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아침에 분향례(焚香禮)를 행하였다. 마침 감영의 관문이 내려와 의거하여 첩문(帖文)을 내렸다. 대략 말하기를,
“지금 성상께서 임어(臨御)하시어 여러 차례 윤음을 내려 의(義)로써 백성을 인도하시고 예(禮)로써 백성을 연마시켜 그 본성을 회복하게 하셨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 무뢰배들은 낳아 주고 길러 준 은택을 모두 잊어버리고 스스로 금하는 법망에 걸렸는가. 어찌 통탄스럽지 않은가. 지금 사학(邪學)을 배척하고 정도(正道)로 돌아가는 방도는 실로 성학을 강론하고 유교적 교화를 숭상함에 있다. 각 고을과 각 면에서 천거하여 임명된 석학들을 강장으로 삼아서 유생들에게 조석으로 사학과 정도의 구분에 대해서 강마(講磨)하여 그들이 정도로 향하게 하라.”
라고 하였다. 이에 전날 선무사(宣撫使)의 관문(關文)에 의거하여 추천한 인원을 관에 여쭈어 보고 시행하였다.
당시 적이 온다는 경보도 잠시 그쳐서 민생이 다소 안정되었다. 그러나 ‘뜻밖의 변란에 미리 대비하고, 편안하여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다.[準備不虞而安不忘危]’는 뜻을 각 통수에게 거듭 돌려 가며 알리고 수시로 점고하였으며, 매일 저녁마다 순찰하고 경계하였다. 하루, 이틀 지나다가 어언 10월 8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