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인동부(仁洞府)에 이르러 토포사(討捕使)를 만나 보았다. 토포사가 말하기를,
“귀하 등 세 고을의 약소(約所)에는 충성스럽고 신의가 있는 선비가 많다고 하니, 듣기에 극히 가상하다. 그런데 지금 호남과 호서에 비류들이 줄곧 창궐하여, 현재 영남으로 넘어오려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저희들은 초야의 보잘것없는 백성으로서 일찍이 병사(兵事)를 익히지 않았으니, 어찌 승패의 이치를 알겠습니까? 회약한 것은 비록 재주가 둔하고 힘은 적더라도 오직 의는 지켜야 하고, 적은 토벌해야 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임기응변하는 일에 대해서는 참으로 멀리 헤아리기 어렵고, 게다가 앞일을 미리 내다볼 수도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토포사가 말하기를,
“좋다. 말이 이치에 합당하다. 일은 반드시 잘 마칠 것이다. 인동과 의흥군은 형세가 입술과 이빨과의 관계와 같으니, 부르면 반드시 응하여 기한을 어기지 말라.”
라고 하였다. 이어 의흥읍의 관포(官砲) 2백 명의 숫자를 채우는 일로 말하기를,
“이때에 무비(武備)를 닦아야 하지만, 담당 유사(有司)가 있으니, 삼가 다시 가르침을 받아서 관(官)에 복명하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어 인사드리고 물러났다.
이때 인동의 약정 장하성(張廈相), 장진환(張璡煥), 장익진(張翼鎭), 장원희(張源喜), 김준필(金俊弼)이 술을 갖고 와서 또 위로했다. 서로 더불어 의리를 강명(講明, 연구하고 조사하여 사리를 밝힘)하고, 시사를 토론하였다. 송별하고 몇 발자국 걸어가는데 그리는 마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