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12월 초1일 각 읍(邑)과 본읍(本邑) 16개 면에 보낸 감결(甘結)과 전령(傳令)
무릇 성인(聖人)의 대도(大道)가 만고에 걸쳐 서로 전하여 이에 요순(堯舜)ㆍ공맹(孔孟)ㆍ정주(程朱)의 학문이 있게 되었고, 국가의 법망이 사방을 통제하여 문란하지 않게 됨은 군신(君臣)ㆍ상하(上下)ㆍ귀천(貴賤)의 분별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이것을 일러 사람이 날마다 떳떳이 하는 행위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와 만물이 공유하는 법칙이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성스러운 왕조(王朝)의 융성한 치세에는 6, 7명의 성군(聖君)이 나와 계승되는 아름다운 덕이 인민의 골수에 스며들어 500년 동안 배양한 은택이 있으므로 전국이 모두 그 훈훈한 은택의 범주에 들어, 백성들이 각각 농사 지어 배불리 먹으며 태평시대를 구가하였다. 그런데 무슨 일종의 사학(邪學)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현혹하고 방곡(坊曲)을 선동하며, 주부(呪符)의 불경스런 설(說)이 마치 (황로(黃老)의 도(道)를 표방한) 황건적(黃巾賊)의 후신인 양 무뢰배들을 불러 모았으니, 이들은 모두 녹림(綠林)의 도당(盜黨)이었다. 심지어는 황지농병(潢池弄兵)으로 변하여 수령을 겁주는가 하면, 대도시 한복판에서 관리를 위협하고 공가(公家)의 수납물을 약탈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인자한 임금님은 살리기를 좋아하신 진정한 마음으로 간절하고 측은한 뜻을 담은 윤지(綸旨)를 여러 번 내리셨다.
아! 저 비류(匪類)의 억센 무리들의 날뛰는 기염이 점점 거세져 응달진 비탈의 차가운 속에는 아직도 완악한 역적의 싹이 많으므로 추상같은 위엄을 보여야 하겠기에 병거(兵車)를 보내게 된 것이다. 본 군문(軍門)은 부끄럽게도 천박한 재질로 임금님의 은칙(恩勅)을 받들었으니, 책임이 워낙 중대하므로 (비류를 소탕하는) 일을 잘 마쳐야 할 큰 계책에 대해 참으로 황공함을 느끼고, 괴수(魁帥)는 섬멸하고 위협을 못 견뎌 억지로 따른 자는 사면하려 하니, 실로 형벌을 신중히 하시는 성덕(聖德)이다.
그런데 10주(州) 안에서 ‘동도(東徒)’라고 이름한 자들은 얼굴과 마음을 고쳐서 일신하여 변화하는 영역으로 돌아오지 않으니, 그들을 효수(梟首)해서 대중을 깨우치기 위하여 삼척법(三尺法)을 베푸는 일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이에 영칙(令飭)하니 각각 두렵게 여기는 생각을 가지고 예전에 더러운 풍속에 물든 자들은 모두 새롭게 하려는 정책에 참여하도록 하라.
이것을 죄다 알려서 각각 안도하게 할 것이며, 이 전령의 뜻을 거리와 벽에 내걸어서 한 명의 인민도 모르고 한탄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마땅할 것.
- 1. 동도(東徒)가 재물을 겁탈하고 남의 무덤을 강제로 파헤치고 남의 집에 불을 지르는 행위는 온 고을이 다 아는 바이다. 해당 면으로부터 이교(吏校)와 촌민(村民)을 막론하고 만일 그들을 본 군문에 잡아들이면 후한 상을 내릴 것.
- 1. 위협을 당해 내지 못해서 억지로 들어갔다가 곧 귀화한 자는 각각 그 본업으로 돌아가서 안심하고 살 것.
- 1. 진교배(鎭校輩) 중에 (비류의 뒤를) 밟아 잡을 때에 그들의 귀화 여부는 탐문하지 않은 채 재화와 뇌물을 이익으로 여기며 조종하여 폐단을 일으키는 자는 일체 금단할 것.
- 1. 거괴(巨魁)를 잡을 경우, 그의 가산과 집물(什物) 및 작당해서 탈취한 물건들은 먼저 해당 동리로부터 일을 잘 아는 두민(頭民)을 모아서 내용물을 자세히 살펴보고 지방관에게 납입하도록 하고, 그로 하여금 다시 본 군문에 보고하게 하되 중간에서 유실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
- 1. 귀화한 사람들의 성명 및 그들이 사는 주소를 책으로 작성해서 이달 초5일 안으로 와서 바치고 이른바 ‘체지(帖紙)’라는 것도 아울러 거두어 바치도록 할 것.
