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28년(1895) 1월 18일 함평에서
육군 보병 특무조장 스즈키 마사키치
미나미 소좌 전
1. 장반기(張扳基) 친형의 죄적은 별지에 있다.
2. 이고창(李高敞)에 관한 죄적의 참고를 위한 친척 이내중(李乃中) 외 2인의 취조서는 별지에 있다.
3. 동인의 친척 이진국(李眞菊)의 신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 이고창과 어떤 친척 관계인가?
답: 이고창은 나의 부친의 남동생의 아들이다. 즉 종제가 된다.
문: 이고창의 동학당 관계에 대해 신문한다. 동인의 차남 철규(喆奎)가 이전에 전봉준과 동행한 것이 사실인가?
답: 차남 철규는 7, 8월경부터 전봉준을 수행하여 남평(南平), 화순(和順), 동복(同福) 등의 각지에 이르렀고, 그로부터 전령을 받아 본읍에 돌아왔다.
문: 이고창은 전법준과 일을 계획한 일이 있는가?
답: 함께 일을 계획하였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러나 본년 8월경 나주에서 전법준과 회합한 일이 있다.
문: 이고창이 동도의 난을 피하기 위해 나주에 간 것은 사실인가?
답: 그렇다.
문: 그때 가족도 함께 데리고 갔는가?
답: 아니다. 가족 중에 친모, 처, 자의 처, 아들 4인 이상 7인을 이화진의 집 근처의 집에 맡겨 두었다.
문: 이고창은 이화진과 같은 마음으로 동학을 행한 것은 사실인가?
답: 같은 마음으로 행하였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러나 이화진이 동학당 사람을 인솔하여 곳곳에서 포악한 행동을 하였을 때 여러 번 서신을 왕래한 것을 목격하였다.
문: 이상삼이 이고창의 가옥을 모두 태웠고, 또 이고창의 재물을 약탈한 것은 사실인가?
답: 이상삼은 그렇게 한 일이 없다. 그리고 수치(水峙)에 있는 이고창의 가옥은 동도인 전행로(全行老)라는 자가 불을 지른 것으로 안다. 또 주포(酒浦)에 있는 집은 영광, 무장(茂長), 주포 등의 동도가 전부 태웠다.
문: 이상삼은 동도의 거괴로서 대악무도한 것을 알고, 먼저 포박하여 나주에 보내서 이미 처형하였다. 너는 그의 죄적을 아는가?
답: 이상삼은 동학도인이지만 그는 단지 다른 동학당이 우리 읍에 들어와 폭행하는 것을 방지하였을 뿐, 결코 죄적은 없다.
문: 그렇다면 이상삼은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답: 그는 처음에 당을 모았지만, 단지 해당 지역에 있으면서 백성을 보호하는 일만을 도모하였다. 어느 날 나주를 공격하려고 하는 동학당이 빈번하게 이상삼을 불러, 만일 무리를 인솔하여 오지 않으면 그곳에 이르러 함평읍 전체를 태우고, 또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일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이상삼은 어쩔 수 없이 20여 인을 인솔하여 이르렀다. 그리고 그날로 곧장 돌아왔는데, 일동이 그 연고를 묻자, 그는 답하기를 “내가 왜 그들과 함께 성을 공격할 뜻이 있겠는가. 고로 돌아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병을 칭하여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화진으로부터 누누이 서면을 보내왔다. 그 편지의 뜻은 ‘만약 포를(당도를 가리킨다) 일으키지 않겠다면 다량의 화약을 제조하여 보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상삼 및 함평읍을 도륙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인민으로부터 약간의 돈을 모아 화약을 제조하여 보냈다. 이것은 곧 동도를 도와준 뜻이 아니라, 곧 인민을 구하는 책략으로 나온 것 외에는 없는 것이다.
문: 너의 말에 의하면 이고창은 이화진과 같은 마음으로 동학을 행한 것 같다. 그런데 동도를 위해 가옥을 태우고, 재물을 약탈한 것은 사실에 반하는 것 같다. 어떠한가?
답: 이고창은 원래 재산가이고 또 대단한 세력가이다. 또 인민으로부터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금전을 탐하는 것이 항상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동학당에 뜻을 통하였지만 인민들이 동학도의 세력을 빌려 그의 집을 태운 것이 분명하니, 이것이 평소의 숙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