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원에 올림[呈掌禮院]
경상북도 유생 안동 이만준(李萬俊), 의성 박제기(朴濟驥), 대구 이정기(李正基) 등은 삼가 아룁니다. 의흥 사인 신석찬은 충의의 실적이 모두 앞 문서에 실려 있으므로 다시 감히 장황하게 아뢰어 번거롭게 하지 않겠습니다. 군부의 지령(指令)에 “이 사람의 공적은 극히 가상하나 포상의 조항은 본래 공의가 있어야 하니 물러나서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라.”라고 하셨으나, 물러나서 한 달 넘게 기다렸습니다. 여론이 억울해하여 개탄함을 이길 수 없어서 이에 다시 올리니, 부(府)에서 내린 앞 문서의 데김과 본군에서 보고한 글을 세세하게 살펴서 속히 임금께 계달하여 특별히 포상을 받게 해 주신다면 충의를 권장하는 기풍이 사방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먼저 신석찬의 우뚝하고 장한 공적을 포상해 주셔서 후손들이 다투어 사모하고 충성을 다하며, 사(私)는 피하고 공(公)에 용감하게 해 주시기를 천만 엎드려 바랍니다.
1906년(광무10) 6월 일
예식원(禮式院) 장례경(掌禮卿) 합하
데김에,
“포상해 드러내는 은전은 본래 도리가 있으니, 우선 후일을 기다리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