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효유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간절하게 타이르는 바이다. 우리 조선은 어질고 후덕함을 내세워 나라를 세웠고 예절과 의리로 풍속을 이루었으며, 임금이 대대로 현명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어 왔다. 그리하여 5백 년 동안 백성들은 전쟁을 모른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근자에 기강이 해이해지고 풍속이 점차 퇴폐하여 감사(監司)와 수령의 탐학과 토호(土豪)와 강족(强族)의 무단적인 행위, 그리고 교활한 아전배들의 노략질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더하여 끝이 없으니, 우리 조정에서 품고 보호해야 할 백성들이 온전히 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경성의 대궐은 멀고 높아서 호소할 길이 없다. 급기야 동학의 명분으로 무리를 모아서 스스로를 보전하여 하루라도 요행히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니, 그 정상을 살펴볼 때 참으로 한탄스럽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본래 문을 닫고 집에 한가히 있은 지 20여 년이 지난 데다가, 이미 늙고 병들어 세상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래 나라에 어려운 일이 많아 병을 무릅쓰고 대궐에 들어가는데 밖을 바라보니 사방의 들녘에는 전란으로 연기와 재만 보일 뿐이고, 궐 안을 살펴보니 조종의 사직이 위태하여 마치 달아매어 놓은 깃대의 술과 같이 흔들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전국을 둘러보니 가장 믿음직하고 나라를 위하는 자는 오직 삼남 지방에서 있을 뿐이었다. 이처럼 믿을 만한 삼남 지방의 태반이 잘못 물들어 버렸다. 이들은 처음에는 원통함을 호소하려고 일어났지만, 점차 그 세를 타고 움직이더니 도처에 소요가 번져 기강을 범하였다. 결국에는 관아에서는 행정을 시행할 수 없고 조정에서는 정령을 행할 수 없으며 백성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없게 되었다. 너희들은 이 일이 과연 의로운 생각에서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도리에 어긋난 생각에서 일으킨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아라.
지금 동학도라고 하는 자들은 난민(亂民)이므로 공격해 섬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모두 주장하고 있지만, 나만은 차마 너희들에게 난민이라는 죄목을 씌우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모두 우리 조정에서 선대부터 조세를 가볍게 하며 편히 길러 온 양민인데, 우리가 그 본성에 순응하여 그 생명을 보전하지 못해 이 같은 난에 이르게 하였으니 어찌 차마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할 수 있겠는가. 조정에서는 이미 3도에 선유사를 파견하여 덕으로 다스리겠다는 뜻을 비추었으나, 너희들이 끝내 이를 듣지 않고 조정에 거역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난민의 죄목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라의 은혜와 용서를 항상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너희들이 이를 모르고 서로 이끌려서 난민에 빠져들까 봐 염려가 되니 이 역시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에 우리 성상의 뜻을 받들어 개진하니 충심으로 복종하여 행동으로 표현하도록 널리 포고하는 바이다. 너희들이 만약 돌아서서 깨닫고 병기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결코 털끝만큼의 죄도 줄 리가 없을 것이다. 지금 가을이 이미 익어 가고 있는 때에 부모, 처자와 함께 배부르게 먹고 즐기며 길이 태평성대의 백성이 된다면, 그중 재주와 슬기가 있는데도 영락하여 동학에 들어간 자는 마땅히 정부가 그 재능에 따라 수용할 것이다. 만일 이 포고와 경계를 따르지 않고 죄를 범하는 행동을 자행하여 벌 떼와 개미 떼처럼 모여들어 진을 치고 관망하면서 해산하지 않으면 이는 스스로 큰 화를 자초하는 것이니 나 또한 사랑으로 돕지 못할 것이다. 내 금년 80 고령에 달리 아무것도 꾀하거나 바랄 것이 없는 늙은이로서 다만 오직 종사와 생령을 위한 한 가지 마음이 있을 뿐이다. 하늘에 해가 있어 결코 서로 속일 수가 없겠지만,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너희들 중에서 의심되는 일을 풀기 위하여 3, 4인이 와서 친히 너희를 타이르는 바를 들으면 반드시 의심이 얼음 녹듯이 풀려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조정의 개혁정치를 너희들도 듣지 않았는가? 종전의 그릇된 폐단으로 백성들의 병폐가 된 것을 하나하나씩 바로잡고 이웃 간의 정의를 화목하게 닦아 화평한 복을 돈독하게 하였으니, 이는 모두 우리 성상의 백성을 위하는 고심(苦心)에서 나온 것이다. 너희들이 의당 이 지극한 뜻에 부응하면 마땅히 잘못됨이 없거늘 어찌하여 평온하고 즐거운 곳을 버리고 스스로 위험한 곳으로 뛰어들어 가는 것인가? 오늘이 바로 너희들의 화와 복의 갈림길이고 삶과 죽음의 관문이다. 나의 말은 여기서 그치노니 각자 잘 알아듣고 후회함이 없도록 하라. 여기에서 특별 효유문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