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鍾勳略歷
略歷
父親 諱는 禹載오 字號는 致範이오 母堂은 善山金氏也라 居于 廣州郡 實村面 柳餘里하다(現은 合里라 稱ᄒᆞᆷ) 予의 名은 鍾球오 字는 振浩오 道號는 正菴이니 丙辰 二月 十九日 子時 出生也라 十歲에 漢文私塾에 入學하야 十四歲에 至하야 書는 伹記姓名而已라 하고 廢工하나 七八年間 優遊度日하다가 二十一歲에 至하야 本面 寺洞 陵谷이라 稱하는 魚氏山麓에 大森林을 買收하야 上村里 國井浦居 廉致五로 더부러 眞鉄店을 設하고 營業을 하다가 四年만에 廢店하고 同面 雪月里居 姜順心과 同業으로 水鉄店을 更設하고 做業하엿스나 其業이 又爲不進之致로 三年만에 亦爲破業하고 京城으로 來하야 判尹 李元會 周旋으로 司勇初仕에 入하야 後營別軍官職을 仕하나 是亦於心에 不滿足하야 其職을 辭하고 丙戌 七月 日에 仁川으로 下去하야 萬石洞北 松浦里에 船商客主를 始設하고 數萬金 財産을 得하야 商業興旺之際에 不意 營利運動의
失敗를 當하고 四年만에 又業을 廢하고 咸鏡道 咸興으로 去하니 其時 監司는 李敦夏氏也라 營內에 數三朔 逗遛하는 中 北靑 定平 永興 各郡 民擾가 起하야 人心이 擾亂한 故로 本鄕으로 來하야 幾年間 金錢貸借營業으로 在하다가 癸巳 正月 十七日에 東學에 入參하다 然而指目이 大熾하야 四方避身타가 三月 日에 忠淸道 報恩郡 帳內로 八道大都會가 된다 云 故로 舍弟 鍾珌을 驪州郡 梨浦에 送하야 馬二匹을 買來하야 常平錢 二百兩을 載하고 帳內로 下去하야 馬二匹과 葉錢二百
兩을 義菴先生ᄭᅦ 進呈하고 十餘日 留連할세 京畿偏義長任으로 其職을 視務中 不意 自政府로 輪訓을 持한 宣諭使 徐炳學이 來到說諭曰 卽 爲解散하야 各安其業하면 依其所願하야 一々施行한다 云 故로 海月神師 말ᄉᆞᆷ에 勢 不得已 解散이 必要타 하시고 곳 解散하다 予는 道人 洪秉箕 及 朴禹淳을 帶同하고 俗離山 後麓에 入하야 四十九日 致誠하는 中 僧一人이 來言曰 各營校卒輩가 圍山而捕捉東學軍하니 速爲避身 云 故로 不得已 卽 徃慶尙道尙州等地하야 轉進於京畿道
砥平郡龍門山하야 三七日 祈禱를 畢하고 本鄕으로 還來하야 其年夏間을 無事避禍하다가 秋九月에 報恩 帳內로 搬移하다 甲午六七月間에 四方各郡에서 東學軍을 一々捕捉하는 故로 各包로 輪通하야 一處集合同死하는 것이 當然하다 하고 八月에 起包되여 淸州邑으로 行陣하는 際에 東門外로 忽然 伏兵이 掩襲하야 銃火로 交戰하다가 道人數百名이 被殺되엿스나 予는 天佑神助之德을 蒙하야 幸히 避禍하고 忠州郡 外西村 廣熙院場으로 來하야 道人四萬餘人을 召集하야 數日 留陣하다가 無忌
