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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창계실기 蒼溪實記
일러두기

1894년(갑오) 8월 24일 약장 신석찬

본 면약소(本面約所)의 직임
약장(約長) 신석찬(申錫燦)
좌통장(左統將) 이호(李琥)
우통장(右統將) 이이곤(李理坤)
공사원(公事員) 신재하(申在河), 이교섭(李敎燮), 이류(李瑠), 이학곤(李學坤)
문안(文案) 이인곤(李寅坤), 이종근(李鍾根), 신석림(申錫霖), 이영(李瓔), 신석순(申錫珣), 이종진(李種震)

당시 우리 마을의 우인(友人)인 이류(李瑠), 홍기표(洪祺杓), 최용문(崔龍汶), 우규석(禹珪碩), 이영(李瓔), 우창석(禹昌碩), 이종홍(李鍾洪) 등 여러 사람이 서사(書社)에서 나를 맞이하여 적을 막아낼 방략을 물었다. 내가 말하기를,
 “현재 사방에서 소요로 인심이 흩어지고 있으니, 안집(安集)하는 방도는 여러분께 달렸습니다. 각각 스스로 힘써 주셔서 이 고난을 구제해 주시기를 매우 바라고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신성(薪城)의 우인 홍준목(洪準睦)은 임하(林下)에서 독서하는 선비인데 병사(兵事)에 익숙하였다. 평소에 서로 의지하고 살던 처지인데, 지금의 급한 일을 보고 분연히 나를 찾아왔다. 군대의 일과 천시(天時)와 지리(地理)에 대해 옛일을 고증하고 지금 일을 밝히는 데에 상세하지 않음이 없었다. 대개 전후의 규모와 방략은 그가 생각한 계책에서 온 것이 많다.
 선산의 정언(正言) 강세갑(康世甲)도 화를 피하려고 전적으로 나를 찾아와 당시 상황을 참관하면서 여러 날 머물렀는데, 감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돌아갈 때에는 손수 각 읍의 깃발의 표지를 써 주어 군중(軍中)의 지휘를 도왔다.
 이날 이웃에 사는 우인 이교섭(李敎燮), 이희곤(李熙坤), 이병하(李秉河), 이교흥(李敎興), 이종근(李鍾根), 족제 신석기(申錫祺)가 찾아와서 함께 방략을 상의하였다.
 비류들의 성세(聲勢)가 사납고 왕성하여 점차 막아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니, 분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 그때 신석대(申錫岱), 신석문(申錫文), 홍원흠(洪元欽), 신석래(申石來), 신태후(申泰厚), 김상옥(金相玉) 등 제현(諸賢)들이 찾아오니, 그들과 더불어 이리저리 계획하였다.

동림(東林)에서 박혜식(朴惠植), 도진수(都鎭秀), 박만조(朴晩祚), 고창문(高昌文), 고재문(高在文), 김운의(金允儀), 구하서(具夏書), 손정표(孫正杓), 손응국(孫應菊), 박만옥(朴晩鈺)이 내게 찾아와서 말하기를,
 “저희 마을은 외져서 회약소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데, 저 무리들은 매양 깊은 산골을 소굴로 삼아서 출입하고 약탈하니 우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장차 어찌해야 합니까?”
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하나같이 회약(會約) 중의 조약으로서 해당 마을 사람들을 단속하고 저녁마다 순시하고 경계하면 비록 회약소와 다소 떨어져 있더라도 저절로 보전할 방책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저 무리들이 동서로 모습을 드러내니, 침입할 우려가 있는 것 같았다. 이에 당시 인동리(仁同里)의 우인(友人) 이종익(李鍾益), 이언수(李彦秀), 이종하(李鍾廈), 도진규(都鎭圭), 이영곤(李榮坤), 도진성(都鎭星) 등 여러 사람이 찾아왔다. 합의하여 약조를 정하였으니, 참으로 이른바 ‘묻고 상의하니 모두가 동의하였다.[詢謀僉同]’고 하는 것이리라.
 그때에 풍창(風窓, 바람이 통하게 하기 위하여 뚫어 놓은 창문)의 해진 문풍지가 낙엽과 함께 일제히 울었다. 동쪽으로 신원(薪院)을 바라보았다. 신원은 바로 그들이 왕래하던 요해처이다. 더구나 접때에 풍우가 한 번 지나간 뒤에 그 흔적 때문에 물이 깨끗하지 않고, 겁화를 당한 재가 아직도 식지 않았으니, 이는 실로 만배는 더 살피고 조심해야 할 지역이다. 이에 신원 사람 고재순(高宰淳), 고윤문(高允文), 박문석(朴文錫), 이유덕(李裕德), 김재문(金在文), 김병호(金柄鎬), 박기홍(朴基洪), 김재도(金在道), 전봉천(全鳳千), 손만봉(孫萬奉), 천원갑(千元甲), 천원학(千元學), 고영순(高永洵), 주덕수(朱德守)에게 이르기를,
 “현재 동도가 각처에서 창궐하고 있는 것은 보고 들어서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 신원 마을은 우리 세 지역의 통행로일 뿐만이 아니다. 고래처럼 사납게 쳐들어온 적들을 창졸간에 제압하니, 적들이 형세를 관망하고 있는 것이 전례 없이 계속되고 있다. 오직 제군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같이 조약에 따라서 그 적을 막아내는 방략을 지키고, 각별히 힘써 단속하여 주야로 순찰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기밀을 정탐하는 일에 있어서도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하여 경내에서 안도하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금일 바라는 바이다.”
라고 하였다.
 남방(藍芳)의 우인(友人) 이이곤(李理坤), 이학곤(李學坤), 이여영(李如榮), 이근하(李瑾河), 선익흠(宣翼欽), 이상춘(李相春), 홍호흠(洪浩欽), 이선영(李善榮) 등 제현들이 와서 내게 말하기를,
 “저희들이 사는 곳 또한 외진 곳에 있어서 신원과 나란히 이웃하고 있고, 회약소와는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해를 당할 염려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맹하였기에 마땅히 서로 구제해야 할 도리가 있으니, 저희들이 비록 명민하지는 못하지만, 원컨대 스스로 한쪽 어깨를 담당하고자 합니다.”
라고 하였다. 나는 듣고서 장하게 여기고 서로 기밀을 반복하여 상의하고 돌아갔다.
 구방(九榜)에 사는 족인 신석범(申錫範), 신석일(申錫馹), 신석필(申錫駜), 사우 이규후(李圭厚), 이승곤(李昇坤)도 방어의 계책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의리가 있는 곳에 매우 근실함이 나와 차이가 없음을 또한 알 수 있었다.

주석
묻고 상의하니 모두가 동의하였다.[詢謀僉同] 묻고……동의하였다:순 임금이 왕위를 선양할 사람으로 우를 지목하고 말하기를 “묻고 상의하니 모두가 동의하였고, 귀신도 따라 주었다.”라고 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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