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병사 이장회가 원본을 베껴 보고합니다. 공주 대전평을 순행하던 장졸 80명이 난역배들에게 도륙을 당한 연유는 이미 임금께 급히 보고하였습니다. 청주의 세교(細橋)・송산(松山)・미원(米院)・청천(靑川) 4곳에 주둔하여 모여 있던 비류(匪類)가 10월 4일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힘을 합쳐 성을 공격하고 함몰하여 사람들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0월 3일 깊은 밤중에 성을 지킬 병졸들을 뽑고, 군관을 정하여 보냈습니다. 행군하여 세교에 이르러서 그들을 무찔러 깨뜨리고, 먼저 상당산성에서 잃어버린 군물을 취하여 충청병영에 보냈습니다. 이어서 송산(松山)으로 향하였는데, 적도들이 수만 명이 산과 들을 가득 채우고 깃발을 세우고 나팔을 불고 있었습니다. 수적으로 우리는 적고 저들은 많아서 실로 서로 대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관군과 일본군대는 세력을 나누어 협공(夾攻) 하여 총으로 쏘아 죽이니, 전봉(前鋒)은 적진이 조금 물러나자, 기세를 타서 달아나는 자들을 쫓아갔으며, 적도를 쳐서 죽인 것이 수십 명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그들은 임시로 물러나서 흩어져 있으며, 곳곳에 주둔하여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소문을 듣고 서로 대응하고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위험한데, 구원병은 기약이 없고 군량과 자금은 모두 모자랍니다. 하오니 정병(精兵) 2천 명을 하루빨리 내려 보내도록 명령하여 주시고, 흉도(凶徒)들을 영원히 제거하고 백성들을 보존하게 해줄 것을 임금께 급히 아룁니다.
제(題) : 안성과 죽산 양진(兩陣)이 우선 합력하여 적을 무찌르고 생포하고 있으며, 곧바로 대병(大兵)이 이어서 출발하니 서로 응접하여 때에 따라 처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