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부사 이두황이 첩보합니다. 진병(進兵)하는 것을 모여서 논의하기 위해 10월 12일에 청주 땅에 주둔하여 묵은 연유는 이미 급히 보고드렸습니다.
10월 13일 보은 장내를 향하여 출발하였는데, 진남영 장졸들은 앞에 섰고, 장위영 장졸들은 중간에 서고, 경리청의 장졸들은 청주에서 미원(米院)까지 뒤에서 행군하였습니다. 경리청 장졸들은 미원점(米院店)에 그대로 남아서 장위영과 진남영의 장졸들을 뒤에서 응원하게 하고, 이어서 곧바로 행군하였습니다.
오시(午時, 오전 11~오후 1시)에 보은의 중치(中峙)에 도착하였으며, 동도(東徒) 35놈을 사로잡았습니다. 전진하다가 밤이 어두워 이미 저물어서 그대로 허길곡점(許吉谷店)으로 향하여 군대를 머물게 하고 밤을 지내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구현(龜峴)을 넘어 갔습니다. 이미 잡은 동도(東徒)들의 행적을 조사하여 접주와 장물을 가진 자 12놈을 가려내어 처치하였습니다. 그 외에 협박을 받아 따른 여러 놈들은 모두 곧바로 풀어주었습니다. 보은 함림역(咸林驛)을 지나던 중에 또 임(任)씨 성을 가진 자(任命) 및 장물을 가진 동도(東徒) 3놈을 모두 처치하였습니다.
진남영의 장졸은 곧바로 보은(報恩) 읍으로 가서 머물렀습니다. 장위영의 장졸들은 곧바로 장내(帳內)로 갔는데, 동도(東徒)들은 이미 10월 11일 청산(靑山)으로 옮겨서 모인다고 합니다. 비류(匪類)들이 살던 풀로 만든 움집(草窖) 4백여 곳과 마을에 있는 집이 수백여 호인데, 한 마을이 또한 이미 텅 비어 있었습니다. 살고 있던 20여 놈들 또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수색하여 잡은 3놈은 그 자리에서 총을 쏘아 죽인 후에 그들의 풀로 만든 움집과 가사(家舍)를 모두 태웠습니다. 보은으로 돌아오던 길에 1놈을 잡았는데, 이는 거괴(거괴)를 따라다니면서 행패를 부린 자였으므로, 또한 그 자리에서 처단[結果]하였습니다. 처단된 자들의 성명과 죄목・장물을 모두 성책하여 올려 보냈습니다.
당일 유시(酉時, 오후 5~7시)에 보은읍에 도착하였으며, 삼영[진남영・장위영・경리청]의 장졸들은 함께 주둔하여 묵었습니다. 전진하여 무찌를 대책을 세워서 병사들을 나아가게 하는 것을 상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