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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均菴丈林東豪氏略歷 균암장임동호씨약력
일러두기

均菴丈林東豪氏略歷

均菴丈林東豪氏略歷

布德 十一年 庚午 十月 二十九日에 生于驪州郡 陵西面 新池里하다 同三十四年 癸巳 四月 二十日에 入敎하다 (傳敎人 林學善)同年 五月에 來往 六十里되던 利川 소양山 小刹에 晝耕하면서 夜間에 來往하면서 鍊性工夫 月餘를 하다 同年에 執綱 敎職으로 視務 從事하다
 同 三十五年에 敎長職으로 視務하다 同年 八月에 一夜에 七百人까지 傳敎하다 同年 九月 二十二日에 孟監役 爲名人이 捕軍 四百餘名 帶率하고 東道人을 銃殺하면서 本里에 侵略하므로 陰城 無極市로 一般 道人 數萬名이 集會함에 參加하야 十餘日 留하다가 同年 十月에 槐山으로 出陣하넌 道中 愛재라넌 洞里에서 日兵 三十餘人을 銃殺하고 同郡 邑에서 宿泊하고 翌日에 行軍하야 淸州 淸川市에서 宿泊하고 翌日에 行陣하야 報恩 대바위 洞里에서 宿泊하고 翌日에 同郡 長安洞里에서 宿泊하얏넌데 捕軍 竝하야 百餘萬人이 되여 十餘日을 留하얏고 糧米넌 一時 飯米가 三百五十石에 超過되다
 同年 三月分에 八道 道人이 協力하야 全鮮 大都所를 前記 長安洞里에 長八間 廣六間 建坪으로 全羅道 木工匠을 高騁하야 三個月餘에 竣工되고 事務取扱은 義菴 先聖師가 主務하시고 八道道人의 帖紙出給을 全部 取扱하시다 旗號는 斥洋斥倭 彰義旗라 書하야 揭揚하다 其時에 海月神師宅은 靑山문바위 洞里에 居住하시다
 其後에 行陣하야 同郡 月岩市에 宿泊하고 翌日에 同郡 邑에서 宿泊하고 翌日에 永同郡 밑골洞里에서 宿泊하다 同里 李判書라 하넌 사람의게 冬衣 上下衣 一千件을 換着하다 翌日에 永同邑에서 宿泊하고 六七日間 留하다 其後에 沃川邑에 宿泊하다
 其時에 全奉準이가 論山에서 軍器를 多數 收集하야 留陣하고 沃川 聖師 本陣으로 通知하되 公州營을 攻擊할 터이니 同北門 外에 埋伏하얏다가 官軍을 擊破하라 하얏슴으로 義菴聖師 松菴 李鍾勳 林學先 李容九 鄭知澤 諸人이 捕軍 六七萬人을 引率하고 同 北門外에 埋伏하다 其時에 前日 約과 如히 全軍이 官軍과 應戰하야 四日間 擊戰에 本陣도 共同挑戰하다가 日暮를 當하야 勝負를 未決하고 도로 兩陣에서 密通하야 論山으로 退陣하야 全軍과 비로소 合陣하고 糧米 六萬石 彈藥을 多數 取合하고 十餘日을 留하다
 其年 前春에 孫化仲과 金皆男과 全奉準과 合同 行陣하다가 意思가 不合하야 도로 分離하야 其年 秋에 孫은 무장에서 起包하야 羅州를 攻擊하고 金은 淸州를 攻擊하다가 二人이 同一히 敗戰하다
 前記와 如히 十餘日 留하다가 다시 公州로 行陣하넌데 全은 魯城으로 向하야 公州山城으로 入하고 本陣 여러분은 이인에서 守備하넌 官軍을 擊破하고 同 山中에서 宿泊하고 翌日 未明에 西으로 公州로 攻擊하여 들어가넌 中 小蓋峰 적은 峰 二處를 占領하고 全은 東으로 公州山城 攻入하얏넌데 官軍은 小蓋大峰에 留陣하야 互相 攻擊하넌 中 잠깐 호軍하다가 失敗하야 경川따에 退陣하야 잇고 全은 그저 應戰하면서 本陣으로 通知하되 反擊하라 하얏쓰나 反軍치 안코 一日을 留陣하넌 中 全軍이 退陣하야 도로 論山으로 留陣하다
