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새벽에 남악(南嶽)에서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몸에는 소창의(小氅衣)를 입고 손에는 가벼운 명아주 지팡이를 짚었는데, 매우 표연하게 보였다. 사당에서 나가 맞이하니, 바로 홍규흠이었다. 악수하고 내게 말하기를,
“성항산(城項山)은 피차 같은 거리인데, 이별하자마자 통문을 보내오니 일에 임하여 결단함이 어찌 이처럼 신속합니까.”
라고 하니, 신원에서 거사한 여러 동지들의 일을 재삼 반복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실로 신께서 묵묵히 도와주신 것이니, 어찌 감히 저의 꾀와 힘이 그 사이에 용납되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홍규흠이 말하기를,
“내가 목격하기로는 통지가 성화(星火)처럼 이르자, 골짜기 안의 원근 촌락에서도 일률적으로 보고 듣는 것이 마치 몸이 팔을 부리듯, 팔이 손가락을 부리듯 하였습니다. 만약 일제히 소리치면 경각에 반드시 도착할 것입니다. 남내(南內, 의흥현의 부남면과 현내면)에서 향응하는 형세가 복심(腹心)과도 같으니, 어떤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까. 또한 병법에 이르기를 ‘용당(龍堂)에는 진을 칠 수 없다.[無陣龍堂]’라고 하였는데, 용당이라는 것은 골짜기 입구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골짜기 입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들은 큰길가에 근거지를 두고 있고, 무기가 정밀하고 날카로워 만약 며칠이라도 늦어지면 그 칼날을 당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장차 군사를 이동시켜 앞에서 치고 동서에서 돕게 하면, 그들은 반드시 생각지도 못하여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고 여길 것이고, 형세가 궁박해져 사방으로 도망칠 것이니, 동쪽으로 간 자는 동쪽에서 잡고 서쪽으로 간 자는 서쪽에서 잡으면 질기기가 누런 칡과 같더라도 또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곳에 머물러 있다가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실수 없이 때맞추어 이르고, 길 다니는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해서 신기(神機)가 누설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또 오늘의 거사는 부득이한 형세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칼날에 피를 묻히고자 하겠습니까? 각기 세 발의 노끈과 한 길의 몽둥이를 갖고서 날쌘 사냥개를 달리게 해서 토끼를 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어 이정표(李庭杓)를 동으로 보내고, 나를 서쪽으로 보내어 소재지에서 각각 사람들을 일으키도록 했다.
어떤 이가 와서 말하기를,
“동도(東徒)들이 밤에 거수리(巨首里) 김 좌수 집에 들어와 약탈해 갔는데, 빼앗은 물건을 가지고 가려고 한 놈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라고 하니, 즉시 결박하고 뒤를 따르게 하였다. 또 건각(健脚, 튼튼하여 잘 걷는 자) 한 명을 시켜 군위와 효령 등지에 통지하게 하고, 선봉대로 하여금 곧바로 신원을 향하도록 하였다. 구 장터에 이르니, 남쪽 사람들은 이미 유목정(柳木亭)에 이르렀고, 동쪽 사람들도 남방제(藍芳堤)에 이르렀다. 이때에 한 번 명령을 내려 엄히 신칙하지 않을 수 없어서, 드디어 사람들과 맹세하기를,
“엄정하게 대오를 정돈하고 감히 이탈하지 말라. 소리와 기색을 드러내지 말고 감히 떠들지 말라.”
라고 하였다. 차례대로 일제히 나아가게 하니, 세 방면의 사람들이 모두 손에 몽둥이를 잡고 허리에는 새끼줄을 찼지만, 살상하는 무기는 없었다.
또 중간에 저들의 연락선을 끊으니, 소굴 속에 있는 적들은 마치 물고기가 솥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여전히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의 모인 무리가 비록 숲처럼 많다고 하나, 장차 어찌하겠는가?
사방에서 오고 있는 자들도 각기 사람들에게 경계하기를,
“지금 적들의 형세는 비유하면 잠든 호랑이와 같다. 한창 잠들어 있으니, 덮쳐 잡는 것이 좋겠다. 만일 그들을 깨우면 필연적으로 사람을 물 것이니, 더욱 조심하자.”
라고 하고서, 일시에 모두 나아가 삼면을 포위하였다. 그리고 담력이 큰 사람 수백 명으로 하여금 재빨리 소굴 속에 들어가 먼저 병기를 거두고 토벌하게 하였다. 우두머리가 죽자, 도적의 무리들은 달아나는 것을 상책(上策)으로 삼았다. 사로잡은 자는 27명이었다.
