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은진 김포면의 풍헌과 약정, 수교, 도장, 기찰 등과 민인 등이 첩보합니다. 어제 영관주(領官主)의 분부에 의거하여 본면의 임장(任掌)과 민인들이 함께 조경주(趙敬周)와 방양오(方良五)의 집에 모두 모였는데 집이 모두 파손되어 있었습니다. 본 포구는 평소 명승지라고 일컬어지는 곳으로, 거주민들이 항상 상인이거나 여행객들이어서 대부분 장사를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농사를 지어 사는 사람들도 술수(術數)에 정신이 팔려 여념이 없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하물며 이 동학이 극히 허황된 것이어서 본시 여기에 나서서 활동하려고 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나라에서 크게 금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방자하게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본 포구는 양호(兩湖)의 사이에 위치하여 남쪽 경계에 인접하고 있어서 그 인정과 물태(物態)가 교화됨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금년 봄 이래 뜻밖에도 비도(匪徒)들이 남쪽에서부터 크게 일어나 처음에는 멀리서 가까이 오더니만 본 포구를 엿보며 연이어 왕래하며 사람들을 위협하고 사람들의 재물과 곡식을 빼앗았는데, 강약이 같지 않고 상처를 입거나 재산을 다 잃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렇지만 위로는 호소할 곳이 없고, 아래로는 저항할 방책이 없으니 늙은이는 붙들고 어린이는 끌면서 각자 피난하며 울부짖는 소리만 길에 가득하지만 어느 곳을 가야 할 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민정(民情)을 생각하니 어찌 가엾지 않겠습니까. 할 수 없이 죽음 가운데 살 계책을 강구하는데 그 모양을 보니 모여서 의논하고 무리를 모으고 수시로 막을 계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지난 9월경에 순영(巡營)과 본관(本官)이 효유하고 영칙을 내려 분명하게 밝힌 바가 있습니다. 본심에서 우러나와 기꺼이 가담한 자가 아니라면 당을 타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당을 타파하면 반드시 비도(匪徒)의 가혹한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당을 타파하지 않으면 국법을 어기는 듯하여 백성 된 도리로 황송함을 이기지 못하여 사유를 갖추어 본관 가에 호소하고 이어 순영문에도 제출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제사에서 “들으니 매우 가상한 일이다. 민보(民堡)를 둥글게 쌓고 절대 망동하지 말 일이다. 이미 본관의 감결(甘結)이 있으니, 논산(論山)의 예에 따르는 것도 또한 매우 타당한 일이니 상의하여 조속히 시행할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즉각 당을 떠나고 민보를 쌓아야 하지만 비도들이 무시로 왕래하고 있어 그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허다한 거주민들이 봄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끝내 다리를 펴고 잠을 자지를 못하였습니다. 천만다행히도 일병(日兵)과 관군이 마침내 이곳에 온다니 마치 이른 새벽에 하늘의 해를 본 듯하여 사람들이 모두 춤을 추며 황송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병과 관군이 이곳 한쪽 길이 아니고 다른 곳을 따라 당도한다면 미처 그 깊은 정세를 살필 여가가 없어서 혹시 옥석(玉石)을 모두 태워 버릴까 염려가 됩니다. 이에 연유를 고찰하여 보고하오니 침범하지 말라는 공문 1장을 특별히 성급하여 내려 주시기를 천만번 바라옵니다. 삼가 첩정을 일일이 살펴서 시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첩정(右牒呈)
대일본 후비 보병(大日本後備步兵) 제19대대
1894년 11월 20일
풍헌 서(徐)[서압]
약정 편(片)[서압]
도장 방(方)[서압]
수교 이(李)[서압]
기찰 한(韓)[서압]
부로 이(李)[서압]
김(金)[서압]
박(朴)[서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