- 1. 동도(東徒)가 입으로만 귀화하고 마음으로는 귀화하지 않을 경우, 스스로 마땅히 달리 염탐하는 길이 있어야 하고, 끝내 뉘우치지 않는 자는 단연코 도살해야 할 것.
- 1. 각 동리마다 5가(家)로 통(統)을 편성하고 책으로 작성해서 이달 초5일 안으로 와서 바치되, 만일 통 안에 모반을 꾀하는 자가 있어도 잡아 올리지 않고 사적으로 숨긴다면 해당 통수(統首) 및 이장(里長)을 단연코 별도로 엄하게 처리해야 할 것.
- 1. 병정(兵丁)을 칭탁하고 민간에 폐단을 일으키는 경우, 그 공문의 유무를 상고해서 공문이 없는 자는 즉각 결박해 잡아 올리고, 공문이 있는 자는 병정 및 죄인이 같이 와서 본 군문에 대기하여 처분을 기다리도록 할 것.
- 1. 일을 잘 아는 장교(將校) 한 사람을 관문(關文)이 도착하는 즉시 본 군문에 보낼 것.
- 1. 이교(吏校)와 노령(奴令) 및 읍내에 사는 양민의 경우, 나이 20세 이상 50세 이하인 사람에 대해서는 책으로 작성하고, 포군(砲軍)의 본래 숫자가 몇 명인가에 대해서도 또한 책으로 작성해서 장교가 가지고 올 것.
- 1. 각 면(面)마다 장차 약정(約正) 한 사람씩을 두되, 그 풍력(風力)과 물망(物望)이 감당할 만한 사람을 골라서 책으로 작성해 와 바치면, 본 군문으로부터 차지(差紙, 임명장)를 작성해서 지급할 것.
- 1. 인동(仁同) 1. 칠곡(漆谷) 1. 선산(善山) 1. 개령(開寧) 1. 김산(金山) 1. 군위(軍威) 1. 의흥(義興) 1. 비안(比安) 1. 성주(星州) 1. 고령(高靈) 등 16면에 전령함.
주석
감결(甘結)
감결(甘結):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로 보내던 공문서이다.
전령(傳令)
전령(傳令):전하여 보내는 훈령(訓令)이나 고시(告示)이다.
황건적(黃巾賊)
황건적(黃巾賊):중국 후한(後漢) 말에 장각(張角)을 두목으로 해서 황로(黃老)의 도(道)를 받든다는 명분으로 일어난 유적(流賊)이다.
녹림(綠林)
녹림(綠林):중국 한(漢)나라 왕망(王莽) 시대에 왕광(王匡)ㆍ왕봉(王鳳) 등 ‘무뢰배’ 수백 명이 깊은 산으로 숨어들어 강도가 되었기 때문에 그 도적을 ‘녹림’이라고 명명하였으니, 여기서는 그를 빗대서 말한 것이다.
황지농병(潢池弄兵)
황지농병(潢池弄兵):반란을 이름. 『한서(漢書)』 「순리전(循吏傳)」 공수(龔遂) 조에 “바닷가 먼 곳은 성상의 교화를 입지 못하여 백성들이 기한에 허덕이는데, 관리들이 구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폐하의 백성들로 하여금 폐하의 병기를 황지 속에서 휘두르게 할 뿐입니다.[海瀕遐遠 不霑聖化 其民困於飢寒 而吏不恤 故使陛下赤子 弄陛下之兵於潢池中耳]”라고 했기 때문에 뒤에 ‘황지농병’은 반란을 이르게 되었다.
대도시……한다:『한서』 「가의전(賈誼傳)」에 “도적이 백주에 대도시 한복판에서 관리를 위협하고 금을 약탈하였다.[盜者 白晝大都之中 剽吏而奪之金]”란 구절이 보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삼척법(三尺法)
삼척법(三尺法):고대 중국에서 석 자 길이의 죽간(竹簡)에 법률을 적었던 고사에서 법률을 가리킨다.
영칙(令飭)
영칙(令飭):영(令)으로 신칙(申飭)하는 일이다.
집물(什物)
집물(什物):살림살이에 쓰는 온갖 기구를 가리킨다.
두민(頭民)
두민(頭民):동네에서 나이가 많고 식견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체지(帖紙)’
체지(帖紙):관아(官衙)에서 이례(吏隷)를 고용하는 서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