에서 출생하다. 동 33년[1893] 계사에 도를 받아 성실히 수련하며 인후한 천심으로 군자의 기개를 떨침으로써 포덕도 다수(多數)하여 접주와 교장의 직임까지 거쳤는데 다음해 갑오의 풍파[風塵]에 운봉 민포에게 체포되어 동년 12월 □일에 구 운봉군 장터에서 수많은 사람의 눈에 뜨거운 눈물을 떨구는 포형을 받아 환원하다.
안재언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순흥이더라. 포덕 9년[1868] 무진 □월 □일에 남원군 산동면 대치리(大峙里)에서 출생하시다. 동 33년[1892] 임진에 도를 받아 법도[凡節]을 실행하다가 동 35년[1894] 갑오의 풍파[風塵]에 민포에게 체포되어 남원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이동기의 자는 □□이고 본관은 전주더라. 포덕 15년[1874] 갑술 □월 □일에 남원군 산동면 대리(大里)에서 출생하다. 포덕 34년[1893] 계사에 도를 받아 진실한 마음으로 수련도 많이 하고 제반 도무(道務)를 실행하더니 다음해 갑오 12월 17일에 관암치(冠岩峙)에서 민포에게 포형을 당하여 청춘의 일신을 환원하였더라.
양주칠씨의 자는 군명(群明)이고 본관은 남원이더라. 포덕 4년전인 1856년(병진년)에 남원군 산동면 대기리(大基里)에서 출생하다. 포덕35년[1894] 갑오 봄에 도를 받아 열렬한 마음으로 수도 등 범사를 실행하며 도성찰(都省察)이 되었다. 동년 12월 20일에 민포의 포형을 당하여 남원 장터에서 환원하고 재종손 양재봉(梁在琫)이 그 속(續)을 이었다.
최성좌씨의 본관은 전주이더라. 포덕 6년[1865] 을축 5월 2일에 원 남원군 지사면 주암리(舟巖里)에서 출생하다. 동 35년[1894] 갑오 4월 5일에 도를 받아 신실하게 수도하다가 동년 풍란에 민포 이성흠에게 체포되어 12월 12일에 오수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황내문씨의 본관은 장수더라. 포덕 □□ 전 □□에 장수군 서면 매암리(梅巖里)에서 출생하다. 동 32년 경인에 김종학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한 정성으로 수도하며 부지런히 포덕에 힘써 천여 호에 달하였는바 대접주가 되었더니 동 35년[1894] 갑오 12월 9일에 민포 ■■■에게 체포되어 동 10일에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오한복씨의 본관은 해주더라. 포덕 □년 □월 □일에 남원군(임실) 말천면(삼계) 목지리(木支里)에서 출생하다. 동 34년[1893] 계사에 도를 받아 접사(接司)가 되었더니 동 35년[1894] 갑오에 민포 ■■■에게 체포되어 포형을 당하여 12월 10일에 환원하다.
권이갑씨의 본관은 안동이더라. 포덕 □□에 원 남원군 둔덕면 관월리(館月里)에서 출생하다. 동 34년[1893] 계사에 이기동씨에게 도를 받아 포사(炮史)가 되었는데 다음해 1894년(갑오년) 11월 14일에 고남산(高南山)에서 민포에게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이사명씨의 본관은 전주더라. 포덕 □□에 진안군 백운면 백운동(白雲洞)에서 출생하다. 동 33년 임진 3월 □일에 도를 받아 포덕이 수백호이며 접주가 되었는데 동 35년[1894] 갑오 겨울에 민포 ■■■에게 체포되어 동 12월 9일에 오수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정규봉씨 본관은 경주더라. 포덕 □년 □월 □일에 원 남원군 오지(임실 삼계)면 화촌리(花村里)에서 출생하다. 동 30년 □□에 도를 받아 수도하는데 남원 도인의 불행한 죽음이 많은 가운데에 처음으로 민포 ■■■에게 체포되어 1894년(갑오년) 12월 □일에 평당리(坪塘里) 앞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정극중씨의 본관은 경주더라. 