 其日 夜에 竹山 尹氏가 말하되 내가 道通이 已久나 不用我計고로 不出하얏넌데 我計를 用하면 成功하게 한다 하므로 잠깐 尹을 公州에 入게 하야다 其夜 子정에 連山에서 日軍 百五十名이 初頃 入來하얏다넌 報發이 來하다 其 翌日 未明에 捕軍 數萬人을 引率하고 여러분이 連山으로 行陣하넌 中 洞口에서 서로 만나 擊戰하야 官軍을 退擊하야 連山邑으로 들어가게 하고 卽時 同邑內에 傳令하야 鮮人은 全部 出來케 하고 火攻하야 官軍을 盡滅하고 도로 論山으로 全軍과 合陣하야 休息하넌 中 戰爭하다가 父子 兄弟間 喪生되여 회心이 全部 生하야 散陣이되넌 中 前記 尹漢이 휼計를 用하야 官軍을 紹介하야 上衣를 벗고 出陣하므로 尹의 속임에 빠저 江景江에서 沒死之境을 當한 境遇에 맛참 湖南 道人 數千名이 散去 捕軍을 다시 合同 攻擊하야 다행이 免死하야 礪山으로 가서 同郡三里에 集合하야 一日을 留하며 全의 執穀 九千石을 同里에서 犒軍하고 翌日에 益山으로 들어가 二日을 留하다가 도로 三里로 나와서 前記 執穀 九千石 中 殘穀을 各各携帶하고 其夜에 全州城中으로 下去하야 三日을 留하다가 다시금 긔 遠坪 장터에 가서 三日을 留하다가 翌日 未明에 官軍 數千名과 激戰하야 敗戰을 當하고 태인邑으로 ᄭᅩᆨ겨가서 三日을 留하다가 追激 官軍과 또 激戰하야 敗하고 古阜 白山으로 가서 井邑을 지나 長城 갈재를 너머가다가 海月 神師의 敬通을 남무에 걸어노흔 것을 孫松菴丈이 먼저 發見하얏넌데 말삼하얏쓰되 道人 中 眞實한 사람은 적고 多數가 盜적사람이니 그 사람을 달리고 단이다넌 全部 죽이고 말 것이니 곳 自己짐만큼 덜려다 두어라 사람이 多數히 死亡안이한 것은 그ᄃᆡ덜의 修道한 恩德이라 하섰다
 其夜에 潭陽따에 가서 留陣하고 聖師處所로 松菴丈이 가서 前記 海月神師의 敬通을 뵈이고 聖師의 意見을 問하여 나넌 곳 집으로 가면서 各各 歸家식힐 生覺이 有하다함에 聖師 所答은 나넌 數萬名덜이고 大事를 經營하다가 그저 解散할 수 읍다 하섯다 그 말삼 들은 松菴丈은 그 길로 바로 선진으로 떠낫다 日時넌 同年 十一月 晦日이더라 그러나 聖師께서 松菴丈 出發을 딸아 林學善氏와 相議하고 後陣으로 곳 出發하야 茂州를 지나서 一晝夜에 百十里를 行하야 任實따에 宿泊하고 翌日에 同郡 李炳春氏 宅 近處에 와서 宿泊하고 其夜에 聖師 松菴及諸人이 李炳春氏 宅에 가서 海月神師를 拜謁하고 곳못시고 떠나 十里를 와서 茂州地境에서 錦山及 各郡 聯合한 多數한 民步를 만나 一時 未滿에 擊退식히고 其日에 同郡 安城장터에 와서 二日을 留하고 翌日에 永同邑을 지나 同郡 미력땅이에서 宿泊하고 翌日에 二隊로 分하야 一隊는 靑山 龍山장터로 가서 留陣하고 一隊는 黃間 民步를 討伐하고 곳 龍山장터로 가서 合陣하야 三日을 留陣하던 中 첫날에 各陣 頭領에게 密通하기를 明日에넌 小戰이 有하고 再明日에넌 大戰이 有할 터이니 注意하라넌 海月神師의 命敎라 하엿다
 果若 密通과 如히 前日 冬服 上下衣 一千件 換着 需應하던 龍山場터 東南間 水石里에 居하넌 李判書의 子 李監使 爲人이 民步 五百名을 引率하고 水石이(靑山)목을 侵入하넌 것을 該목 守備軍에게 擊退을 當하야 全部 死亡하다
