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병사 이장회가 원문을 베껴 보고합니다. 괴산군에서 작당한 연유는 이미 급히 임금께 아뢰었습니다. 진남영에서 따로 보내 자세히 정탐한 즉, 10월 6일 동도(東徒)가 괴산군에 크게 이르렀으나, 때마침 일본군사 수십 명이 와서 머물고 있으며, 읍속 수백 명과 힘을 합해 싸움을 벌였으나 적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궤멸하여 흩어지니, 동도(동도)가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돌입하였고, 먼저 재화를 찾아내고, 관청 건물과 백성들의 집 7백여 호에 일시에 불을 놓아 모두 타버렸습니다. 군수와 관속배들이 겨우 충주 지역으로 도망할 수 있었으며, 인명이 다치고 죽은 자를 보면, 읍속으로서 죽은 자가 10명이고, 부상자가 수십 명이며, 일본 군사가 죽은 자가 1인이며, 부상자가 2명입니다. 동도(東徒)는 죽은 자가 15명입니다. 급히 임금께 아룁니다.
제(題) : 도착했다.