포덕 □년 □월 □일에 남원군 견소곡면(대강면) 옥전리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강직하며 심정이 담백한 인물로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히 믿고 수도하여 포덕이 수백 호이며 원직이 접주인데 동 35년 갑오의 풍진에 민포 ■■■에게 체포되어 동 12월 □일에 남원군 장터에서 참혹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장남두씨의 본관은 흥덕이더라. 포덕 □□에 원 남원군 산동면 이동리(李洞里)에서 출생하다. 동 35년[1894] 갑오 봄에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근실히 도의 범절을 이행하여 포덕이 많았으며 도성찰이 되었는데 동 갑오 겨울에 민포 ■■■에게 체포되어 동 12월 □일에 남원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양주신씨의 자는 군섭(君燮)이고 본관은 남원이더라. 포덕□□에 구례군 광의면 비산리(飛山里)에서 출생하다. 동 34년[1893] 계사 7월 10일에 도를 받아 (하동 임정연(林正連)씨에게) 문밖에 나가지 않고 수도하다. 다음 해의 난에 해당 면장 ■■■가 억측[臆心]으로 무슨 글씨를 성 안에 보내라 하기에 성중에 내려간 즉 경군이 그곳에 도착하였는지라 접주의 혐의로써 경군대장 ■■■에게 체포되어 해당 군 남문 밖 양정평(楊亭坪) 백사장에 동 12월 12일에 참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이치년씨의 본관은 전주더라. 포덕 34년[1893] 계사에 구례군 광의면 원 상촌리(常村里)에서 출생하다. 동 31년[1890] 임진에 하동 임정연씨에게 도를 받아 지성으로 신앙하다가 갑오란에 해당 면 지천리(枳川里) 사람 양(梁)의 무고를 당하여 경군에게 체포되어 해당 군 남문 밖 양정평에서 포형을 당하여 동 12월 13일에 환원하다.
표명무씨는 경성에서 거주하던 사람이라.(본관 및 생년은 미상) 본군 군수 민종렬씨가 내려올 때에 관아의 손님으로 따라 내려왔다가 포덕 35년[1894] 갑오 6월에 유태홍씨에게 도를 받아 근면 성실하게 준행하다가 동 12월 □일에 민포에게 체포되어 남원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
이응삼씨의 본관은 전주더라. 포덕 5년 갑자 □월 □일에 남원군 원 갈치면 식정리(植亭里)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정직하며 마음 씀씀이가 강렬한 인물로 포덕 31년 신묘에 도를 받아 열성으로 수련하며 포덕이 일천여 호에 달하였고 원직이 수접주인바 갑오의 난에 지목을 감당하기 어려워 석굴 속에서 목숨을 도모하다가 민포에게 체포되어 무쌍한 독형에 스스로 혀를 물었고 동 12월 □일에 남원 장터에서 포형을 당하여 환원하다(고산동 박춘로(朴春魯))
김종우씨의 자는 여해(與諧)이고 본관은 순천이라. 포덕 8년전인 신해년 정월 24일에 남원군 둔덕면 동촌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화평하고 정직하시어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로 포덕 31년[1890] 경인 9월 20일에 씨의 족숙[族叔]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한 정성으로 수련하며 갑오의 도산(刀山)과 갑진의 검수(劒水)에 죽음에 들어가 회생한 것이 몇 번이 되었던가. 포덕이 80여 호이고 원직이 봉훈(奉訓)인데 포덕 53년 신해 2월 15일에 환원하다.
박기영씨의 자는 영오(永五)이고 본관은 밀양인데, 박진경씨의 친형이다. 포덕 4년전인 1856년(병진년) 12월 11일에 남원군 영도면 괴정리(槐亭里)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강건하고 아름답고 의리를 굳게 내세우고 오로지 하나를 고집하는 인물로 포덕 35년 갑오 7월 6일에 □□씨에게 도를 받은 후 지극한 정성으로 수도하며 이래 풍파에도 의를 잡고 심지를 굽히지 않았으며 포덕이 백여 호이고 원직이 접주이며 또 봉훈을 이어 다년에 전교사의 직임으로 근로가 무쌍하더니 동 52년[1911] 신해 5월 25일에 환원하고 씨의 큰아들 박순갑(朴順甲)이 그 공적을 계승하여 신교하다.