흩어져 도망가는 적들은 달아나면서 칼을 휘둘렀다. 우리 쪽 사람들도 상처를 입은 자가 또한 많아서, 거의 죽을 지경인 자는 사람들에게 들려 귀가시키고, 상처를 입은 자는 사람을 시켜서 끌어다 밖에 앉혔다.
이어 크게 자리 하나를 벌려서 차례대로 줄지어 앉았다. 붙잡은 도둑들을 막하에 묶어 두고, 그 정상(情狀)을 샅샅이 조사하였는데, 북을 둥둥 치며 간특함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실대로 말하기를,
“이미 붙잡혔으니, 어찌 감히 추호라도 속이겠습니까?”
그들은 본래 무뢰한 무리들로 의식(衣食)을 마련할 계책이 없어서 대낮에 도회지에서 흉악한 짓을 자행하며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자취를 녹림(綠林, 도둑 무리) 속에 감추어 스스로 완악한 자로 여겼습니다. 이미 삼강(三綱)을 끊어 금망(禁網)이 여러 번 내려지니, 광활한 천지에 사설(邪說)이 멋대로 유행한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단지 믿는 것은 도망친 자들이 모여드는 연수(淵藪)뿐이었습니다. 동학은 실상이 없고 이름만을 칭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남쪽으로 내려온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단지 약탈하는 이전의 습관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산골짝만 한 욕심으로 거리낌 없이 소와 말을 약탈하였고, 주지 않으면 해를 끼쳤습니다. 재물과 비단을 취할 때도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단지 솔개가 날개 펼치듯 포악한 기세만을 믿었을 뿐입니다. 온통 기강을 무너뜨린 죄를 범하여 기러기가 그물에 걸리는 정도가 아니니, 감히 목숨을 보전하기를 바라겠습니까. 달리 번거롭게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심문하여 말하기를,
“각처에서 빼앗은 물건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하니 말하기를,
“모처에서부터 모처에까지 전대와 주머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사람을 시켜 찾아보게 하니, 과연 말한 바와 같았다. 찾아서 각각 그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때 칠곡의 동북(東北) 사람 소용구(蘇龍九)가 찾아왔다. 사람됨이 기우(氣宇)가 헌앙하고 기국(器局)이 훤하게 트여 큰일을 당해 대의(大義)를 결정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벌컥 화를 내고 자리를 떠나며 말하기를,
“추악한 무리들의 목숨을 어찌 조금이라도 관대하게 대할 수 있겠는가. 잡았으면 마땅히 죽여야 옳다.”
라고 하였다. 모두가 말하기를,
“그들은 감히 조정의 명령을 거역하였으니 국가에 죄지은 역적이고, 이미 비류(匪類)라고 일컬었으니 백성 중에 반란자들이며, 하나같이 약탈을 일삼았으니 민간의 큰 도적입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범한 게 있으면 만번 죽이더라도 가벼운데, 하물며 이 세 가지 조목을 모두 범한 자들이겠습니까? 이들은 이른바 사람마다 누구나 죽여도 되는 자들입니다.”
라고 하였다. 몽둥이 하나를 들고 선창하니, 일만 사람이 함께 호응하였다. 마침내 어두운 하늘에서 어지러이 우박이 쏟아지니 누구의 손에 떨어지는 줄을 몰랐다. (모두 죽이고) 관에 그 사실을 품고하였다.
또한 사람들을 깨우쳐 말하기를,
“비류들이 호남과 영남 사이에 가득 찼는데, 의로운 목소리는 여기에서 처음 부르짖게 되었다. 그물망에서 빠져나간 무리들은 반드시 큰 곳에 알리고, 불러 모아서 쳐들어올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 세 지역에 있는 무고한 사람들이 반드시 적의 칼날에 피를 볼 것이니, 이는 실로 존망이 걸린 위급한 때이다. 어찌 적을 막아낼 대비도 하지 않고 각각 집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라고 하자, 드디어 신원(薪院)에 유진(留陣)하여 하루를 묵기로 하였다.
신녕(新寧)에서 온 자가 말하기를,
“동도가 지금 화산부(花山府)에 소굴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라고 하니 모두 말하기를,
“뿌리를 뽑는 것이 미진해서, 싹이 다시 자라난 것입니다. 한번 가서 무리들을 잡아들여야 하는데, 누가 장수가 되면 좋겠습니까?”
라고 하니, 이에 최임문(崔任汶)이 백여 명을 거느리고 도적들을 쫓기를 원하였다. 드디어 허락하고 나서, 촛불을 켜고 밤을 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