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우도를 시찰하고 포계(褒啓)함 김산소모사(金山召募使) 조(曺)○○(조시영)는 전후를 통하여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실심성의를 다하였습니다. 바야흐로 적도(賊徒)가 창궐하여 황간(黃澗)을 함락하고 명성과 세력을 크게 펼침에 혼란한 민심이 녹림(綠林, 도둑 무리)에 붙어 향응(響應)이 반드시 이르렀습니다. 수만 명의 군중을 몰아서 장차 영[괘방령과 추풍령]을 넘으려고 하는데, 7천 명의 병정을 모집하여 앞에서 칼날을 막았습니다. 하물며 이 김산(金山)은 양호[전라도와 충청도]를 접하여 경계를 정하고 있으니 실로 전국의 요충지요, 4개 군을 가까이해서 인마(人馬)의 왕래가 번잡하고 요란하였으니, 이미 비류(匪類)의 굴이라고 칭해졌습니다. 일로(一路)를 엿보아 인경(隣境)에 유련(留連)하였으니 적류(賊流)를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7일을 지나서 폭도는 재의 모퉁이에 둔취하여 군오(軍伍)를 엄히 단속하였습니다. 급히 각 읍의 병정을 내어 뒤를 쫓으니 저들은 점점 도망하였습니다. 여러 민인을 힘써 불러서 미혹을 깨우치게 하니 모두 고칠 줄 알았습니다. 15명의 거괴를 붙잡으니 원악(元惡)을 이에 얻었고, 만여 섬의 자기 재물을 쏟았으니 그 충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남홍언(南洪彦)과 편사흠(片士欽)이 거느리는 무리는 각각 5, 6만 명이 되었는데, 김개남에게 상소를 올린 죄는 전봉준보다 더하였습니다. 영관(領官) 조윤승(曺潤承)과 초관(哨官) 정진행(鄭鎭行)을 보내어 꾀를 써서 잡아오자, 남은 무리는 흩어져 도망하니 실적이 이와 같고 사람들은 다른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번역:김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