 第三日되넌 大戰이 有하다넌 날에 果若 龍山장터 北便으로넌 官軍及 靑山沃川 兩軍 民步 數千名이 合勢하야 달려오고 南으로넌 奉化 兵丁四五十人과 日兵 八百名이 ᄶᅩᆺ처들어옴을 當하고 西으로넌 前日부터 捕軍을 ᄭᅩᆺ쳐 날려오던 軍兵이 追入함에 當하야 海月神師께서 扶杖하시고 命敎하시되 여러 道人과 捕軍이 一切로 北向四拜하고 合天人意 師하고 둘리밀면 한 사람도 傷치 안코 또넌 철 한 개도 맛지 안이하리라 하심의 公州 李相招 姜채사 兩人이 말하기를 우리넌 다 죽어도 우리 道 彰世하실 海月 神師를 사르시게 하여야 後世의 우리 羞치를 免한다넌 高喊소리에 聖師, 林學善, 李鍾勳, 李容九 諸人이 拔劍乎통으로 前進進擊하야 一人도 傷함이 無히 多數한 官軍을 盡滅하고 神師를 모시고 靑山문바위 神師宅 門前을 當한즉 神師宅은 火燒已盡되엿넌데 神師께서넌 小不回顧하시고 顔色이 若如히 經過하서 靑山邑에 와서 一日을 留하넌 同時에 官兵四五人이 隱伏하얏다가 逃亡함을 보고 捕軍이 죽이고저 함에 神師께서 除止曉喩하서 放送하실 때에 安城 林明俊 驪州 林學善 兩人을 命하서 陣前까지 護送하시다
 翌日에 出陣하야 中間에서 一夜宿泊하고 다시 翌日 夕後에 行軍하야 報恩 북실로 와서 夕飯을 먹고 其夜에 繼續하야 夜飯을 지여 먹고 신발 단단히 하고 行裝單束하라넌 神師의 命敎가 기시다 不過 半時間內에 神師기신 洞里案山에서 放銃(속새, 회선 各等)하므로 本捕軍이 應戰 一時間餘에 神師께서 그 洞里에 數三丈되넌 藩籬를 超出하야 나오서 命敎하시되 官軍은 小數이고 我軍은 大數이니 勿爲戰鬪하고 但以放砲로 對應하다가 明日에 攻擊하라 하심으로 依敎以行이라가 翼未時에 官軍이 先抗함을 딸아 應戰 半日에 居之半이나 逃走하고 對應者 不過 幾百名 中 東西에서 별안간 多數 民步及兵丁이 擊入하므로 神師께서 命令하시되 東便을 무질너 치라 하심으로 압을 혜치고 뒤를 막으면서 처나가 俗離山으로 直入하야 慶北 尙州地方에 到達하야 午飯을 먹고 尙州 新興寺에서 神師를 모시고 잠깐 몸을 녹이고 회양동 와서 宿泊하고 翌日에 行軍하야 九井 별우물 지나 鎭川 방공로 와서 宿泊하고 翌日에 行軍하야 同郡 九萬里 장터를 지나자 맛참 官兵百五十名이 ᄶᅩᆺ처옴으로 後軍이 無難이 擊退하고 忠州 되잔니 洞里와서 夕飯을 먹고 其夜에 곳 떠나 同 郡 사창니 와서 朝飯 먹고 日兵 數千이 同郡 無極里에 왔다넌 報告를 듯고 聖師께서 軍中에 말삼하시되 長湖院及其他地域에 官軍이 多數 守備한다하니 그것을 擊破하랴넌냐 근냥 避하야 가랴넌냐 하심에 官軍을 擊退식히고 平安이 밤을 지ᄂᆡᆷ이 족케타 하고 無極里를 擊入하넌 중 洞口에 騎兵五六人이 나왓다가 도로 回入하므로 捕軍이 뒤를 쫏처 限 十里地境 되잔니 近處에서 官軍 數千名이 埋伏하야다가 突出하야 互相戰투하다가 北便에서 官軍이 圍入하므로 形勢가 不利하야 因爲四散奔走하야 鎭川 廣峴으로 갓다가 도로 回程하야 忠州 방깨울로 와서 본즉 한 村家에 神師 타시던 노새가 잇서 問한즉 神師께서 利川으로 가섯다하므로 陰竹 조木洞으로 와서 본즉 官軍이 大接主 朴陽元의 집을 衝火하야 全洞里가 消盡하얏슴으로 利川 갈매울 와서 午飯을 먹고 同郡 소고지를 곳 떠나와서 夕飯먹고(十二月 二十四日夕) 곳 떠나 竹山 七政寺로 가서 宿泊하고 다시 忠州 大삭골로 와서 林學善 騎馬夫 張福日이가 金三百兩을 恒常 保管하고 다니다가 前記 金額을 