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유생(錦山 幼生) 이석구(李錫九)・양재봉(梁在鳳) 등이 순무(巡撫) 합하(閤下)께 상언(上言)하는 바입니다. 바라건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의로운 것으로는 임금과 아버지에 대한 것이 가장 크며, 신하와 아들의 분수는 충효만한 것이 없습니다. 금산군은 임진난 때에 중봉(重峯) 조헌(趙憲)・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 두 선생이 700의사와 함께 순국하여 나란히 목숨을 다한 곳입니다. 그 분들을 크게 우러르고 의리를 추모하는 마음은 다른 읍과는 크게 다릅니다.
아! 저들 비류들이 사부(士夫)를 능욕하고 백성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으니, 위로는 국가의 근심이요, 아래로는 백성들에는 해독을 끼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무렵에 고부(古阜)의 여당 500~600명이 금산 지역을 노략질하고 재산을 빼앗으려 한다고 하였는데, 방백과 수령들이 막지를 못하였으며, 지난 5월 무렵에 전라감영에서 동도(東徒) 중에서 집강(執綱)・금찰(禁察)・규찰(糾察)의 역할을 하는 자를 차출하여 여러 읍에 파견하여 보낸 것은 경망스럽고 추잡한 다른 부류들을 금하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소위 역할을 맡아서 파견된 자들이 오히려 행패를 부려서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이고 말을 빼앗아서 마을 백성[人民]들이 하나도 안도하지 못하였으니, 지금 수령이 고을을 다스리지 못하는 상황이 오래 되었습니다.
유림들이 통문을 돌려 새롭게 의병을 일으켜(刱義), 포수 300명과 무사 700명을 뽑아서 화를 막았습니다. 그동안 그들에게 급료[放料]로 매일 1인당 엽전 8전(戔)씩을 배급하고, 우선 유림 가운데 의(義)를 내세워 낸 돈이 5,000여 량이며, 또한 고을 아전들이 뒤따라 낸 돈이 7,000~8,000냥이며, 또한 생활이 넉넉한 백성[饒民] 중에 돕기를 원하는 자가 낸 것이 10,000여 금[金]입니다. 이를 가지고서는 겨우 3,4개월을 지낼 수 있는데, 지금 이미 돈이 다하여 다시 조치할 만한 계책이 없습니다. 어찌 답답하고도 급하지 않겠습니까? 외람됨을 피하지 않고 먼 길까지 걸어서 왔습니다. 임금께 아뢰어 주시기 바라며, 특별히 이를 조치하여 나누어줄 방도를 내려주시기를 몹시 바라는 바입니다.
제(題) : 의리를 내세워 적과 싸우려는 의기는 매우 가상히 여기며 감탄하는 바이다. 두령[頭領, 狀頭를 말함]에게 체문[帖文]을 내려 줄 것이며, 필요한 물자를 마련하는 방도는 충청도 감영에서 충분히 논의하여 금산읍에 좋은 방향으로 조처할 것이니, 더욱 단결하여 앞으로 나아가 적을 죽이고 포획하는 방법을 도모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