이기갑씨의 자는 사문(士文)이고 본관은 전주라. 포덕 4년전인 1856년(병진년) 8월 □일에 남원군 둔덕면 신기리(新基里)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인후하며 기개와 도량이 굳세고 씩씩하여 사람들이 우러러 사모한 인물로 포덕 53년 갑오 12월 20일에 도를 사촌형 이기면씨에게 받아 그 때 풍파의 엄중함을 불구하고 지극한 믿음과 정성으로 수도 연성하였고 포덕이 많았으며 원직이 봉훈인대 동 49년 정미 5월 11일에 환원하다.
김종웅씨의 자는 문국(文局)이고 본관은 순천이라. 김낙기씨의 큰아들이다. 포덕 15년[1874] 갑술 7월 12일에 남원군 둔덕면 탑동리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화평하며 기개와 도량이 맑고 엄숙하여 심정이 공평하고 바른 인물로 포덕 31년[1890] 경인 10월 3일에 숙부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지성으로 신교하며 갑오 풍파에 씨의 가정에 민포의 참형을 당한 사람이 많았으나 심지를 굽히지 않고 갑진의 곤경이 무쌍하여도 가족의 수도를 엄히 권하였으며 원직이 봉훈인데 동 56년[1915] 을묘 11월 16일에 환원하고 씨의 큰아들 김경연(金景淵)이 그 공적을 이어 신교하다.
김동환씨의 자는 만삼(萬三)이고 본관은 김해라. 포덕 3년[1862] 임술 7월 15일에 남원군 영도면 괴정리에서 출생하다. 기개와 도량이 순화하며 심정이 덕후한 인물로 포덕 35년 갑오 7월에 씨의 친형 김영선씨에게 도를 받아 지성으로 수도하며 풍파경력이 무쌍하여 놀람과 두려움[驚劫]의 여독으로 병이 생겨 동 46년[1905] 을사 7월 25일에 환원하다.
최한수씨의 자는 명숙(明淑)이고 본관은 전주라. 포덕 5년[1864] 갑자 11월 26일에 남원군 지사면 원산리(圓山里)에서 출생하다. 천품이 온아한 인물로 동 32년[1891] 9월에 아버지 사촌[從叔] 최진악씨에게 도를 받아 헌신적으로 교무하며 포덕이 많았고 원직이 봉훈인대 동 50년[1909] 기유 12월 24일에 환원하다.
김종학씨의 자는 경청(警淸)이고 본관은 순천이라. 포덕 9년전인 1851년(신해년) 10월 19일에 남원군 둔덕면 동촌리(東村里)에서 출생하다. 동 31년[1890] 경인 9월 20일에 씨의 족숙[族叔]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천애의 풍상을 모두 겪고 수련이 무쌍하며 포덕이 백여 호이고 갑오 전후의 위험에도 시종 불변하며 갑진의 풍파에 위험을 당하여 곤혹으로 지내다가 동년 10월 17일에 환원하다.
황남현씨의 자는 경락(敬樂)이고 본관은 장수이더라. 포덕 6년전인 1854년(갑인년) 7월 4일에 남원군 고절면 금도리(錦濤里)에서 출생하다. 천품이 단아한 인물로 동 32년[1891] 신묘 4월에 이기동씨에게 도를 받아 진실한 믿음으로 수도하며 포덕하여 원직이 봉훈인대 근로도 많이 하며 위험에 놀람과 두려움의 여독으로 동 49년 정미 10월 26일에 환원하고 그 큰아들 황현주(黃鉉周)와 둘째아들 황혁주(黃赫周)가 공적을 계승하여 신교하다.
황한주씨의 자는 경화(敬化)이고 본관은 장수이더라. 포덕 5년전인 1855년(을묘년) 2월 12일에 남원 고절면 금도리에서 출생하다. 천심이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운 인물로 동 35년[1894] 갑오 8월에 이기동에게 도를 받아 지극한 믿음으로 수련하더니 동 47년[1906] 병오 7월 17일에 위험과 놀람의 여독으로 환원하다.
안규태씨의 자는 응칠(應七)이고 본관은 순흥이라. 포덕 13년전인 1847년(정미년) 10월 9일에 남원군 산동면 대치리에서 출생하다. 천심이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우며 공평한 염치와 의리로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더니 동 32년[1891] 신묘에 도를 받아 포덕이 많았고 원직이 접주이며 겸하여 봉훈인대 동 54년[1913] 계축 6월 17일에 기도의 불결한 생각으로 병이 생겨 환원하다.
