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병사 이장회가 원본을 베껴 보고합니다. 충청병영의 병정 1백 명이 순영에 오랫동안 있어서, 순찰사 박제순의 지휘에 따라 10월 3일 우영관(右領官) 염도희(廉道希)・대관(隊官) 이종구(李鍾九) 등이 병정 80명을 이끌고 효유하기 위해서 행군하여 공주의 대전평(大田坪)에 도착하였습니다. 적의 무리(賊黨)들의 대도회(大都會)를 여는 곳에 가서 나라의 명령을 널리 알리려 할 때에, 수만 명의 그들 무리들이 사방으로 에워싸서 총을 쏘고 무기를 빼앗으려 하였고, 영관과 대관이 가지고 있는 환도를 바칠 것을 요구하면서 도리를 내세워 꾸짖었으나, 상황을 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자신의 목을 칼로 찔렀으며, 그 나머지 교장(敎長) 이하 여러 병정 80명은 모두 도륙되었습니다.
옛날과 지금을 살펴보아도 어찌 이와 같은 큰 변고가 있었겠습니까? 속히 그들을 무찔러 없애는 것을 잠시라도 늦추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밖에서는 구원해 줄 군대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고 있으며, 안으로는 병사의 기세가 꺾여서, 외로운 성에 주둔해서 지킬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묘당(廟堂)에 명을 내려 외국 군대를 나누어 출발하게 하시고, 하루빨리 도착하여 성을 보존하게 하십시오. 급히 임금께 아립니다.
제(題) : 듣건대 매우 슬픈 일이다. 그들을 보살피기 위한 은전이 있을 것이며, 장사(將士)들의 가속(家屬)들을 우선 두텁게 잘 보살피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