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을 토벌하느라 각 읍을 지날 때에 수령이 없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정경을 귀로 듣거나 직접 목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략을 진술하겠습니다. 대개 동도의 난은 그 원인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으로, 그들은 엎어지고 자빠져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며 죽으려 해도 죽을 곳이 없어서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미 수령의 탐욕과 학대에, 그리고 이예(吏隸)의 간교와 교활함에, 또 토호들의 침탈에 시달렸으며, 이어서 동비의 난과 전쟁을 겪으며 기근으로 허덕이며 스스로는 살 요량도 할 수 없는 자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도 각 읍의 수령들은 단지 구습을 좇으며, 새로 규법을 정하였지만 실속없이 겉만 그럴 듯하게 꾸밀 줄만 알고 있을 뿐으로 모호한 태도로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윗사람의 뜻이 아래로 통하지 않고 아랫사람의 실상이 위로 이르지 못하여 백성들이 구렁텅이에 빠져 있어도 그 정상을 알지 못하니 그 고질적인 큰 폐단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광주목사 이희성은 나이가 80여 세인데, 아전의 말을 믿고, 동도(東徒)의 공궤(供饋)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하여 민호들을 등급별로 나누어 3백여 석이나 되는 쌀을 거두어들였다고 합니다. 또 경병(京兵)과 일병(日兵)의 접대 비용으로 민간에게서 2만 5천여 냥이 되는 많은 돈을 거두어들였으며, 당시 군사들의 식비가 단지 9백여 냥에 지나지 않았으니 줄을 대어 마구 거두어들이는 것이 이처럼 많은 비용에 이르렀으니, 이 시기에 이처럼 거두어들이는 것이 과연 목민관으로서 해야 할 본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조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금구현감 정해원은 동비의 괴수와 의기투합하여 마음을 다하여 동도의 군수물자를 응대하였으니 그것이 비록 임시방편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진실로 그 행적이 합당한 처사였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옥과현감 홍 아무개는 본읍의 접주 조필승, 김영준과 서로 교제하면서 동학의 군수물자를 민간에게서 거두어들인 것이 모두 1만 3천여 금이나 되며, 도사 정해원의 관칙을 구실로 거둔 결배전이 3천여 냥이나 됩니다. 그러니 이 두 가지 조목은 동도의 자위책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여산부사 유제관은 전봉준의 영칙에 의거하여 세미 5백여 석을 독촉하여 그중 3백여 석은 본읍에 봉치(捧置)하고, 2백여 석은 삼례의 전봉준 주둔소에 수납하여 군용(軍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원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민간에게서 짚신 3천여 켤레를 거두어들여 동도의 행진(行陣)에 보냈습니다. 또 소 7마리를 잡아 동도들에게 먹이며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그 읍의 동괴(東魁) 장달원, 최난선, 윤일봉, 오광신 및 이름을 알 수 없는 진가 놈과 함께 마음을 터놓고 교제하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토벌한다고 하니 그들을 잡아 다스린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오히려 이처럼 숨겨 놓고 있으니 가당한 일입니까. 비록 임시방책이었다고는 하지만 실로 조정의 명을 받은 관리로서의 직사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은진현감 조병성은 고을의 수령직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로지 동도(東徒)만을 싸고돌았으며, 접주를 붙잡은 것을 보면 그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동도를 빼냈으며, 동도들이 아직도 해당 수령의 보호를 받으면서 거리낌 없이 인민을 괴롭히며 낡은 관습을 행하고 있으니 이는 조정의 명을 받은 관리로서의 직사가 아닙니다.
금산군수 이용덕은 고을을 다스릴 때 적의 무리가 많고 아군이 적어서 비록 성이 함락되기에 이르기는 하였지만 다른 곳의 수령들이 연이어 동도의 심복이 된 것에 비하면 그들과는 서로 멀리하였습니다.
나주목사 민종렬은 성을 지키기로 굳게 결심하여 이민(吏民)들이 그를 사랑하고 추대하고 성첩을 새로 수축하였으며, 여러 차례 동도들이 침범하였지만 굳건히 성을 지키며 그 직분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나주영장 이원우 또한 본 고을의 수령 및 순무영의 별군관 김윤창과 협력하여 성을 지키며 부지런히 그 일을 다하였다고 합니다.
노성현감 김정규는 처음에는 형편이 어쩔 수 없어 오염되었지만, 동도의 화를 면하였으며 맡은 일을 치밀하고 근면하게 수행하였습니다.
순창의 소모관 임두학은 고을 안의 감당할 만한 인물들과 함께 처음에는 동도들에 대하여 미봉책을 썼으나 끝내 성을 지켜 고을 경내를 편안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봉준, 최경선, 윤종호 등을 모두 부하들과 궁리하여 체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회덕현감 이 아무개와 평택현감 이재욱은 80 먹은 늙은이로 걷기조차 못했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밥통이나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고산현감 장 아무개는 동도들을 체포하고는 뇌물을 받고 풀어 주었으며, 여러 가지 구실로 백성들에게서 재물을 거두어들였는데, 이루 다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