場으로 移屯하고 報恩으로 行陣할 議論이 되어 槐山으로 下去하는 中 路에서 官軍과 衝突交火되어 戰을 勝捷하고 行陣할세 軍勢는 連亘二十餘里라 到着於帳內하야 三日 留陣하다 神師ᄭᅦ 軍容을 定할세 義菴先生으로 大統領 旗號를 拜하시고 全奎錫으로 先鋒을 定하고 予는 中軍으로 李容九로 後軍을 定하셧다 義菴先生 말ᄉᆞᆷ을 奉準하야 論山으로 下去하야 全琫準과 合陳한지 三日만에 義菴先生ᄭᅦ서 神師를 모시고 來하사 陣中중에 留駐하시다 官軍과 三次公州戰鬪에 强弱之勢로 戰
敗되고 官軍의 追擊을 因하야 全羅道 長城ᄭᅡ지 十四番의 交戰되다 茂朱 茂豊서 官軍과 交火하야 大捷하고 回陳之際에 靑山 龍山場에 到한 즉 官軍 及 民保軍이 炮擊四方 故로 逆襲交戰하야 官軍參領 李善在를 滅하고 戰을 大捷하다 其後 報恩北谷(俗稱 북실)에셔 一夜駐屯할세 正夜半에 兵丁이 四面掩襲되여 道人의 死傷者多하다 其時 神師를 모시고 華陽洞 華陽寺로 來하야 一夜留陣하고 忠州 外西村으로 行軍할세 兵丁이 追擊 故로 夜深토록 交戰타가 又不利로 因하야 其夜에 各敎人을 解散하다
時則 甲午 十二月 二十九日 夜라 神師와 義菴先生을 모시고 江原道 麟蹄郡 南面 楡木亭 崔永壽宅에 到하야 避禍하셧다 然而나 他人耳目에 여러 사람이 僻在一堂하는 것이 洞里人의 疑心을 作하는 듯 하야 神師와 義菴先生은 其宅에 留하시고 予는 二月初에 元山에 去하야 烟竹十二部를 每部 十六錢式 買得하야 高原으로 平安道 陽德 孟山 价川으로 碧潼 牛眠場에 徃하야 每部에 葉錢七兩式 放賣한 즉 利文이 不少한지라 回程而出할세 中路에 村々尋入하야 見牛皮를 買易하야 元山에 와셔 放賣한 즉 又 得大利하엿스니 是亦天師ᄭᅦ서 賜하신 橫財라 麟蹄郡으로 還來하야 神師ᄭᅦ 拜謁하고 所得利金은 義菴先生ᄭᅦ 進呈하고 十餘日 留陣後에 神師ᄭᅦ서는 永壽家에 계시고 予는 義菴先生 모시고 嶺東 杆城郡 幕樂里 津浦에 行商하는 李健瑞家에 徃하야 十餘日을 留陣하다가 海蔘을 買易하야 淸國으로 行商次 咸鏡道 元山 文川 高原 定平 永興 咸興을 過하야 三大嶺을 越하야 長津邑에서 數日宿泊하고 砢得碍嶺을 過하야 因路毒으로 速泗屯地 酒幕에서 二日을 留宿하고 江界邑內 李禹連 旅館에 去하야 十餘日 留連할세 時則
閏五月 望間이라 先生과 孫秉欽 及 予가 綿着冬衣를 其時에 始脫하고 單衫單袴를 身着하엿다 其時 主人兄弟 急請曰 淸國으로 行商하는 것이 大端危險타 하며 曲盡挽留여늘 問 其故한 즉 答曰 前者 日淸戰爭時에 朝鮮人이 日兵을 導引하야 淸兵을 亡케 하엿다 하고 鮮人을 逢着 則 不問曲直하고 無端慘殺 云하니 商於淸境이 萬々不可라 云 故로 不得已 回程하야 麟蹄郡 崔永壽宅으로 來到하야 神師ᄭᅦ 拜謁하고 淸國으로 去하고저 하다가 如意치 못한 事實을 細々稟達한 즉 神師ᄭᅦ서 잘
할엿다 말ᄉᆞᆷ하셧다 數日後 神師와 義菴先生은 그 家에 留하시고 予는 他人의 嫌疑를 避하야 그곳서 十里許 炭屯이라 稱하는 深山窮谷 張化僉家를 移徃하야 修人事畢曰 予는 全羅道 扶安郡 居하는 金書房으로 行商하는 際에 不意中路에서 營業에 失敗를 當하고 此山에 來한 ᄯᅳᆺ은 或 蕨菜나 採摘하야 狼狽한 資本이나 得할가 生覺하고 尋訪而來하엿스니 貴主人은 顧慮保護하기를 望하노라 云한 즉 其主人이 一言而許之하야 每朔 食価 金五兩式 約定하고 寄宿하다 每日 蕨菜를 採하여 夜이면 松脂木