오창섭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함양이라. 포덕 13년[1872] 임신 4월 10일에 남원군 백파면 내동리(內洞里)에서 출생하다. 동 35년 갑오 6월에 유태홍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한 정성으로 수련하며 다년간 전교사의 직임으로 근로하였으며 이래 풍파에 위험의 지경에도 여러 번 들어가도 호쾌한 천심으로 기개를 굽히지 않더니 동 55년 갑인 봄에 익산, 강경 등지에 교무의 통신으로 여행하였다가 우연히 병을 얻어 동년 4월 30일에 익산군 교구에서 환원하다.
김종태씨의 자는 인국(仁局)이고 본관은 순천인데, 김낙기씨의 둘째 아들이다. 포덕 20년[1879] 기묘 12월 5일에 남원군 둔덕면 탑동리에서 출생하다. 천심이 순박한 인물로 동 31년[1890] 경인 10월 3일에 숙부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한 믿음으로 수련하며 갑오의 풍파에 가족의 다수가 참형 중에서도 시종을 불변하더니 동 49년 정미 3월 26일에 환원하다.
김종순씨의 자는 명국(明局)이고 본관은 순천인데, 김영기씨의 아들이다. 포덕 22년[1881] 2월 23일에 동 탑동리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온아하며 심기가 웅장한 인물로 동 32년[1891] 신묘 9월 4일에 도를 받아 칼이 산을 이루고 검이 물을 이루던[刀山劒水] 중에서 쉼 없이 지성을 다하더니 동 50년[1909] 기유 12월 26일에 환원하다.
김회길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함창이다. 포덕 22년 6월 5일에 남원군 매안면 신기리에서 출생하다. 천심이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운 인물로 동 50년 기유 7월 16일에 정기준씨에게 도를 받아 수년 전교사의 직임으로 근실하게 복무하다가 동 55년[1914] 9월 8일에 환원하다.
김창일씨의 자는 치경(致敬)이고 본관은 김해라. 포덕 7년전인 1853년(계축년) 4월 3일에 남원군 덕고면 후리에서 출생하다. 천품이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며 기개와 도량이 웅장한 인물로 동 50년 기유 8월 18일에 김현대씨에게 도를 받아 헌신적으로 지극 정성 도를 믿다가 동 55년 갑인 5월 18일에 환원하다.
김맹철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김해라. 포덕 7년전인 1853년(계축년) 11월 24일에 임실군 하운면 냉천리(冷泉里)에서 출생하다. 동 32년[1891] 신묘 10월에 도를 받아 진실하고 무망(無妄)한 하늘에 맹세하는 마음으로 지극 정성 수도하며 포덕이 백여 호인데, 원직이 접주였는데, 동 39년[1898] 무술 11월 5일에 환원하다.
김석중씨의 자는 권집(權執)이고 본관은 경주라. 포덕 8년전인 1852년(임자년) 7월 28일에 남원군 백암면 척동리(尺洞里)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청렴하고 결백하며 기개와 도량이 강렬한 인물로 동 43년[1902] 임인 7월 28일에 이기동씨에게 도를 받들어 8년간을 처음과 끝이 한결같이 근면하게 수성(修性)하다가 동 50년[1909] 기유 7월 11일에 환원하다.
김봉신씨의 자는 명국(明國)이고 본관은 경주라. 포덕 19년[1878] 무인 8월 15일에 남원군 백암면 척동리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강직하며 심정이 통화(通化)한 인물로 동 42년[1901년] 신축 2월에 이기동씨에게 도를 받아 열성으로 수도하고 온 힘을 다해 포덕하여 처음과 끝이 한결같더니 근로하던 뇌열증으로 동 50년 기유 11월 27일에 환원하다.
최진팔씨의 자는 순좌(舜佐)이고 본관은 전주라. 최진악씨의 사촌형인대 포덕 19년전인 1841년(신축년) 2월 21일에 남원군 □□면 □□리에서 출생하다. 천품이 순화한 인물로 동 32년[1891] 신묘 8월 30일에 김재홍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한 믿음으로 근로하고 포덕이 다수하며 처음과 끝이 한결같더니 동 45년[1904] 갑진 정월 5일에 환원하고 큰아들 최익수(崔翊洙)가 그 공적을 계승하여 신교하다.
