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영에 보낸 이문
서로 상고할 일. 곧 도착한 회이(回移)에 말씀하였거니와, 동도 수만 명이 그동안에 이미 황간현에서 성을 함락하고 그대로 영동 땅에 눌러앉아 진을 치고 있으므로 누차 해당 현에서 구원을 청하기 때문에, 부득이 제가 신설한 병정 200명과 개령의 포군(砲軍) 95명과 선산의 포군 100명을 합한 395명을 이달 초10일에 징발하여 유격장으로 하여금 거느리고 황간 창촌점(倉村店)을 방수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도착한 조방장 김산군수의 이문 내에 “곧 도착한 병정은 이달 초10일 신시(申時)에 나갔다.”라고 하고, 전라도 무주 겸임 제원도 찰방의 문보(文報) 내에 “일본 사람은 아직 힘써 돕지 않는데, 동도 만여 명이 곧 영동현(永同縣)으로 향해 가 바야흐로 도소(都所)를 설치하니, 최적(崔賊) 법헌(法軒)이 분명 그 가운데 있을 것이므로 후환이 없지 않을 터인데 방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고, 또 듣건대 “그 무리들이 바야흐로 김산군(金山郡)을 향하여 도륙(屠戮)하려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진멸(殄滅)할 방법을 조금도 느슨하게 할 수 없는데, 이 같은 오합지졸(烏合之卒)로는 형세상 엄습하기 어려우므로 이에 이문을 하오니, 귀영(貴營)의 병정을 한 100명 정도 밤새워 보내와 합력하여 소탕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