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계실기(蒼溪實記)
창계 신공 실기서(蒼溪申公實記序)
천지(天地)의 굳세고 넓은 기운은 움직이면 바람과 번개가 되고, 엉기면 서리와 눈이 되며, 높이 쌓이면 산악이 되고, 흐르면 강과 바다가 되며, 정기가 모이면 쾌장부(快丈夫)나 기남자(奇男子)가 된다. 근세의 창계(蒼溪) 신공(申公) 같은 분은 이 기운이 모아져서 태어나신 분인가. 공은 암혈(巖穴)에서 독서하던 선비이며 초야에서 콩잎 먹고 지낸 어진 분으로서, 종이에 붓 놀리고[鉛槧], 글을 짓는 것[翰墨]이 평소 익힌 것이요, 창과 같은 무기나 육도삼략(六韜三略)과 같은 병서는 본래 익힌 바가 아니었다.
고종(高宗) 갑오년(1894)의 난리를 당하여 영남 이남에는 벌떼와 개미들처럼 모여든 무리들이 날로 불어나 백만 명이나 되었다. 혹 승냥이처럼 어금니를 갈아 대고, 혹 살무사처럼 독을 뿜어내니, 위로는 사직(社稷)이 누란(累卵)의 위태로움이 있게 되었고 아래로는 생령(生靈)들이 어육(魚肉)이 되는 참혹함이 있었다. 그런데도 곤외(閫外, 왕성 밖)를 호령하는 장수들은 겁을 먹고 두려워하여 전진하지 못하고, 지방을 지키는 관원은 머뭇거리며 뒷걸음치고 있었다. 공이 이에 분한 마음으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고, 백면서생으로 단(壇)에 올라가 한 자 되는 칼로 대중에게 맹세하였다. 첫 번째 싸움에 신원(薪院)에 둔취한 적을 베어 죽이고, 두 번째 싸움에 신녕(新寧)의 진을 깨부수고, 세 번째 싸움에 효령(孝令)의 소굴을 짓이겨 괴수는 죽이고 무리들은 풀어 주었으니, 누가 범노자(范老子, 범중엄)처럼 흉중에 수만 명의 갑병(甲兵)이 감추어진 것을 알았으리오.
몸에는 태산(泰山)처럼 우뚝한 공을 지녔으나, 마음속으로는 모토(茅土)의 상을 끊고, 갈건(葛巾)과 야복(野服)으로 쑥대밭과 정자 위를 소요하면서 지냈다. 죽을 때까지 세 번 이긴 공로를 말하지 않았으니, 앞선 말한바 쾌장부나, 기남자가 공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한 편의 실기(實記)가 세상에 퍼지게 된다면 공의 위대한 이름은 높은 관작이 주어지는 것보다 빛날 것이다. 내가 이를 위하여 부처 머리를 똥으로 더럽히는 혐의를 피하지 않고 감히 위와 같이 서문을 써서 책을 내는 사람에게 주며, 내세에도 오래도록 전해지도록 부탁하노라.
흥양(興陽) 이상교(李相敎) 삼가 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