하영도씨의 자는 응서(應瑞)이고 본관은 진주더라. 포덕 9년전인 1851년(신해년) 9월 □일에 남원군 둔덕면 축동리(築洞里)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단정한 인물로 동 32년[1891] 신묘 5월 20일에 김종우씨에게 도를 받아 지성으로 포덕하며 원직이 접주이더니 동 41년[1900] 경자 4월 18일에 환원하다.
김성주씨의 자는 성암(聖巖)이고 본관은 순천이라. 포덕 8년전인 1852년(임자년) 12월 22일에 둔덕면 동촌리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온화하고 두터운 인물로 동 32년 신묘 8월 20일에 김재홍씨에게 도를 받아 마음을 바르게 하여 연성(煉性)하더니 동 40년[1899] 기해 8월 16일에 환원하다.
조동욱씨의 자는 윤숙(允淑)이고 본관은 풍양이라. 포덕 19년[1878] 무인 7월 2일에 남원군 적과면 봉동리(蓬洞里)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단아한 인물로 포덕 35년 갑오 7월에 이기동씨에게 도를 받아 극력 포덕함으로 원직이 봉훈이더니 동 54년[1913] 계축 10월 18일에 환원하다.
강창조씨의 자는 창덕(昌德)이고 본관은 진주이다. 포덕 11년[1870] 경오 12월 9일에 남원군 매안면 하신리(下新里)에서 출생하다. 심성이 공평정대한 인물로 동 47년[1906] 병오 3월 15일에 도를 받아 지성이 탁월하더니 동 56년 갑인 5월 5일에 환원하다.
강창렬씨는 강창조씨의 친동생이라. 포덕 21년[1880] 경진 2월 10일에 남원군 사매면 하신리에서 출생하다. 심성이 단아한 인물로 동 47년[1906] 병오 3월 15일에 씨의 큰형에게 도를 받아 지성으로 도탑게 믿더니 동 50년 4월 8일에 환원하다.
김응선씨의 자는 권중(權中)이고 본관은 천안이라. 포덕 1년[1860] 4월에 남원군 매안면 신기리에서 출생하다. 심성이 인후한 인물로 동 32년[1891] 신묘 3월에 이기동씨에게 도를 받아 다년간 전교사의 직임으로 신실하게 근무하였으며 원직이 봉훈인대 동 56년 을묘 1월 30일에 환원하다.
황정석의 자는 영칠(永七)이고 본관은 장수라. 포덕 13년전인 1847년(정미년) 2월 7일에 남원군 적과면 율천리에서 출생하다. 심성이 후덕한 인물로 동 42년[1901] 신축 8월 20일에 이기동씨에게 도를 받아 오직 지극한 정성을 다하더니 동 53년[1912] 9월 10일에 환원하고 큰 아들 황종택(黃鍾澤)이 그 공적을 계승하여 신교하다.
김종오씨의 자는 광오(光五)이고 본관은 순천이라. 포덕 16년[1875] 을해 10월 18일에 남원군 둔덕면 동촌리에서 출생하다. 천품이 단아한 인물로 동 33년[1892] 임진 3월 10일에 씨의 큰형 김종황씨에게 도를 받아 지극한 정성으로 수도하더니 동 52년[1911] 신해 4월 29일에 환원하다.
김종호씨의 자는 광국(光國)이고 본관은 순천이라. 포덕 9년[1868] 무진 10월 3일에 남원군 둔덕면 동촌리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온화한 인물로 씨의 사촌형 김종황씨에게 동 32년 10월 10일에 도를 받아 진실한 믿음을 더욱 두텁게 하더니 동 53년[1912] 임자 9월 20일에 환원하다.
김성윤씨의 자는 치윤(致允)이고 본관은 순천이라. 포덕 6년[1865] 을축 5월 30일에 남원군 둔덕면 동촌리에서 출생하다. 심성이 너그럽고 곧은 인물로 동 33년[1892] 임진 3월 10일에 김재홍씨에게 도를 받아 정성으로 수련하더니 동 41년[1900] 8월 □일에 환원하다.