火로 燭光을 作하야 其蕨을 去皮하며 翌日에 曙乾後 뭉치를 作하며 他處로 來往하며 放賣하여 食価에 補充하나 此로 恒是不足한지라 無可奈何라 前日 神師 前 見學한 草鞋 삼기를 事할세 最初에는 草鞋皃樣을 不成하앗스나 차차 成功되야 葉錢으로 一兩六錢 価値를 造成한지라 如此則 一朔食価를 饒當하고 錢用間 窘塞을 免하엿다 神師ᄭᅦ서 食主人處에 負債金이 限五十兩 된다는 事實을 卽聞하고 於心에 不安하야 本第에 但所在者沓十斗落也라 豊凶間 每年 三十石式 所出沓이
나 不可不 其沓을 放賣하야 所用할 意를 稟한 즉 義菴先生 말ᄉᆞᆷ에 君의 老父母 兩親ᄭᅦ서 在堂하실 ᄲᅮᆫ만 안이라 老境에 絶火之勢라 其事가 難하다 하시거늘 予 更稟曰 家에는 長成한 舍弟 及 長侄이 在하오니 少無念慮로소이다 한 즉 果如此면 意向대로 하라 하셧다 卽日 發程할세 路費가 全無 故로 神師ᄭᅦ서 草鞋 三部를 賜하신 것과 予가 造成한 草鞋 二部를 並 五部也라 其鞋를 路費로 充用하다 然而 其時ᄭᅡ지 指目이 大熾하야 近洞居 金宝勿 爲名者가 竹山捕校를 現役하는 故로 予를 捕捉하고저 注意하
는 바라 本第로 直入치 못하고 深夜에 近洞知音里 居하는 信者 尹起昌을 往訪次로 扣門請來한 즉 尹敎人이 見而大驚曰 大抵 金宝勿 者가 晝夜監視搜索 中이오니 若 逢着 則 大禍를 難免이라 云하나 予는 念慮말나 하고 其家上房으로 入하야 緊事가 有하야 來한 事實을 說明하고 卽時 家親ᄭᅦ 往하야 仔細한 말ᄉᆞᆷ을 達하여 달나 云한 즉 곳 가서 事實을 信々 말ᄉᆞᆷ한 즉 最初에는 大端驚歎曰 萬一 家兒가 還家한 줄을 知하면 被捉될 것이니 君의 家上房에 秘密而在하면 四面廣探하야 卽賣하여 줄 것이니
드러오지 말고 잇스라 하십더이다 云 故로 依其言하야 其家에 隱在하다 翌日 隣居 趙天敬 者의게 葉錢三百五十兩에 放賣하야 大銀錢으로 換하야 舍弟 鍾珌이가 三百兩을 持來言及曰 此夜로 直發하라 하기에 不得已 託曰 兩位先生의 綿着襦袴二襲을 裁縫하여 持하고 江原道 某處로 來하라 言及하고 卽時 發行하야 二日만에 還着 獜蹄郡하야 神師ᄭᅦ 拜謁하고 三百兩錢을 奉呈하엿다 其 前者에 尙州信者 李元八 通信 中에 師母 及 家族이 囚禁於靑山獄하야 多月間 苦楚를 當하시다가 放送되여 淸州郡 山
東面 山幕이라 稱하는 山谷에 信者 韓永鎭家에서 留連한다난 消息을 神師ᄭᅦ서 聞하시고 五十兩錢을 李元八 便으로 師母 前에 付送하시다 其後 予는 張化僉家로 去하야 留連하다가 十月 日에 兩位先生을 모시고 原州 雉岳山에 入하야 過冬하고 丙申年 正月 初에 京畿 陰竹郡 北面 桂谷 權在天宅에 先往하야 逗留 中 神師와 義菴先生ᄭᅦ서 往來하시다
