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이른 아침에 적당(賊黨)이 혹은 말을 타거나 혹은 걸어서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협박하기를,
“이미 그대 집에는 재물이 없는 것을 알고 있으나, 명성을 일찍이 들었다. 지금 보니 위풍이 당당하고, 경우가 밝다. 우리에게 붙으면 괜찮지만, 만일 도를 배반하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라고 하였다. 내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죽는 것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있는 일인데 어찌 홀로 구차히 면하겠는가?”
라고 하고서, 이어 말하기를,
“빼앗을 만한 재물이 없다고 하고서, 어찌하여 나는 데려가고자 하는가? 나이는 오십에 가깝고 힘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못한다. 궁벽한 시골에서 두문불출하면서 계책 또한 몸 하나 꾸려 나가지도 못할 정도이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배고프면 밥 먹고 추우면 옷 입는 것뿐이다. 이러한 쓸모없는 몰골로는 단지 빼앗아 온 물건을 축낼 뿐이니, 무슨 이익됨이 있겠는가? 생각하지 못함이 심하도다.”
라고 하였다. 그들이 잠깐 있다가 떠나가니 날은 이미 정오가 되었다.
이병두에게 말하기를,
“이렇게 험난할 때에는 쉽사리 헤쳐 나갈 용감한 사람이 결코 없을 것이니, 차라리 보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라고 하고서, 함께 지팡이를 짚고 성항산(城項山)에 오르니, 남쪽의 산 중 제일 높은 곳이다. 구름 낀 숲 속 깊은 곳에서 바라보니 마치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맨 꼭대기에 이르자, 삿갓과 짚신 차림으로 소나무 아래에 드나들던 자가 사람을 보고 몸을 숨겼다. 처음에는 서로 알아보지 못하다가, 곁에 다가가서 보니 홍규흠(洪奎欽), 홍두흠(洪斗欽) 형제와 이종근(李鍾根), 이교섭(李敎燮), 족숙 이재하(李在河) 씨였다. 황망하고 울화통이 터질 때에, 더구나 동지들을 이처럼 기약하지도 않고 서로 만났으니, 안부를 물을 겨를도 없이 이마를 맞대고 적을 막아낼 방침에 대해서 서로 물어보았다.
모두가 말하기를,
“사악함과 올바름은 형세로 볼 때 양립할 수 없으니, 공격하기는 해야 하는데, 그들이 이 일대에 가득 차 있고, 뒤의 무리들도 뿌리가 깊습니다. 힘과 세력을 헤아려 보면 직접 맞닥뜨려 당해 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병두가 떨쳐 일어나서 말하기를,
“맹자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스스로 돌이켜보아 정직하면 비록 천만의 사람이라도 내가 대적하리라.’라고 했으니, 지금 적이 우리와는 적고 많은 숫자의 차이가 있으나, 저들은 폭도이고 우리는 의병이며, 저들은 약탈하고 우리는 지킵니다. 이치에는 순응하고 거스름이 있고, 형세에는 어렵고 쉬움이 있습니다. 한 장의 글로 사방에 전하여 부르면 반드시 응할 것이니, 도적들을 잡는 일에 어떤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라고 하니, 홍규흠이 말하기를,
“비록 그렇더라도 (전투를) 익히지 않은 대중으로 막아내기 어려운 예봉을 대적하는 것이니, 승패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또 기록에 이르기를 ‘전쟁에서는 술수를 꺼리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전후로 논한 바가 저의 뜻과 매우 부합됩니다.”
라고 하고서 이어 좌우에 부탁하기를,
“일은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니, 삼가 누설하지 마십시오. 마땅히 위에 논의한 바와 같이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이병두, 이교섭과 나란히 내려오니 이미 어두운 빛이 나무에 드리우고 있었다. 세 사람이 서로 한자리에서 마주 대하고 말하기를,
“산 위에서 한나절을 지나면서 산 밑에 일어난 소요를 보지 못하였으니, 이 또한 한나절의 신선이라고 할 만합니다.”
라고 하였다. 이때 홀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허겁지겁 신발을 거꾸로 신고 바삐 나가 맞이하니 바로 이웃 마을 벗인 이호(李琥)였다. 이호가 소매에서 한 폭의 통장(通章)을 꺼내면서 말하기를,
“내가 신원(薪院)에 가서 이인곤(李寅坤), 이춘영(李永春)과 상의하여 이 계책을 만들었습니다. 당신 뜻은 어떻습니까?”
라고 하였다. 그 글을 보았더니, 근처 지역 사람들을 격동시켜 도적들의 소굴을 소탕한다는 뜻이었다. 과연 산 위에서 계획한 것과 의논하지도 않았는데도 똑같았다. 내가 이에 기뻐하며 말하기를,
“말씀이 장하구려. 오십 년 동안 시골에서 책을 읽은 힘을 여기에서 보겠습니다.”
라고 하고서, 드디어 적을 섬멸할 계책을 매듭지으니, 한목소리로 호응하는 자가 또한 많았다. 이정표(李庭杓), 홍기진(洪祺鎭), 이류(李瑠)는 신원에서 적의 기세를 탐지하게 하고, 홍기표(洪祺杓), 우규석(禹圭碩), 백성근(白成根)은 한편으로는 서남(西南)에 빨리 달려가서 통지하고, 또 우리 면의 각 마을에도 신칙하여 앞에서 부르면 뒤에서 호응케 하고 밤새워 동원시켜 새벽이 되기를 기다려 거행키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