한용욱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청주더라. 포덕 4년전인 1856년(병진년) 3월 14일에 남원군 오지면 어은리(漁隱里)에서 출생하다. 동 32년 신묘 3월 10일에 도를 받아 포덕이 백여 호이더니 동 45년[1904] 갑진에 풍파의 놀람과 두려움으로 병이 생겨 동년 3월 15일에 환원하다.
이정의씨의 자는 윤명(潤明)이고 본관은 전주더라. 포덕 9년전인 1851년(신해년) 7월 27일에 남원군 둔덕면 동촌리에서 출생하다. 심성이 온화하여 군자의 덕풍이 있는 인물로 동 34년[1893] 3월 15일에 김종황씨에게 도를 받아 순실한 정성으로 수교(修敎)하며 포덕하여 원직이 봉훈인데 동 □월 □일에 환원하다.
신강우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고령이더라. 포덕 33년[1892] 임진 6월 20일에 남원군 남생면 낙동리(洛洞里)에서 출생하다. 동 49년[1908] 1월 □일에 도를 받아 지성으로 수도하다가 동 57년[1916] 7월 14일에 환원하다.
하영석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진주더라. 포덕 11년전인 1849년(기유년) □월 □일에 남원군 둔덕면 축동리(築洞里)에서 출생하다. 동 31년 경인 11월 3일에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은 후에 본시 평화한 천심으로써 수도한바 갑오의 풍파에 죽음에 들어가 회생한 위험이야말로 말로 할 수 없고 그 중에서도 열성으로 포덕하여 중정, 대정, 집강, 교수, 교장 등 직임을 거쳤고 또 교구장의 직임으로 여러 해 근로한 후 동 60년[1919] 기미 4월 16일에 환원하다.
김종황씨의 자는 율중(律重)이고 본관은 순천이더라. 포덕 7년[1866] 병인 2월 15일에 남원군 둔덕면 축동리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곧고 어질며 화평하여 친구들을 자기와 같이 여기고 매사에 기개와 대의를 지켰던[杖節執義] 인물로 동 31년 경인 11월 24일에 씨의 족숙 김홍기씨에게 도를 받아 철기둥같은 신념으로 수련하여 갑오 갑진의 풍파에 사지에 빠져 살아나온 것이 몇 번인가. 그 중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철심(鐵心)으로 백성 구제의 이상이 열렬하며 포덕이 수백호인바 원직이 수접주, 봉훈, 교훈(敎訓)이고 주직(住職)은 공선원, 교구장의 직임으로 헌신 근로하더니 홀연 번뇌증으로 여러 날을 고생할 때 측근[聯臂] 유태홍, 김경연 외 여러 사람과 사위 이강전을 대면하여 교(敎)의 장래를 부탁하거늘 사위 이강전이 환원의 두려운 마음으로 2, 3차 호소한즉 씨가 말하기를 한번 왔다가 한번 가는 것은 천리(天理)의 정해진 이치요, 인사(人事)가 본래 그러한 것이지 하고 동 62년[1921] 4월 3일에 환원하고 큰아들 김예연(金藝淵)이 그 공적을 이어 신교하다.
유동식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고흥이더라. 포덕 17년전인 1843년(계묘년) 4월 24일에 구례군 용방면 신기리(新基里)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강렬하고 심정이 맑고 곧은 인물로 동 44년[1903] 계묘 정월 17일에 송기호씨에게 도를 받아 단단한 기개로 신성(信誠)이 비범하고 포덕이 다수함으로 원직이 교령(敎領)이며 주직은 구례군 교구장의 직임으로 한결같이 근무하더니 동 53년[1912] 임자 4월 28일에 환원하다.
우집영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단양이더라. 포덕 16년전인 1844년(갑진년) 6월 30일에 구 남원군 신 곡성군 고달면 두계리(杜溪里)에서 출생하다. 동 46년 을사 5월 2일에 김종황씨에게 도를 받아 본심의 청렴결백함으로써 성신(誠信)의 화기[和]로 수도하여 군자의 기개[節]를 가지고 열성으로 복무하여 구례군 공선원의 임을 역임하였는데, 동 55년[1914] 갑인 2월 9일에 환원하다.