陪從 義菴 松菴 龜菴 三氏를 其時 三菴號를 禪하시며 말ᄉᆞᆷ하시되 三人이 同心同力하야 間隙이 無하라 하셧다 其後 忠州 外西村 社倉里로 臨時住宅을 定하셧다가 陰城郡 倉谷里에 更住하시고 予는 其七月에 江原道 洪川郡 瑞石面 明洞里에 去하야 居留하는 中 道人 沈相鉉과 秀流山에 入하야 百日祈禱를 行하고 十月에 下山하야 神師ᄭᅦ 拜謁한 後 砥平郡 丹月面 大旺里 山谷 僻處에 往하야 數間茅屋을 搆하고 草鞋를 造成하야 生活을 僅保하는 中 隣洞 德水里居 信者 現加平 郡守 鄭志喆氏 婦人 洪志嬅氏의 顧護를 多蒙하엿다 丁酉 十一月 日에 神師ᄭᅦ서 原州全谷(전거러니)으로 搬移하야 住하시고 予는 其十二月 二十九日에 過歲次 陰竹郡 桂谷 本第로 乘夜而歸하야 兩親ᄭᅦ 拜謁하고 睡眠 中 子夜
半에 兵丁이 圍家捕捉함을 覺知하고 心祝 後 越牆外脫하야 無事避禍하니 此는 天師ᄭᅦ서 看攝所以라 其時에 父親ᄭᅦ서 被捉되엿섯다 予는 原州 全谷 神師宅으로 行路하는 際에 敎人 孫秉欽을 幸逢하야 這間困境事를 略說後에 此事實을 神師ᄭᅦ 稟達하라 言託하고 予는 砥平으로 往하야 鄭志喆氏를 面對하고 所經事를 說話하며 父親ᄭᅦ서 被捉된 緣由를 陳述한 즉 鄭氏는 現利 川府使의 外叔이라 其周旋力으로 父親ᄭᅦ서 無事放免되엿셧다 不意에 神師ᄭᅦ서 病患이 深重하야 臥床治療하는 中 戊戌 正月 初
에 陰竹 桂谷居 敎人 權聖佑라 하는 者 兵丁을 引率하고 瞥眼間 神師宅을 侵入 故로 義菴先生ᄭᅦ서 大叱曰 汝輩가 何某의 宅으로 知하고 入하냐뇨 하고 高聲嚴責則 低首無言而退하다 其夜에 病床에 게신 神師를 轎子에 모시고 砥平郡 東面 葛峴里 信者 李康洙家로 往할세 險路初行이라 暗黑莫夜에 山路를 失하고 彷徨之際에 忽然大虎가 出現하야 前路를 引導하여 念慮업시 葛峴里에 當到하앗다 十餘日 李康洙家에 留連하다가 洪川郡 南面 諸日里居 信者 吳敬燮宅으로 往하야 一朔 寄留하시다가 二月 初에 原州
郡 松々谷이라 稱하는 村에 數間茅屋을 定하시고 留하시다가 其四月 初五日은 大神師 道覺記念日也라 道人 某々諸氏가 神師宅으로 集合되엿다 神師ᄭᅦ서 諸敎人을 會合하시고 말ᄉᆞᆷ하시되 今番 享禮는 各歸其家致誠하라 하신대 義菴先生이 稟曰 門徒가 一處集合하야 享禮奉行은 每年前例 옵거늘 엇지 如此下敎를 하시나잇가 神師 말ᄉᆞᆷ에 如何런지 我言을 愼聽하라 하셧다 그럼으로 其命敎를 順從하야 義菴先生과 予는 二十里許 屯頓里居 信者 姜允心宅으로 四日 夜半에 敀하고 龜菴 松菴 孫秉欽 申應植 諸
氏는 翌日曉에 各歸其家하다 是日은 五日也라 早朝六時頃 討捕使 宋敬仁者官兵을 率하고 突入하야 神師를 捕縛하엿다 宋敬仁者는 何道人 一名을 紹介하야 誘引 因來하야 神師宅을 知하엿다 神師를 卽時 押上于京師하야 時 警務廳에 牢囚되엿다 十餘日 囚禁되셧다가 西小門監獄으로 移監되다 神師ᄭᅦ서 被捉되신 消息을 聞하고 孫秉欽과 同伴上京하야 其 內容을 仔細 알기 爲하야 前敎人 朴禹淳氏가 現內部 主事의 職으로 勤務하는 故로 乘夜尋訪하야 相議曰 如或 警務廳 巡檢을 仕하면 神師를