接長이 使用하라고 내녹코 간다 하므로 幾十兩을 反給함에 固辭不受하고 自己本家로 가넌 同時에 聖師를 모시고 단니던 尹將億 張正學 兩人도 各各 自己집으로 돌녀보내고 前期三百兩 中에서 麻鞋十足을 사고 殘金으로 路費를 補用하면서 神師, 聖師及松菴 龜菴 林學善 林學已 李鍾勳氏가 十二月 二十七日에 前記大삭골 洞口를 나오매 부처당이 ᄭᅩᆨ에서 官兵 數百名이 오므로 별안간 避할 수 읍서 논뚝밋 雪上에 各各 隱臥하얏다가 日暮를 기다려 떠나 陰竹 배남무정이 가서 飢寒을 견들 수 읍서 沈允秀 집에 가서 비밀히 門을 흔들며 主人을 불은즉 沈氏夫人이 나와서 마지하야 안으로 들어가서 內室을 치우고 夕飯 酒羹을 俱 하야 充分한 待遇를 바드시고 翌未明에 朝飯을 잡수시고 곳떠나 驪州 安坪정터를 지나 原州 손의실江을 건너 同郡 魯林里에서 宿泊하시고 翌日에 橫城邑에 가 宿泊하시고 翌三十日에 同郡 창봉으로 가서 林學已가 自己 長兄 林學善을 붓들고 집으로 도로가자 강청하므로 學善은 拒絶한즉 神師께서 나는 念慮말고 가라하시며 말삼하시되 가다가 中路에서 求援할 사람이 잇슬리라 하서 不得已 掩淚作別하고 神師 聖師 松菴 龜菴 李鍾勳은 麟蹄로 가시고 學善兄弟는 上창봉으로 向할 때에 明日은 正月一日인데 엇지하랴고 空手로 집에로 가자 하넌냐 한즉 學已 所答이 囊中에 錢二兩이 有하다 하므로 學善은 學已를 꾸지지면서 그러면 진직 잇다 하얏쓰면 一兩은 神師를 둘리게 하고 목메인 소리로 自己 아오을 집팽이로 한 번 따리엿다 因하야 數里를 온즉 엇떠한 喪人이 오넌데 갓가이 와서 學善의 손을 잡고 반가이 마젓다 그 사람은 前日 論山 接戰할 때에 自己 老親이 病들어서 學善의 周旋으로 自己집으로 四父子가 無事히 도러온 恩德이 有하얏다 그 사람과 同一히 橫川 南面 上下터 와서 사람을 忌하므로 喪人의 집으로 가지 못하고 申聖武집에서 비밀히 留하게 되다
 神師 一行은 麟蹄 崔禹範家에 留하다 松菴은 거기서 訓學하고 잇다 龜菴은 自己 堂姪집에 居하다 林東豪는 前記 利川 소고지서 十二月 二十四日 夕에 神聖師를 作別 還家하다
 乙未 正月 三十日에 林學已와 申聖武가 와서 神聖師 問安을 전하다 申聖武가 비밀히 말하되 神師께서 견듸실 수 읍쓰니 돈 百兩과 煙草 四斤만 보ᄂᆡ듸리라넌 林學善의 付托이 有하다 하야 申을 주어 곳 奉上하다
 四月에 李聖武가 林學善이가 神師의 命敎를 承하야 各道人의게 다시 連絡을 取하넌 通帳과 돈 百兩과 廣木一疋만 보ᄂᆡ라넌 말을 密傳하야 곳 依敎實行하다 同年 十月에 申聖武가 林學善의 密托을 가지고 와서 神師께서 견들 수 읍스니 돈을 점 周旋하야 보ᄂᆡ라 하야 곳 事實을 學善의 娣氏의게 말 한즉 土地文書을 出給하므로 黃命玄을 付托하야 千五十兩의 賣却하야 五十兩은 黃氏가 頭錢으로 先用하고 殘金千兩을 保管하얏다가 同十一月 十七日에 錢三百兩과 鯉魚二首를 買하야 橫城 草堂里 聖師處所로 가넌 途中에 同郡 上下터에서 李鍾勳을 만나고 李聖武의게 돈을 지워가지고 가서 學善과 聖師를 만나다 其夜로 곳 作別하고 回程하야 七十里를 나와 砥平 참나무 정니에서 밥을 지여 먹고 李鍾勳을 그집에 다시 만나 同行 歸來하다가 李넌 廣州 自己本第로 가고 百里와서 집에 일은 즉 밤이 채 박지아니하다