조경묵씨의 자는 경대(慶大)이고 본관은 옥천이더라. 포덕 6년[1865] 11월 27일에 구례군 외산면 학치리(鶴峙里)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관용(寬庸)하며 심정이 크고 뛰어난 인물로 동 32년 신묘 1월 23일에 도를 받아 말로 할 수 없는 풍상을 다 지내면서 교무에 근로하며 구례군 금융원의 임을 거쳤는데, 동 58년[1917] 정사 □월 □일에 환원하고 씨의 큰 아들 조기일(趙琪日)이 그 공적을 이어 신교하다.
장남선씨의 자는 응천(應天)이고 본관은 흥덕이며 도호(道號)는 진암(溱庵)이라. 포덕 8년전인 1852년(임자년) 6월 6일에 남원군 대산면 수정리(水晶里)에서 출생하시다. 천성이 어질고 후덕하고 맑고 곧으며 기개와 도량이 크고 뛰어나서 사소한 일에는 구애받지 아니하며 기개와 대의를 지킨 심상(心想)이 비범한 인물로 동 33년 임진 6월 23일에 도를 받아 즉시 세상일을 탈피하시고 무쌍한 성신(誠信)으로 수도연성하며 갑오의 위험한 경지에 구사일생의 비참함이야말로 말로 다 못할 것이며 갑진의 위험한 곳에도 또한 그러한지라 이와 같은 전란[劒戟]의 중에서 희생적 생활로도 백성 구제의 마음[濟衆의 心]을 잠시라도 놓아본 적이 없고 포덕이 수백 호이었으며 원직이 접사(接司), 접주, 수접주, 교장, 대접주, 의창대령(義昌大領), 교령, 교수, 교훈이고 주직이 20대 교구장, 남원교구장, 순회감독, 익산 대교구장 겸 교구장, 의사원의 직임을 역임하셨는데 동 62년[1921] 지목(地目)기념에 경성에 왕림하였다가 내려 올 때에 도중에서 순회 차로 두루 머물다가 신기(身氣) 불안한 질환으로 귀향하여 점점 심해질 무렵에 연비(聯臂)와 가족을 대하여 교의 장래를 일일이 부탁하고 동년 8월 □일에 환원하고 씨의 아들 장동식(張東植)이 공적을 이어 신교하다.
우학로씨의 자는 순국(順局)이고 본관은 단양이더라. 포덕 10년전인 1850년(경술년) 2월 18일에 곡성군 곡성면 고천리(孤川里)에서 출생하다. 동 35년 3월 10일에 도를 받아 성심으로 수도하며 천심이 평화하여 군자의 기개가 있음으로써 처음과 끝이 불변하였고 원직이 교수, 교장, 접사, 봉훈이며 또 강사의 직임을 역임하였는데, 동 59년[1918] 무오 3월 24일에 환원하고 그 아들 우종원(禹宗元)이 그 공적을 이어 신교하다.
이규준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경주라. 포덕 7년[1866] 병인 8월 19일에 남원군 주천면 회덕리(會德里)에서 출생하다. 천성이 화평하고 조용하며 심정이 맑고 깨끗한 인물로 동 49년 무신에 도를 받아 성심수도하며 근무 포덕하여 원직이 봉훈이고 주직은 전교사, 순회교사의 직임을 역임하였는데 동 58년[1917] 정사 10월 13일에 환원하다.
양해성씨의 자는 대중(大仲)이고 본관은 남원이더라. 포덕 13년[1872] 임신 3월 15일에 남원군 남원면 금성리(金城里)에서 출생하다. 천품이 단아하며 기개와 도량이 깨끗하여 완급(緩急)의 취사(取捨)를 자신이 마음먹은대로 하던 인물로 동 35년 갑오 2월 23일에 도를 받아 헌신적으로 수련하여 그해 풍파의 곤란을 일하는 사람의 일상사로 여기고 포덕에 열심하며 교무에 근로하여 원직이 봉훈이고 또 전교사의 직임으로 여러 해를 경과하였는데, 동 57년[1916] 병진 12월 9일에 환원할 때에 가족에게 명하여 도장을 청결하게 시키고 청수(淸水)에 목욕하고 또 청수 한 그릇을 탁상에 봉전(奉奠)하고 심고(心告)한 후에 교의 장래를 가족에게 신신(信信) 부탁하여 나의 후사를 잘 이으라 하고 즉시 환원하였는데 씨의 아들 양운만(梁雲滿)이 공적 속을 이었다.