對顔하기 容易할 것이라 하고 朴禹淳을 紹介하야 葉錢一百兩을 出給하갓다는 於音票를 書出하고 共運動力으로 巡檢牒紙를 各得하엿다 然이나 內勤을 視務하거나 看守를 服務하는 자리가 안이오 外務를 보게 되얏스며 又況 神師ᄭᅦ서 西大門監獄으로 移監되신 故로 其 巡檢牒紙를 還給할 所謂 出給한다는 錢票를 還推하기에 大端困難되앗다 其後 一妙策을 思하고 西小門監獄 廳使頭目 金俊植을 往訪하고 述曰(當時 廳使라 頭目이라 稱함이 現 看守와 同함) 予는 本是 左捕廳 廳使로 累年 勤務하다가 其廳에서 事故를 因하야 出退한 後 至今 生活
이 困難하나 何處에 往하야 區々한 事情을 陳述하리오 草綠은 同色이라 金兄을 尋訪한 事는 如或 生活之道를 指導하여 주실가 冒廉而來하얏소 하고 叙禮後에 因 하야 內外 酒店으로 同往하야 酒一탁을 서엿다 其座席에서 結誼兄弟하고 卽往金俊植家하야 室內로 入하야 其妻의게 兄嫂氏로 稱하며 恭遜禮遇後 出外하야 佳香南艸四斤을 買得하야 表意曰 此些小薄物이나 兄嫂ᄭᅦ서 심심한데 잡수시오 하고 此로 因하야 交際가 親切하엿다 從此로 始하야 每日 數々出入하게 되여 情誼가 더욱 親하게 되엿다 一日은 金俊植을 對而說明曰 兄主 今日은 弟가 大端
緊切한 付託을 聞하고 來하앗소 答曰 何事인가요 對曰 非他言也라 這間 說話한 바어니와 弟가 飯床이나 賣하야 營業하는 故로 伊間에 何一老婦人이 來하여 宿泊 中 自己言內에 나는 子女도 엽고 親戚도 無하고 但只 老來 內外兩人이 居生하다가 家長이 兵丁의게 被捉되여 京城으로 押上되야 現西門監獄에 牢囚하엿다 云하나 其消息을 何如하여야 知하리오 幸望主人은 顧慮此情하야 其消息을 通知하여 달나하오나 아모리 思量하여도 兄님 外에 何處에 言及하리오 可矜한 其情을 弟가 聞하고 來하엿소 俊植 答曰 其囚人의 姓名이 何某라 云하던가요 對曰 崔法軒
이라 稱하더이다 又答曰 崔法軒이란 名은 無하고 崔法푸리는 有하지요 予對曰 崔法軒을 잘못 알고 崔法푸리라 云하기 쉽지요 然則 대관절 그 皃形이 何如하옵던잇가 金俊植 答曰 髮鬚이 多하고 頭顁이 버서지고 身體가 壯大한 老人이라 予答曰 然則 累若其人이오 金俊植 又曰 然이나 伊間에 其老人이 泄瀉로 因하야 大端幸苦中이라 云하는 故로 由是로 神師ᄭᅦ서 病患이 危重하심을 始知하엿다 其翌日에 更히 書札一封을 作하야 懇請於金俊植하며 說明曰 其婦人이 言託哀乞曰 此書札을 某樣周旋하야 崔老人前 信傳하야 달나 言及하기를 他人의 事情이나 可憐哀
