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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소모사실(김산) 召募事實(金山)
일러두기

경영(京營)에 올린 보이(報移)

경상도 소모사가 첩보(牒報)하는 일. 경건하게 직무를 받은 연유에 대해서는 전에 이미 장계 등보(狀啓謄報)하였습니다. 저는 외람되이 보잘것없는 재주로 지금 요충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전라도 무주(茂朱)의 적당(賊黨) 수만 명이 둔취(屯聚)하여 이미 황간읍(黃澗邑)의 성을 함락시키고 여러 날 청산현(靑山縣) 지역에 진(陣)을 치고 있다가 장차 괘방령과 추풍령의 두 재 사이로 향하려 하는데, 그들 명성과 위세가 워낙 거세므로 비단 누차에 걸쳐 해당 읍에서 구원을 청할 뿐이 아니고 이 적당이 만일 재를 넘는다면 재 밖의 모든 군현은 어떤 지경에 이를지 모릅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우환이 조석 간에 다가와 있기 때문에 본읍은 민정(民丁)을 가호에 따라 징발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본읍의 감영에 원병을 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읍(屬邑)에 병정을 징집하여 모아진 군병이 많게는 5, 6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맨 먼저 황간(黃澗) 창촌(倉村)의 좁은 어구를 굳게 지켜 감히 재를 넘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였더니, 적의 세력이 점점 보은(報恩) 지방으로 물러나갔습니다. 순영(巡營)에서 온 영관(領官)과 본진의 영관으로 하여금 병정을 많이 거느리고 적을 엄습하려 그 힘을 모아 뒤를 쫓게 할 때에 일본 병정이 달려와서 서로 합세하여 보은의 종곡(鍾谷)에서 적과 접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적이 결국 패하여 달아나고 남은 무리가 모두 도망해 흩어진 뒤에 먼 곳에서 온 군병은 차차 부대를 해체하여 돌려보내고 본읍의 민정(民丁)만을 가지고 괘방령과 추풍령의 좁은 어구를 방수하였습니다. 현재는 조금 진정된 상태이니 참으로 천만다행입니다. 그러나 잠적한 괴수와 도망간 협종(脅從)을 모두 초멸하지 못하여 밤낮으로 걱정과 분함을 참지 못하고 있던 중에 금년 12월 13일 맨 먼저 비류의 괴수 조복용(曺卜用)ㆍ남성원(南聖元)ㆍ이인길(李麟吉)ㆍ이수원(李守元)ㆍ김봉이(金奉伊) 등 다섯 놈을 잡아 엄한 형벌로 취조하였더니, 낱낱이 죄를 자복하였으므로 당일 사시(巳時)께 조방장(助防將) 김산군수(金山郡守)와 연무당(鍊武堂)에 자리를 열어 모두 포살하였습니다.
 18일에는 무주의 적 전천순(全千順)과 김원창(金元昌) 두 놈을 붙잡았습니다. 이들은 곧 전봉준(全琫俊)의 폐부(肺腑) 역할을 하는 괴수로, 영남에 출몰하면서 기포(起包)를 독려하는 놈이었기 때문에 또한 당장에 포살하였습니다.
 24일에는 창괴(倡魁) 네 놈 중 남홍언(南洪彦)과 편사흠(片士欽)을 붙잡았는데, 이들은 바로 영남의 큰 도적입니다. 이들 두 놈이 거느린 포(包)는 5, 6만 명이나 되는데, 금년 8월 이후로 크게 세력을 떨쳐 소리치기를 “전라도 한 도는 거의 다 성을 함락하였고, 충청도와 경상도 두 도는 장차 도륙(屠戮)할 것이니, 통일하는 계획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다.”라고 하였고, 또한 이런 뜻을 가지고 작성한 그들의 소위 “개남의 처소로 보낸 신하라고 일컫는 소초(疏草)”라는 것을 그들 집에서 찾아냈으니, 참으로 국가가 생긴 이래로 있지 않았던 대역적이었습니다.
 25일에는 조방장 김산군수와 김천역(金泉驛) 대도(大都) 장시로 달려가서 당일 신시(申時)께 남홍언과 편사흠 두 놈을 효수하여 경각시키니 대중이 열복(悅服)하였으며, 동시에 잡은 최복지(崔福只)와 김순필(金順弼)은 죄질의 경중을 나누어서 즉석에서 포살하였습니다. 그 밖의 산발적으로 잡은 10여 놈은 그 동정을 관찰하고 공초(供招)를 서로 비교해서 살펴보았는데, 강제로 협박을 입어 따른 것이 분명하여 의심할 나위가 없기 때문에 각각 곤장 30대를 엄하게 때려 모두 타일러 방면하였으니, 협종한 무리는 ‘다스리지 말라.’는 전법이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군의 경내에 마음을 바꾸고 도를 어겼다가 귀화하여 달려와 호소한 자가 3천여 명이 되었는데, 그 정상을 들어 보고 참작해서 판결하여 각각 편안한 마음으로 업무에 종사하게 하였습니다.
 이달 25일에는 영관으로 하여금 병정을 거느리고 보은으로 달려가서 그 읍에 있는 거괴 김화준(金和俊)을 붙잡도록 하였습니다. 이놈은 바로 최시형(崔時亨)과 아주 가까운 놈으로서 그의 죄상을 추구하면 잠시도 용서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장에 포살하였으니, 얼마나 통쾌한지 모르겠습니다.
 본군에 설치한 별포군(別砲軍)은 200명인데, 날마다 연습시켜 급하고 어려울 때의 쓰임에 대비하고 있고, 황간(黃澗)ㆍ영동(永同)ㆍ청산(靑山)ㆍ보은(報恩)ㆍ상주(尙州)ㆍ선산(善山)ㆍ개령(開寧)ㆍ김산(金山) 등 8읍 사이에 도피한 거괴는 몇 백 명이 되는지 모르겠으니, 반드시 후일에 다시 시끄러울 염려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면으로 뒤쫓아 채포함으로써 기필코 발본색원할 것을 도모하고 있으며, 추후에 소탕할 절차에 대해서는 차례로 보고할 것입니다. 그 연유를 아울러 첩보(帖報)할 일이므로 마땅히 행하여 할 것입니다.……

1. 의정부(議政府) 1. 군무아문(軍務衙門) 1. 내무아문(內務衙門)

주석
소초(疏草) 소초(疏草):남원에 웅거한 김개남은 이름을 ‘남조선을 연다.’는 뜻을 따서 개남(開南)이라고 하고 왕 노릇을 하였다. 그리해 부하들은 상소를 올리면서 신하라고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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