김병옥씨의 자는 광언(光彦)이고 본관은 함창이더라. 포덕 17년[1876] 병자 2월 9일에 남원군 사매면 신기리에서 출생하다. 성품이 본래 후덕한 인물로 동 49년 무신 정월 17일에 도를 받아 열성으로 수도하여 오랫동안 전교사의 직임으로 근무하였고 수도한지 14개년을 한결같이 지내더니 동 62년[1921] 신유 10월 18일에 환원하였고 씨의 큰 아들 김관형(金瓘衡)이 그 공적을 이었더라.
장형기씨의 자는 원길(元吉)이고 본관은 흥덕이더라. 포덕 6년전인 1855년 을묘년 6월 12일에 남원군 보절면 성시리(城侍里)에서 출생하다. 그 성품이 온후 관대하며 기품이 크고 뛰어난 인물로 동 33년 임진 3월 27일에 도를 받아 근실하게 봉행하며 고난이 닥쳐도 인내심이 특수하여 이래 풍상 중에 풍찬노숙을 당연한 생활로 여기고 지내시며 원직이 교수, 접주, 집강, 봉훈이고 또 전교사, 순회교사의 직임을 역임하였으며 자기의 거주하던 가옥을 전교실로 바친 특수의 성적이 있더라. 동 1915년(을묘년) 1월 21일에 환원하다. 씨를 순서가 틀리고 섞여서 이 난(欄)에 기입함.
김덕봉씨의 자는 응화(應和)이고 본관은 김해더라. 포덕 20년[1879] □월 □일에 남원군 덕과면 사율리(沙栗里)에서 출생하다. 성품이 본래 순박한 인물로 동 48년 정미 정월 15일에 도를 받아 근실하게 준행하였으며 원직이 봉훈이며 또 전교사의 직임으로 여러 해 노력하였는데 동 61년[1920] 경신 6월 9일에 환원하다.
김인기씨의 자는 □□이고 순천이더라. 포덕 19년전인 1841년(신축년) 9월 30일에 진안군 남면 윤기리(閏基里)에서 출생하다. 동 30년 무자 3월 7일에 도를 받아 온갖 풍상을 다 겪고 30여 년간 근로하였는데, 원직이 교수, 집강, 교장, 봉훈, 교훈이며 주직(住職)은 강도원의 직임을 지냈는데 동년 □월 □일에 환원하다.
황두명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장수더라. 포덕 4년[1863] 계해 □월 □일에 남원군 사매면 인화리(仁化里)에서 출생하다. 동 46년 을사 8월 20일 도를 받아 지극히 종법을 순종하더니 동 60년 기미년[3.1운동]의 풍파의 여파로 10월 10일에 환원하다.
임양순씨의 자는 □□이고 본관은 평택이더라. 포덕 6년[1865] 을축 □월 □일에 구례군 외산면 학치리(鶴峙里)에서 출생하다. 본성이 인화(仁和)하고 마음 씀씀이가 정직한 인물로 동 43년 임인 9월 20일에 도를 받아 진실한 믿음으로 수도하였고 전교사의 직임으로 다년 노력하였는데, 동 60년 기미의 일성(一聲)에 선언서의 지목으로 광주감옥에서 수형 6개월하고 귀가한 후 생명을 겨우 보전하다가 동 64년[1923] 계해 1월 21일에 환원하다.
윤병달씨의 본관은 파평이고 자는 내서(乃瑞)더라. 포덕 11년전인 1849년(기유년)에 남원군 죽곡면 의산리(狋山里)에서 출생하다. 동 35년 2월 5일에 도를 받아 부지런하고 진실한 수도를 하다가 그해 풍난(風亂)도 많이 지내였는데, 동 51년[1910] 10월 15일에 환원하고 씨의 아들 윤재석(尹在錫), 윤재봉(尹在鳳), 윤재선(尹在先)이 그 공적을 이었더라.
배영호씨의 자는 찬홍(燦洪)이고 본관은 달성이더라. 포덕 22년전인 1838년(무술년) 5월 15일에 남원군 원 둔덕면 관월리(館月里)에서 출생하다. 동 31년 경인 10월 28일에 도를 받아 부지런하고 진실하게 포덕하며 원직이 교훈이며 또 봉훈의 직임으로 30여년 근로하다가 동 63년[1922] 임술 8월 28일에 환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