愴한 情勢이라 ■須 尊兄은 아모ᄶᅩ록 此矜憐한 事情을 顧慮하야 暫時 傳信하는 것이 積善이오니 容納하옵소서 하고 數次 懇請하니 金言內에 此事는 果然 難處한 事라 云하거늘 又說明曰 然而 兄主ᄭᅦ서 傳하여 주실 意向만 有하면 不爲할 理가 萬無하니 此는 弟의 事로 料量하고 施行하여 달나 曲盡懇請하니 金이 不得已 書信을 密傳하여 其日 卽時 答書를 奉見하엿다 其書에 曰 여러 道人들 無事하오 諸敎人은 我가 이리된 것을 조금도 근심치 말고 敎를 잘밋으시오 我가 비록 如此하나 吾道는 잘 될 것이니 그리 알며 錢文五十兩만 드러보ᄂᆡ 주면 緊要히
用하걋고 하엿셧다 其後에도 累次 通信을 하엿스나 家族에 對한 말ᄉᆞᆷ은 別無하고 道의 事만 重言復言으로 付託하셧다 病患危重하신 消息을 聞하고 義菴先生과 協議하고 銅峴(구리ᄀᆡ) 乾材藥房에 去하야 蔘茸을 買來하야 湯藥으로 煎하야 金俊植으로 더부러 差入하며 又五十兩錢을 드러보ᄂᆡ셧다 其錢은 神師 自身의 所用한 바 안이라 其監獄內에 同囚한 飢人의 矜惻한 事情을 思하사 其錢으로 眞米餠을 만히 作滿하야 多數한 囚人을 飽食식엿다 然而 其時는 現監獄法과 갓치 嚴重치 안이함으로 그만한 自由는 有하엿다 予는 每日 金俊植家에 來往함
으로 神師ᄭᅦ서 何時에 裁判을 바드시며 仔細한 事實을 知하는 故로 裁判日을 當하면 其日 曉頭에 朝飯을 畢後에 獄門前 豫待彷徨하다가 十時나 十一時頃이면 神師 出獄하심을 見하게 된다 神師ᄭᅦ서 아모리 骨格이 壯大하실지라도 年齡七十二歲에 至하시고 兼得病患하사 數朔을 獄中에 滯在하시니 其皃樣을 望見한 즉 口不可形言이오 目不忍見이라 其全木重枷는 獄卒이 枷頭를 擧하고 平理院으로 行하실 時其 苦病하시는 形狀은 丮筆難記라 一二番式 路上에서 伏坐하실 時에 予는 神師의 側을 隨하다 神師ᄭᅦ서 默々히 望見하시며 大端悲憾하신 狀도 有
하실 際에 第一 苦悶함은 滂濘淚水를 難禁이라 他人의 耳目을 掩하야 暗拭其淚하며 十餘次 裁判을 追從하앗다 然而 倉卒間陰六月一日에 左道亂正律이란 罪名下에 死刑 宣告를 受하시고 그 翌日 午後 申時量에 絞刑執行을 當하시니 天地가 慘慘하야 大雨가 暴注하며 日月이 無光이라 엇지 天道가 無心하리오 大抵 速히 判決 執行은 神師의 病患이 日益 沈重하심으로 一日이라도 速爲判決하고 死刑을 急히 行함은 病死할 念慮가 有하야 그런 巨罪人을 身病으로써 自死하는 것은 國家體面이나 政府威信上
容恕하기 難한 事라 稱하고 그와 갓치 速히 判決되야 移囚於陸軍法院 하앗다가 絞刑을 當하셧다 然이나 又一憮慘한 事가 有하다 去甲午年分에 東學軍의게 戰亾한 安城郡 官軍 參領 李善在의 子가 恒常父讎를 報하고저 하는 中 神師ᄭᅦ서 死刑 當하심을 探知하고 陸軍法院 絞刑場 後庭에서 二日 經過하는 隙을 乘하야 其後 墻崩壞處로 越入하야 尸軆腦髓를 以木棒으로 亂搗大傷하엿다 然而 現今法律은 死刑執行後 二十四時
