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미(南), 야나이(柳井) 양가의 선조는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036)시대에 대개 일만석(一萬石)을 가진 당당한 무사로 일설에는 비젠(備前)과 빗추(備中) 사이에 성각(城閣)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고시로(小四郞)가 조부인 진베(甚兵衛)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로 그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가계(家系), 가격(家格)이 높은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아자미나미(字南)이라는 마을명의 기원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한다. 또한 양기성(兩家性)은 다이쇼쿠칸(大職冠)037)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鐮足)038)의 후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