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을사) 정월 16일 세 고을의 회중(會中) 하루는 집포사가 세 고을 약장에게 효령(孝令)에서 크게 점고하도록 하였다. 이곳은 곧 세 지역의 요충지이고 사방으로 통하는 큰길인데, 우리들의 성세(聲勢)를 장대하게 하여 저들의 못된 버릇을 꺾고자 하여 이번 거사가 있었다. 이날 기치를 세우고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각각 총과 창, 망태 등 제반 기구를 가지고, 한결같이 갑오년 때의 옛일처럼 하였다. 군용(軍容)은 씩씩하고 진세(陣勢)가 웅장하였는데, 조련해 온 지가 이미 10년이 되었기 때문에 징 치고 북 치며 진퇴하는 절차와 용과 뱀이 웅크리고 숨는 기세가 일일이 법도에 맞았다.
도로에서 보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는 어떤 유병(儒兵)이기에 이처럼 굳세고 용맹스러운가?”라고 하였다. 효령에 다다르니 효령 사람들이 이미 장막을 설치하고 대를 쌓았다. 각각 소속 부대에 군율을 거듭 엄하게 하니 깃발과 창은 하늘을 찌르고 북소리는 땅을 진동하였다. 이윽고 집포사가 서리와 장교들을 거느리고 달려와서 장대(將臺)에 올라 좌정하였다. 이어 소고기와 술을 베풀어 친히 군병을 위로하고, 각 부대를 순시하였다. 집포사가 더욱 탄복하며 칭찬하기를 “옛적 세 고을의 명성은 이미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이처럼 장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다시 약조를 정하여 매월 1, 2차례씩 점고하고 밤마다 순시하고 경계하여 불우의 사태에 대비하며, 또 관할하는 20개 군에 전령(傳令)을 보내 한결같이 약속을 준행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한 뒤로부터 낙동강의 좌우와 갑령(甲嶺)의 위 아래에 도둑 떼가 자취를 감추고 주민 생활이 안정되었으며, 다시는 약탈하는 근심이 없게 되었다. 이는 우리 세 고을에서 다시 거병함에 힘입은 것이 아님이 없었고, 집포사께서 삼가 부지런히 권려하신 것이 실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