間이면 埋葬하나 其時法律은 死刑後 三日을 過하여야 棄却掩土하는 바라 그럼으로 神師尸軆를 初四日에야 光熙門外 北邙山에ᄂᆡ다 埋葬하엿다 其日暮에 金俊植과 相議 後 喪頭軍二名을 牽하고 光熙門 通近境으로 向하다가 望見한 즉 其時 左捕廳 捕校頭目 現役하는 閔應浩 爲名者 埋葬尸軆를 監視함으로 驚怯回頭하야 向東大門 小路하야 還來光熙門前하니 是時는 暗黑初昏이라 大雨가 下降하야 呎尺을 難分이오 萬道에 一人의 迹도 無하고 守直者 閔應浩도 歸하앗는지라 兼 其時하야 準備한 燭籠一件 黃燭五枚 紙雨傘一柄 麻布一疋 七星板一立을 持하고 金俊植과 木牌에 題名한 東
學魁首 崔時亨이라고 立牌한 葬地를 尋하엿다 燭籠 及 雨傘은 俊植의게 給하야 立케 하고 予는 喪頭軍과 同掘尸軆할세 募軍輩가 尸軆着手하기늘 不肯하야 抳鍼으로 추젹거리는 지라 予 大驚曰 아모리 他人의 尸軆기로 吾輩가 金錢을 受하고 眞實이 하여 주는 것이 可하거늘 如此不敬한 事는 苛々不可하도다 汝等二人은 下軆를 丮하면 予는 上軆를 運할 것이라 하고 塚中尸軆를 地上으로 運搬 詳密한 즉 但身着者 弊陋一接褥單件ᄲᅮᆫ이라 其褥는 解脫하야 破壙中에 埋하고 尸軆를 七星板上에 모시고
본즉 頭腦가 破傷되여 目不忍見이라 其腦髓를 바루 마추고 麻布로 掩襲하앗다 그 塚을 如前히 還封하고 木牌도 亦是 椀立後卽 發할세 大雨暴注中 冒雨達夜하야 廣州郡 北面居 信者 李相夏宅으로 往하야 義菴先生과 孫秉欽 及 李相夏 諸氏를 逢善하야 其李氏家 後麓에 土坎으로 掩土하다
大抵 神師ᄭᅦ서 死刑執行日로 始하야 土坎을 終하는 日ᄭᅡ지 大雨가 連降하야 霖潦가 되앗다 然而 死境에 至한 蒼生을 更生케 하고 저 하며 腐敗한 世上을 洗滌하시기 爲하야 惠雨가 下降한 바오 三十八年間 眞理를 實傳하며 群衆을 聚合하야 新世界를 創造하실 目的을 達하시기에 努力하신 ᄇᆡ라 然이나 哀痛으로 臨時 土坎을 畢하고 其翌日 曉頭 義菴先生을 모시고 砥平郡 大旺里로 下去하야 一朔을 留連하다가 義菴先生ᄭᅦ서는 忠淸道 唐津郡 茅谷이라 稱하는 洞里에(ᄯᅴ율) 住宅을 定하여 下往하실 予는 砥平 大旺里에 在하는 際에 十月 日 兵丁輩의게 ᄶᅩᆺ기여 單衫單袴를 着身한 ᄃᆡ로 龍門山上 上峰으로 逃走하다 夜深天寒에 霜風冷氣는 矻人飢骨이라 堪冷寒中 暗夜密林에 不分東西하고 扶樹不摩石하며 尋逕下去하다가 層巖絶壁 懸崖에셔 墜落
되엿스나 마ᄎᆞᆷ 木藤上에 걸녀 僥倖이 危境을 免하고 遠望炯光而尋下人家하다 맛ᄎᆞᆷᄂᆡ 幸히 감아울이란 洞里 沈元日家에 當頭하야 叩門而入한즉 舍廊下突에셔 臥寢하던 老人은 沈元日의 父親也라 其老人이 深夜에 慌急之鼓를 聞하고 驚怯起坐하야 挑燭視之하니 衣服은 盡爲弊裂하고 頭髮은 恰似亂麻하야 텹숱욱한 蓬頭皃樣이 是作狂人之狀이라 慌忙問之어늘 對曰 予는 如此한 人으로 不意 兵丁의 追擊을 避하야 來한 事緣을 略說하며 山中에셔 苦楚當한 細々 實情을 陳述한즉 其老人이 聞之하고 大端可憐타 하며 內側越便 一俠房에 安身避禍
