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匪徒)들의 세력이 더욱 치열하게 일어나 여러 고을들이 그들에게 패주하였다. 오직 본주만이 8월에 성을 지키고 정도를 지켜 굽히지 않았다. 7월부터 그들을 물리친 이후로는 감히 다시는 소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이 다시 거리낌 없이 일어나 수만의 무리들이 제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공공연히 난을 일으키고 있다. 동쪽으로 치고 서쪽으로는 약탈하며, 남쪽으로 토색질하고 북쪽으로는 침범하여 성을 포위함에 이르러 안으로는 좋은 장수를 찾기 어려우며 밖으로는 구원의 손길이 전혀 없으니 즉묵(卽墨)의 외로운 형세요 힘없는 진양(晋陽)의 형국이다. 불길이 장차 가슴까지 타올라 화가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때마침 경병(京兵)과 일군 부대[日旅]가 함께 백성을 위해 적들을 제거하고 나서서 영남과 호남 지역을 소탕하러 나섰다. 이같은 승세를 몰아 전광석화처럼 치달아 무주를 경유하여 아래로 남원으로 향하여 화급하게 행군소로 달려가서 급히 구원을 청하였으니 머지않아 재앙에서 벗어나 이 수만의 생령들을 아침저녁으로 참살의 위험에서 구원할 수 있게 되었다. 십분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혹시라도 지체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1894년 11월 20일
행나주사(行羅州使)[서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