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에 보낸 감결
본읍의 중군소(中軍所)를 혁파할 뜻에 대하여 이미 감칙(甘飭)한 바 있으니, 스스로 마땅히 감사(甘辭)에 의하여 거행했어야 하는데, 여러 날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보고해 옴이 없는 것은 무슨 곡절인지 모르겠다. 지금부터는 소위 ‘교졸’은 절대로 출사(出使)하여 폐단을 일으키지 말고, 전에 이미 아들인 동도의 가산은 대부분 적몰하였다고 하니, 비류(匪類)의 집물(什物)을 군수(軍需)로 취해 쓰는 것은 사리에 당연하다. 이 감결이 도착하는 즉시 빼앗은 집물 중에 전곡(錢穀)과 우마(牛馬)는 얼마이며, 작전(作錢)하여 취해 쓸 만한 잡물(雜物)을 낱낱이 책으로 작성해 와 바쳐서 본 군문의 수용(需用)에 보충하되, 아무 마을 아무 백성이 빼앗긴 다소의 물건에는 스스로 염탐하는 방도를 두어,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뒤에 기록해서 보고해 올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