케 하다 其數日後 本第로 還來하야 家族을 牽하고 뒤 楊根 北面 석밧항이란 洞里로 搬移하야 草屋數間을 定하고 一年間 草鞋商으로 僅保하여 지ᄂᆡ다 庚子年 二月 初로붓허 楊根 자점이란 洞里와 原州 龍仁 里川 楊州 各郡으로 轉輾居接하다가 甲辰 一月 日에 京城으로 上來하야 日本에 渡하야 義菴先生을 侍하고 在하다가 九月 日에 還國하야 進步會를 創設하고 更爲一進會로 名義變更更進行中 乙巳 十一月 日에 天道敎 門牌를 大韓門前 淸國人家에 臨時事務所를 定하엿다 其時 兵丁輩가 圍墻砲擊하는 際에 日兵數十人이 過하다가 現狀을 目睹하고 所謂 兵丁을 逐出함
으로 敎人의 死는 無하나 重輕傷者 多하엿다 丙午 一月 初四日 義菴先生ᄭᅦ셔 還國하신다 電信이 着하앗기에 釜山驛에 下往하야 모시고 上京하야 茶洞에 臨時住宅을 定하고 天道敎 中央 門牌를 掛하고 事務를 處理하다 其時 予는 顧問의 任으로 敎務에 從事하앗다 其二月에 天道敎 宗令을 發하야 各都府郡에 敎區를 設하고 天道敎를 廣布하기 爲하야 十三道에 特派員 二十六人을 選定하야 每道二人式 派送하야 天道敎 宗旨와 目的의 公函을 各府郡署에 交涉하며 數十年間 修道敎人의게 慰問도 하며 ᄯᅩ 敎理를 坊々谷々 敎人 及 敎外人ᄭᅡ지라도 說明하앗다 同年 八月 日에 一進會를
廢止하고 天道敎로만 從事하는 것이 可하다는 會議가 開하야 其時 一進會長 李容九 及 宋秉畯 兩氏를 招請하야 一進會 廢止 事를 說明한즉 兩氏는 絶對的不肯하는지라 再三勸告하나 一不聽從이어늘 義菴先生 말ᄉᆞᆷ에 曰 吾輩의 目的은 但히 天道敎也라 萬一 李宋 兩人이 听從치 안이하면 不可不 敎外人으로 認證할 것이오 黜敎하는 것이 當然한지라 하고 一進會로 從事者六十二人을 黜敎後 新聞紙上으로 天下에 廣布하얏다 其時에 李容九가 予의게 懇請曰 大臣으로 薦望하엿스니 一進會로 從事하자는 言辭로 數次 勸告를 聞하앗다 對曰 予는 但只 吾師의 心法을 바든
者이라 大臣之職을 엇지 要求하리오 以此事實로 拒絶하엿다 丁未 六月 日에 玄機司長의 任으로 勤務하다가 八月分에 警務廳으로 被捉되야 累朔間 苦楚를 經하고 幸히 十一月 日에 放免되앗다 其時 警務使는 一進會 出身 具然壽也라(宋秉畯 食眷으로 服從者라) 大抵 捉囚하야 困苦를 當한 事는 前日 數次 一進會 組織을 拒絶하고 听從치 안이한 陰害之事也라 戊申 二月 日에 大宗司長의 任으로 勤務하다가 己酉 八月 日에 其職을 辭免한즉 洪秉箕氏가 其後任을 繼承하고 予는 長老의 任을 當하엿다
庚戌 五月 十五日 東小門外 華溪寺 附屬 三聖菴에셔 四十九日 祈禱하는 時에 降詩가 有하니 其詩曰
海國雲晴月色明 空界住在天亦無
碧波動虛人果落 心月始成慧寶鑑
韓天更晴運亦明 聖世樹德萬世榮
如天大德廣布日 守誠信賢共飽腹
神動天亦隨 影流碧海中
萬物鬼神迹 肉身水上泡
誰云身永死 人後人亦在
身雖化仙我玆在 一來一去何以嫌
來天去天都是我 來人去人果亦天
換骨脫其形 更還吾不知
春去春又來 花落花更開
大道出于天 世人天地影
薰風吹去日 天下一時知
平生何所求 志在賢門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