 同十二月에 申聖武가 다시 나와 殘金六百五十兩을 한가지 지고 上下터까지 가서 學善을 주고 곳 回程하다 其時에 神師宅을 原州郡 무뢰강임으로 移居하시기로 定하고 金錢을 더 周旋하기로 學善과 相議하고 와서 또 學善 娣氏의 자채논 四斗落을 千三百兩에 賣却하야 白米及食鹽을 買하야 全羅道 敎人 安萬을 招來하야 한가지 지고 강임 神師宅에 간즉 龜松兩菴과 廉昌順도 會合하얏고 聖師께서넌 月鎔母子를 招來하섯더라 一日을 留하고 나오다 同月晦頃에 또 錢米及醬油를 지고 神師宅에 來往하다 同三十七年 丙申正月 初旬에 錢米其他 食料品을 지고 神師宅에 來往하다 其時에 松菴 李鍾勳 李容九 三人과 同行하다가 原州邑에서 義兵을 만나 無限한 困難을 當하고 간신이 빠저 나와서 同郡 文幕江에 堅氷中에 同行三人을 어버근네고 난즉 兩脚이 어러서 多大한 困難을 當하고 오넌 道中에 京軍이 驪州邑에 駐屯한 고로 他處로 도러 집에 到着하다 同月 二十五에 錢穀을 지고 神師宅에 往來하다 同二月에 數次往來하고 또 同月 二十五日에 錢穀을 지고 神師宅에 간즉 神師께서 問하시되 近日 人心風俗의 如何를 問하시며 三月 初旬에넌 너의 집으로 나가겟다 하시다 三月二日에 神師 聖師 月鎔母子 龜菴 金允三 李鍾勳 李容九 廉昌順 朴寬義와 林東豪 집에로 나오서서 二日間을 留하시고 陰竹郡 게골가서 宿泊하시고 翌日에 忠州 西村으로 가시다 同年에 慶北 咸昌郡 申慶熙집으로 移居하시다
 (三十八年) 丁酉 二月에 陰竹郡 움이실로 搬移하실 때에 林東豪가 步轎로 모셔오다 同年에 原州郡 전거런니로 搬移하시다 其時에 林淳灝가 林東豪를 忌하고 비밀히 移居케 하시다 同年 四月에 李鍾勳이가 神師께 올이넌 ■書를 林東豪를 주어 原州 전거런니 神師宅에 간즉 또 前과 如히 林淳灝가 林東豪를 忌하고 여긔에 神師가 기시지안타 하므로 林東豪 所答이 나를 속이넌냐 하고 곳 回程하얏넌데 翌日에 神, 聖師 卽接 林東豪家에 나오서서 林淳灝를 大責하시다 네가 如干 섭섭하얏것니 하시다
 三十九年 戊戌 正月 初旬에 利川兵丁 數十人이 權聖佐를 압세우고 神師宅 門前을 當하얏쓸 때에 聖師께서 號令하시며서 엇지된 兵丁이 兩班의 宅에 罪人이 잇넌냐고 하너냐는 高聲 一番에 長枕을 들고 號令을 하여 權이 謝罪하고 兵丁을 도로 달리고 간 후 卽時에 聖師가 神師를 負하고 後山으로 避하시다 其後에 同郡 든둔으로 移居하시다 同年 四月一日夕에 林東豪가 海月神師께 拜謁하매 其時에 神師께서 林東豪의 손을 잡고 깃버하시며 너를 또 괴롭게 하겟쓰니 未安하다 하시며 驪州에 자채쌀를 또 점 팔아보내라넌 말삼이 기시다 其時에 王갈치 食料品을 奉上하얏넌데 半數 以上은 聖師宅에서 同郡 옥갓치 聖師宅으로 보ᄂᆡ시다 同日午正에 林學善이가 大全解釋問答 關係로 林淳灝를 大聲 叱責한 后 一時間 餘에 義菴聖師께서 內庭으로부터 나오서서 道談을 하시넌데 우리 敎에 頭目되넌 法은 人格과 文辭와 財産에나의 잇지 안코 道를 잘 알넌데 이나니라 하시고 繼續하야 말삼하시되 내말의 발오 깨닷고 敬服하넌 사람은 朴寅浩뿐이오 귀발게 듯넌 사람은 李容九라 하시다 同月 二日에 林東豪가 崔在學을 同伴하야 歸家하다 同月五日 天日紀念을 前期하야 崔東曦가 歲時에 박게로부터 들어오셔 하넌 말이 兵丁 數百名이 우리집으로 온다 하므로 普通 사람은 等閒히 듯고 神師께서 어린아희의 말이라도 卽天語라넌 말삼을 하시고 同紀念禮式에 聖師 其他 여러사람은 다 보ᄂᆡ고 林淳灝 一人만 덜리고 禮式을 奉行한 后 林淳灝가 곳 떠나오다가 十里쯤 되넌 地域에서 驪州 巡校가 安伯石을 압세우고 들어오넌 것을 본 林淳灝는 잠깐 폐身하랴 하넌 제음에 前記 巡校넌 먼저 알고 林淳灝를 체捕하야 압세우고 하넌 말이 너넌 海月神師 住所를 詳知할 터이니 가자 하므로 勢不得已 가다가 內念에 生覺하고 神師宅을 避하야 다른 곳으로 가랴 하넌 中 神師宅 들어가넌 洞口에 小流에 江을 當하야 巡校가 별안간 安伯石을 鐵棒으로 때리며 하넌 말이 이 江을 건느더냐 아니 건는더냐 高聲을 치넌 同時에 安 所答이 네 하고 이 江을 건는다 함에 巡校의 말이 林淳灝는 뒤세우고 安을 압세우라 하고 곳 神師宅으로 가서 神師를 捕縛하야 든둔 洞口 小江에서 林淳灝와 神師를 한배에 태우고 文幕와서 黃明玄과 세분이 同舟하고 同月 七日에 驪州로 下來하다 黃明玄은 同月五日 紀念前에 林淳灝와 相約하기를 林은 紀念式을 奉行하고 오고 黃은 옥갓치 聖師宅에서 나와서 옥직이 龜菴宅에서 만나기로 하얏떤 바 林이 不來하므로 궁금한 黃은 전거런니 林의 집으로 간즉 林의 夫人이 大驚하야 하넌 말이 지금 巡校가 와서 神師, 林잇넌 곳을 말하라 衣服을 벅기고 無限한 刑을 當하다가 너의 집에 갓가이 다니넌 사람이 업너냐고 重刑을 하므로 不得已 安伯石을 말하얏소 하넌 瞬間에 그 洞里사람이 몰녀들어와 黃을 捕縛하야 文幕江으로 가서 神師와 同舟하게 되엿다
 其時에 驪州 牧使 南廷綺가 神師의 威儀를 보기 爲하야 巡校를 命하야 對面한 后 別人이 아니라 不恭한 說話를 함에 對하야 神師께서 말삼하시되 내가 아모리 困窮한 境遇을 當하얏끼로 一邑 牧民之官이 되어 사람의 人格評論을 하니 그러한 資格으로 治民行政의 엇지 明哲히 하겟너냐고 嚴正히 譴責하시다 林淳灝넌 自己 父親이 本來 驪州邑에서 世居뿐 不啻라 一般 官屬과 親押하게 지ᄂᆡ넌 關係上 別般 運動으로 物質을 多數 消費하야 解放을 得하얏고 神師와 黃은 翌日 卽八日에 京城으로 向하시다
 其后 京城監獄에서 非常한 惡刑을 當하시고 同年 六月二日에 死刑을 當하시다 先時 布德 三十七年 丙申正月에 神師께서 太極印章을 彫刻하야 처음으로 施行할 時에 第一로 林東豪에 接主敎帖을 授與하시며 너넌 福이 多한 사람이라 말삼하시다 同四十年 己亥에 林東호가 京畿首接主가 되다 同四十五年 甲辰七月五日에 上京하다 同年九月에 削髮하고 驪州, 利川 兩郡을 通하야 一進會 支會를 設立하고 該事務를 代表하야 各郡에 出給하다 同年 十月에 上京하야 京本會 事務員이 되다 同四十六年 乙巳에 驪州로 下來하다 前日 利川會務 執務時에 林性春이가 事務費 二十원 寄附하고 林東豪가 白米三石을 寄附하다 同四十七年 丙午에 各郡에 敎區를 設立하넌 同時에 驪州郡에도 敎區를 設立하고 林東豪가 一等奉敎職으로 視務하넌 同時에 巡回敎師職으로 被任하다 兼典制員務하다 其后 驪州郡 敎區長으로 三年間 視務하고 六四鍊性工夫 百五日을 鳳凰閣에서 經過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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